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비즈니스
논문 비즈니스
난 대학원생이다. 근 2주 동안 연구실에서 한 일이라고는 논문을 투고하기 위해 쓰고 고치고 한 일 밖에 없다. 나 뿐만 아니라 세계의 수많은 박사과정들이 출퇴근 개념도 없이 논문이라는걸 내보기 위해서 시간을 때려박고 동시에 나이도 먹으면서 각종 위장병 및 나쁜 자세로 인한 골격계 문제로 시달린다. 돈도 얼마 못버는데... 박사를 따고 난 이후에도 학계에 남는 경우에는 은퇴하는 그날까지 논문을 직접 쓰던지, 누군가의 (제자나 동료) 논문 집필을 도와준다. 이력서에는 자기가 저자로 들어간 논문들이 죽 달리고, 최소한 직장을 잡는 그날 까지는 자기가 어디다가 몇 개의 논문을 게재했는지가 학벌 못지않은 스펙이다. 직장을 잡은 이후에도 논문 실적이 자기 커리어에 중요한 학계의 경우 자기 이름을 저자진에 집어넣기 위해 갖은 노력이 필요하다. 대중적으로 유명해질 정도로 굉장한 성과를 내지 않는 이상, 그나마 좁아터진 자기 분야에서라도 사람들이 자기를 기억하게 만들 것은 논문 밖에 없다. 연구실마다 분위기가 다르겠지만, 이공계 중에서도 최소한 생물/화학 같은 실험 위주 학과에서는 에브리데이 논문 논문 논문 타령이다. 논문을 쓸 수 있는 일은 가치 있는 일이고, 논문을 쓸 수 없으면 할 필요가 없다. 논문을 많이 쓰는 사람은 인간성이 쓰레기라도 훌륭하고, 연구도 잘하고 사람도 좋은데 논문 실적이 없는 사람은 불이익을 받는다 (연구와 논문집필은 약간 핀트가 다르다). 기업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정도로 학계에서는 논문을 추구한다.
근데 논문이 뭐길래 이러지? 혹시 가족중에 대학원생이나 학계에 있는 사람이 있어서 그사람이 논문 실적이 어쩌고 저자가 어쩌고 하소연하는걸 들어본적이 있는가? 이해 안될거다. 이해 될 수가 없다. 논문이라는걸 평생 읽어본적도 없는 사람이 대부분일거다. 거의 법조문이나 어디 고대문서 만큼이나 일상생활과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논문' 하면 떠오르는 것은 '논문대필' '표절' '조작' 등 부정적 이슈들일거다. 유명인들의 학위논문 표절이나 대필 사건이라던지, 굉장한 연구 성과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논문 데이터가 조작이었다던지... 뭔가 동영상 자료 같은걸 넣어보려고 유튜브 검색을 해보았더니 이렇더라. http://www.youtube.com/results?search_query=%EB%85%BC%EB%AC%B8
우리가 지식을 주로 얻는 곳은 주로 책이나 인터넷, 티비, 신문 등이다. 인터넷이나 방송 같은 대중매체의 지식은 사실 책에 있는 내용을 그냥 대충봐도 쉽게 이해되는 듯한 기분이 들도록 부연설명 떼고 핵심만 추려놓은 것이다. 그런데 책도, 우리가 학교에서 보는 교과서를 포함해서, 이런저런 지식들을 보기좋고 이해하기 좋게 가공해서 요약시켜놓은 것이다. 그 이런저런 지식들의 소스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짧은 글들인데, 그 짧은 글들의 상당수가 논문이다. 심지어는 논문의 상당 부분도 다른 논문이나 책을 인용해서 옮겨놓은 것이다.
이거 상당히 좋은 그림인데 (DIWK pyramid), 인간의 지식은 이런식으로 피라미드 구조를 이루고 있다. 사람이 진정으로 써먹을 수 있는 지식은 사실 '지혜'라고 할 수 있는 것인데, 이건 '지식'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뭐 아는건 많은데 정작 할줄아는건 없는 사람은 '지식'은 많은데 '지혜'가 모자란거다. '지식'은 각종 '정보'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인터넷 시대에서 인간이 점점 멍청해진다는 이야기는 정보가 너무 많다보니 이걸 지식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을 제대로 못한다는 이야기. '정보'는 '데이터'에서 나온다. 개별 사례들의 모음에서 패턴을 알아내거나 인과관계를 밝해내는 작업 같은것이 정보의 생산과정이라고 대충 이야기할 수 있겠다.
