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재밌어 번역해야만 했던 도시괴담 3개
이전 인터넷 도시괴담 포스팅에서 영어권 인터넷에서 요새 크리피파스타 (Creepypasta) 라고 일컬어지는 괴담들에 대해서 다룬 바 있습니다. 이전 포스팅에서 소개했던 '슬렌더맨' 같은 경우는 어떠한 하나의 괴담이라기 보다는 'Alternate Reality Game (ARG)' 라고 하는 인터넷 게임의 소재에 더 가깝습니다. ARG는 누군가 현실세계에서 어떤 가상의 상황을 가정한 후, 다른 유저들이 그것에 상상을 덧붙여나가는 놀이인데요, 그 형식도 예를 들어 리플을 다는 등의 정해진 방식을 넘어서 이미지, 동영상 시리즈물 까지 다양하게 이루어지는 것이죠. 소위 덕질... 덕질도 전문적으로 하면 직업이 된다나.. 슬렌더맨 관련 유튜브 시리즈 "Marble Hornets" 는 DVD 및 티셔츠 등 각종 merch 까지 출시되었고, 최근 behind the scenes 영상도 나왔습니다. 슬렌더맨을 소재로 한 게임 "Slender: The Eight Pages"의 개발자 Mark J. Hadley 는 게임 개발자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성공들은 저번 AVGN 포스팅에서 소개드린 James Rolfe 와 nerd culture 와도 연관되어있죠.
벌써 이야기가 다른데로 샜는데, 이번 포스팅에서는 저번에 약속드렸던 'Ted the Caver' 및 너무 재밌게 읽어 번역해야만 했던 '1999' 그리고 'My Grandfather Suffered from Dementia'를 소개드리고, 그 외 번역하진 않았지만 인상적인 괴담들을 소개드리려 합니다.
*주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니 번역문 또는 원문을 읽어보신 다음 읽으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1. Ted the Caver
(워낙 길어서 다른 곳에 올렸던 걸 링크로 올립니다. 오유 말고도 다른 곳에도 올렸는데, 오유에 올린 것이 가장 가독성이 좋네요. 한글은 기울임체로 쓰면 너무 읽기가 안좋음...)
Ted the Caver 는 블레어 윗치 (Blair Witch Project) 또는 클로버필드 (Cloverfield) 로 대표되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식의 괴담입니다. 시놉시스를 드리자면, 미국에 사는 'Ted' 라는 동굴등반가가 동료 'B' 와 함께 집 근처 동굴 속에서 벽에 난 구멍을 발견합니다. 구멍에서 불어나오는 바람은 구멍의 뒷쪽 새로운 동굴 통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둘은 구멍을 깎아내 직접 들어가 탐사해보기로 합니다. 하지만 구멍을 넓히는 작업은 고되기 짝이 없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상한 현상들이 발생하기 시작하는데...
이 소위 '페이크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는, 이제는 식상하기까지 한 현대 공포물의 전형 중 하나가 되었고, 특히나 영화가 아닌 이야기 괴담은 대략 절반 이상이 해당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냥 단순한 예를 들어도, "몇 년 전 철수라는 아이가..." 로 시작하는 것 보다는 "10년 전 제가 대전에 처음 왔을 때..." 로 시작하는 것이 훨씬 리얼리티 있고 흥미를 끌죠. 사실 고전 중의 고전 에드가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만 해도 1인칭 시점으로 쓰여졌죠. 1인칭 시점의 공포영화가 등장한지 그리 오래돼지 않았을 뿐이지, 독자의 상상력을 이용할 수 있는 소설에 있어서는 1인칭은 이미 고전적인 것이라는 걸 지금 깨닫게 되네요.
