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읽었던 책 5권에 대한 서평



2016년이 훅 가버렸다. 개인적으로는 서울로 이사도 했고, 첫 직장에 다니게 되면서 많은 생활적인 변화가 있었고, 랩에서 실험하던 이공계 대학원생에서 책상에 앉아 정책을 다루는 직장인으로 바뀌게 되면서 새로운 분야에 적응해야 했다. 6년에 가까운 시간을 머물렀던 대학원에 적응되다 못해 지겨워질 쯤, 완전히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 나의 잘하는 것 보다는 부족한 점만 실컷 발견하게 된 1년이었다.


이런 1년을 소회할 겸, 그리고 그 길고긴 출퇴근 시간동안 책을 좀 읽으리라 다짐했지만 생각보다 몇권 읽지 않은 자신을 반성할 겸... 올해 읽었던 책 중 생각나는 5권을 골라 짧은 서평을 남긴다. 읽은지 꽤 오래된 책들도 있어서 내용이 잘 생각이 안나는 게 대부분이지만, 더 생각이 안나기 전에 기록을 남긴다. 개인 취향 상 주로 사회과학에 관련된 책이 많고, 원래 좋아하지 않는 자기개발서도 하나 껴있다. : )





1. 기업가형 국가



마리아 마추카토는 과학기술정책학 교수로, 유럽과 EU에서 과학기술정책에 자문을 하였던 사람이다. 통상 연구 자금은 민간과 공공(정부)으로 나누는데, 우리나라는 민간(기업)의 연구자금 비중이 다른 나라보다 높은 편이다. 정부가 지금처럼 직접적으로 연구비를 대학이나 연구소에 대량으로 지원하기 시작한 것은 30년이 되지 않는다. 기업은 연구개발에 확실한 돈이 되는 목표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핸드폰을 만들자." "항암제를 만들자." 뭐 이런. 공공 연구개발은 보통 그렇지 않은, 더 앞단의 기초과학에 가까운 연구에 들어가기도 한다. 생물학, 전자공학, 에너지 등 아직 상용화 시킬수는 없지만 장래에 활용될 수 있는 지식을 쌓아올리기 위해서 국가적인 투자가 들어가는 부분이다.


이렇다 보니 공공 연구개발비가 흔히 '눈먼 돈'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냥 교수들에게 '뿌려지는' 돈. 특히나 경제가 안좋아서 혁신적 기업의 드라이브에 대한 갈망이 높은 지금같은 시기에는 강도높은 비판이 들어간다. 이 책에서는 애플의 아이폰 등의 사례를 들어가며 그런 인식에 반박한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무에서 창조해낸 것 같지만, 그것은 과거 수십년간 정부 연구개발을 통해 DARPA 등에서 창출된 요소 기술들이 잘 조합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DARPA에서 어떤 요소기술을 만들때 절대 '이게 나중에 아이폰 만들때 필요하겠지' 하고 만들지 않았다. 공공 연구개발로 인해 잘 다져진 토양에서 혁신가가 나올 수 있다 이런 소리인 것 같다.


이건 책에 안나오는 내용이지만, 스페이스X 같은 대단한 기업도 엘론머스크 천재형이 알아서 하는 것 같지만, 위험할 때 도와준 것은 미국 정부다. 민간이 정부보다 유능한 것 같아도, 민간이 할 수 없는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만 한국을 생각하면, 이런 질문이 계속 남는다. "우리 정부는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나?" "그런 대단한 일을 하기 위해 충분히 유능한 사람을 활용하고 있나?"



2. 폭력의 해부



에이드리언 레인은 보통사람 기준에서 보면 사파에 해당하는 신경범죄학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범죄 성향을 뇌의 생물학적 구조나 활성에 연관짓는, 거의 금기에 가까운 학문을 연구하는 분이다. 어디까지나 철저한 과학적 입증을 통해서. 이 책에서는 자신의 연구결과를 방대하긴 한데, 그래도 너무 어렵지 않은 선에서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뇌에서 충동을 제어하는 부분이 충분히 활성화되지 않는 사람은 어려서부터 절도, 폭력 등 범죄를 일으킬 확률이 높아진다. 심지어 이런 성질은 유전까지 된다.


문제는 이 다음이다. 어떤 자는 3명의 여성을 강간 후 살해 했으나, 그 원인은 뇌의 장애 때문인 것으로 판명되었다면, 우리는 그 자를 감옥에 넣어 처벌하고 격리시켜야 하는가, 아니면 병원에서 치료해야 하는가? 술에 취해있었 던 것으로도 감형을 해주는 우리나라 법 기준이면 후자일 것이지만, 이미 장애가 있는 뇌를 치료하는 방법은 있는것인가?


영화 '셔터 아일랜드'에 보면 도저히 치료되지 않는 정신분열증 환자에게 최후의 수단으로 쓰는 로보토미(lobotomy)라는 시술이 나온다. 눈 구멍과 안구 틈사이로 쇠꼬챙이를 밀어넣고 뇌의 전두엽을 휘저어 파괴하는, 시술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이제는 없어진 시술이다. 재수없으면 죽지만,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멍해져서 아무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식물이 된다고 한다. 책의 앞부분만 본다면 마치 로보토미가 시술되던 시절로 되돌아가자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결론 부분에서 저자는 보다 온건한 환경주의자(범죄의 원인은 잘못된 성장과정 등 환경 때문이다)의 주장과 어느정도 타협할 수 있는, 상당히 합리적면서도 아주 미래적인 답을 제시한다. 마치 전염병을 관리하듯, 범죄를 일으킬 수 있는 생물학적 인자를 파악하고, 관리하자는 것이다. 신경범죄학을 더 발전시켜서, 전국의 어린이가 범죄자의 뇌를 가지고 있는지 미리 검사하고, 있다면 미리 치료하자는 것. 난 그것이 가능하다면 완전 환영이다.



3. 맨박스



페미니즘은 이제 단순 여권신장이 아닌 더 올바르고 나은 세상을 위한 움직임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을 향한 폭력이 존재하고, 여성이라서 겪어야만 하는 피해와 불편함이 많아 보이는 세상이다 (내가 여자가 아니라서 단언은 못하겠다).


토니 포터는 보통 '여성'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 논의에서 참신한 발상을 해내신 분이다. 남자가 바뀌어야 한다면, '남성'에 대해 고찰하고, 쓸데없는 굴레를 벗어 던지라는 말이다.


"남자면 ~~ 해야돼." "남자면 ~~ 하면 안돼." "남자니까 ~~ 해야돼." 말과 글을 깨친 다음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주입되는 이 말들은, "여자면 ~~ 해야돼." "여자면 ~~ 하면 안돼." 만큼이나 스트레스가 될 법 하지만, "남자면 그 정도는 참아야" 한다는 룰도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드러내지 못하고, 또한 그런 고정관념에 나를 맞추었을 때 여자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감까지 같이 주입받기 때문에, 그렇게 체화된다.


그 고정관념, '맨 박스'를 깨면, 새롭게 요구되는 인간상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 이 주장은 참 공감이 되면서도, 미묘한 순환논리인 것 같기도 했다. 책 말미에 맨박스를 깨자는 캠페인을 위해 대학교에서 정말 '맨박스'라고 써있는 상자를 만들어서 부수는 퍼포먼스를 했다는데... "맨박스를 깨야돼! 남자다움이라는 고정관념을 깨야 돼!"라는 고정관념에... -_- 빠지게 하는 건 아닌지... 싶었다.



4. 축적의 시간



서울대 교수님들의 본격 현실 개탄. 우리나라 빨리 발전해왔는데 요새는 왜이러나? 빨리빨리 하느라 축적을 무시해서 그래! 요약 끝.


틀린 말씀 하나도 없다. 기술, 경영노하우, 마케팅, 뭐 하나 책에 써있는 대로 되는게 있는가? 그래서 경력이 무서운 것이고, 저력이 무서운 것이다. 아무리 신흥국들이 날고 기어도, '선진국'으로 들어가는 배리어를 못뚫는 이유가 그 저력 때문이다. 단순 지식의 축적 뿐만 아니라, 문화적 축적도 일어나는데 모두 알다시피 후자는 더 무섭다. 머리만 좋은게 아니라 멘탈까지 좋은 격이다.


읽은 지 오래되어서 자세한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안나지만 ㅠ 메세지는 이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빠른 추격자'로서 외국의 지식을 가져다가 빨리 적용시키는 것은 우수했다. 그런데 여기서 '선도자'가 되려면 그동안 쌓인 지혜를 바탕으로 혁신이 일어나야 하는데, 과거의 방식에 익숙해서 지식을 쌓아 지혜로 성숙시키는 작업을 존중하지 않았고, 그 바탕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더 망하기 전에 이제라도 좀 만들자.


백번 맞는 말씀인데, 내가 워낙 삐딱서니라 이런 생각이 들더라. 이런 세상을 만든게 교수님 같은 분들인데, 이제와서 남일처럼 지적하시는 거 아닌가? 아니면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 주셨으면. 외국에는 이런거 한다더라~ 수준 말고 우리나라에서 실행할 수 있는 전략과 전술을.



5. 슈퍼 제너럴리스트



깊은 지성을 느낄 수 없는 고학력자 중 한명으로서.... -_-;;;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책의 내용을 실천하기는 참 요원한 일이지만 그래도 읽기를 잘했다 싶은 책. 무림고수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면 한번쯤 읽어봐야 할 현직 무림고수의 저서이다. 방대한 책일 줄 알았는데, 에세이처럼 짧고 얇은 책이다. 책 크기도 작다. 하루이틀이면 다 읽을 분량이지만, 실천하기엔 평생도 모자랄 양인 것 같다.


저자가 말하는 '지성'은 유식해 보이거나 박학다식하고 그런 '지식'의 층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 대화 몇마디만 하면 느껴지는 프로의 아우라 같은 그런걸 말하는 것이다. 사회에 갓 나온 고학력자가 가지고 있을 리 만무한... 하지만 10년 이상 커리어를 쌓았는 데도 그것이 안느껴진다면 문제가 있긴 하겠지.


