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읽은 책들
2017년이 지나가 버렸지만(!), 하루 뒤늦게 2017년에 읽었던 책들을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총 12권을 읽었으니, 한달에 간신히 한권 읽은 셈이네요... 반성하며, 올해는 한동안 손에 잡지 않았던 소설책도 읽어보려 합니다.
1. 대통령의 글쓰기(강원국/메디치미디어)
강원국이라는 분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연설문을 작성하는 비서관을 하셨던 분입니다. 즉 여기서 대통령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입니다. 여기서 글쓰기란 논문이나 문학작품이 아니라, 대중을 향한 연설문입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서로 상당히 다른 연설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연설문을 작성하는 절차나 검토 스타일도 아주 달랐습니다. 따라서 방법론 적인 면에서 연설에 왕도란 없는건가 하는 생각도 들게 합니다.
그러나 글과 말은 리더가 하는 행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두 대통령은 이것을 위하여 엄청나게 많은 독서를 하셨습니다. 그렇게 쌓인 내공이 서로 다른 스타일 속에서도 같은 설득력으로 드러났나 봅니다.
다만 제가 두 대통령을 지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돌아가신 두 분을 찬양하는 글 처럼 읽혔다는 것은, 이 책은 읽을 사람만 읽겠구나...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사실 그게 맞겠지요. 이 책은 글쓰기 교재로 쓰기도 충분합니다만, 두분에게 바치는 트리뷰트에 더 가깝지 않나 합니다.
2. 이기적 유전자(리차드 도킨스/을유문화사)
그 유명한 이기적 유전자를 이과생이면서 이제서야 읽어 보았습니다.
제가 읽은 버전은 왼쪽 표지 버전(2010년 개정판)도 아닌 예전 버전입니다만, 안타깝게도 어떤 감동이라거나 인상이 남지 않았습니다.
연초에 읽었으니 읽은지 1년이 다 되어가서 기억에서 잊힌 탓도 있지만, 책을 관통하는 힘 같은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이 책이 나온지 오래되어 대부분의 내용이 이미 대중화되어 어디선가 들어본 소리인 탓도 있지만, 부족한 번역 때문인 것으로 뒤늦게 알게 되었는데...(참고) 아쉬움이 남습니다.
3. 시민의 확장(김효연/스리체어스)
이 책을 알게 된 계기는 정말 우연인데, 광화문에 약속이 있어 다소 일찍 도착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을 때우러 영풍문고에서 책을 뒤적이는데, 신간 도서에 대한 작가 강의가 있다 하여 듣게 되었고, 인상깊은 내용이라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시민의 확장이라 함은, 우리가 '시민'으로 인정하는 사람의 범위를 확장하자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확장의 대상은 아동과 청소년입니다. 한국에선 아동과 청소년에게 투표권(참정권)을 주지 않습니다. 이들은 헌법상으로는 대한민국 국민(시민)이나, 사실상 반쪽짜리입니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직 충분히 교육받지 못했기 때문에, 합리적 판단을 하기 미숙하기 때문에,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등등. 그러나 그 어떤 사유도 파고 들어가면 논리적이지 못합니다. 하나의 반례만 들어도, 왜 사리분별이 흐려진 치매노인의 투표권은 박탈하지 않을까요? 이런 문제(링크)가 있는데도 말이죠.
그동안 생각해보지 않고 당연히 받아들였던 점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흥미로운 책입니다. 외국의 사례도 제시하면서. 일독을 권합니다.
4. 현대 한국의 과학기술정책(홍성주, 송위진/들녘)
한국에 살고 있지만 한국이 어떻게 이리 빨리 발전했는지는 정말 신기하고 의문입니다. 여러 부작용은 차치하고... 다른 국가를 볼 때 저 나라들이 한국을 따라한다고 한국처럼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고도성장의 원동력이라고들 하는 것 중 하나가 과학기술력입니다. 교과서에 나온 것처럼 경공업, 중화학공업, 자동차, 반도체산업 등 제조업 융성이 외화를 벌어와 잘살게 되었다는.
그 과정에 있어 한국 정부에서 어떤 계획을 세웠으며, 주 원조국인 미국을 상대로 어떤 협상을 했었는지 등의 역사가 잘 정리되어 있는 책이었습니다.
5. 주식 시장을 이기는 작은 책(조엘 그린블라트/알키)
재테크는 직장인들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일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였고, 올해 우연히 알게 된 가장 재미있는 것 중 하나는 '계량투자'였습니다.