Ted the Caver 는 인터넷에 등장한지 10년이 넘어가는 이야기입니다 (ref). Creepypasta 의 아버지 격인 작품인 것이죠... 실제 이름이 Ted 인 사람이 1999년-2000년 친구 Brad 와 함께 탐험했던 동굴에서의 경험과 찍었던 사진을 바탕으로 2001년에 쓴 소설이죠. 물론 저 이야기에 나오는 이상한 현상들은 지어낸 이야기고요. ^^ 인터넷에 그냥 동굴 탐사 일지를 공유하려 하다가, 무서운 이야기로 각색해보면 어떨까? 해서 탄생한 것입니다. 재밌는 것은 당시에 만들었고 아직도 존재하는 원본 웹사이트의 조악한 디자인이 오히려 더 섬뜩한 느낌을 준다는 것입니다. 2001년이면 블로깅 이라는 개념도 별로 없었을 때고, Wordpress 같이 깔끔한 페이지를 쉽게 만드는 툴 같은것도 없었을 시절이니... 마치 똑같은 영상이라도 심하게 열화된 VHS 영상으로 보면 뭔가 무섭고, 인터넷에 심령사진이라고 돌아다니는 것도 죄다 저화질인 이유도 그런 것이겠죠.
인터넷에서 상당히 화제가 되었던 이 이야기는, 의외의 논란에 휘말리게 됩니다. 인터넷에 Thomas Lera 라는 사람이 쓴 것으로 보이는 한 소설이 pdf 파일로 올라오게 되는데요 (문제의 소설), 이 소설은 모든 설정에 있어 Ted the Caver 와 거의 똑같습니다. 친구 둘이서 동굴에 내려갔는 벽에 무슨 구멍이 있어서 팠더니 어쩌구저쩌구... 으아악 살려줘 도망가자 으어어어어 이런 내용입니다. pdf 파일에 보면 Thomas Lera 1987-2004 라고 되어 있는데, 이 글이 1987년에 쓰였다는 인상을 주죠. 그래서 Ted the Caver 가 그 글을 베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그 의혹에 결국 Ted the Caver 의 저자가 한 블로그를 통하여 자신이 베낀 것이 아니라는 변호를 하게 되었습니다. Thomas Lera 라는 사람은 검색해도 별로 나오지 않는 것을 보아 프로 작가도 아닌 것 같고요.
위 논쟁에 대한 링크들:
https://grahamjw.wordpress.com/2009/09/17/ted-the-caver-mystery/
http://www.unexplained-mysteries.com/forum/index.php?showtopic=211967
http://boards.straightdope.com/sdmb/showthread.php?t=490085
Ted the Caver 는 영화로도 제작되었습니다. 'Living Dark' 라는 제목으로.
휴... 슬프게도 트레일러만 봐도 아주 구린 영화로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원작자한테 저작권료 주긴 했을까요?
포스터는 그럴싸 한데... ㅠㅠ
아마도 Ted the Caver 는 여태까지 나온 Creepypasta 중 가장 파급력이 컸던 것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거의 슬렌더맨 만큼이나 말이죠. 이게 미국 동굴투어 산업에 어떤 영향을 줬을까나...
2. 1999
(역시 너무 길어서 다른 곳에 올린 것을 링크합니다.)
'1999'는 'Ted the Caver'와 마찬가지로 인터넷 블로그의 형식을 빌린 이야기입니다. '1999'는 흥미롭게도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0대 초반의 대학생인 '엘리엇'이라는 사람이 어렸을 적 TV에서 보았던 이상한 프로그램들이 나오는 채널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집에 있던 고물 TV로만 잡히는 데다가, 방송 시간도 아침 9시에서 오후 4시 정도까지로 제한적이고, 프로그램들의 퀄리티도 하나같이 아주 조악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 채널에 등장하는 '곰 아저씨'가 방송에 출연할 어린이들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엘리엇은 아버지와 함께 광고에 나온 그 주소로 가게 되는데, 도저히 방송국이라고 볼 수 없는 쓰러져가는 집에는 곰 아저씨가 아닌 경찰들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 기억에서 잊혀졌던 채널이 문득 다시 생각난 엘리엇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궁금하여 스스로 탐사를 시작하고, 그 경과를 블로그에 올리게 됩니다.
엘리엇이 올린 블로그 포스팅으로 이루어진 글은 앞으로 또 업데이트 될지도 모른다는 여지를 남기고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Marble Hornets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어떤 완결이 난 것이 아니라 이런 식의 '현재진행형'인 이야기는 독자와의 상호작용이 가능한 인터넷이라는 매체에서만 가능한 새로운 포맷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읽고 나서 '그래서 어떻게 된거지? 빨리 다음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죠. 마치 드라마를 본방 사수하며 다음주를 기다리게 되는 것처럼 ^^
게다가 이런 형식은 마치 'X 닦다가 만듯 한' 찝찝한 엔딩으로 (=오픈 엔딩) 끝나더라도 아직 완결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용서가 어느정도 된다고 할까요? 갑자기 뚝 끊기는 이야기가 오히려 리얼리티를 배가시키는 면도 있습니다. Marble Hornets 의 경우 사실 시리즈를 완결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끝으로 갈 수록 뭔가 전개가 억지스러워지는 면을 보이기도 했는데, 역시 모든 창작은 끝마무리가 제일 어렵고 중요하다는 점에서 이런 '블로깅' 형식은 전문 작가가 아닌 인터넷 작가들에게 좋은 형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승-전 에서 확 끝내버리는 것이죠.
