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도시괴담 (Creepy Pasta)
인터넷 도시괴담 (Creepy Pasta)
** 무서운 이야기나 사진, 동영상에 관한 포스팅입니다! 무서운 것을 잘 못보시는 분들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
"The oldest and strongest emotion of mankind is fear, and the oldest and strongest kind of fear is fear of the unknown (인류의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감정은 공포이고,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공포는 미지에 대한 공포다)." [ref]
― H.P. Lovecraft (현대 공포문학의 아버지)
무서운 이야기는 아마도 인류의 역사와 함께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왜냐하면 '모르는 것'에 대한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반응은 공포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모르는 것'이라고 하면 우리가 현재의 지식을 가지고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합니다. 오늘날 과학의 힘으로 그 신비함이 벗겨진 질병, 재난 등은 옛날에는 그저 알 수 없는 공포의 대상이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그냥 평범한 전래동화일 뿐인 "떡 하나 주면 안잡아먹지" 하는 호랑이가 나오는 햇님달님 이야기도 뒷산의 호랑이가 심심치않게 마을 사람들을 공격하던 옛날에는 분위기만 잘 조성하면 충분히 무서운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특히 오누이가 나무 위에 도망가 있는데 호랑이가 도끼로 나무를 찍으며 올라오는 장면은 엄청난 서스펜스...)
이제는 햇님달님 이야기를 아무리 무섭게 해봤자 무섭지 않습니다. 호랑이는 벵갈 밀림 안에 조난되었거나 동물원에서 호랑이 우리에 떨어지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공포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멸종위기의 불쌍한 존재지요. 신에 의해 처벌로서 내려지는 자연재해도 오히려 미지에서 오는 공포라기 보다는 현실로 닥쳐있는 문제로, 공포 영화보다는 재난 액션 영화의 소재가 됩니다. 분명 쓰나미같은 자연재해만큼 무서운 것도 없습니다만, 그것의 매커니즘을 알고 예측할 수 있으므로 그 공포의 성격은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질병은 말할것도 없고요.
이런 현대의 주된 괴담의 소재가 되는 것들은 귀신, 살인마, 좀비 같은 것들입니다. 이것들은 아직 정복되지 못한 미지의 세계와 관련되있습니다. 귀신, 좀비는 사후세계 또는 죽은 후의 우리의 의식은 어떻게 되는가?와 관련되어 있으며, 살인마는 그 존재는 알려져 있더라도 우리 주변에 어디 있을지 모르는 싸이코패쓰, 그리고 드물게 등장하는 외계인도 미지의 세계에서 온것이죠. 어떤 대상을 대놓고 공포의 소재화 하는 것이 식상해진 지금은 사람의 진화과정 어딘가에 그 원인이 있을거라 추정되는 여러가지 공포증들을 소재로 삼기도 합니다. 환공포증, 선단공포증, 고소공포증, 폐쇄공포증 등등. 또는 온갖 상상력을 동원하여 우리의 통상적인 상식이나 지각이 더이상 통하지 않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두려움을 일으킵니다.
우리는 누가 지어냈는지 알수도 없는 수많은 무서운 이야기들을 접해왔습니다. 귀신 이야기의 클래식 '빨간휴지 파란휴지'부터 시작해서, 90년대에 TV에서 해주던 <토요 미스테리>, <이야기 속으로> 시리즈, 그리고 학교 앞 문방구나 서점에서 팔던 쬐끄만 500원짜리 '공포특급'같은 제목이 달려있는 조악한 책들, 여름이면 영화관에 걸리는 그저그런 공포영화들, 최근에는 공포 웹툰까지..
화장실 내 최대의 고민부터 시작해서 내러티브, 작화, 캐릭터까지 매우 충실했던 웹툰 <0.0MHz> 까지!
무서운 이야기는 동네마다 수십, 수백개가 있고, 에드가 앨런 포우와 H. P. 러브크래프트의 자손들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창작물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스릴을 위해서든, 영화관에서 여자친구와 좀 더 밀착하기 위해서든, 또는 실재하는 공포에서 (요즘 유달리 느껴지는 현실의 냉혹함) 도망치기 위해서든, 아주 다양한 목적으로, 그리고 다양한 형태로 소비해왔습니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 인터넷의 시대가 되었고, 괴담에도 UCC의 시대가 왔더군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인터넷을 떠도는 괴담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루리웹이나 오늘의유머 같은 곳에 공포 게시판이 있는데, 여기선 특히 우리나라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미국 쪽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Creepy Pasta 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무서운 파스타 (ㅋㅋ) 이것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짤막한 괴담들을 뜻합니다.[ref1] [ref2]
무, 무섭게 생긴 파스타다...