책이나 인터넷에서 접하는 것들은 주로 '지식'이나 '정보'의 단계에 해당할 것이다. 어따 써먹냐는 독자의 몫이고, 그래도 노력하면 써먹을 수 있는 지식을 떠맥여 주는거다. 뉴스에 나오는 소식은 '데이터'나 '정보'에 해당할 것이다. 개별 사례 또는 그 사례에 대한 1차적인 분석이기 때문이다. 베어 그릴스가 알려주는 야생의 생존 방법은 '지혜'에 해당한다.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최대로 정제된 것이기 때문이다.
책 같은데서 읽지 않고 엄마가 가르쳐준 옷 잘 다리는 요령 같은것도 지혜에 해당한다. 거기에는 엄마, 할머니, 증조할머니, 고조할머니 등등이 생활에서 발견하거나 다른데서 배운 소소한 깨달음들이 집약되어 있는건데, 이것들이 결국 타고타고 올라가는, 즉 출처가 있다. “누가 ~~카더라” “누가 ~~카더라” 하는 카더라 (단 그 카더라 카더라를 타고 끝까지 올라갔을 때 아주 명백한 사실에 근거하고 있어야 됨) 들의 총 집합체가 인간 지식인데, 이 피라미드의 바닥 부분을 이루고 있는게 논문이다. 즉, 논문은 아직까지 누구도 모르고 있던 사실에 대한 '데이터'와 '정보'를 담고 있는 문서다. 논문을 쓰는 건 지식을 확장시키는 행위고, 향후 누군가 '지식' 내지 '지혜' 단계로 조합시킬 수 있도록 재료를 제공하는 거다. (물론 '지식' 단계까지 정리하는 목적의 리뷰논문 이라는 것도 있다) 나중에 내 논문이 실제로 써먹을 수 있는 '지혜' 단계까지 가느냐 이게 쓸모 있냐 없냐인데, 그건 모르지 뭐... 아무튼 이공계에서는 이런 수많은 지식 중 쓸모 있는것만 추려서 핸드폰도 만들고, 로켓도 쏘고 하는것이다.
젠장. 아무튼 그래서 논문을 쓰는 건 꽤나 중요한 행위고 내가 쓴 논문이 쓰잘데기 없을 수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인류에 눈꼽만큼이라도 보탬이 되는 행위다. (최소한 나의 쓸데없는 논문을 누가 읽고서 ‘ㅋㅋ 헐 누가 벌써 했네. 딴거해야지’ 하고 그 시간에 좀더 가치있는 연구를 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면 논문은 어디다가 내고, 그 프로세스는 어떻게 될까? 전 세계에서 쏟아져 나오는 지식들을 모아서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해줘야 하잖아.
논문의 기본적인 정신은 ‘정보공유’다. '내가 이러이러한 연구를 해서 결과가 이렇다. 참고하고, 궁금한것 있으면 물어보시오' 하는 커뮤니케이션이다 (영어긴 하지만 영상을 보세용ㅜ 한국어로 되있는걸 못찾겠음). 반면에, 이공계에서 생산해는 수많은 문서 중 (나무야 미안해) 논문 못지않게 많은 것이 특허인데, 특허는 이부분에서 대립된다. 특허는 발명자가 1등으로 발명한 내용을 영리목적으로 사용하는데 대해서 나라가 일정기간 독점권을 보장해 주면서, 그 내용도 일정기간 후에 공개한다. 논문은 그런게 없고, 연구 내용으로 어떤 경제적 이득을 취할 목적 없이 그냥 모두한테 알려주는거다. 시험기간에 노트정리해서 친구들한테 복사해서 뿌리는 친구들처럼. 왜 이런짓을 할까? 몇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1. 딱히 이걸로 돈을 벌 수 있는건 아닌 경우 (순수과학같이 다른사람한테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2. 홍보 목적 (이런경우 모든 내용을 다 공개하지 않고 뭐가 더 있을 것처럼 아는척만 한다)
3. 자기 능력에 대한 증명 (스펙... 대학원생의 경우. 나 논문 쓸줄 안다... 이력서 추가용)
4. 순수한 학문 발전에 기여 (오오 진정한 copyleft 정신)
그런데 정말 논문이 copyleft 일까?