보통 제너럴리스트 하면 수평적으로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알고 그걸 통합할 수 있는 사람. 슈퍼제너럴리스트 하면 요새 얘기하는 자기 분야 하나 정도에서는 전문성도 가지고 있는 T자 인재 쯤 될 것이다. 그러나 저자 다사카 히로시 교수가 말하는 슈퍼제너럴리스트는 이런 차원을 뛰어 넘는 정말 슈퍼맨이다.


수직적 통합이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총 7가지 요소가 있다. 사상, 비전, 뜻, 전략, 전술, 기술, 인간력. 인간력은 좀 일본적인 표현인데, 상사, 부하직원, 클라이언트 입장에서 생각하거나 배려할 수 있는 공감능력(?) 비슷한 개념인 것 같다. 모름지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듯, 그런 인간성을 바탕으로, 기술, 전술, 전략 점점 더 큰 개념으로 올라가 이념에 해당하는 사상 까지, 매사에 있어 바닥부터 하늘을 꿰뚫을 수 있으면 슈퍼제너럴리스트다. 아주 진짜 리더지. 대통령 시켜도 된다.


거기에 추가로 일종의 다중 인격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정신분열증이 아니라, 직장에서의 나와 집에서의 내가 다른 사람이듯, 업무에 있어 나를 자유자재로 변형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주문한다. 단, 상생을 위한 인간력은 잃지 않으면서.


저자께서는 자기가 슈퍼제러럴리스트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고자 하는 사람이지. 다만 환경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공헌해온 사람으로서, 20세기에 인간이 만들어낸 답안나오는 문제들로 인해 세계가 디스토피아가 되지 않으려면, 슈퍼제너럴리스트가 많이 필요하고, 슈퍼제너럴리스트가 되기 위해 여러가지 훈련을 하고 '답 안나오는 물음'을 지치지 않고 계속 고민할 수 있는 정신력을 키우자는 말이다. 그 말인 즉슨, 이제 똑똑한 사람은 차고 넘치니, 그 다음 차원의 인간이 필요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아 그리고 자세한 훈련법 같은건 저자의 다른 저서에 자세히 써있다고 한다. ㅋㅋㅋㅋ





올해는 내가 겸손한 척 했어도 가방끈 길다고 얼마나 잘난척 하고 있었는지 많이 깨달은 해였다. 그리고 어디를 봐도 이제 공부는 평생의 과업이 되어버린 듯 하다. 조바심 내지 말고 천천히 걸어가는게 낫겠다 싶기도 하다. 저 책들처럼 자기 주도적으로, 과학적 사고 버리지 말고, 고정관념을 버리고, 축적해 나가면서, 통합시켜나가면 되는걸까.


어쨌든, 역시. B$L 독자 여러분 정유년 새해에는 부자되세요! ;-)




By C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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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탈공연 수입 들여다보기



이번 포스팅에서는 현역 메탈밴드들이 공연을 하면 티켓으로 얼마나 돈을 버는지 나름의 통계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이전 포스팅 메탈 밴드의 투어 수익 에서 소위 중간 레벨의 밴드가 공연만으로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지 알아보았었다. 여기서 말하는 중간 레벨의 기준은 공연당 $2,000 달러의 개런티를 받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밴드들의 공연 수익 통계를 보면 어느 정도로 유명해져야 저 중간 레벨에 도달할 수 있을지 알 수 있지 않을까?

 

빌보드(Billboard)에서 제공하는 박스스코어라는 것이 있다. (http://www.billboard.com/biz/current-boxscore) 영화의 박스오피스와 같이, 다양한 장르의 음악 공연의 관객수는 몇 명이었고, 티켓 가격은 얼마였으며, 총 수입이 얼마였는지 알려준다. 여기 올라오는 것 중 메탈 장르 공연들을 추려서 Metal Injection 이라는 웹진에서 정리해주는 코너가 있다. (http://www.metalinjection.net/category/its-just-business/earnings-attendance) 본 포스팅에서는 여기 올라온 역대(2013년 후반~2016년 초반) 자료를 취합해서 정리해보고자 한다.

 

        



먼저 일러둘 것은, 여기서 열거할 공연 수입은 티켓이 팔린 총 매출이지, 밴드의 개런티가 아니다. 티켓수익에서 공연장 대관료, 매니지먼트, 크루, 세금 등이 빠져나가고, 숙식비, 교통비 등의 부대비용도 발생한다. 전 포스팅 기준 순수익이 매출 대비 대략 30% 수준이었는데, 여기선 대관료, 매니지먼트 수수료 등을 미리 제한 계산이었기 때문에 티켓수익 중 순수익의 비중은 더 낮을 것이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공연장에서의 티켓파워를 이야기할 뿐이지 무슨 밴드가 무슨 밴드보다 더 훌륭하다/위대하다 이런 가치판단을 하는 것은 아니다.



1.     티켓파워의 급으로 밴드군이 나누어진다

 

공연들의 티켓 세일링을 보다보니 어느정도 장르/인지도에 따른 급, 선이 그어져 있다는게 나타난다. 아래의 그림을 통해 어느정도 보기 쉽게 정리해 보았다. 해당 밴드가 헤드라이닝을 하는 공연(라인업 가장 앞에 써있는 밴드)의 티켓판매량과 평균 관객 수를 표시했다. 안타깝게도 엑셀 내공이 부족해서 헤드라이닝이 아닌 경우는 평균 계산에 넣지 못했다는 것을 고백하고수익의 배분이 아주 복잡할 대형 페스티벌은 제외시켰다. 그러다보니 어떤 밴드는 실제 급을 잘 반영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 자기가 좋아하는 밴드가 저 밑에 있다고 빡치진 말자. (음악이 잘 팔리는 것과 음악이 위대한 것은 별개의 문제다!!)



-       맨 위의 신급 밴드들. 메탈리카, 푸파이터스, AC/DC는 이견의 여지가 없는 최고 밴드들이고 (푸파이터스는 메탈 아니지만 워낙 숫자가 놀라워서 넣음) 공연할 때 마다 티켓이 2백만 달러 이상씩 팔린다. 즉 티켓 수익으로 하루에 20억이 넘게 들어오는 것이고, 이것저것 다 떼도 각 멤버들이 하루에 보통사람 연봉 정도는 번다는 것. 올림픽 스타디움 규모 경기장에 2만명이 넘는 관객이 모이고, 일반 티켓도 비싸거니와 어마어마한 VIP 패키지를 팔아(백만원 넘는 티켓도…) 돈을 쓸어담는다.


-       두 번째 그룹도 굉장하다. 변치않는 클래식 메탈 밴드들 KISS, 아이언메이든, 그리고 블랙사바스. 90년대~2000년대 초반 메인스트림 메탈의 주인공이었던 린킨파크, 시스템오브어다운, 슬립낫. 그리고 독보적 팬베이스를 가진 툴.


-       세 번째 그룹은 관객이 만명을 넘기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A급 메이저 밴드들이다. 주다스프리스트, 슬레이어, 메가데스. 나인인치네일스나 드림시어터도 정말 대단한 경지에 오른 것 같다. 그리고 메인스트림 메탈로 완전히 등극한 어벤지드 세븐폴드와 파이브핑거데스펀치. 림프비즈킷과 마릴린맨슨도 $10만불 이상의 수익을 올리는데, 뉴메탈의 인기가 정말 대단했구나 하고 느낀 점은갓스맥이 아직도 이렇게 인기가 많다는 것그리고 또 하나 놀라운 것은 브링미더호라이즌이 이정도 흥행을 이끌어내는 밴드가 되었다는 것.


-       $10만 달러를 기점으로 (완전 메이저지만) 아직 인디의 느낌이 나거나 익스트림한 장르의 밴드들이 나타난다 (불렛포마이발렌타인은 예외). 램오브갓, 나이트위시, 오페스가 비슷한 정도의 티켓 파워가 있다. 커리어 상 램오브갓은 더 위로 올라가겠지. 그 다음 위치한 밴드들이 메탈코어, 북유럽메탈, 프로그레시브메탈 등 서브장르의 1인자들이다. 이를테면 그림에 넣지는 못했지만 데빈타운젠드 프로젝트밴드.


-       그 다음 그룹에선 더욱 마이너한 장르들이 나타난다. AAL, BTBAM 같은 프로그레시브 메탈, 그리고 카니발콥스나 아치에너미처럼 데스메탈로 분류되는 밴드들.


-       티켓세일 만불 이하부터는 B급의 느낌이 나는 (그러나 수퍼스타) 밴드들이 등장한다. 하이온파이어, 베일오브마야, 블랙달리아머더 같이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으나 아직 그것이 폭발적인 수익으로 돌아오지는 못하는 단계에 있달까



이 티켓파워 서열을 좀더 단순화해서 그려보면 이렇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중간 레벨은 이전 포스팅에서 말한 평범한 헤드라이닝 공연에서 (페스티벌이나 대학축제 같은거 말고) 평균적으로 $2,000 내외의 개런티를 받을 법 한 밴드 그룹으로 추정한다.


-       우선 헤비메탈이 큰 유행이었던 7,80년대 대스타가 되어 아직도 클래식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밴드는 넘사벽이다. 그 이후 세대 중 그정도의 티켓파워에 범접하는 밴드는 90년대 메인스트림 뉴메탈 수혜자들 밖에 없다. 뉴메탈이 음악적으로는 이제 추억팔이 정도밖에 안되고 누군가에게는 거의 부끄러운 기억 수준으로 밖에는 평가되고 있지 않지만 (그래도 난 뭐 신나고 좋다), 그 추억팔이가 엄청나게 장사가 잘 된다.


