모쉬 핏(Mosh Pit)에서 질서가 유지되는 과학

모쉬 핏을 그리는 아티스트 Dan Witz의 작품 "Agnostic Front Circle Pit"



헤비메탈, 하드코어 펑크등 과격한 음악을 아시는 분들은 공연장에서의 모슁, 슬램 문화를 익히 아실 것입니다. 앞뒤 안가리고 주먹을 휘두르고, 위험하게 서로를 밀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각자 나름의 거리를 유지하기 때문에 싸움이나 사고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공연장에서 모쉬핏에서의 이런 행동을 집합 행동(Collective motion) 이론으로 분석한 연구가 있어서 소개해봅니다. 

이 연구는 2013년에 코넬 대학교에서 물리학 박사과정에 있던 Jesse L. Silverberg가 Itai Cohen 교수의 지도 아래 이루어졌습니다. 공연장에 실제로 가보는 것은 자비를 들여서 했다고 하는데, 덕질로 논문까지 낸 성공한 덕후네요. 현재는 하버드에서 포닥을 하고 있습니다.

원문은 “헤비 메탈 콘서트에서 모슁하는 이들의 집합 행동"(Collective Motion of Moshers at Heavy Metal Concerts: 링크)이라는 제목의 논문입니다. 연구에서 설정한 상황은 슬램에 더 가깝지만 모쉬 핏(mosh pit), 모슁(moshing)이 더 일반적인 용어이기 때문에 이 포스팅에서는 모쉬 핏, 모슁으로 통일하겠습니다. 그리고 공연장에서 모슁을 하지 않는 사람들의 구역은 편의상 '안전지대'라고 하겠습니다.(안전지대는 제가 붙인 이름입니다!)


본격적인 글에 앞서, 과격하기로 소문난 Nasty의 브라질에서의 공연 영상부터 소개합니다. 이 영상에서는 공연장 맨 뒤쪽이 안전지대이네요.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각자의 공간 안에서만 방해되지 않게 모슁을 하고있습니다. (그래도 무시무시하네요..)



1. 이 연구를 통해 알아내고자 하는 것(Research question)

이 연구를 통해 알아내고자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불균형적인 시스템이 어떻게 균형 잡힌 모습을 보이는가?” (Why does an inherently non-equilibrium system exhibit equilibrium characteristics?)입니다. 나름의 균형이 지켜지고 있는 모쉬 핏과 안전지대를 더 일반적인 과학적인 언어로 표현한 연구 제목이네요. 여기서 Jesse가 주목한 균형이라는 것은 모쉬 핏 내에서의 균형이 아니라 모쉬 핏과 안전지대의 균형입니다. 아무리 격렬한 공연장이라도 그 안의 모든 사람들이 모쉬 핏에 휩쓸리지는 않으니까요.

분석을 위해 Jesse는 모쉬핏을 간소화한 시뮬레이션을 만들었습니다. Python으로 만들어진 “MASHer(Mobile Active Simulated Humanoid: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시뮬레이션 인간)”라는 이름의 이 시뮬레이션은 Github 페이지(링크)에서 누구나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바로 실행해볼 수 있게 자바스크립트로 만들어진 시뮬레이션도 있습니다.(링크) 이 시뮬레이션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조금 더 자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2. 가정


1) 모쉬 핏의 사람들은 약간의 탄성이 있다.
시뮬레이션에서 빨간색은 모슁을 하는 사람들, 검은색은 모슁을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일단 빨간색, 검은색 사람들, 일명 MASHer는 약간 탄성이 있다고(soft) 가정하였습니다. 사람이니까요.


2) 모슁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움직인다.
Jesse는 모쉬 핏을 분석하기 위해 일단 기체 분자 운동(Maxwell-Boltzmann) 이론으로 접근했습니다. 무작위하게 서로 부딫친다는 의미에서 모쉬 핏과 기체 분자 운동는 비슷하지만, 차이점이라면 외부의 에너지 개입 없이 ‘스스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self-propelled). 공연장에서 음악 혹은 브레이크다운 파트가 에너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물리학적인 관점에서는 에너지가 아닙니다 ^^;


기체 분자 운동을 표현한 그림입니다. 그림에 나와있듯이 기체 분자 운동을 하려면 ‘열’같은 외부의 에너지가 주입되어야합니다. 반면에 모쉬핏의 사람들은 '외부의 에너지'가 들어오지 않아도 알아서 뛰고 부딫칩니다. (이미지 출처:http://image.surae.com/library/img/carsense/heatenergy.jpg)


3) 모슁하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가운데에 모여있다.
사람들은 모슁을 위해 시작부터 공연장 가운데로 모이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실제 공연장을 생각해보면 적절한 가정입니다. 모슁을 하는 사람들은 모쉬 핏 안에서 무작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모슁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 머무려고 한다는 가정도 세웠습니다.