이것은 단순히 무서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실제로 무서운 무언가를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http://normalpornfornormalpeople.com 이라는 웹사이트가 있습니다. 이곳은 "비정상적 성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웹사이트"라는 기조가 걸려있고, 몇개의 동영상을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단순히 어떤 여자가 땅콩버터 샌드위치를 만드는 것으로 시작해서, 어떤 남자가 세탁기를 고치더니 세탁기를 7분동안 혀로 핥는 이상한 것도 있습니다. 그보다 더욱 훨씬 폭력적이고 잔인한 영상들도 있습니다. 이 모든것들은 당연히 페이크이고 보는 사람에게 뭔가 무서우면서 불편한 느낌을 들게 하려는 목적이지만, 실제로 인터넷에 사이트가 버젓이 있기 때문에 저 영상들이 페이크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가 없는 점에서 더욱 소름끼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저는 사이트를 들어가보기만 하고 영상은 보지 않았습니다. 설명은 위키피디아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마치 p2p에 떠도는 정체불명의 스너프 필름을 볼 때의 미묘한 으스스함.
이런 인터넷의 괴담들을 본격적으로 공유하는 사이트들이 있습니다. creepypasta.com creepypasta.org 등이 있습니다. 누구나 이야기를 업로드할 수 있고, 이야기는 공유되어 별점을 매길 수 있습니다. 각 이야기를 파스타 라고 합니다. 왜 하필 파스타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여러 곳의 크리피 파스타를 모아놓은 크리피파스타 위키도 구축되어 있습니다. 제가 아는 한 가장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로, 왠만한 미국 도시괴담은 여기에 수록되어있다고 봐도 무방하겠습니다.
수많은 이야기들 중 화제를 일으키거나 임팩트있는 것들은 다른 종류의 미디어로 파생되었습니다. 이른바 덕질인 것이죠. 사람들은 텍스트의 내용을 그림, 영상, 심지어는 게임으로 옮겨 확대 재생산했습니다. 스스로 성우가 되어 텍스트를 구연동화식으로 읽어 유튜브에 올리는 사람도 있죠. 그것들중 가장 흥미로운 형태는 alternate reality game 이라고 불리우는 일종의 놀이인데요, 인터넷의 괴담이 실제라고 가정하고 여러 사람들이 마치 자기도 그런 일을 겪었다는 듯 각종 증거를 제시하며 살을 붙이는 것이죠. 뒤에 소개하겠지만 슬렌더맨 (Slender Man) 은 2009년 처음 Something Awful 이라는 사이트의 괴담포럼에 등장한 이후 여태까지 이 게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Jeff the Killer> 라는 이야기에 나오는 살인마 제프의 모습을 누가 상상해서 그린것들입니다. 눈꺼풀을 불로 태워 없애고, 칼로 입을 찢었다고 합니다.
세계의 기이한 물체들을 수집해 안전하게 보관한다는 SCP Foundation 을 소재로 한 괴담이 게임으로 제작되어 무료로 배포되었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게이머들이 심장마비에 걸릴 뻔 했습니다.
크리피파스타를 읽어주는 동영상입니다.
슬렌더맨이 포착되었다는 증거로 돌아다니는 사진. 뒤에 허옇게 삐죽한 것이 항상 검은색 정장을 입는 슬렌더맨 입니다. (당연히 합성..)
화제가 되는 크리피파스타들의 특징, 그리고 그것들이 확대 재생산되는 양상을 보면, 실화인지 지어낸 이야기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이미 지어낸 이야기인지 뻔히 알고 있다고는 하지만, 너도나도 동조하여 살을 붙이다 보니 자료도 방대해지고 지어낸 증거가 너무 교묘해져서 (위 사진 처럼) 더욱 빠져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옛날 일본의 심령사진들이나 블레어 위치 프로젝트 (Blair Witch Project) 가 이런 일종의 '페이크 다큐멘터리'가 주는 공포감을 잘 활용했던 사례들이죠. 게임의 경우 사일런트 힐 시리즈나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 등이 좋은 지침서가 되고요. 컴퓨터를 이용한 컨텐츠 제작이 점점 편리해지고 강력해지면서 1인 또는 2-3명 정도의 소그룹으로도 상당히 높은 퀄리티의 영상을 만들 수 있고, 오픈 소스 엔진이 많아지면서 취미로 게임을 제작하는 프리랜서 프로그래머(라고 쓰고 양덕이라고 읽습니다)들이 많아졌습니다. 또한 공포라는 장르는, 약간 퀄리티가 낮으면 오히려 공포감이 배가되는 점이 있으므로 더욱 유저들의 진입이 더 쉬운 점이 있죠. (심령사진은 찌글찌글한 아날로그 사진이 제맛)
그러면 가장 유명한 크리피파스타가 아닐까 하는 슬렌더맨을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서 적었듯 슬렌더맨은 2009년 처음 Something Awful 이라는 사이트의 괴담포럼에 등장했습니다. 심령사진을 만들어 올리는 쓰레드에 Eric Knudsen (a.k.a. "Victor Surge") 라는 사람이 만들어 처음 등장했는데, 지금은 링크가 다 깨져 보이지도 않네요.
슬렌더맨은 매우 키가 크고, 아주 말랐으며, 얼굴이 없는 초현실적 존재입니다. 항상 검은색 양복을 입고 있으며, 아이들이 있는 곳에 잘 나타난다거나, 인적이 드문 숲속에 나타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슬렌더맨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여기에 잘 나와 있습니다. 팔다리가 아주 긴데, 등에서 돋아나온 여러개의 촉수가 있다는 설도 있습니다.