-       그리고 메인스트림의 주목을 받진 못하지만, 오랜 경력을 통해 서브장르 안에서 레전드가 된 밴드군이 넘사벽과 중간 레벨 사이를 형성하는 듯 하다. 미래에도 지금처럼 메탈은 매니아 음악으로 남는다는 가정 하에, 신생 밴드들이 올라갈 수 있는 최대 한계는 여기인 것으로 보인다. 떼부자가 되어 전용기를 타고다닐 수는 없어도, 억대연봉은 찍을 수 있다는 얘기.


-       만약 밴드의 장르가 서브장르 중에서도 익스트림한 쪽에 속한다면 장르의 특성상 아무리 잘해도 중간 레벨 정도 올라가면 만족해야할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아무리 미국이라도 공중파 티비에서 카니발콥스 노래를 심심치않게 들을 수 있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저번 포스팅에 의하면 소위 중간 레벨이면 생계 유지는 마약만 하지 않으면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여담으로, 얼마 전에 Inlayer라는 우리나라 프로그레시브 메탈 밴드가 무려 SM에서 Mindjack이라는 싱글을 낸 적이 있다. 보통 가게에서 트는 음악은 멜론 Top100 같은 플레이리스트나 업소용 스트리밍 패키지를 틀게 되는데, 대형 기획사에서는 이런데 원하는 팀을 집어넣어 노출시키는 마케팅이 가능하다. 이렇게 노출이 (비싸겠지만)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일반 소비자의 음악 취향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전략적인 움직임 없이는 위의 구조는 바꾸기 힘들어 보인다.



2.     지역에 따른 차이는 크게는 상식을 벗어나지 않지만, 미국 내에서는 우리가 모르는 지역색이 있다


이번엔 지역에 따른 차이를 보도록 하자. 전세계 지역을 미국, 캐나다, 남미, 영국, 유럽, 호주로 나눴다. 아쉽게도 아시아 지역은 집계가 되지 않는 것 같다. 또한 문화적으로 좀 다른 지역이기도 하고. 이 여섯 지역에서 세 군데 이상 레코드가 있는 밴드는 여섯 밴드였고, 서로 사뭇 다른 경향을 보인다. (사실 표준편차가 꽤 크고 샘플 수가 적어 그다지 유의미한 데이터는 아니니 숫자 자체는 참고로만 보자)



-       미국 (밝은 파란색티켓수입은 의외로 하위권이다그런데 이게 생각해보면 의외가 아닌데보통 미국에서는 전국 각지를 다 돈다그러므로 어떤 도시에 가면 그 근처에 사는 사람이 예상 관객인 반면에외국에 가면 보통 나라당 한 도시만 가기 때문에 그 나라 전국에서 모두 오게 된다그래서 공연이 더 크고수입도 많다그러나 항공편 등 비용도 많이 빠지므로 오히려 손해일 수도 있다.


-       캐나다는 통상 미국과 같이 북미로 묶이는데보통 미국보다는 인구밀도도 낮고 secondary market 으로 보지만드림시어터와 어벤지드세븐폴드의 경우 캐나다에서 공연이 더 흥행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       영국밴드인 블랙사바쓰는 영국과 유럽에서 더 흥행했는데워낙 지금은 메탈음악 중심지가 미국이라 출신이 영국일 뿐이지 홈그라운드가 미국이라고 봐야하는 것 같고미국이 땅이 넓다보니 미국에서 수요가 분산되는 효과가 더 큰 것 같다아이언메이든도 영국밴드인데근데 유럽영국 데이터가 없다


-       남미의 메탈 사랑은 대단하다. 남미에서 가장 많은 평균 티켓수익을 거두는 밴드가 6팀 중 3팀이다. 특히나 하드한 메탈을 좋아하는 것으로 보이며, 자세한 내역을 보면 소득 수준에 비해 티켓가격을 굉장히 비싸게 책정해도 흥행이 된다. 그림에는 표시되지 않았지만 메탈리카가 남미 투어 한번 돌면 굉장하다. 매 공연 티켓세일이 몇백만 달러(=수십억). 남미의 문화적 수요가 매우 큰 모양이다. 역시 삼바와 열정의 대륙인건가


미국 내에서 수요가 분산된다고 했는데, 지역에 따른 차이를 어느정도 알 수 있다. 지역별로 밴드 공연이 많이 열리는 공연장 다섯 곳을 선정해서 밴드의 인기도에 어떤 차이가 있나 피상적으로라도 알아보자. 아래 지도에 다섯 곳을 표시했다 (나름 위치별로 골랐다...)



먼저 텍사스 오스틴의 800명 규모 공연장 Emo’s 의 경우 남부에 잘 어울리는 모터헤드나 클러치의 인기도 많지만 개성있는 액트인 고스트나 BTBAM에 대한 서포트도 준수하다.


출연밴드

평균 티켓세일($)

Motörhead, Saxon, Crobot

46,343

Ghost, Tribulation

39,016

Clutch, Torche

38,250

Between The Buried And Me, August Burns Red, The Faceless

26,330

The Sword, Pallbearer, Boyfrndz, Mayeux And Broussard

14,560

Abbath, High On Fire, Skeletonwitch, Tribulation

13,897

Sevendust

13,714

 

동부 뉴욕시 롱아일랜드 헌팅턴에 위치한 약 1500명 규모의 The Paramount 의 경우 대형 밴드의 공연이 많이 열리는데, 드림시어터의 홈그라운드에서의 위용이 느껴지고, 대도시답게 다양한 장르에 대한 서포트가 이루어지는 듯 하다. 미네아폴리스의 100명 규모 작은 공연장에서의 단독 공연에서 50명 정도의 집객에 만족해야 했던 Battlecross도 뉴욕에서 Killswitch Engage와 함께라면 천명 넘는 관객 앞에 설 수 있다.


출연밴드

평균 티켓세일($)

Judas Priest, Mastodon

149,844.5

Slayer

90,519.5

Korn, King 810

86,853

Dream Theater

81,168

Megadeth, Fear Factory, Nonpoint

71,473

Limp Bizkit, Machine Gun Kelly, Blvck Ceiling

65,969

Primus

65,567

Volbeat, Trivium, Digital Summer

64,666

Puscifer, Luchafer

63,010

Ghost, The Shrine

52,173

Killswitch Engage, Into Another, Battlecross, My Ticket Home

39,458

Black Label Society, Wino

35,016

Mastodon, Gojira, Kvelertak

34,758

Testament, Exodus, Shattered Sun

21,190

Machine Head

18,518

Gwar, Butcher Babies, Battlecross, Moontooth

12,317

 

미국 북부 미네소타 미네아폴리스의 약 1000명 규모 공연장 Mill City Nights 의 결과를 보면 북유럽 메탈에 대한 인기가 대단하다. Opeth, Amon Amarth, Behemoth, Ensiferum, Arch Enemy 같은 밴드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머신헤드의 경우 뉴욕에서보다 더 높은 흥행을 거두고 있다.


출연밴드

평균 티켓세일($)

Opeth, In Flames, Red Fang

36,495

Manowar

35,800

Ministry, Hemlock

29,916

Amon Amarth, Enslaved, Skeletonwitch

29,875

Machine Head

24,395

Behemoth, Cannibal Corpse, Aeon, Tribulation

22,900

Symphony X, Overkill

17,685

August Burns Red, Blessthefall, Defeater, Beartooth

16,660

Kamelot, Dragonforce

16,182

HELLYEAH, Devour the Day, Like a Storm, Archer

14,703

Mayhem, Watain, Revenge

12,545

Ensiferum, Korpiklaani, Trolfest

11,562

Suicide Silence, Emmure, Within The Ruins, Fit For An Autopsy, Villain Of The Story

10,991

Arch Enemy, Huntress, Kreator

10,830

Every Time I Die, Architects, Backtrack, The Ghost Inside, Hundredth

10,630

Tremonti, Trivium

10,555

All That Remains, Motionless In White, Emergent

8,225

Epica, Moonspell, Starkill

7,819

Veil Of Maya, Upon A Burning Body, Volumes, Gideon, The Last Ten Seconds Of Life

7,562

Halestorm, Swashbuckle, The Dred Crew Of Oddwood

7,292

The Black Dahlia Murder, Goatwhore, Iron Reagan, Entheos, Artificial Brain

6,863

Fozzy, Texas Hippie Coalition, Sherman’s Harvest

5,866

Finntroll, Metsatoll, Blackguard

4,318

Morbid Angel

4,170

Monster Magnet, Royal Thunder, Zodiac

3,706

 

서부 샌프란시스코의 1400명 규모 공연장 Regency Center Grand Ballroom 의 경우 베이에어리어 쓰래쉬의 발상지답게 메탈 레전드들에 대한 서포트가 높다. 머신헤드, 테스타먼트 뿐만 아니라 마노워, 메슈가, 앳더게이츠, 카르카스 같은 밴드까지. 비교적 젊은 밴드 August Burns Red 의 경우도 미네아폴리스보다 높은 흥행을 거두었다. (물론 샌프란시스코가 훨씬 큰 도시긴 하다) 하드코어에 대한 서포트도 높고, Animals As Leaders 같은 프록메탈의 인기도 높다.


출연밴드

평균 티켓세일($)

Manowar

61,150

Meshuggah, Between The Buried And Me

48,034

Machine Head

42,513

At The Gates, Converge, Pallbearer, Vallenfyre

39,160

Testament, Exodus, Shattered Sun

38,170

Amon Amarth, Enslaved, Skeletonwitch

35,600

Carcass, The Black Dahlia Murder, Repulsion, Gorguts, Noisem

33,837

Behemoth, Goatwhore

31,183

Devin Townsend Project, Animals As Leaders, Monuments

26,550

August Burns Red, Blessthefall, Defeater, Beartooth

19,653

Neurosis, B’last!, YOB, The Body

19,563

Animals As Leaders, After The Burial, Navene-K, CHON

19,096

The Devil Wears Prada, The Ghost Inside, Volumes, Texas In July

13,324

Coal Chamber, Filter, Combichrist, American Head Charge

9,645

 

북서부 워싱턴 주 스포케인이라는 인구 20만명 정도의 도시가 있는데, 이곳의 1400명 규모 Knitting Factory 의 결과는 좀 특이한 점이 있다. GwarIn Flames가 다른 지역에 비해 힘을 못쓰고, Black Label SocietyDown 보다도 Black Veil Brides가 더 높은 흥행을 거두는 동네… Black Veil Brides가 인기 많은 아이돌 밴드긴 하지만, 확실히 이런 특이한 경향을 보이는 곳도 존재한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지역의 인구분포라거나, 분위기 등이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대전이 유독 인디음악 씬이 부진한데, 여러가지 계량하기 힘든 이유들이 있듯이.