'1999' 역시 다른 컨텐츠를 파생시켰습니다. Slenderman 이나 Ted the Caver 만큼은 아니지만, 자기도 어렸을 때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서만 볼 수 있었다는 'Caledon Local 21' 이라는 그 괴상한 채널을 보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고 ^^ 위 영상같이 당시 방영되었던 에피소드를 녹화했다면서 유튜브에 올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영상들을 훑어봤습니다만, 솔직히 재밌진 않네요. '1999'에서 묘사하는 것과도 많이 다르고.
유명한 북미의 인터넷 괴담들을 보다보면, 이것과 같이 '어렸을 적 보았던 프로그램'을 소재로 삼는 괴담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이 포스팅 맨 위에 있는 흑화한 징징이 그림은 'Squidward's Suicide' 라는 괴담에 나오는 것입니다. 이 괴담의 작성자는 2005년 스폰지밥의 제작사에 인턴으로 근무하던 중, 다음 시즌을 위한 미완성 에피소드를 모니터하게 되었는데, 내용은 대충 이렇습니다.
징징이가 클라리넷 콘서트를 했는데, 관객들이 심하게 야유를 합니다. 다음 장면은 징징이가 자기 집 침대에 앉아있는데, 숲 속에서 불어오는 듯한 바람 소리 같은 소음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소리도 들어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징징이가 흐느끼는 장면이 천천히 나오는데, 순간적으로 다른 그림이 한 프레임 지나갔습니다. 그 프레임을 돌려서 보니 난자당한 소년의 시체였습니다. 잠시 후 또 이상한 프레임이 지나가서 멈춰보니 이번에는 비슷하게 난자당한 소녀의 시체였습니다. 섬뜩한 것은 그 사진에 사진을 찍은 것으로 보이는 사람의 그림자도 나와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영상의 소리에 "Do it" 이라는 말 소리가 반복적으로 섞여 나오기 시작했고, 이제 징징이는 피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입으로 샷건을 가져갑니다. 방금 나왔던 난자당한 어린이 시체와 비슷한 모습이 된 징징이를 보여주며 영상은 끝납니다.
작성자는 이 일에 대한 회사 및 경찰 차원의 수사가 있었으나 (누가 이런 영상을 만들었는지, 살해당한 것으로 보이는 아이들은 누구인지)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상태라고 합니다.
또 다른 예로 'Candle Cove' 라는 괴담이 있습니다. 이건 아예 이야기라기 보다는 Nostalgia Forum 이라는 게시판에서 몇 명의 유저가 리플로 대화를 나누는 건데요 (상당히 짧음), 어렸을 때 보았던 Candle Cove 라는 (Sesame Street 스타일의) 인형극 프로그램을 기억하느냐는 내용입니다.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의 묻혀있던 기억도 되살아나게 되는데, 어린이 인형극이라고 보기에는 이상한 점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어렴풋이 기억나는 에피소드로 에피소드 내내 주인공 여자아이는 울고 있는데 나머지 캐릭터들이 전부 발작을 일으키며 비명을 질러댔다고 합니다.
Candle Cove 도 상당히 유명한 creepypasta 고, 유튜브에 그 비명 지르는 에피소드라고 주장하는 영상도 올라와 있습니다.
이런 괴담들은 잔혹동화들을 연상시키는데요, 어렸을 때 동화라고 읽었던 것들이 사실은 아주 무섭고 잔인한 내용이라는 것 말이죠. 자신의 어렸을 적 추억이 사실은 설명할 수 없는 끔찍한 미스터리의 일부라는 생각은 막 깜짝 놀라게 무섭진 않더라도 그야말로 'disturbing', 뭔가 섬뜩하게 만듭니다.
