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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y

2016년 읽었던 책 5권에 대한 서평



2016년이 훅 가버렸다. 개인적으로는 서울로 이사도 했고, 첫 직장에 다니게 되면서 많은 생활적인 변화가 있었고, 랩에서 실험하던 이공계 대학원생에서 책상에 앉아 정책을 다루는 직장인으로 바뀌게 되면서 새로운 분야에 적응해야 했다. 6년에 가까운 시간을 머물렀던 대학원에 적응되다 못해 지겨워질 쯤, 완전히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 나의 잘하는 것 보다는 부족한 점만 실컷 발견하게 된 1년이었다.


이런 1년을 소회할 겸, 그리고 그 길고긴 출퇴근 시간동안 책을 좀 읽으리라 다짐했지만 생각보다 몇권 읽지 않은 자신을 반성할 겸... 올해 읽었던 책 중 생각나는 5권을 골라 짧은 서평을 남긴다. 읽은지 꽤 오래된 책들도 있어서 내용이 잘 생각이 안나는 게 대부분이지만, 더 생각이 안나기 전에 기록을 남긴다. 개인 취향 상 주로 사회과학에 관련된 책이 많고, 원래 좋아하지 않는 자기개발서도 하나 껴있다. : )





1. 기업가형 국가



마리아 마추카토는 과학기술정책학 교수로, 유럽과 EU에서 과학기술정책에 자문을 하였던 사람이다. 통상 연구 자금은 민간과 공공(정부)으로 나누는데, 우리나라는 민간(기업)의 연구자금 비중이 다른 나라보다 높은 편이다. 정부가 지금처럼 직접적으로 연구비를 대학이나 연구소에 대량으로 지원하기 시작한 것은 30년이 되지 않는다. 기업은 연구개발에 확실한 돈이 되는 목표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핸드폰을 만들자." "항암제를 만들자." 뭐 이런. 공공 연구개발은 보통 그렇지 않은, 더 앞단의 기초과학에 가까운 연구에 들어가기도 한다. 생물학, 전자공학, 에너지 등 아직 상용화 시킬수는 없지만 장래에 활용될 수 있는 지식을 쌓아올리기 위해서 국가적인 투자가 들어가는 부분이다.


이렇다 보니 공공 연구개발비가 흔히 '눈먼 돈'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냥 교수들에게 '뿌려지는' 돈. 특히나 경제가 안좋아서 혁신적 기업의 드라이브에 대한 갈망이 높은 지금같은 시기에는 강도높은 비판이 들어간다. 이 책에서는 애플의 아이폰 등의 사례를 들어가며 그런 인식에 반박한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무에서 창조해낸 것 같지만, 그것은 과거 수십년간 정부 연구개발을 통해 DARPA 등에서 창출된 요소 기술들이 잘 조합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DARPA에서 어떤 요소기술을 만들때 절대 '이게 나중에 아이폰 만들때 필요하겠지' 하고 만들지 않았다. 공공 연구개발로 인해 잘 다져진 토양에서 혁신가가 나올 수 있다 이런 소리인 것 같다.


이건 책에 안나오는 내용이지만, 스페이스X 같은 대단한 기업도 엘론머스크 천재형이 알아서 하는 것 같지만, 위험할 때 도와준 것은 미국 정부다. 민간이 정부보다 유능한 것 같아도, 민간이 할 수 없는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만 한국을 생각하면, 이런 질문이 계속 남는다. "우리 정부는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나?" "그런 대단한 일을 하기 위해 충분히 유능한 사람을 활용하고 있나?"



2. 폭력의 해부



에이드리언 레인은 보통사람 기준에서 보면 사파에 해당하는 신경범죄학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범죄 성향을 뇌의 생물학적 구조나 활성에 연관짓는, 거의 금기에 가까운 학문을 연구하는 분이다. 어디까지나 철저한 과학적 입증을 통해서. 이 책에서는 자신의 연구결과를 방대하긴 한데, 그래도 너무 어렵지 않은 선에서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뇌에서 충동을 제어하는 부분이 충분히 활성화되지 않는 사람은 어려서부터 절도, 폭력 등 범죄를 일으킬 확률이 높아진다. 심지어 이런 성질은 유전까지 된다.