출연밴드

평균 티켓세일($)

Black Veil Brides, Falling In Reverse, Set It Off, The Drama Club

33,657

Black Label Society, Hatebreed, Butcher Babies

29,520

In Flames, All That Remains, Wovenwar

14,008

Gwar, Corrosion Of Conformity, American Sharks

11,364

Drowning Pool, Like A Storm, A Breach Of Silence, Red Tide Rising

6,480

Down, Orange Goblin, Bl’ast!, King Parrot

6,066

 

이렇게 어느정도 지역색이 존재하고, 투어 공연을 잡을 때 프로들은 고려할 것이다. 물론 여기선 헤드라이너 위주로 논의를 했고, 게스트 밴드의 티켓파워도 무시하면 안되기 때문에(게스트 보러 가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예를 들어 헤드라이너가 주다스프리스트니까 마스토돈이 게스트가 되지 마스토돈도 어디 가면 헤드라이너 급. 그리고 심포니X와 오버킬은 공동 투어지 누가 누구의 오프닝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복잡한 요인이 있고, 수익을 극대화 하기 위해 여러가지 계량분석과 감을 이용하지 않을까 한다.



이런 저런 통계를 나열했지만, 처음에 출발했던 질문은 메탈로 먹고사는게 얼마나 어려울까? 어느정도나 유명해져야 되나?” 이런 것이었다. 그 답은,


아주 어렵다. 미국에서도 이역만리 땅 한국에서 이름이 알려질 정도가 되야 공연만 해서 생계를 위한 최저선 충족


1장에서 마치 우리가 아는 밴드가 대부분 mid-level 이상은 되는 것처럼 써놓았지만, 바로 위의 표들에서 나타나듯, 세네 밴드가 공연해서 5천달러도 못 버는 경우가 발생한다. 5천달러에서 이것저것 떼고 밴드들끼리 수익을 나누고 나면 한 밴드당 천달러도 채 못가져갈 확률이 있다. 물론 균등하게 나눌리가 없으니 헤드라이너는 mid-level의 기준인 2천달러를 채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산업이 그렇지만, 상위 극소수는 엄청난 수익을 올리나, 나머지는 먹고나 살면 다행이다. 특히 음악 같은 연예 비즈니스는 각자가 사업자니만큼 그 격차는 더 크다. 그리고 위에서 보였듯 장르에 따른 제한이 존재한다. 매니악한 서브장르의 경우 장르 자체의 인기가 변하는 외적 요인이 없다면 세계 1등을 목표로 해야 한다.


데이터를 조사, 정리하며 알게 된 것은, 메탈이나 최소한 데스코어나 메탈코어가 아닌 완전 하드코어 밴드의 경우 아예 이름도 잘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워낙 작은 공연장에서 투어가 이루어지다 보니 집계도 잘 안되는 것 같다. 어쩌면 Metal Injection 에서 메탈 밴드만 추려서 리포팅했을 수도 있고.


그래도 꽤나 성공적인 하드코어 밴드도 데이잡(본업)을 유지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것 같다. 간단하게, 음악만으로 생계 유지가 안되는 것이다.


 

다른 요일이라던지, 계절이라던지 하는 여러가지 요소가 흥행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한 앨범이 나왔는지 얼마나 되었느냐도 변수이고, 누구랑 공연을 같이 하는지도 아주 큰 변수. 이런 것을 모두 정량적으로 보이지 못한 것은 아쉽고, 할 수 있었음 좋겠다. 어쨌든, 이정도 라는 것이다. 꽤 스타덤에 오른 것으로 보여도, 넘사벽이 존재한다는 것.


음반 시장의 반 몰락으로 인해 (스트리밍으로 변화하였다고 하지만, 저작자가 벌어들이는 돈을 생각하면 몰락이라는 표현이 맞겠지) 라이브 공연이 홍보, 수익의 근간이 되었지만, 그 이상의 수입을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각종 머천다이즈 판매를 위한 브랜드화, 이런저런 VIP패키지 판매, 레이블 운영, 동영상, 어플 등 컨텐츠 제작 등등등 다양한 수익 창출. 음악 외적인 것들이지만, 단순히 음악을 듣기만 하는 시대도 아니고 모든 것이 패키지로 진열되는 시대에선 자연스러운게 아닐까 싶다.

 

 


By C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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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탈 밴드의 투어 수익




이전 포스팅 "헤비 메탈의 완만한 임종"을 통해 요즘 메탈 씬의 분위기에 대해 언급했고, Thy Art Is Murder 라는 밴드도 언급했었다. 이 모든 논의는 Thy Art Is Murder (이하 TAIM)의 보컬리스트 CJ McMahon이 탈퇴하면서 폭로(?)한 메탈 밴드 수입의 처참한 현실에서 시작되었다. 쉽게 말해 나름 꽤 잘나가는 정도가 되어도 저축은 커녕 생계를 전혀 유지할 수 없는 정도밖에 안된다는 것.


그 일이 있은 얼마 후 Metalsucks 라는 웹진에 한 메탈 밴드 매니저가 현실이 그렇게 팍팍하지는 않다며, TAIM 수준의 밴드가 투어를 돌면 돈을 얼마나 벌 수 있는지 본인 경험에 기준한 계산을 보여주어 화제가 되었다. 필자도 매우 흥미롭게 읽었던 글인데, 본 포스팅에서 그 글을 번역하여 소개한다. 단순히 돈을 얼마나 버느냐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무자 입장에서의, 투어에서 돈의 지출과 수입을 회계적 레벨에서 분석한 것이다. 본문 뿐만 아니라 그 글에 Periphery의 기타리스트 Misha Mansoor가 단 답글과 원글 작성자의 답변까지 보면서 실제 '비즈니스'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을 잡아보도록 하자.






메탈 밴드 매니저가 말하는 Thy Art is Murder가 훨씬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

 


원문: "Why Thy Art is Murder Should Be Making Much More Money, Written by a Metal Band Manager", Metalsucks (링크)


저자: Derek Brewer







2015년 크리스마스 연휴 직전, 유명 데스코어 밴드 Thy Art is Murder의 보컬이 밴드를 탈퇴하며 인터넷에 탈퇴 사유에 대한 매우 개인적인 글을 올렸다. 그 글은 SNS를 통해 일파만파 퍼졌다.

 

우리는 누군가 밴드를 탈퇴했다는 이야기를 매주 듣지만, 이 탈퇴 사유는 아주 특별했다. CJ McMahon 씨가 밴드를 하면서 돈을 벌 수 없다는 이유로 탈퇴를 한다는 폭탄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그분의 말을 인용하자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면, /우리는 6-7년간 각각 16000-18000달러를 벌었습니다.”

 

이 문장은 읽기에 따라 다른데 (물론 내가 올바로 읽은 것이길 바란다), 즉 각 멤버가 매년 3000달러 정도를 벌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풀타임 직업(52주간 매주 40시간 기준)의 시급으로 환산하면 1.44달러쯤 되고, 세계로 투어를 다니는 수백만의 팬을 거느린 꽤 성공한 밴드에 들어있어도 결국 신문배달 하는 12살짜리 아이보다도 돈을 못" 번다는 인상을 준다.

 

그 글을 읽으면서, 나는 그 12살짜리 아이가 열심히 신문 배달을 하며 벌은 돈을 한푼 두푼 모으며 마음속에 품은, 언젠가 락스타가 되고자 하는 희망이 산산조각 나는 상상을 했다. 그리고 실제로 대학이나 다른 직업의 기회를 미뤄가면서 밴드에서 열심히 실력을 닦아 이름을 알려가고 결국 커리어를 뻗어나갈 수 있는 레이블 계약을 따내고 있는 친구들에 대한 생각도 했다. 그 글을 읽고서, 나는 그저 그 친구들이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던 거지?!”라고 말하는 상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글은 특히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최소한 내 페이스북 뉴스피드에서는) “음악 산업은 죽었다!”는 음악 산업의 현실에 대한 코멘트, 그리고 스트리밍이나 불법 다운로드로 인해 아티스트들이 전혀 돈을 벌지 못한다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일부는 그 글을 근거로 팬들은 근처의 베스트 바이(미국의 전자제품 마트 체인)에 가서 CD를 사고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서포트해야한다고 선포했다. 매우 좋은 취지고 진정성이 있지만, 내가 나선 이유는 이 말을 하고 싶어서이다. 음악 산업은 변화했고 스트리밍은 우리 생활의 일부이다. 아티스트들은 이것을 명심하고 적응해야 한다. 특히 메탈 장르에서는. 중간레벨 메탈 밴드의 고정수입은 대부분 투어와 머천다이즈 판매에서 올 것이다. 망치 땅땅땅. 메탈 밴드가 아델이나 저스틴비버가 될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지금 독자 분들은 내가 어떤 놈이길래 이런 얘기를 늘어놓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충분히 그럴 만하다. 나는 근 10년간 메탈/락 음악 분야에서 주로 일해왔고 지금 데스 메탈에서 얼터너티브에 이르는 고객들을 매니징하고 있다. 내가 매니저를 맡고 있는 밴드들은 팝음악 잡지의 표지를 장식하고 페스티벌을 헤드라이닝하는 밴드에서부터 레이블과 최근에 계약하여 이제 첫 투어를 돌기 시작한 밴드까지 다양하다. 역시 그 사이 중간에 위치하는 밴드도 있지만, 모두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고 자기 장르의 최고가 될 자질이 있다. 나는 메탈과 락 분야의 투어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현업에서 직접 뛰며 얻은 확고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나는 모든 종류의 투어 예산안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몇몇은 잘 안될 수도 있지만 확신하건대 Thy Art is Murder 정도의 규모와 인지도(앨범, 머천다이즈, 티켓 판매량을 봤을 때)를 가지고 있는 밴드면 당연히 음악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최소한 McMahon 씨가 이야기하는 3000달러보다는 확실히 많이 벌 수 있다. 평범한 투어 예산을 기준으로 어떻게 이게 가능한지 보여드리도록 하겠다.