3. My Grandfather Suffered from Dementia
'할아버지께서는 치매를 앓으셨다' 라는 제목으로 번역한 단편 소설입니다. WriterJosh 라는 분이 지은 것인데, 나온지 얼마 되지 않은 딱히 유명하지 않은 것입니다만, 많은 사람들이 겪었을 법한 집안 어른의 치매를 소재로 삼아 자전적으로 잘 쓴, 슬프면서도 마지막에 소름이 확 돋는 작품입니다.
- 번역문
할아버지께서는 향년 97세에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께서는 세 자식들과 멀리 떨어져 사셨다. 할머니께서는 내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고, 몇 년 후 할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재혼했는데, 그 여자는 자기 아들들이 살고 있는 서부로 이사 가기를 요구했다. 그 분은 참 대단한 분이었고, 우리는 그 분을 헤스터 할머니라고 불렀다. 할아버지께서 그 분을 어떻게 견디고 사셨는지 대단할 뿐이었다. 훗날 생각해보니 어쩌면 견디지 못하셨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할아버지께서 언제 치매에 걸리셨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아마도 우리가 알아챘을 때보다 수 년 전이었겠지. 할아버지는 누구랑 대화를 했고, 어디를 갔고, 여행을 갔다는 등의 이야기를 해주시곤 했다. 수 년 후 할아버지께서 치매에 걸리셨다는 것을 알고 나서 그 대화나 여행은 사실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었음을 깨달았다. 동부의 본가로 돌아오시기 대략 15년 전부터 하셨던 이야기들은 전부 거짓 기억이었을 지도 모른다. 우리는 알 길이 없을 수 밖에 없다. 헤스터 할머니는 거의 우리와 연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제정신이 아님을 처음 짐작한 것은 아마도 동부의 부모님 댁으로 돌아오시고 몇 주가 지나서였을 것이다. 대부분의 가족이 근처에 모여 살고 있었다. 아내와 나, 그리고 사촌 몇 명은 도시의 남쪽 지역에 살고 있었고, 아버지와 고모 두 분은 우리 집에서 차로 왔다 갔다 할 만한 거리의 북쪽 지역에 계셨다. 고종 사촌 몇 명과 내 남동생은 다른 곳에 살고 있었지만, 이미 할아버지께서 심심하시지 않을 정도로 근처에 충분히 많은 자식들이 있었다. 이따금씩 부모님 댁에 모두 모이면 할아버지께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시거나 주무시러 들어가시곤 했다.
어느 날 오후, 내 딸 브리앤이 (당시 10대 후반이었다) 조카들과 논 후 집으로 돌아와서 테이블에 앉았다. 할아버지께선 거기서 졸고 계시다, 잠에서 깨서 증손녀에게 미소 지으셨다.
“오, 안녕 클라우디아!” 라고 밝게 인사하시는 것이었다. 클라우디아는 막내 고모 이름이다.
“할아버지, 전 브리앤이에요.”
“아냐.” 할아버지께선 거의 모욕을 당했다는 듯이 말하셨다. “클라우디아, 넌 내 딸이야.”
그 달 말 즈음, 할아버지께서는 고모와 삼촌들을 모아놓고 헤스터 할머니와의 삶이 어떻게 견디기 힘들어져 여기로 이사 오게 되었는지에 대해 말씀하셨다. “하나님께 기도 드렸단다. 그랬더니 마틴이 내 곁에 있었지.” 마틴은 내 아버지다. 콜로라도의 산 속 그 작고 추운 집으로 할아버지를 모시러 가시던 아버지가 생각났다. 그러나 아버지는 무슨 계시를 받고 간 것이 아니었다. 할아버지께서 전날 밤 아버지에게 전화하셔서 제발 데려가 달라고 애원하셨기 때문에 간 것이었다.
우리 모두는 할아버지를 사랑했지만, 할아버지를 돌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일례로, 할아버지께서는 스스로를 앞날이 창창한 젊은 미혼 남자로 착각하고 계셨고, 앞날을 함께할 반려자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셨다. 젊은 여성과 잠시라도 얘기하게 되면, 본인에게 반했다고 믿으셔서는 자기의 신부가 될지도 모른다고 여기셨다. 심지어는 그 당시 헤스터 할머니도 살아있었다. 할아버지는 헤스터 할머니도 완전히 잊어버리신 것이다.