주식을 하시는 분은 여러 스타일이 있겠지만, 개별 기업의 이슈를 분석하거나, 거시적 사회 트렌드에 베팅하시는 분도 계시고, 기술적 분석이라 하여 일목균형표를 보시는 전문가도 계십니다.
계량투자란 그런 어려운 고민 없이 이 주식이 회사의 가치 대비 고평가인지 저평가인지를 나타내주는 지극히 상식적인 지표(넘버)로만 종목을 선정하고, 부정확함과 위험을 낮추기 위하여 30~50개 수준으로 분산투자 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이 방법으로 대박은 칠 수 없으나, 대신 쪽박도 차지 않고, 대개 시장 수익률(인덱스)은 이길 수 있기 때문에, 주식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이보다 좋은 투자 방법은 없는 것이죠. 저는 지표 중심의 접근도 공학적이라 마음에 들어 시도해 보았는데, 결과는? 기대보단 못하지만 not bad!
6. 국가론(플라톤/돋을새김)
그 유명한 국가론을 올해서야 읽어봤습니다. (창피해하진 않을래요...) 국가론은 필독 고전으로 꼽혀왔지만 최근에는 특유의 엘리트주의 때문에 필독서에서 빼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플라톤의 이상주의는 정말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분업주의와 엘리트주의가 미묘하게 섞인 계급론을 기반으로 하여, 정치와 국방을 위한 인재는 아기때부터 철저히 걸러 격리한 채 특수 엘리트 교육으로 양성해야 한다는... 도저히 현실성이 없다고 제가 장담할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플라톤의 자기논리 완결성(?)도 엄청납니다. '신은 선하기 때문에, 세상의 악행은 신이 벌인 일이 아니다.' 자기 결론에 맞는 논리만 갖다 쓰겠다... 제가 오해한 걸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러지는 말아야 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500년 전에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은 참 대단합니다.
7. 그릿(안젤라 더크워스/비즈니스북스)
제가 잘 읽지 않는 자기계발서인데요, 작년에 읽었던 <슈퍼 제너럴리스트>(다사카 히로시)와 통하는 점이 있었습니다.(참고) 고차원적인 내적동기(목표/비전)의 중요성, 그리고 하루하루 정진하는 스포츠적 근성을 강조합니다.
사실 '근성'만 강조하는 것은 모두 알다시피 부족합니다. 이 책에서는 여기에 효과적인 멘토링, 달성 가능한 합리적인 목표설정(대신 세웠으면 핑계대지 말고 달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흔히 이상적 양육방식이라고 하는 '아이를 지지하지만 엄격한 양육', 이것을 어렸을 때 경험하는 것이 아이의 성공에 중요하다는 반박하기 어려운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다만 누구나 그릿을 키우면 성공할 수 있다는 주장은 고개를 갸웃하게 하지만, 마지막에 그릿이 인생 최고의 덕목인 것은 아니며 저자도 인생을 아직 잘 모르겟다고 인정하므로 결국 저자에 동조하게 됩니다.
읽다가 어떤 반론이 떠오를 즈음 다음 챕터에서 그 반론에 대해 서술해주는, 아주 호흡이 좋은 명저였습니다.
8. 프레너미(박한진, 이우탁/틔움출판)
중국을 몇십년간 관찰해오신 전문가들의 객관적인 진단입니다.
중국과 미국은 서로 다른 운영체제를 쓰는 컴퓨터와 같아 싫어도 어쩔 수 없는 것이라 합니다. 누구는 착하고 누구는 악하다는 단순한 시각으로 접근해서는 위험하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양국을 대할 때 있어 적절한 이중잣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을까요?
북한도 큰 프레임에서 보아야 하고, 일본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일대일 각개격파로 해결하기엔 상황이 너무 복잡하므로, 그야말로 고단수가 필요한 것이겠지요. 당연하지만 깊은 인사이트가 담겨있는 책이었습니다.
다만, 트럼프가 당선되기 이전 시점에서 쓰여진 책으로, 현재 시점에서의 저자들의 생각은 어떨지 궁금해집니다.
9. 멋진 신세계(올더스 헉슬리/문예출판사)
멋진 신세계는 그야말로 고전 SF입니다. 수많은 SF물들이 얼마나 이 작품에 많은 영향을 받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매트릭스, 이퀄리브리엄, 브라질같은 영화부터 바이오쇼크같은 게임에 이르는 전체주의 하이테크 디스토피아 테마의 정의와도 같은 작품입니다. 옛날 작품이라서 역시 스팀펑크스러운 요소도 있습니다.