 

시작하기 전 나는 Thy Art is Murder와 일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해두고 싶다. 그들이 얼마를 받았는지 모르고, 무슨 머천다이즈를 팔았는지 그들이 돈을 얼마나 썼는지 알지 못한다. 사실 전혀 모른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들을 비꼬는 의도가 전혀 아니다. 난 사실 그들이 지금 상태까지 이름을 드높인 것에 대해 칭찬하고 싶다. (그리고 그들은 아직 정점에 이르지도 않았다) 또한 그들의 전 보컬리스트에게 리스펙트를 표하고 싶은데, 내가 느끼기에 매우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내용까지 솔직히 공개했기 때문이다. 그 분은 누구한테도 그럴 필요가 없었다. 만약 풀타임 투어를 돌지 않음으로써 그와 그의 가족이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그분께 기를 보내드리고 싶고 앞날의 모든 일에 행운이 따르길 바란다.

 

아래는 투어 예산의 기본적인 구성이다. 이것은 2015년 내가 직접 총괄해서 작성한 실제 투어 예산이다. 이것이 실제를 잘 반영한다고 생각하지만, 여러분이 읽기 전 몇 가지 사항을 덧붙이고 싶다.

 

-       몇몇 숫자는 기간에 따라 시세가 변할 수 있음 (숙박비, 기름값 등)

-       이 숫자들은 중간 크기 클럽에서 약 500장 정도의 티켓을 파는 메탈 밴드가 통상적으로 받는 개런티에 기초함. 또한 공연장의 머천다이즈 판매량도 적게 보수적으로 잡았으며, 크루들의 인건비도 보수적으로 잡음.

-       이 예산에서 차량은 15인승 밴과 트레일러를 렌트한 것임. 또한 매일 밤 저렴한 호텔의 숙박료를 추가함. 왜냐하면 내 고객들이 매일 밤을 밴 바닥에서 보내길 바라지 않기 때문임. (그들이 원한다면 전적으로 그들의 선택)

-       이것은 32일간의 투어임. 30일 공연을 하고 첫날과 마지막 날은 이동시간.

 

시작합니다

 

투어 수입

매 공연 당 개런티 수입 2000달러 (30) = 60000달러

매 공연 당 머천다이즈 판매 750달러 (30) = 22500달러

 

총 매출 = 82500달러

 

투어 지출

머천다이즈/수수료:

예상 머천다이즈 지출 (제작비, 공연장 수수료, 배송비) = -9000달러

개런티에 대한 매니저 수수료 (전체 중 15%) = -9000달러

개런티에 대한 에이전트 수수료 (전체 중 10%) = -6000달러

총 머천다이즈 판매액에 대한 매니저 수수료 = -2025달러

전체 수수료: 26025달러

 

크루 인건비: (주급으로 4주 계산)

투어매니저/하우스엔지니어 주급 1000달러 = -4000달러

머천다이즈 판매원 주급 650달러 = -2600달러

운전수 주급 600달러 = -2400달러

무대 테크니션 주급 450달러 = -1800달러

총 크루 인건비: 10800달러

 

차량 및 이동 비용:

밴과 트레일러 32일간 렌트 예상 비용: -5200달러

미국 전국투어를 위한 12660마일 예상 기름값 (갤런당 2.5달러/연비 갤런당 10마일): -3150달러

예상 톨비/주차비: -500달러

호텔 숙박비 (25X 1박에 100달러 [더블베드, 접이식 침대, 밴드가 에어 매트리스 가져옴]) = -2500달러

총 차량/이동 비용 = 11350달러

 

프로덕션 비용:

소형 조명 장비/포그머신/스트로브 렌탈: -2000달러

기타 비용 (장비, 택시, 우버, 그 외) = -1500달러

총 프로덕션 비용 = 3500달러

 

밴드/크루 일비(기타 생활비):

멤버 5, 크루 4명에 대한 일비, 한사람당 10달러, 32일간 = -2880달러

총 일비: 2880달러

 

총 지출 예상: 54555달러

 

총 매출 = 82500달러

빼기 지출 -54555달러

 

순수익 = 27945달러

 

다섯 명의 밴드 멤버가 나눠 갖는 수익: 한달 간 5589달러

 

, 이것은 할리우드의 꿈에 그리던 집을 살 수 있을 만큼은 안되더라도, 나쁘지 않은 “9-5” 직장하고는 꽤 비등비등하다. 게다가 세상을 여행하고, 팬들을 만날 수 있고, 매일 45분 동안 본인이 만든 음악을 연주할 수 있고, “락스타가 됨으로써 얻게 되는 깊은 사회적 요소까지. 대부분의 밴드는 새 앨범을 내고 6-9개월 정도 투어를 돌기 때문에비즈니스가 있다면 일년에 얼마나 벌 수 있을지 여러분께서 직접 계산을 해보실 수 있다. 심지어 이것은 온라인으로 판매되는 머천다이즈, 선금(pub advances), 로열티, 라이선스(sync licenses) 등은 포함되지도 않은 금액이다. 그러므로 중간 정도 성공한 밴드의 모든 종류의 기대 수익을 고려하면희망이 없는 것이 아니다(전혀).

 

앞으로 전문가분들이 나타나셔서 근데 이 비용을 넣지 않았고 저 비용도 까먹었네하면서 댓글을 달 것이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다. 항공료가 발생할 수도 있고, 비자 발급 비용, 차가 고장날 수도 있고, 공연이 취소되거나, 병원비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추가적인 수입 역시 넣지 않았는데, VIP 티켓을 판다거나, 머천다이즈가 평균 이상으로 팔리거나, 매진 공연 보너스, 또는 심지어 레이블의 투어 지원금을 미리 받아 그 지출을 상쇄시킬 수도 있다.

 

투어는 매번 다르다. 밴드 멤버가 네 명일 수도 있고, 운전수나 테크니션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고, 아니면 본인이 밴이나 RV소유하고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전국 각지에 친구가 많아서 그들의 집에서 신세를 지고 숙박비를 아낄 수도 있다. 위에 적은 사항은 그저 매 공연 2000달러의 개런티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티켓을 팔 수 있는 정도의 밴드에 대한 표준적인 예산일 뿐이다. 이건 말해두겠다. 그 레벨에 도달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하룻밤에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수익이 나는 성공적인 밴드가 되기 위해서는 성실성, 인내심, 그리고 헌신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업을 시작한다면, 무슨 종류던 간에, 처음의 가난한 시간을 버틸 수 있도록 투자자를 찾아야 하고, 그 투자자는 높은 확률로 여러분일 것이다. 당신의 밴드는 당신에 대한 투자고 당신의 예술이다. 매 공연 100달러를 받는 신인 밴드는 99.9% 확률로 투어에서 손해를 볼 것이다. 신인 밴드는 아마도 처음 5-6번 정도의 투어에서는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 손해를 볼 것이다. 여러분이 이것에 전업으로 뛰어들기로 했다면, 투어에서 보는 손해를 메꾸기 위한 철저한 준비를 하길 권한다. 레이블이 있다거나, 아니면 부모님에게라도 부탁해서 초반에 그 손해를 메꿔줄 투자를 받을 수 있다면 축하한다전혀 부끄러울 것 없다. 하지만 당신의 밴드가 알려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투어를 해야 하고 그게 현실이다. 그러기 위한 돈은 어디선가 나와야 한다.

 

매니지먼트와 에이전트 수수료가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역시 눈치 챘을 것이다. 그렇다. 괜찮은 매니저의 경우 15-20%의 수수료를 떼는 것은 통상적이다. 매니저에게 절대 사전에 선금을 내지 마라. 여러분이 돈을 벌어야 우리도 돈을 버는 시스템이다. 에이전트는 보통 공연 수입의 10%를 가져간다그들은 아티스트의 커리어와 발전에 아주 큰 역할을 한다. 여러분이 완전히 DIY로 가서 모든 것을 컨트롤하고 동시에 좋은 음악을 만들면서 투어까지 돌 수 있을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이것이 여러분의 밴드가 제대로 무언가를 하고 다음 레벨로 진화할 수 있는 길이다. 우리는 이 모든 비즈니스에서 24/7 여러분의 파트너로서 여러분이 항상 최선의 선택을 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이고, 나쁜 범법 행위로부터 여러분을 보호하고, 궁극적으로 여러분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이다그래서 여러분이 돈을 벌 수 있도록.

 

이런 측면에서, 가장 큰 거물급 밴드라도 팬들에게 최고의 공연을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그러다 보니 그들의 수익에서 추가적인 지출로 빠져나가는 부분이 많다. 이 주제로는 책을 쓸 수 있을 정도인데(아마도 이미 책이 있을 거다), 그래도 생각나는 몇 가지 포인트를 적어본다.

 

1.     여러분의 밴드의 현재 위치에 맞는 최소한의 크루를 유지하고 꼭 필요하지 않거나 너무 비싼 크루는 고용하지 마라. 여러분이 7년전에 메탈리카하고 일했던 주급 3000달러짜리 사운드 엔지니어를 고용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딘가에 분명히 주급 750달러의 더 알맞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2.     여러분의 매니저(또는 당신)가 모든 서류 작업을 미리 늦지 않게 처리하도록 해라(비자, 취업허가, 영수증, 비행기표 등). 제대로 처리되지 못한 서류만큼 돈을 까먹는 것은 없다.