할아버지가 접근한 대상 중에는 우리 어머니도 있었고, 내 사촌 두 명과 내 아내도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할아버지께서 할 수 있는 거라곤 말 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런 주제로 넘어가기 전에 공손하게 말을 돌리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당신께서 산책을 나가시거나 아버지의 차를 운전할 수 있다고 결정 하시면서 상황은 나빠지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할아버지께서 혼자 산책 나가지 못하시도록 했지만, 가끔 아버지가 출타 중이고 어머니가 지하실에 있으면 몰래 나가시곤 했다. 할아버지는 항상 보행 보조기가 있어야 했고, 계단은 절대 오르내릴 수 없었다. 하지만 절대 누구한테도 이걸 인정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 결과 여러 번 넘어지시고 말았다. 또한 본인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또는 집이 어디인지 자주 헷갈리셨다. 할아버지의 산책 목적은 때때로 할아버지께서 아버지와 고모들을 키우셨던 옛 집을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집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없어졌다. 아버지는 경찰서에서 할아버지를 모셔왔는데, 순경들이 딱 봐도 길을 잃어 헤매고 있는 할아버지를 모셔온 것이다.
아버지의 차를 운전하시려 했던 것은 그 이후의 일이다. 할아버지께서는 전에 길을 잃어버린 이유가 걸어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셨다. 용케도 사이드 브레이크를 푸셨고, 차는 집 앞의 가파른 내리막길을 굴러가 울타리를 박았다. 다치시진 않았고 차나 울타리의 손상도 별로 없었지만, 그 사건 이후 부모님은 할아버지를 양로원에 모셔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로 할아버지의 병세는 더욱 심각해졌다.
아버지는 일주일에 세 번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고모들이 몇 번이나 할아버지를 찾아갔는지는 모르겠다. 찾아가보긴 했을까. 나는 가족 모임이 있을 때만 가는 편이었는데, 할아버지께서는 나를 점점 더 못 알아보시는 것 같았다. 미소 지으시며 반겨주셨지만 나를 처음 만난 사람 취급하셨다. 할아버지께서는 자기 자녀에 대해 말해주시며, 그들을 “어린 아이들”로 묘사하셨다. 심지어 할아버지께서 “이 늙은 사람들”과 양로원에 머무는 동안 할아버지 자식들을 돌봐주고 있는 친구까지 머릿속에서 지어내셨다. 그 때 할아버지는 93세였다. 양로원의 다른 어르신들과 비교해도 할아버지는 무척 연로하신 편이었다. 그럼에도 그 분들이 “늙은 사람들”이었고, 할아버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되었다는 표현은, 할아버지께서 변하셨다는 뜻이다. 잘못된 기억들이나, 자신이 늙었다고 인정하지 않는 것, 여자들을 꼬시려 한다거나, 자기 자식들이 장성했고 손자에 증손자까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은 할아버지께서 이미 80대 후반부터 수 년간 하셨던 것들이다.
그래도 난폭하셨던 적은 없었다. 어느 날 밤 그것이 바뀌었다. 요양원에서 아버지에게 어서 와달라는 전화가 왔다. 할아버지께서 엉뚱한 방으로 들어갔다 나오시면서, 소리를 지르며 보행 보조기를 높이 들었다 땅에 내리치셨고, 할아버지를 진정시키려는 사람들에게 그걸 휘두르셨다고 한다. 할아버지께서는 직원들이 자기 물건을 훔쳤다고 하셨다. 내지를 수 있는 최대의 목소리로 “내놔! 내놔!” 라고 고함치셨다.
나는 그때 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상상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말년의 할아버지께서는 웃으실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큰 소리를 내는 일이 없으셨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직원들이 할아버지를 방에 모셔다 드린 후였고, 할아버지는 노여움이 좀 풀리신 상태였다고 한다. 조금만. 아버지가 방에 들어갔을 때, 할아버지는 영양제 캔이 든 양말로 아버지의 머리를 가격할 뻔 했다. 할아버지께서는 사과하시며 (아버지는 할아버지께서 알아보시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 도둑놈”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셨다. “어떤 놈이 내 물건을 훔치고 날 죽이려 했어.” 라고 설명하셨다. 영양제 캔이 든 양말은 도둑을 쫓아내기 위한 무기였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물건을 돌려주러 온 사람들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그 친구들이 물건들을 전부 원위치에 잘 갖다 놨어.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그날 밤 할아버지께서는 그 도둑 때문에 플로렌스가 얼마나 겁에 질렸었는지 아버지에게 설명하셨다. 그녀가 그 일을 겪어야만 했던 것을 매우 싫어하셨다. 플로렌스는 내가 여섯 살 때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다.