뭐 30달러? 세금도 또 내야돼? 왠만한 책도 3만원 안하는데 9페이지짜리 논문이 3만원이 넘네?
사실 이건 싼편이고 100달러 넘는 논문도 있다. 논문이 정보공유라면서 돈을 이렇게 많이 받는 이유는 중간에 출판사가 끼기 때문이다. 위 캡처의 위쪽에 보면 Ingentaconnect 라고 써있는데 저널들을 인터넷으로 볼 수 있게 pdf 서비스 해주는 업체 중 하나다. 이런 업체가 굵직한게 Sciencedirect 등등 몇 개가 있는데 대부분 Elsevier 나 Wiley 같은 전통적인 (옛날 종이시대부터 있었던) 거대 출판사들이 자기 출판사 산하의 저널들을 서비스하기 위해 만든 인터넷사이트다. Nature 나 Science 같은 권위있는 저널은 직접 출판사를 설립하고 pdf 서비스도 직접 한다. 이런 서비스 업체 및 출판사에서 운영비 및 이윤 명목으로 돈을 받는거다.
제목 밑에 Source: Journal of the American Academy of Audiology 라고 써있는데, Journal of the American Academy of Audiology 가 저널 이름이다. 이것이.. 맥심이나 멘즈헬스 같은 잡지 이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저널은 미국 청각학회에서 (귀 의학) 발행하는 논문집인데, 이런 논문집을 저널이라고 한다. 아까 Nature 같은데는 자기들이 직접 서비스한다고 했는데, 이 미국청각학회지 같은 경우는 어차피 보는 사람도 많지 않고 학회 규모도 작아 직접 출판 서비스를 하기엔 부담이 되기 때문에 Ingentaconnect 같은 곳에 출판을 위탁하는 것이다. 종이시대에는 Elsevier 나 Wiley 같은 출판사에서 책으로 찍어내는 것만 위탁받고 했을텐데, 요새는 다 인터넷으로 보기 때문에 조금 구도가 바뀌긴 했을거다.
음악으로 비유를 하자면, 세상에 모든 음반이 컴필레이션 음반밖에 없다고 생각해보자 (이래야 비유가 좀더 맞다). 밴드들이 각자 음반을 내지 않고, 이를테면 Sumerian 레코드에서 매년 빡센팀 모아서 Sumerian Tech Metal 1, 2, 3 요래가지고 Born of Osiris, The Faceless, Veil of Maya, Animals as Leaders 이런 팀들한테 곡을 한 개씩 받아가지고 일년에 한번씩 내는게 전부라고 해보자. 각 밴드가 연구자에 해당하고, Sumerian Tech Metal 이 저널이다. 그리고 이렇게 음반이 나오면 배급을 해야 하는데, Sony 같은 대형 배급사들이 출판사에 해당하는 것이다. 처음에 언급한 pdf 서비스 회사들은 iTunes Store 나 Bandcamp 같은 mp3 서비스업체라고 보면 된다. 구체적인 수익구조야 당연히 차이가 있지만, 대충 이런식이다. 유명한 밴드는 자기들이 레이블도 만들고 자기가 맘에 드는 밴드들로 채워서 배급도 직접 해버릴수 있지만, 평범한 밴드는 그럴 수가 없다. 밴드가 어디 레이블에 들어있느냐도 밴드의 이미지나 홍보에 큰 도움이 되듯이 (하드코어 밴드가 Bridge 9 에 있다고 하면 간지나잖아), 연구자도 내 논문을 어디 저널에 내느냐가 나의 명성에 아주 중요하다.