문제는 이 다음이다. 어떤 자는 3명의 여성을 강간 후 살해 했으나, 그 원인은 뇌의 장애 때문인 것으로 판명되었다면, 우리는 그 자를 감옥에 넣어 처벌하고 격리시켜야 하는가, 아니면 병원에서 치료해야 하는가? 술에 취해있었 던 것으로도 감형을 해주는 우리나라 법 기준이면 후자일 것이지만, 이미 장애가 있는 뇌를 치료하는 방법은 있는것인가?


영화 '셔터 아일랜드'에 보면 도저히 치료되지 않는 정신분열증 환자에게 최후의 수단으로 쓰는 로보토미(lobotomy)라는 시술이 나온다. 눈 구멍과 안구 틈사이로 쇠꼬챙이를 밀어넣고 뇌의 전두엽을 휘저어 파괴하는, 시술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이제는 없어진 시술이다. 재수없으면 죽지만,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멍해져서 아무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식물이 된다고 한다. 책의 앞부분만 본다면 마치 로보토미가 시술되던 시절로 되돌아가자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결론 부분에서 저자는 보다 온건한 환경주의자(범죄의 원인은 잘못된 성장과정 등 환경 때문이다)의 주장과 어느정도 타협할 수 있는, 상당히 합리적면서도 아주 미래적인 답을 제시한다. 마치 전염병을 관리하듯, 범죄를 일으킬 수 있는 생물학적 인자를 파악하고, 관리하자는 것이다. 신경범죄학을 더 발전시켜서, 전국의 어린이가 범죄자의 뇌를 가지고 있는지 미리 검사하고, 있다면 미리 치료하자는 것. 난 그것이 가능하다면 완전 환영이다.



3. 맨박스



페미니즘은 이제 단순 여권신장이 아닌 더 올바르고 나은 세상을 위한 움직임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을 향한 폭력이 존재하고, 여성이라서 겪어야만 하는 피해와 불편함이 많아 보이는 세상이다 (내가 여자가 아니라서 단언은 못하겠다).


토니 포터는 보통 '여성'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 논의에서 참신한 발상을 해내신 분이다. 남자가 바뀌어야 한다면, '남성'에 대해 고찰하고, 쓸데없는 굴레를 벗어 던지라는 말이다.


"남자면 ~~ 해야돼." "남자면 ~~ 하면 안돼." "남자니까 ~~ 해야돼." 말과 글을 깨친 다음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주입되는 이 말들은, "여자면 ~~ 해야돼." "여자면 ~~ 하면 안돼." 만큼이나 스트레스가 될 법 하지만, "남자면 그 정도는 참아야" 한다는 룰도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드러내지 못하고, 또한 그런 고정관념에 나를 맞추었을 때 여자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감까지 같이 주입받기 때문에, 그렇게 체화된다.


그 고정관념, '맨 박스'를 깨면, 새롭게 요구되는 인간상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 이 주장은 참 공감이 되면서도, 미묘한 순환논리인 것 같기도 했다. 책 말미에 맨박스를 깨자는 캠페인을 위해 대학교에서 정말 '맨박스'라고 써있는 상자를 만들어서 부수는 퍼포먼스를 했다는데... "맨박스를 깨야돼! 남자다움이라는 고정관념을 깨야 돼!"라는 고정관념에... -_- 빠지게 하는 건 아닌지... 싶었다.



4. 축적의 시간



서울대 교수님들의 본격 현실 개탄. 우리나라 빨리 발전해왔는데 요새는 왜이러나? 빨리빨리 하느라 축적을 무시해서 그래! 요약 끝.


틀린 말씀 하나도 없다. 기술, 경영노하우, 마케팅, 뭐 하나 책에 써있는 대로 되는게 있는가? 그래서 경력이 무서운 것이고, 저력이 무서운 것이다. 아무리 신흥국들이 날고 기어도, '선진국'으로 들어가는 배리어를 못뚫는 이유가 그 저력 때문이다. 단순 지식의 축적 뿐만 아니라, 문화적 축적도 일어나는데 모두 알다시피 후자는 더 무섭다. 머리만 좋은게 아니라 멘탈까지 좋은 격이다.


읽은 지 오래되어서 자세한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안나지만 ㅠ 메세지는 이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빠른 추격자'로서 외국의 지식을 가져다가 빨리 적용시키는 것은 우수했다. 그런데 여기서 '선도자'가 되려면 그동안 쌓인 지혜를 바탕으로 혁신이 일어나야 하는데, 과거의 방식에 익숙해서 지식을 쌓아 지혜로 성숙시키는 작업을 존중하지 않았고, 그 바탕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더 망하기 전에 이제라도 좀 만들자.