플로렌스가 어딘가로 가버려 그녀를 찾으러 갔을 때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할아버지께서는 말을 마치셨다. “그들이 그녀가 죽었다고 했지. 언젠가 나를 찾으러도 올 거야. 그 때 나는 죽어 있겠지.” 이것은 아버지에게 정신적인 충격을 주었다. 이전에 할아버지께서는 절대 단 한 번도 당신의 죽음, 고령, 또는 앞으로 길어야 몇 년 이상 밖에 살지 못하실 거라는 사실을 인정하신 적이 없으셨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에게 있어 늙는 것, 그리고 죽음은 다른 사람에게나 일어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때 할아버지는 죽음이 앞으로 다가왔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이후로도 할아버지께서는 그 도둑을 언급하셨다. 이름도 붙이셨다. 찰리 로즌(Charlie Rosen)이라고.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내셔서는 이름까지 붙이시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옛날 자기 자식들을 돌봐주던 친구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시는 분인데. 사실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찰리 로즌은 할아버지의 자식들을 납치하고, 할머니를 죽였고, 콜로라도의 집에 주기적으로 찾아와 할아버지를 조롱하고 폭행했고, 심지어는 헤스터 할머니와 자기가 같이 자는 사이라고 선언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이제 그 할머니가 생각났는지, 헤스터와 찰리가 작당하여 자기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었다고 확신하고 계셨다.
돌아가시기 6개월 전부터 할아버지는 점점 더 동요했다. 아버지는 요양원에 갈 때 마다 찰리라는 이름을 들어야 했고, 할아버지의 난동도 다시 시작되었다.
한 번은, 아버지를 보고 찰리라고 하며 아버지를 공격하셨다. 그 후로 아버지는 일주일에 한 번만 갔고 가서도 오래 있지 않았다. 난 딱 한번 아버지와 함께 갔었다. 그때 보았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생전의 마지막 모습이었고, 난 그것을 절대로 잊을 수가 없다.
“오늘도 찰리가 여기 왔었다.” 우리가 오자마자 할아버지께서 말하셨다. “나는 더 이상 이 방을 나갈 수가 없대. 그 놈이 날 여기에 가뒀어.”
“아버지, 여기가 아버지가 사는 곳이에요.” 아버지는 설명하려 했다. “보세요. 여기 어머니 사진. 찰리가 왜 아버지가 이걸 갖고 있게 뒀겠어요?”
“그 놈은 네 어미를 죽였어. 자고 있는 네 엄마를 살해했다.”
“어머니는 뇌동맥류가 있었잖아요. 아버지하고 저하고 그 기계 플러그를 뽑기로 같이 결정했었잖아요. 어머니는 주무시다 돌아가셨지만, 살해당하신 게 아니에요.”
“아니야. 아니야. 그건 찰리였다.” 할아버지께서는 동요하시지도 않은 채 말씀하셨다. 지금 하시는 말씀이 완전히 사실이라는 듯 완고한 목소리로. “그 놈이 네 엄마를 독살했다. 네 엄마의 머리에 문제가 생기도록. 그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깨달았다. 그 놈이 나에게 헤스터를 소개시켜준 이후에. 내가 헤스터와 결혼하도록 사기를 쳤지. 찰리 그 놈은 날 노리는 악마야.”
아버지는 결국 질리고 말았다. “찰리 같은 건 없어요!” 거의 소리치듯 말했다. 치매에 걸린 사람에게 틀린 점을 지적하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 그 사람을 더욱 혼란에 빠지게 하고 언짢게 만들 뿐이다. 그러나 그 순간 아버지는 이것을 잊어버렸다. “찰리는 아버지가 만들어낸 사람이에요! 어머니는 자연사했고, 아버지가 어머니 돌아가시고 몇 년 있다가 커피숍에서 헤스터를 만났잖아요! 그리고 헤스터가 착한 여자는 아니었지만 바람은 피우지 않았다고요! 제발 찰리 얘기 좀 그만해요!”