재미있게도, 우리나라는 “그러면 어느 저널이 좋은 저널이냐?” 라는 질문에 아주 명쾌한 해답을 갖고 있다. Impact factor 라는게 그것인데, ‘그 저널의 한 논문이 평균적으로 일년에 몇번 인용되느냐’에 대한 통계적 수치이다. Thomson Reuters 라는 다국적 뉴스/미디어 그룹(뉴스에서 로이터 통신이라고 들어본적 있을거다)에서 소유한 ISI (Institute for Scientific Information) 이라는 기관에서 나름의 식으로 정해서 전세계 저널들을 대상으로 매년 발표한다. 글 앞부분에서 인간 지식이 카더라로 연결된 피라미드라고 했는데, 임팩트 팩터가 만약 5 라면 거기 실려있는 논문은 1년에 평균적으로 5번 다른 논문에서 카더라 해주는거다. ‘이 논문에서 ~~카더라’. 한 논문이 학문적으로 얼마나 임팩트 있는지를 카더라 횟수로 평가하는거다. 카더라를 좀 있어보이게 표현하면 인용(citation)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임팩트 팩터가 아주 중요해서, 사람 뽑을 때 지원자가 여태까지 낸 논문들의 저널 임팩트 팩터를 다 더해서 점수로 내기도 한다. (여기에 저자가 몇 명이면 몇으로 나누고, 본인이 교신저자면 따블이고 등등 트릭이 있는데 기관마다 다르고 나도 잘 몰라서 생략)
근데 이건 참 뭣 같은 기준이다. 영상을 보자. 서강대 교수님의 임팩트 팩터 반대 인터뷰. 말씀 잘하시네... 뒤쪽으로 가면 과학정책 이야기로 조금 빠지긴 하는데 (원래 그게 핵심이긴 하지) 아무튼 그렇다. 참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기준인데, 사람을 못믿으니까 시험 점수처럼 숫자로 나오는 지표로 까버리는거다. 그리고 그게 서양과의 수백년의 과학기술 수준 갭을 빨리 따라잡았다는 둥 자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숫자만 높이기 위해서라면 이런저런 꼼수가 많이 있기 때문에..
이건 마치 음악가를 딴거 다 필요없고 무조건 음반 판매량 순으로 줄세워서 평가하는 것과 같은 극히 대한민국다운 방식이다. 음악도 잘팔리는 장르가 있고 그렇지 않은 장르가 있듯 연구도 인용이 잘되는 분야가 있고 인용이 잘 안되는 분야가 있다. 생물학 같은 경우 인간이 아직 잘 몰라서 연구할 부분도 많을 뿐더러, 아직 실용화 못되는 부분이 많아 인력이 죄다 학계로 몰리다보니 경쟁이 워낙 치열해서 너도나도 써대니까 논문이 양적으로 많이 나오니 그만큼 인용도 많이 될 수밖에 없다. 반면에 기계공학이나 전자공학 같은 분야는 돈이 되다보니 학계보다는 기업이 주도해서 발전시키는 학문이기 때문에 특허 위주인 부분도 있고, 취업이 잘되서 그런지 논문에 그렇게 목을 매는 분위기가 아닌것도 있어 논문이 애초에 적고 따라서 인용도 적게 된다. 그렇다면 생물학이 전자공학보다 우월한가? 학문의 핀트가 달라서 그런거지 전혀 아니잖아.
다행히도 박사급 인력을 채용할 때 생물과 출신과 전자과 출신이 경쟁할 일은 없다. 하지만 같은 분야 안에서도 이게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음악의 한 장르 내에서도 Attack! Attack! 이나 Asking Alexandria 마냥 신스 뿅뿅 유행을 만들던지, 조금 늦더라도 지금 수많은 그런 류 팀들처럼 유행에 조기 편승하면 인기를 많이 얻을 수 있는 반면에, 그라인드코어처럼 확실한 팬층이 있긴 하나 그들이 소수라 음반은 많이 못파는 장르도 있다. 학계에서도 뭐 하나 유행으로 뜨는 아이템을 캐치하면 비교적 쉽게 impact factor 높은 저널에 논문을 낼 수 있다. 그렇지 못할 경우 이미 어느 분야나 연구자는 넘쳐나고 레드오션이기 때문에 내기가 참 어려워진다. 게다가 한번 논문을 게재한 적이 있는 연구자는 논문을 또 제출할 경우 좀 쉽게 봐주는 관행도 있기 때문에 (듣보잡 연구자가 좋은 저널에 투고하면 읽어보지도 않고 거절) 더어렵다. 이러다보니 임팩트 팩팩터 하나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건 부족한 점이 많이 있다.
그럼에도 세계 각 나라의 대학원생들은 (...) 임팩트 팩터가 1이라도 높은데 논문을 내보려고 잘 하지도 못하는 영어로 창작의 고통을 겪는다. 나라마다 정도는 덜하겠지만 이 스펙을 유지하기 위해 연구자들이 정신없는 사이 이 시스템에서 큰 이익을 보는 사람은 아까 언급했던 출판사들이다.