슬렌더맨이 급격히 유명해진 기폭제가 된 것은 <마블 호넷츠 (Marble Hornets)> 라는 유튜브 시리즈입니다. 이 시리즈의 시작은 전형적인(?) 블레어위치 식 found-footage film 인데요, 이야기의 시작은 Jay 라는 주인공이 Alex 라는 친구에게 한 무더기의 테잎을 넘겨받으면서 시작됩니다. 알렉스는 영화학도였고, 졸업작품으로 '마블 호넷츠'라는 영화를 찍기 위해 제이를 포함한 여러명을 섭외합니다. 열심히 촬영을 하던 도중, 알렉스는 돌연 영화 제작을 중단했고, 2년간 연락이 두절됩니다. 역시 영화학도였던 제이는 그 프로젝트가 궁금하여 알렉스를 다시 만나게 됩니다. 마블 호넷츠 얘기를 꺼내자 알렉스는 매우 불쾌해 했는데, 오랜 실랑이 끝에 당시 찍었던 한무더기의 비디오 테잎을 전부 넘겨받게 됩니다. 하지만 그 테잎에는 2년 전 찍었던 영화와는 전혀 무관한 이상한 것들이 찍혀 있었습니다...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더 이상의 내용 설명은 하지 않겠지만, 이 시리즈는 단순한 found-footage 스타일을 넘어 과거에 있었던 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스토리를 이끌어나가게 됩니다. 트위터 계정을 운영하면서, '내일 어디를 가려고 합니다' 라고 예고한 후 다음주 쯤에 그때 찍었다는 영상이 올라오는 것이죠. 5년에 걸친 시리즈의 마지막에는 집중력이 떨어졌는지 업데이트도 늦고 내용도 지나치게 복잡해졌지만, 이 시리즈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를 지었고 현재 dvd 까지 출시되었습니다. (출연진들은 실제로 연기 및 연출 커리어를 꿈꾸는 청년들입니다) 여기서 dvd 및 관련 머천다이즈 (티셔츠 등)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다른 유튜브 시리즈로는 TribeTwelve 라는 것이 있습니다. 노아라는 친구의 사촌이 어느날 죽었는데, 그의 죽음과 관련된 석연치 않은 점들을 발견하고, 그 원인을 찾아가면서 그 배후에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슬렌더맨과 그의 부하들에 맞서 싸운다기보다는 도망다니는 이야기입니다. 이 시리즈는 한차원 높은 alternative roleplaying game 을 보여주는데요, 마블 호넷츠에 주인공들 외 다른 사람은 등장하지 않는데 비해, 트라이브트웰브의 노아는 슬렌더맨에 대항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유튜브 채널) 교류까지 합니다. 그 과정에서도 서로의 기억이 약간씩 다른 것으로 미스터리함을 보여줍니다.
노아 역시 트위터로 관객들과 소통하는데, 중간중간 슬렌더맨의 부하가 트위터계정을 해킹하여 이상한 메세지나 사진을 올린다거나, 유튜브 채널에 이상한 영상을 올립니다. 노아가 등장하는 영상이 올라오는데, 노아는 그 영상을 찍은 기억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노아를 연기하는 배우가 꽤 연기력이 좋은 것 같습니다) 현재 내용이 산으로 가고 있지만, 아무튼 아직 완결 나지 않았고 현재진행형입니다.
슬렌더맨의 특징은, 비록 얼굴이 없지만 그 얼굴을 마주하게 되면 몸과 정신을 통제할수 없고 슬렌더맨의 의사에 따라 죽거나, 한참 후 엉뚱한 장소에서 깨어나거나 하게 됩니다. 또한 순간이동 식으로 움직이며, 전자파를 일으키는지 슬렌더맨이 근처에 있으면 사진기나 비디오카메라에 노이즈를 일으켜 영상이 일그러지고 잡음이 납니다. 이런 특징들을 살려 공포게임이 여러가지 나왔습니다. 이 모두는 일종의 팬아트로 무료 게임들입니다. 제일 유명한 것이 Slender: The Eight Pages 로, 어두운 숲속을 후레쉬 하나 들고 돌아다니며 슬렌더맨에게 잡히지 않고 8장의 쪽지를 모으는 것입니다.
단순하지만 간떨리는 게임..
이렇게 유저들이 만들어놓은 기이한 세계가 안타깝게도 현실에 안좋은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인터넷에서 슬렌더맨 이야기를 보고 현실과 혼동하여 본인들이 슬렌더맨의 지령을 받았다고 착각하거나, 스스로 슬렌더맨의 부하가 되기 위해서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케이스가 있다고 합니다. [ref]
오늘은 무서운 이야기에 대하여 썰을 풀어보았습니다. 저 자신은 무서운 것을 그렇게 잘 보지도 않습니다만, 그래도 기이한 이야기들이 가끔씩 현실의 고리타분함에서 떠나 약간의 짜릿함도 주는 즐거움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 제가 매우 재밌게 읽었던 <Ted the Caver> 라는 크리피파스타를 번역하여 올릴 예정이니 기대해주세요!
By C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