3.     너무 비싼 차를 렌트하지 마라. 관객이 200명 정도라면 버스를 타고 다닐 필요가 없다. 밴을 타야지사실 이게 1번이다. 공연당 개런티를 최소 3500달러는 받아야 버스를 고려해볼 수 있다.

4.     프로덕션에 돈을 너무 많이 쓰지 마라. 이건 좀 힘든 문제다. 여러분이 무대에서 멋지게 보이고 싶고 유료 관객들에게 잊지 못할 공연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공감하지만, Jamey Jasta(Hatebreed 보컬)의 팟캐스트에서 나온 말을 인용하자면, “여러분의 팬들은 라이트 쇼를 흥얼거리면서 집에 가지는 않는다.” 특히나 500명 정도 규모의 공연장이었다면 말이다. 본질에 충실해라. 이를테면 사운드 엔지니어만큼은 충분한 사람으로 기용해라. 본질은 사운드다.

5.     투어 중 돈의 수입과 지출을 모두 기록해라. 매일.

6.     팬들이 조른다고, 또는 누가 매력적이라고 해서 머천다이즈를 공짜로 주지 마라. 인스타그램 친구들한테 밴드를 홍보해주겠다고 하는 친구한테도 주지 마라. 그 친구가 마일리 사이러스나 킴 카다시안쯤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7.     마약 많이 사지 마라.

 

나는 내가 매니징하는 밴드 중 투어에서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수익을 내는 (또는 적자를 보는) 밴드가 있다고 인정하는 최초의 매니저일 것이다. 심지어 사전에 상당한 재정 지원을 받았는데도 말이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이 바닥에서는 흔한 일이다. 이 바닥은 항상 이런 말을 하게 하는 비즈니스다. “,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도 있군.” Thy Art Is Murder가 이런 경우였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하지만, 그들이 겪었을 모든 팩터에 대해서 내가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건 예외적인 것이고 여러분이 계획을 짤 때 원칙적으로 고려할 사항이 아니라는 것은 말할 수 있다.

 

이 글이 여러분에게 새 밴드(또는 이 정도의 투어를 돌 수 있는 레벨의 밴드라거나)를 시작하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의 아이디어와 긍정적 인사이트를 줄 수 있다면 좋겠다. 이 글을 쓴 주된 목적은, 기술 발전이 소비자의 습관을 완전히 바꿔버림에 따라 음악 산업이 재정적인 어려움에 처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새로운 음악을 만들고, 공연을 통해 세계의 팬들을 즐겁게 해줘야 할 밴드는 언제나 필요할 것이고, 벌 돈도 계속 있을 것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아직 밴드 머천다이즈를 스트리밍으로 듣는 방법은 개발되지 않았다.






이 글에 Misha Mansoor 가 제기한 의문과 Derek의 답변도 번역하여 올린다.



Misha Mansoor:

매우 좋은 통찰력이다.

몇 가지 추가되어야 할 점이 있는 것 같다: 미국 밴드의 경우, 밴드가 LLC(유한책임회사)로 등록되어 있고 자영업자 소득세를 낸다면, 여기 나온 5600달러 중 30-40% 정도는 바로 세금으로 떼이므로, 그것은 상당히 과장된 수치이다. 그 돈을 따로 떼어놓을 필요는 없지만, 있지도 않은 돈을 쓰면 안되기 때문에 그런 돈은 보류해놓는 것이 좋다. 만약 비즈니스 매니저를 고용했다면(매니저 고용은 특히 저 정도 레벨이라면 매우 추천하는 사항), 추가로 투어 총 수익의 5%를 수수료로 내야 한다. 덧붙여 4-6인 밴드에 크루 2-4명이라면, 밴 한대에 모두 탈 수 있을지도 모르겠거니와, 호텔 방을 최소한 2개는 잡아야 하고, 특히 2인실 하나에 8명이 투숙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호텔이면 3개는 잡아야 한다. 그러므로 숙박비는 두 배로 늘려야 한다. 또 하나 마지막 포인트. 인당 일비 10달러는 신인 밴드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저 정도 레벨의 밴드라면 20-30달러는 잡아야 한다. (특히 왜냐하면 밴드가 LLC 또는 S-Corp(미국에 존재하는 특수한 소기업 형태)라면 이걸로 세금을 꽤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추가: 항공료가 미칠 듯이 비싸다는 점도 추가해야겠다. 한 사람당 미국에서 유럽으로 가는데 1200달러 정도는 잡아야 하고 호주라면 2000달러는 잡아야 할 뿐만 아니라, 초과 중량/사이즈/개수 수화물 비용이 편도 1000-2000달러는 든다. 이 비용은(상황에 따라 10000-20000달러의 추가비용) 투어 수익을 완전히 아작내는 부분이다. 대부분의 밴드가 일년에 한 시장에서 헤드라이닝 투어를 한 번(운 좋으면 두 번) 밖에 돌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미 포화된 시장을 피해 다른 시장으로 갈 수 밖에 없다.


 

Derek Brewer:

감사하다.

유효한 점들을 댓글로 달아주셨고 기쁘게 답변해 드리겠다. 본격적으로 답하기 전에 원 글의 주된 베이스를 명확히 얘기하고 싶은데, 왜냐하면 글을 써놓고 보니 그것이 좀 희석된 것 같아서다. 처음에 이 글은 TAIM의 보컬리스트가 탈퇴하면서 쓴 글이 키드들에게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고, 그들이 락/메탈 장르의 투어링 뮤지션이 되겠다는 꿈을 계속 쫓게 되면 여생을 가난하게 보낼 운명에 처한다는 전제에 실망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나의 응답으로서 작성되었다. 기본적으로 밴드로서 어느 정도 성공에 이르렀고 비즈니스를 제대로 했다면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호주의 밴드와 미국의 밴드의 수입을 비교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이 바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실용적인 지식을 제공하려는 것이었다. 나는 모든 예산은 밴드의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변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다. 또한 투어 수익에 긍정적 또는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몇몇 변수를 제외했다고도 밝혔다. 이것은 기본적 예산으로 공연당 개런티를 2000달러 받고 머천다이즈 수입이 750달러인 밴드가 미국에서 30일간 투어를 돌 경우의 가장 평범한 지출을 적은 것이다. 헤드라이닝이건 서포팅이건 상관이 없다.

이제 답변을 드리겠다.

 

1.     비즈니스 매니저: 예산의 정말 현실적인 변수다. 밴드가 비즈니스 매니저를 고용할 수 있고 (나 역시 매우 권장함) 그러면 5% 수수료를 내게 된다. 누군가는 고용하고 누군가는 고용하지 않는다. 경험상 말하건대 비즈니스 매니저를 고용하면 예산 관리, 재정 계획 전략 등의 부분에서 최소한 5% 이상 수익을 높여줄 수 있다. 투어에서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게 돈을 아껴준다는 말이다. 그래서 모든 밴드가 비즈니스 매니저를 고용하지는 않으므로 제외시켰다.

2.     세금: 그렇다 세금은 중요한 팩터다. 하지만 세금이 부과되기 전, 얼마를 낼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너무나 많은 변수가 있고 이것만 따로 책이나 글을 써야 한다그리고 당신이나 나보다 더 검증된 사람(회계사나 비즈니스 매니저)이 다루어야 한다. 그러나 누군가 당신의 수입이 얼마냐고 물어본다면 보통 “6만달러라고 말하지 세후 43천달러라고 말하지 않지 않냐고 묻고 싶다. 당신은 그럴 지도 모르지만또 얘기하지만그 금액은 정말 변동성이 크다. 또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게 LLC 세금은 투어 수익 외의 다른 수입에 대해서도 부과되기 때문에(로열티, 선금 등), 또 이야기하지만 개인의 상황에 크게 좌우되는 사항이다. 그래서, 하나의 투어 예산에 정확히 적용하기 어려우므로 제외시켰다.

3.     크루//호텔: 그렇다 밴은 꽉 찰것이고 그렇다 매일 밤 거기서 잘 수도 없다(그러고 싶겠는가?). 내가 적은 숙박비를 다르게 읽으면 한 달에 2500달러인 것이다. 1박에 49달러짜리 호텔이 있는가 하면 뉴욕, LA, 샌프란시스코에 쓰레기 방을 300달러씩 받는 곳도 있다. 그러므로 모두 예상치인 것이며, 충분한 능력이 있는 밴드 멤버 또는 투어매니저가 싸고 좋은 방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이 1500달러를 추가해서 한달에 4000달러로 한다면, 한달 후 멤버당 손에 쥐는 돈이 몇백 달러 줄어드는 것이다 (다른 부분에서 메꾸지 않는다면). 더 좋은 차를 원한다면 지불을 하고 최소 소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건 전적으로 밴드의 결정이고 어느 정도의 편안함을 원하느냐의 문제이다.

4.     일비: 하루에 20-30달러이보세요ㅋㅋㅋ

5.     항공료: 항공료. 모두가 항공료와 비자 얘기를 하고 일년에 두 번 밖에 헤드라이닝 못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해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미국의 밴드가, 밴을 타고, 매일 어느 정도의 개런티를 받는 기준이다. 해외 투어 항공료가 얼마나 드는지 알고 있고(당신도 알고) 만약 투어가 앨범 판매와 아티스트 홍보에 충분히 도움이 된다면 레이블에서 지원금으로 충당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만약 레이블에서 이 투어가 그런 경우가 아니라고 판단한다면 자비로 항공료를 낼지 안낼지는 당신이 결정하는 것이다. 돈을 적게 벌 것을 알고 그냥 가는 것이다. 만약 레이블이 없는 밴드라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외국 투어를 갈 필요가 없다. 적금을 깨고 싶은 게 아니면 말이다.

6.     일년에 헤드라이닝을 두 번 밖에 못함: 이것은 딱히 헤드라이너 기준으로 쓴 것이 아니지만, 어느 부분이 그렇게 읽힐 수 있는지는 알겠다. 서포팅으로 투어를 돌면서 저 정도 돈을 버는 밴드는 아주 많다. 이 예산은 그런 경우에도 적용된다. 최소한 밴드가 신보를 내고 나서 일년 동안 최대 9-10개월까지 투어를 돌 수 있다는 점에는 동의할 거라 믿는다.