여느 공연장처럼 이런 식으로 모쉬 핏은 가운데에 둥그렇게 생긴다는 가정입니다. (이미지 출처: https://metalstate.files.wordpress.com/2013/02/anti-flag_circle_pit.jpg)



3. 방법

이 가정을 바탕으로 시뮬레이션을 만든 방법은 이러합니다. 일단 Jesse는 인터넷에서 모슁 영상 5개로 범위를 좁힌 후 자료를 수집했습니다.(Jesse가 참고한 영상들은 참고에 있습니다.) 모아진 영상 자료들을 복잡계(complex system) 연구에 사용되는 Vicsek 모델(“떼 지어 모이는 행동(Flocking)”을 설명하는 모델)을 이용하여 사람을 2D의 입자로 간소화하였고, 그 입자 하나 하나를 분석하는 방법인 PIV(Particle Image Velocimetry, 입자 영상 유속계)를 통해 분석하였습니다.

시뮬레이션 상황은 이러합니다. 공연장에는 500명의 사람들이 있고, 150명이 모슁을 하려고 공연장 가운데에 모여있습니다. 일반적인 모슁(불규칙적인 충돌)은 기체 분자 운동 모델, 써클핏은 와류(Vortex) 모델로 분류하여 시뮬레이션을 만들었고, 그 MASHer라는 이름의 시뮬레이션은 실제 상황과 꽤 잘 맞아떨어졌다고 합니다. 

자세한 공식과 상수는 원문(링크)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여담이지만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작품의 소용돌이가 난기류(Turbulence) 모델에 잘 맞다던 연구가 문득 생각나네요. Ted Education에 올라온 영상을 한국어 자막 설정 해놓았습니다.




4. 결과 및 후속 연구

한정된 공간인 실내 공연장에서 모슁을 하는 사람들(비평형, 불균형. non-equilibrium)은 아닌 사람들(평형, 균형. equilibrium)에 둘러싸이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두 그룹은 뚜렷이 나뉘어져서 균형을 유지하게 됩니다. 모쉬 핏 중앙에서는 사람들이 스스로 뛰면서 무작위한 충돌이 계속 유지되지만, 경계 부분에서 서로 부딫칠 때는 그런 무작위한 에너지가 빨리 소멸되고 안정화됩니다. 

요약하자면 모쉬 핏과 안전지대의 경계 부분에서는 에너지 소멸이 훨씬 크기 때문에 모쉬 핏이 무한정 커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 결과는 기체 분자 운동(특히 확산)을 설명하는 통계 이론인 중심 극한 정리(Central Limit Theorem)에도 부합한다고 합니다.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느껴지는 결론이지만 모쉬 핏을 이렇게 수학적, 물리학적으로 설명했다는 것이 중요한것일 겁니다. 이 연구는 재해가 일어났을 때 충격에 휩싸인 많은 사람들이 효과적으로 대피할 수 있는 방법, 시위대를 질서있게 유지하는 방법 등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Heaven Shall Burn 공연에서의 Wall of death 360’ 영상입니다. (크롬을 제외한 몇몇 브라우저에서는 재생이 안됩니다.)


Jesse가 세운 가정과 공식, 시뮬레이션은 굉장히 훌륭하지만 아직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모쉬 핏이 두 그룹으로 나뉘어서 동시에 서로를 향해 달려드는 Wall of death와, 점핑을 할 때 주변 관객들과 같이 뛰지만, 크게 봤을 때는 무질서한 ‘음악에 맞춰 점프를 하는 행동’은 후속 연구 주제로 남아있습니다. 


5. 급 마무리

급 마무리를 하자면.. 본 연구는 Jesse가 여자 친구를 메탈 공연장에 데리고간 것을 계기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혼자 갔더라면 모쉬 핏에 바로 뛰어들었겠지만, 여자 친구가 모슁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서 평소와는 다르게 안전지대에 함께 있었다고 합니다. 안전지대에서 모쉬 핏을 봤을 때, 무질서해보이지만 모쉬 핏과 안전지대 사이에는 나름 질서가 지켜지고 있었고, 그것을 물리학 이론으로 분석하기 위해 이 연구가 시작된 것입니다. 좋아하는 공연장도 가고, 데이트도 하고, 논문도 내는 일석삼조를 위해 사랑하는 연인을 공연장에 데려갑시다!


모슁의 바이블격인 뮤직비디오 Sick of it all의 Step down으로 부족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by Corejae




참고:


원문: Collective Motion of Moshers at Heavy Metal Concerts(링크)

Jesse가 연구를 위해 참고한 모슁 영상들:
- Avenged Sevenfold: http://youtu.be/nOHY1YxX5iA 
- 모쉬핏 모음 영상1: http://youtu.be/o7w7m4lb2ok 
- 모쉬핏 모음 영상2: http://youtu.be/l6R7PiISaZw)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