아까 논문 하나에 30달러라고 했는데, 그것은 개인이 개별적으로 그것만 구입할 때고, 대부분 논문 다운로드는 기관이 출판사와 직접 계약을 한다. iTunes store 에서 mp3 을 낱개로 사면 1.29 달러지만 앨범으로 사면 조금 싸지듯이 논문도 뭉탱이로 사면 좀 싸진다. 논문 50개, 100개 같은 종량제 상품도 있고, 케이블 티비 신청할 때 채널 고르듯이 저널 몇 개를 골라서 1년간 무제한 다운로드 상품도 있다. 학교같이 매일같이 논문을 다운받는 곳은 당연히 이런 정액제 상품을 이용한다.
대표적인 논문 출판사인 Elsevier 의 가격표를 보자. http://www.elsevier.com/journal-pricing/subscription-price-list-for-librarians-and-agents 여기서 다운받을 수 있다. 저널의 가격대를 도표로 정리해봤다. 대부분의 논문이 일년에 $2000 이하긴 한데, 비싼 논문은 일년에 $11000 이 넘는다. 아예 가격이 안써있는 저널하고 몇몇 특수한 저널을 제외하더라도, 만약 한 종합대학에서 이걸 다 구독하려고 하면 1년에 400만 달러가 (대략 40억) 넘게 든다. 그런데 출판사가 Elsevier 만 있는게 아니기 때문에, KAIST같이 공대면서도 저널 구독에 굉장히 투자를 많이 하는 학교조차 선택적으로 저널을 구독할 수 밖에 없다.
다른 예로 Nature publishing group 에서 발행하는 Nature 저널 및 30개 남짓 되는 자매지들을 (전부다 권위있어서 관련 연구하면 봐야함) 전부 구독하려면 올해 기준 일년에 1억5천이 넘게 든다 (http://ebsco.co.kr/new/nature/price.jpg). 이러다보니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저널들이 모여있는 Ingentaconnect 의 경우 (위에서 캡처해놓은 곳) KAIST에서 구독을 안해서 논문을 보려면 따로 사서 봐야 한다. 이런 경우 나라에서 비교적 싸게 볼 수 있도록 서비스 해주는 NDSL (http://www.ndsl.kr) 이라는 곳이 있는데, 세금이 약간 쓰이겠지.
나는 논문이 왜 이렇게 비싼지 이해를 못하는 사람 중 하나다. 학교에서 구독 해주니까 공짜로 보기 때문에 전혀 체감하지 못하지만, 일반 전공책에 비교해도 비싸기 짝이 없는 가격이다. 논문이 출판되는 프로세스를 보자.
연구자가 열심히 논문을 써서 투고한다. 편집자가 그것을 받아서 일차적으로 필터링한다 (그냥 딱 봐도 터무니 없는 경우). 그런 후 리뷰어 (reviewer) 들에게 논문들이 배분된다. 리뷰어들은 리뷰만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현업으로 종사하고 있는 연구자들인데 (주로 교수), 논문 저자와 직접적 관련이 없으면서 분야는 얼추 비슷해서 논문을 보면 이해할 수 있고 연구가 잘 되었는지 논문이 잘 써져있는지 평가할 수 있는 사람들한테 맡기는 것이다. 이것을 피어 리뷰 (peer review) 라고 한다. 리뷰어는 세가지 판정을 내릴 수 있는데, accept (오케이 논문 실어줄게), revision (여기여기 고쳐서 다시 내면 고려해볼게 – 앤간하면 실어줌), reject (거절)이다. 보통 두세명정도의 리뷰어가 각자 리뷰를 해서 편집자한테 보내면 편집자가 의견을 종합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논문이 게재되는게 확정되면, 논문 저자한테 약관 동의 하라고 메일이 하나 오는데, 논문의 저작권을 출판사에 넘기는 동의서다. 그렇다. 논문이 출판되고 나면 저자가 나라고 여전히 써있긴 하지만 그뿐이고, 논문에서 발생하는 모든 수익은 출판사가 100% 가져간다.