 

답변에 감사하고 모든 일이 잘 되길 바란다!






아주 구체적인 분석이다. 사실 공연 당 500명을 동원하는 밴드는 생각보다 꽤 높은 레벨이다. 특히나 필자가 좋아하는 메탈코어, 데스코어, 프로그레시브 등의 메탈 장르에서는, 또는 하드코어 장르에서 매 공연에서 500명을 동원하려면 꽤나 이름값이 있어야 한다. 밴드에도 빈부격차가 엄청나게 심하다. (같은 메탈인데도!) 우리가 흔히 아는 메이저 뉴스쿨 메탈러들 (Lamb of God, Asking Alexandria, 심지어 Bullet for My Valentine) 이들은 대략 2000명 정도 관객이 든다. 500명 그러면 대충 Upon A Burning Body 같은 신진 밴드 또는 Nile 같은 매니악하지만 장르 탑급 밴드(?) 사실 감이 잘 안잡힌다. 어쩌면 페이스북 좋아요 수와 비례할 수도 있겠으나 다음 포스팅에서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겠다.


어찌되었든, 요지는 상당한 레벨의 밴드가 되면 한달 전미 투어 기준 600만원 정도를 벌 수 있다. 하지만 엄청나게 절약하고 또 절약했을 때. 그리고 외국 밴드라서 비행기를 타야 하면 거기서 항공료/비자발급비용 등이 발생하므로 글쎄. 한 200-300만원?


이것이 TAIM의 보컬리스트가 탈퇴한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호주에서 투어를 돌아봐야 대도시도 몇개 안되기 때문에, 미국, 유럽으로 투어를 가야 했을 것이다. 일년에 8개월을 투어를 돌아도 1600-2400만원. 본인이 밝힌 수입과 대충 일치한다. 그리고 최근에나 그렇게 벌었지 초창기에는 마이너스였을 것이기 때문에 평균을 내면 천만원은 커녕 연봉 500만원 근처 아니었을까.


물론 이것은 투어 수익만 계산한 것이고, 음반 판매 수익이나 온라인 머천다이즈 판매는 고려되지 않은 것이다. 어쩌면 음반 판매 수익이 꽤 되었을 수도 있다. 최근작 Holy War 는 첫주에 7500장을 팔았다(ref). 앨범 한장 당 밴드 배분 5달러, 개인당 1달러로 대충 계산하면, 한 800만원 번 것이다. 물론 스튜디오 등 제작 비용과 개인의 투입한 시간/노력을 고려하면...







결론은 녹록치 않다는 것이다. 메탈/하드코어 씬이 가장 활발한 미국에서마저도! 작은 시장에서 1등을 해봐야 남는게 없다는, 즉 규모의 경제가 지극히 적용되는 부분. 이런 현실에서 밴드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1. 프리미엄 붙이기 2. 메탈 팬이 많아지길 기다리기 3. 돈 버는거 포기하고 취미로 하기 4. 때려치기 이정도 인걸까?


어떤 결론을 내고 싶지만 결론을 내버리기는 무리가 따르는 주제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다양한 밴드(인디에서부터 아레나급 밴드까지)의 공연 수익/관객 현황 데이터를 모아보며 현실을 좀 더 관찰해볼 예정이다.





By C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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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비메탈의 완만한 임종




최근 매우 떠오르고 있던 호주의 데스코어 밴드 Thy Art Is Murder 의 보컬리스트 CJ McMahon(위 사진의 가운데)이 생계를 이유로 탈퇴했던 일이 있었다. 생계 또는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기 위한 밴드 탈퇴는 결코 드문 일이 아니었지만, 이 사건은 당사자가 SNS에 탈퇴의 변을 올리면서 그동안 벌었던 돈의 액수를 밝히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팬들에게) 충격을 주었는데, "I/we have earned between $16k-$18k each over 6-7 years" 이 문장 때문이었다.[ref]


6,7년 동안 매년 2000만원 정도를 벌었다는건지 도합 2000만원 정도를 벌었다는건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언론에서도 궁금해 했지만 당사자가 코멘트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어쨌든 간에 직업으로서 본인과 가족들의 생계를 유지하기엔 부족한 것이 틀림이 없다. 이 밴드가 페이스북 좋아요 수가 50만에 달하는 매우 핫하고 글로벌 급으로 올라가는 중인 밴드라는 것을 감안할 때, 이 수치는 다소(?)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상당히 야심찬 최근작도 냈고 미국과 유럽 투어도 했지만, 저조한 티켓 세일로 재정적, 멘탈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는 말이 있다. 인터뷰를 들어보니 보컬리스트가 상당히 지적이고 앞으로 좋은 테마의 음악을 들려주지 싶었는데 안타까운 일이다.



밴드, 그것도 아주 마이너한 익스트림 장르를 해서 먹고 사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는 새삼스레 말할 필요도 없다.(팝을 해도 일단 밴드면 먹고살기 힘들다) 애초에 1원이라도 교통비 등의 경비를 제하고 난 수익을 낼 수 있다면 인디 레벨에서 싱딩히 괜찮은 것이다. 예전에 어떤 다큐멘터리에서 심포닉 블랙메탈 탑클래스 밴드 딤무 보거의 보컬리스트의 월수입이 대략 150만원 정도 된다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이제 메탈 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는 데빈 타운젠드 역시 현재 연봉이 세전 7천만원 쯤 된다고 인터뷰에서 말한 바 있다.[ref] 기타/보컬/작곡/프로듀싱을 다 셀프로 하는것을 고려하면 더욱 적다.




데빈 타운젠드는 로얄 알버트 홀도 꽉채우시는 분.



필자는 밴드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비즈니스는 논할 레벨에 가지도 못했을 뿐더러 별로 관여하지도 않아 잘 모른다. 하지만 관심만 많다. 그래서 당분간 BSL을 통해 관련 흥미로운 기사들을 몇 개 번역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메탈/하드코어 씬의 현재 상태를 알아보고, 밴드들이 먹고살고 저축도 좀 할 수 있을 정도로 벌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지 알아볼 수도 있다면 베스트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 기사는 미국의 언론 Observer에 게재된 "The Slow Death of Heavy Metal (헤비메탈의 완만한 임종)" 이라는 제목의 기사이다. 언더그라운드 씬까지 깊이 들어가는 분석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메이저 아티스트들과의 인터뷰에 기반한 소위 '음악 산업'에 대한 기사이지만, 전체적인 씬의 위치와 분위기에 대해서 느낄 수 있다. 낙수효과라는 말이 있듯이, 메이저가 잘 되어야 언더까지 돈이 흘러갈 여지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연관이 있다.





http://observer.com/2016/01/the-slow-death-of-heavy-metal/


헤비메탈의 완만한 임종


브라이언 리즈먼 (Bryan Reesman)



주다스 프리스트의 보컬리스트 랍 핼포드(Rob Halford) 옹. 전설 그 자체.



클래식 헤비메탈에 있어 요즘은 참 이상한 나날들이다.


주다스 프리스트와 블랙 사바스 등 헤비메탈의 아버지들은 이제 60대 아니면 70대를 바라보고 있다. 로니 제임스 디오, A. J. 페로(트위스티드 시스터), 제프 하네만(슬레이어), 레미 킬미스터, 그리고 필 테일러(모터헤드)를 비롯한 하드락과 메탈의 스타들이 최근 떠나갔다. 몇몇 밴드의 콘서트 티켓은 아직 잘 팔리고 있지만, 나머지는 점점 나빠지고 있다. 오즈페스트가 없어진지 오래고, 지난 여름 메이헴 페스트에 종지부가 찍혔다. 음반 판매량은 전체적으로 감소해왔고, 지난 10년 동안 빌보드 차트, 라디오 방송, 음악 시상식은 매가리 없는 팝이나 힙스터 락이 점령해왔다.


“사람들이 음악을 듣는 방식이 달라졌어요. 자리에 앉아서 레코드를 틀고 30분 동안 지긋이 들을 만큼 한가로운 사람은 없어요…누가 차세대 거물 메탈 밴드가 될 것이냐, 저는 모르겠습니다.” – 랍 핼포드


덧붙이자면, 올드스쿨 스타일 메탈 밴드 마스토돈의 기타리스트 브렌트 하인즈는 작년 초 기타 플레이어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헤비메탈을 연주하기 싫어한다고 말했고, 키스의 베이시스트 진 시몬스는 2년 전 “락은 죽었다”고 선언했다.


아직도 신진 밴드들에게 영감을 주며 유럽 페스티벌을 장악하고 있는 헤비메탈의 아버지 격 밴드들이 곧 몇 년 안에 은퇴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젠 어떻게 될 것인가? 앞으로 메탈리카나 아이언 메이든 급의 슈퍼스타 헤비메탈 밴드를 볼 수 있을까? 클래식 헤비메탈은 옛 노래로 밀려나 향수나 불러일으키는 유물이 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것으로 변이할 것인가?


메탈에서 격변이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메탈은 혼돈과 메인스트림의 무시 속에서 번성한다. “모든 장르는 사이클이 있습니다. 메탈과 하드락은 다양한 시기를 거쳐왔고, 제 생각에 우리는 그 시기들을 다시 거치게 될 겁니다.” 파이프 핑거 데쓰 펀치의 기타리스트 졸탄 바쏘리 씨는 옵저버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80년대에는 하드락과 헤비메탈이 조명을 받고 있었고 아마도 당시 가장 중요한 장르였을 거예요. 헤비메탈은 반란의 목소리였고, 체제에 대항하는 젊은 세대를 대변하고 있었죠. 결국 그 열정적인 무브먼트에 동참하는 사람이 많아졌고 그들만의 소규모 경제가 생겼어요. 어느 날 갑자기 장발에 문신을 한 사람들이 엄청나게 유명해지고 수백만 장의 음반을 팔았죠.”