백번 맞는 말씀인데, 내가 워낙 삐딱서니라 이런 생각이 들더라. 이런 세상을 만든게 교수님 같은 분들인데, 이제와서 남일처럼 지적하시는 거 아닌가? 아니면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 주셨으면. 외국에는 이런거 한다더라~ 수준 말고 우리나라에서 실행할 수 있는 전략과 전술을.



5. 슈퍼 제너럴리스트



깊은 지성을 느낄 수 없는 고학력자 중 한명으로서.... -_-;;;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책의 내용을 실천하기는 참 요원한 일이지만 그래도 읽기를 잘했다 싶은 책. 무림고수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면 한번쯤 읽어봐야 할 현직 무림고수의 저서이다. 방대한 책일 줄 알았는데, 에세이처럼 짧고 얇은 책이다. 책 크기도 작다. 하루이틀이면 다 읽을 분량이지만, 실천하기엔 평생도 모자랄 양인 것 같다.


저자가 말하는 '지성'은 유식해 보이거나 박학다식하고 그런 '지식'의 층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 대화 몇마디만 하면 느껴지는 프로의 아우라 같은 그런걸 말하는 것이다. 사회에 갓 나온 고학력자가 가지고 있을 리 만무한... 하지만 10년 이상 커리어를 쌓았는 데도 그것이 안느껴진다면 문제가 있긴 하겠지.


보통 제너럴리스트 하면 수평적으로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알고 그걸 통합할 수 있는 사람. 슈퍼제너럴리스트 하면 요새 얘기하는 자기 분야 하나 정도에서는 전문성도 가지고 있는 T자 인재 쯤 될 것이다. 그러나 저자 다사카 히로시 교수가 말하는 슈퍼제너럴리스트는 이런 차원을 뛰어 넘는 정말 슈퍼맨이다.


수직적 통합이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총 7가지 요소가 있다. 사상, 비전, 뜻, 전략, 전술, 기술, 인간력. 인간력은 좀 일본적인 표현인데, 상사, 부하직원, 클라이언트 입장에서 생각하거나 배려할 수 있는 공감능력(?) 비슷한 개념인 것 같다. 모름지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듯, 그런 인간성을 바탕으로, 기술, 전술, 전략 점점 더 큰 개념으로 올라가 이념에 해당하는 사상 까지, 매사에 있어 바닥부터 하늘을 꿰뚫을 수 있으면 슈퍼제너럴리스트다. 아주 진짜 리더지. 대통령 시켜도 된다.


거기에 추가로 일종의 다중 인격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정신분열증이 아니라, 직장에서의 나와 집에서의 내가 다른 사람이듯, 업무에 있어 나를 자유자재로 변형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주문한다. 단, 상생을 위한 인간력은 잃지 않으면서.


저자께서는 자기가 슈퍼제러럴리스트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고자 하는 사람이지. 다만 환경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공헌해온 사람으로서, 20세기에 인간이 만들어낸 답안나오는 문제들로 인해 세계가 디스토피아가 되지 않으려면, 슈퍼제너럴리스트가 많이 필요하고, 슈퍼제너럴리스트가 되기 위해 여러가지 훈련을 하고 '답 안나오는 물음'을 지치지 않고 계속 고민할 수 있는 정신력을 키우자는 말이다. 그 말인 즉슨, 이제 똑똑한 사람은 차고 넘치니, 그 다음 차원의 인간이 필요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아 그리고 자세한 훈련법 같은건 저자의 다른 저서에 자세히 써있다고 한다. ㅋㅋㅋㅋ





올해는 내가 겸손한 척 했어도 가방끈 길다고 얼마나 잘난척 하고 있었는지 많이 깨달은 해였다. 그리고 어디를 봐도 이제 공부는 평생의 과업이 되어버린 듯 하다. 조바심 내지 말고 천천히 걸어가는게 낫겠다 싶기도 하다. 저 책들처럼 자기 주도적으로, 과학적 사고 버리지 말고, 고정관념을 버리고, 축적해 나가면서, 통합시켜나가면 되는걸까.


어쨌든, 역시. B$L 독자 여러분 정유년 새해에는 부자되세요! ;-)




By C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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