“오 하나님 아버지.” 할아버지께서 말하셨다. “그 놈이 너도 조종하고 있구나. 그런 말을 하게 만들었어. 너도 한 패야!”
“아 할아버지,” 내가 말했다. “체커 한 판 하실까요?” 대개 할아버지께서는 체커를 좋아하셨다.
“그 놈의 ㅈ같은 체커 따위 안 해!” 할아버지가 고함쳤다. 할아버지가 날 때렸더라도 더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할아버지께서는 평생 비속어를 쓰지 않으셨다. 그런 건 “나쁜 단어”라고 하시며, 나쁜 사람들이나 쓰는 말이라고 하셨다. “너랑은 안 해! 그 놈하고는 안 해! 찰리 로즌의 악마 졸개들! 그 놈은 매일 내게 오지. 플로렌스에 대해 말해. 날 조롱해. 내 생각을 읽어서 그 것들을 뺏어가 버리지. 그러고는 새로운 생각을 집어넣어. 더 나쁜 것으로.그 놈은 자기가 내 새끼들을 어떻게 강간하는지 말해. 그 놈과 헤스터가 걔들을 어떻게 굶기고 지하실에 가둬놓는지 말이야. 그 놈을 막을 수가 없어!그 놈은 내 머릿속으로 들어올 수 있어! 날 조종해!”
우리는 작별인사도 하지 못한 채 나와야 했다.
집으로 오는 길, 난 거의 울고 싶었다. 그렇게 친절하고 상냥했던 분이 미쳐 날뛰고 난동을 부리는 미치광이로서 생을 마감하셔야 한다니. 이건 옳지 않아. 불공평해. 도대체 이 찰리라는 것은 어떤 괴물인 걸까?
그 생각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순간 찰리가 실재한다고 받아들였던 것이다. 머리를 흔들고 다른 주제에 대해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찰리의 허상이 머릿속에서 생겨나고 있었다. 이미 수 개월 전 할아버지께서 처음으로 그에 대해 말하셨을 때부터. 지금에서야 깨달았는데, 할아버지께서 그 악마 같은 사람을 언급하실 때 마다 나는 마음 속으로 그 사람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실제로 만났던 사람의 기억만큼이나 그를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10대 시절 콜로라도의 산 속 그 작은 집에 마지막으로 할아버지를 뵈러 갔을 때를 생각했다. 그 작은 원형 식탁에 앉아 헤스터 할머니가 만들어준 먹을 수도 없는 질척거리는 이상한 음식을 먹는데, 어떤 남자가 부엌 구석에 서서 우리가 그것을 먹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키가 크고 길쭉한 체형의 남자의 날카로워 보이는 뼈를 가죽 같은 피부가 팽팽히 감싸고 있었고, 근육은 힘줄이 불거져 있었다. 덥수룩한 회색 머리칼이 늘어져 그의 얼굴의 윗부분을 가렸고, 입의 미소는 턱을 가로질러 마치 칼로 그어놓은 것 같았다.
결혼식을 떠올렸다. 난 열두 살이었다. 헤스터 할머니를 처음 만났다. 그리고 똑같은 남자가 헤스터의 뒤에 서있었다. 할아버지께서 계신 양로원에서의 가족 모임을 떠올렸다. 복도에서 그 남자를 지나치지 않았었나?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이것들은 그저 할아버지께서 실존하지 않는 그 수상한 인물을 언급하실 때 마다 내가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뇌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다. 때론 엉뚱한 사람을 기억 속에 집어넣을 수 있는데, 당신이 단지 무의식적으로 엉뚱한 사람들을 기억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미친 것은 아니다. 그냥 뇌가 당신에게 부리는 농간 중 하나인 것이다. 할아버지께서는 어떤 사람을 만들어내서 그 사람에 대해 대단한 확신을 가지고 말씀하셨다. 마치 찰리가 실제라는 듯이. 그래서 내 정신은 찰리 로즌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찰리 로즌은 존재하지 않는다.
할아버지께서는 두 달 후 돌아가셨다. 장례식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난다. 아직도 그 기억에 식은땀을 흘리며 밤에 잠에서 깬다.