제가 십년 일찍 이 작품을 읽었다면 열광했을 것 같습니다. 지금도 이런 미래상이 나빠보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요. 스스로를 부질없이 학대하는 중세인이 뭐가 창조적이고 아름다울까요?
작중 가장 리얼한(인간적인) 캐릭터는 버나드 입니다. 스스로 깨어있는 척 하지만, 사실 새가슴에 찌질한 쫄보이고, 허영심에 평정을 잃으며, 고귀한척 하면서 할건 다하는 그런 인간입니다. 그것은 그가 병에서 키워질 때 실수로 알코올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웃기게 해석하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알코올인 것이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인간적인 행위는 요람속에서 술이나 마시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10. 자본주의의 역사(위르겐 코카/북캠퍼스)
상당히 작은 볼륨으로 자본주의의 태동기부터 2008년 금융위기까지 균형있는 시각으로 다룬 책입니다.
이 책에서 자본주의는 결국 가장 진보적인 경제시스템이지만, 정부의 역할은 무한 시장경쟁 속 단순 사회안정 역할 뿐만 아니라, 시장창출에서부터 공정한 경쟁을 보장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통한 시장 착근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근래에 등장한 주주자본주의와 구조화된 무책임적 금융산업이 어떤 위기를 가져왔는지(2008년 금융위기 포함)를 지적하고 있으며, 혁신은 단순히 외생적인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와 상호 견인되는 것임을 논리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EBS에서 제작하여 방영했던 <자본주의>라는 다큐멘터리는 비슷한 맥락에서 더욱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시간을 내서 다시 한번 봐야겠습니다.
11. 블록체인 혁명(돈 탭스콧, 알렉스 탭스콧/을유문화사)
블록체인은 올해 가장 재미있는 키워드였습니다. 이 책은 블록체인의 A to Z 를 담고있다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요약본 전도서랄까... 물론 앞부분의 블록체인 찬양은 저마저도 회의를 들게 하지만, 후반부에서 (분명 미래의 thing이지만) 현실적 한계점과 극복할 점에 대해 냉정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6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입니다만, 인내심을 가지고 정독해보시기를 권합니다.
이에 더불어, 책과 별개의 글이지만, 제가 블록체인 분야 국내 최고 전문가 중 한명으로 꼽는 표철민 체인파트너스 대표의 글을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링크) 블록체인은 투기를 위한 신기루나 사기가 아니고, 새로운 비즈니스 플랫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올해 초 블록체인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이후, 이 분야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읽던 몇달 전과 지금만 비교해도 새로운 뉴스가 너무나 많습니다. 분명 방향성은 맞으나 균형잡힌 시각이 필요하고, 숲과 나무를 다 보고, 내일과 십년 후를 둘다 내다보기 위해서… 끝없는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12. 공감하는 능력(로먼 크르즈나릭/더퀘스트)
개인적 인간관계에 있어, '공감이란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으로 찾아 읽어보게 된 책입니다. 상대방을 단지 '이해'하는 것과 다른 상대방의 감정까지 같이 느끼는 '공감'은 무엇일까? 이런 궁금증이 있었습니다.
위와 같은 내용을 기대하고 읽었건만, 이 책은 사실 감정 동기화 또는 상대방의 마음 읽기보다는, 인류애, 지구애 측면에서의 공감을 호소하는 책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후손들과 기후변화에 더 취약한 사람들에게 공감하여 지구온난화를 멈출 수 있는 노력을 이끌어내자는.
하나 인상적이었던 포인트가 있습니다. 이 사회를 내성이 아닌 외성의 시대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알기 위해서 자기 안을 열심히 들여다보았자 에고만 강해질 뿐이며, 남과의 대화가 더욱 효과적이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나를 다양한 상황에 처해보게 함으로써 나를 더욱 객관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일 뿐입니다.
저자는 현대사회가 공감의 결핍에 시달리는 중이라 합니다. 정말 한국을 돌아보면 공감은 현재 결핍 그 이상입니다. 공감이 터부시 된다고 생각될 지경이니까요.
위에서 열거한 책들은 그래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책들이며, 모두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여 추천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책들을 많이 만날 수 있길 바라며(사실 좋은 책이야 차고 넘치고 게으름이 문제죠 게으름), 이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2018년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By C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