그렇다고 리뷰어들이 수고비를 받지도 않는다. 모든 논문 심사 프로세스는 자원봉사 식으로 이루어지고, 오히려 저널의 리뷰어가 되는 것이 개인의 영예로 간주된다. 아무나 되는것도 아니니 틀린건 아니지만… 열정 프라이스 같은 느낌이랄까… 이미 리뷰하고 있는 저널이 너무 많아서 힘든게 아닌 상황이면 리뷰어 제의를 거절할 사람은 없다. 그리고 (대놓고 말하기 어려운) 리뷰어가 갖는 이점도 있어서 피어 리뷰 시스템은 아주 잘 돌아간다.
과거에 논문을 게재하면서 더욱 어이없다고 느꼈던 부분은 되려 저자한테 비용을 청구하는 부분이었다. 예를 들어 종이로 인쇄된 버전을 배송받고 싶으면 한부에 몇만원씩 돈을 내야 되고, 그림 들어간것들을 (그래프같은거) 칼라로 인쇄하려면 몇십만원이 추가된다. 그리고 끝판왕이 open access 인데, 내 논문을 open access 로 하려면 (저널을 구독하지 않는 사람도 다 다운받을 수 있있 공개하는 것) 수백만원을 내야 한다. 이렇게 적반하장식이지만 연구자들은 논문을 어떻게든 내야 하는 입장이라 이런 것들이 이상하다고 생각조차 잘 안한다.
출판사들의 이런식의 영업 행태는 마치 관공서 앞 음식점들을 연상케 한다. 손님의 절반 이상이 법인 카드로 결제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가격을 뻥튀기 하는거다. 사람들은 자기 지갑에서 나가는 돈이 아니면 아주 무감각해지니까. 논문 게재 비용을 다 연구비로 결제하고, 본인 월급에는 무관하기 때문에, 이런 시스템에 솔직히 문제제기를 할 이유를 다들 못느낀다. 출판사의 수익구조가 어떻게 되는지 정확하게 알지도 못하고.
최근 이런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open access 저널이 늘어나고 있다. 과거 종이시절에는 물리적으로 책을 배급해야 했기 때문에 출판사의 역할이 중요했지만, 인터넷의 보급에 따라 배급에 드는 비용이 크게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출판사들의 가격 인상으로 민간 기업이나 가난한 나라에서는 지식 접근에 어려움을 겪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는 것을 막는 것이 이 무브먼트의 주 모토다. (http://ko.wikipedia.org/wiki/%EC%98%A4%ED%94%88_%EC%95%A1%EC%84%B8%EC%8A%A4 간략한 설명을 여기서 볼 수 있다.) 처음 얘기했던 ‘정보 공유’ 정신에 입각한 접근인 것이다. 음악의 경우 유저들이 무료로 음원을 공유해버려서 기존의 음반 수익구조를 파괴해버렸지만, 수요가 훨씬 적고 제품이 엄청나게 다양한 (특별한 베스트셀러가 없는) 논문시장의 경우 유저 중심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 같다. 그리고 위에 말했지만 자기돈 내고 보는 사람이 별로 없는게 가장 큰 이유다. 만약 누구나 논문을 자비로 사서 봐야 했다면 아마도 논문 무료로 볼 수 있는 해적 사이트를 누군가 진작에 만들었을 거다.
Open access journal 은 검색해보면 상당히 많다. 그 중 유명한 것도 몇 있는데, 아직은 학계에서 메이저한 저널로 인정받는 것들은 거의 다 유료고, 이것이 무료 저널의 성장을 막는 큰 부분이다. 위에 말했듯 연구자 능력을 평가하는건 임팩트팩터인데, 열심히 연구한 결과를 팩터도 낮고 그렇다고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팩터는 낮지만 인정받는 저널도 더러 있다) 저널에 내고 싶을까?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SCI 저널을 더 우월하게 생각하는 괴상한 풍토가 있어서 (이것도 Thomson Reuter ISI 에서 선택한 저널 리스트인데.. 미국 연구자들은 SCI 저널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도 많다. 이건 나중에 설명할 일이 있을 수도) open access journal 에 논문을 내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나라도 팩터 높은거 아니면 안낸다). 하지만 출판사들의 횡포를 막고 지식 공유가 좀 더 잘되길 원한다면 다같이 참여해야겠지...
복잡한 문제다. 학계라는 곳에도 다 이런저런 이해관계가 있다는 썰이었다.
By C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