처음엔 모든 것이 평범했다. 부모님, 고모와 삼촌들, 아내와 나, 그리고 우리 아이들, 동생과 제수씨, 그리고 조카, 사촌들, 사촌들의 배우자들과 자식들. 아주 오랜만에 모두 한 지붕 아래 모였다. 아무도 빠지지 않았다. 다른 지역에 있어 오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사촌 두 명은 어렸을 때 본 이후로 처음 만나는 것이었다. 그들을 만나서 반가웠다.
예배도 역시 훌륭했다. 장례 집도는 할아버지께서 계셨던 양로원에서 일하시는 목사님께서 맡아주셨다. 할아버지께선 차분하고, 평온하며, 온전해 보이셨다. 생의 마지막 몇 달 간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내 스스로도 차분해짐을 느꼈다. 할아버지는 이제 당신께서 계셔야 할 곳으로 가셨다. 스스로의 악마가 불에 타고, 퇴화하는 뇌도 더 이상 영향을 주지 못하는 그곳으로.
그리고 우리는 묘지로 향했다. 관이 내려졌다. 우리는 모두 관 위에 흙을 한 줌씩 뿌리고 차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토장이(무덤 파는 사람)가 그늘 속에서 나와 나머지 흙을 삽으로 푸기 시작했다. 그의 작업복에 붙어 있는 명찰에 새겨진 이름을 간신히 읽을 수 있었다. “C. Rose” 또는 “C. Risen”처럼 보였다. 또는... 아니. 그럴 리가 없다.
그는 키가 크고, 길쭉한 체형, 가죽 같은 피부, 날카로워 보이는 골격, 힘줄이 불거진 근육, 긴 회색 머리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 미소. 그 미소는 지금도 내게 악몽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이 유령이 할아버지의 관 위로 흙을 한 삽 한 삽 뿌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는 웃고 있었다. 부드럽게, 작은 소리로. 그러나 그렇게 잔인한 웃음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오늘 이 모든 일을 적어야 할 것 같았다.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 내가 모든 것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오늘 아버지가 내게 전화해서 불평하시길, 찰리가 아버지 집을 차로 지나치며 창문으로 집 안을 들여다 보았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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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와 슬픔은 수많은 작품에서 엮이는 감정이죠. 특히나 동양권 괴담의 경우, 억울하고 안타까운 사연으로 죽게 된 사람이 귀신이 되어 사람들을 공격하는데, 주인공이 그 원한을 어떻게든 풀어주니까 귀신이 없어졌다 이런 스토리가 아주 클리셰 중 클리셰죠 (전설의 고향ㅋ). 그리고 마지막에 그 귀신이 생전에 겪었던 일들이 쭉 보여지면서 '정말 불쌍한 일을 당했구나 ㅠㅠ' 하게 되는.. 꼭 이렇게 대놓고 하지 않더라도, 공포 장르에서는 인간이 가장 무서워하는 '죽음'이 등장하기 마련인데, '죽음'은 당사자에게는 공포지만 당사자 주변의 사람들에게는 슬픈 일이니까요.
서양 공포물에서는 원래 이런 정서보다는 그냥 우악스러운 살인마 또는 악령에 대한 무서움 자체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보는데, 그래서 슬래셔, 좀비물 같은 것들이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것은 있지만 사실 막 무섭고 그렇진 않죠.. (코미디 패러디물이 많아서 그런것도 있지만) 오컬트물 같은 경우도 기독교적인 그냥 이유를 알 수 없는 절대 악을 소재로 하기 때문에, 역시 큰 감흥을 주기 어렵습니다. 깜짝 놀라게 하는것도 어디까지나 시각적 청각적 효과로나 가능한 것이지, 글에서는 불가능하죠.
이 작품은 슬픔과 공포가 잘 배합되어 있습니다. 특히나 할아버지나 할머니께서 치매에 걸리셔서 기억을 잃어버리시고, 급기야는 자신마저 알아보지 못하는 경험을 하신 적이 있다면 더욱 와닿겠죠. 그것에 느닷없이 할아버지 말년의 망상증이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것이라는 반전... 마스터피스라고 봅니다.
앞으로도 재밌는 작품을 만나게 되면 부족한 실력이지만 번역을 계속 해볼 생각입니다. 다음에 또 재밌는 이야기가 있으면 소개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긴 포스팅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By C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