“이 바닥에서만 보면 저희는 가장 큰 익스트림 메탈 밴드 중 하나지만, 활동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져 가고 있어요. 기자님도 차이를 느끼실 텐데요…예전 같지가 않아요.” – 대니 필쓰


메탈이 메인스트림이었던 80년대, 글램메탈 밴드들이 보다 팝적인 사운드로 이미지를 넓혀가기 시작하면서 헤비메탈은 엣지를 잃기 시작했다. 그리고 쓰래쉬메탈 밴드들이 냉전의 공포에 대항하고 있었지만, 90년대 초 냉전이 종식되었고 너바나로 대표되는 그런지 락은 쓰래쉬메탈을 언더그라운드로 밀어내고 말았다. 그리고 힙합이 메탈의 전유물이었던 반란을 빼앗아갔고,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지금 욕을 먹고 있는 하이브리드 뉴메탈 무브먼트를 촉발시켰다. 그때 이후로, 그저 그런 정도의 블랙, 포크, 심포닉메탈이 잠시 흥했고, (많은 팬들을 양극화시킨)메탈코어가 떴고, 클래식 밴드들이 그들의 유산을 되찾으려 돌아왔다. 하지만 최근 차트 상위권을 기록하는 새로운 밴드들이 많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메탈을 향한 조명은 약해졌다.


지난 여름 스웨덴의 노바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기타 아이콘 슬래쉬는 이렇게 말했다. “헤비메탈 밴드들조차 탑40에 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제 이건 그렇게 크지 않은 거예요. 60, 70, 80년대 제가 느끼기엔 헤비메탈은 익사이팅한 것이었고 반란과 그런 느낌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이제 하던 대로만 합니다. 이 바닥의 정신과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죠.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결국 앞으로 나아질 겁니다.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는 거죠.”


그렇지만 차트에서 성공을 노리는 모든 헤비한 밴드들에 비해서, 장르의 그림자 속에 훨씬 비상업적이고 강력한 음악을 하는 밴드들이 존재한다.


“오늘날 락은 아주 깊이 언더그라운드로 들어가서, 다시 믿을만해지고 있어요.” 바쏘리 씨는 덧붙인다. “임계질량이 있어요. 경제적 정치적 분위기들이 다시 분노할만한 수만 가지 이유를 주고 있죠.” 그는 헌법 위반, 미디어 조작, “정치적 올바름의 압제”, 인터넷 악플러 등을 거론한다. “그 와중에 우리는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고 있어요, 3차 세계대전이 될 수도 있고, 지구 환경의 붕괴가 될 수도 있죠. 그러니 이제 누군가 나와서 다 조까라고 할 때가 된 거죠. 그리고 헤비메탈이 새로운 반란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르가 될 수도 있는 거죠.” (이런 관점에서, 요즘은 날선 정치적 견해와 반항적인 리프를 들려주던 시스템 오브 어 다운의 컴백이 아주 적절한 시기다.)


메탈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메탈은 아마도 서브장르가 가장 풍부한 장르일 것이고, 페리퍼리, 바로니스, 고스트를 비롯한 수많은 중간 레벨 밴드들과 최근 융성하고 있는 젠트 서브장르의 테크니컬한 밴드들은 평단의 좋은 평가를 이끌어내면서 괜찮은 앨범 판매량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골드나 플래티넘 앨범을 내고 있는 현세대의 대형 밴드들, 이를테면 갓스맥, 디스터브드(최근작으로써 다섯번째 1위 앨범을 기록), 어벤지드 세븐폴드, 램 오브 갓, 그리고 팝적인 페리퍼리라고 할 수 있는 린킨파크 같은 팀들은 현재에 안주하고 있다. 아무도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게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가짐이 진지한 혁신과는 멀어졌다는 것인데, 부분적으로는 점점 더 기업화되어가는 음악 산업의 결과물일 것이다.


인디 씬에서는 항상 다이나믹하고 새로운 인재들이 나타나지만, 대형 스케일의 음악 영웅은(특히 기타연주의 다양성 측면에서) 이제 많지 않다. (드림 시어터 같은 그룹은 특이한 케이스)


바쏘리 씨는 앨범에서 실험을 너무 많이 하다간 골수 팬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도 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그들의 최근작 더블앨범 The Wrong Side of Heaven and the Righteous Side of Hell에 실린 색다른 트랙들은 반응이 좋았고, 그래서 “앞으로 과감한 변화라고 할만한 무언가를 해보려”한다고 한다. “어떤 밴드라도 커리어의 어느 순간 [변화를] 할 수 있을 때가 찾아오고 반대로 그럴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2집에서 과감한 변신을 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이제 저희는 7집 앨범이기 때문에, 뭔가 예상치 못한 것을 해볼 수가 있는 거죠.”


“오늘날 락은 아주 깊이 언더그라운드로 들어가서, 다시 믿을만 해지고 있어요.”


주다스 프리스트의 기타리스트 리치 폴크너 씨는 1세대 메탈 밴드들은 후배 밴드들이 열망할만한 오리지널리티가 있었다고 힘주어 말한다.


“많은 밴드들이 과거 식대로, 예전에 있었던 것들을 재현하려 하고 있어요.” 그는 말한다. “모든 선구자들, 시쳇말로 트렌드세터들은, 새로운 판을 열었어요. 뭔가 다른걸 시도하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싶다면, 무슨 음악을 하고 있던 간에, 무슨 밴드던 장르건 상관없이 그런 다이나믹함이 있어야 돼요. 반드시요. 그렇지 못하면 결국 큰 원을 돌다가 멈추게 되죠. 하지만 전 음악이 항상 진화하고 유기적으로 성장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다가 새로운 게 파생되죠. 언더그라운드에 우리도 모르는 음악이 있고 그것이 새로운 타입의 메탈을 창조하고 있을 수도 있죠. 누군가는 새로운걸 해야 하고, 팬들과 대중이 그것에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일이 다시 벌어질 거라 생각합니다.”


젊은 메탈 밴드들이 살아남기 위한 핵심은 간단하다. 돈이다. 레코드 레이블은 발전했고 예산과 투어 지원금은 줄어들었다. 메이저 레이블은 더 많은 이익 분배를 원하고, 스트리밍 서비스는 아직 인디 아티스트들에게는 큰 도움이 안 된다. 게임의 룰이 바뀌어 넥스트 빅 띵(Next Big Thing)이 생겨나기 더 어려워졌다.


“요즘 그 많은 360 딜(역자 주: 레이블이 마케팅, 프로모션 등 전방위로 재정적 지원을 해주는 대신 수익의 많은 부분을 가져가는 레코드 계약) 속에서, 그런 밴드가 어떻게 매디슨 스퀘어 가든을 헤드라이닝 하겠습니까?” 주다스 프리스트 프론트맨 랍 핼포드 씨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런 밴드가 어떻게 웸블리 스타디움을 채우겠습니까? 모르겠네요. 이제 사람들은 음악을 다르게 듣습니다. 레코드를 틀어놓고 앉아서 30분이든 뭐든 진득하게 들을 만큼 한가한 사람은 없어요. 이제 3분은 여기, 3분은 저기, 그리고 저처럼 문자 보내고 인스타그램이나 확인하죠. 들어보세요. 지루한 노친네로 보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말하려는 건 팩트에 기초한 거예요. 세상이 그렇다니까요. 제 말씀은, 기자님의 질문, 누가 차세대 거물 메탈 밴드가 될 것이냐, 저는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다른 서브장르의 대형 밴드들도 활동을 계속 이어나가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메이저 급은 아니지만, 이 바닥에서만 보면 저희는 가장 큰 익스트림 메탈 밴드 중 하나입니다.” 크레이들 오브 필쓰의 대니 필쓰 씨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도 활동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나가기는 점점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기자님도 차이를 느끼실 텐데요. 예전 같지가 않아요. 아마도 사람들이 흥했다고 생각하는 마지막 연도가 2008년일거예요. 메탈 씬에 스포츠카를 사고 큰 공연을 하는 사람들도 가끔 있었죠. 아마도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사이클이 돌지 않을까 해요. 10년쯤 지나면 다시 올라가지 않을까요. 모두 답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직 팬들이 있고요.”


“만약 투어에 돈이 있다면, 우리는 메탈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러시아, 중국, 동유럽으로 진출해야 합니다.”


“뭔가 해보려면 최소한 10년은 투자해야 합니다.” 핼포드 씨는 강조했다. “메탈계의 누구던지 간에,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시간은 견뎌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도] 어떻게 유지하고 이어나갈지는 확실하지 않은 거예요. 모든 면에서 이건 인내하고 지켜봐야 하는 것이죠.”


결국 자기 이름을 새기고 싶은 욕구가 가장 강한 밴드가 살아남는 것이고, 오늘날에는 투어의 고통을 감내하고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는 그저 건강한 식욕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메탈의 확장과 진화 과정에서 재미있는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최소한 지금의 서양에서 헤비 락의 열기가 식어가고 있는 동안, 동양이 서서히 열리고 있었다.


“만약 투어에 돈이 있다면, 우리는 메탈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러시아, 중국, 동유럽으로 진출해야 합니다.” 필쓰 씨는 말한다. “최근에 우리가 가졌던 가장 큰 공연들은 독일이나 프랑스나 북유럽에서 한 게 아니고, 헝가리, 불가리아, 루마니아, 폴란드에서 했던 거였어요. 밴드에 다소 굶주려 있었던 곳들이요. 하지만 [이런 시장들이] 열리게 된다면, 밴드들은 앨범을 4년마다 [2년마다가 아닌] 낼 수 있고, 왜냐면 일반적인 앨범/투어 사이클이 늘어날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 우리는 러시아 전국 투어, 아시아, 차이나, 자카르타, 싱가폴, 그리고 동구권 투어를 돌 수가 있어요. 모든 밴드가 갈망하는 일일 거예요.”


메탈 밴드들이 미국과 정치적 대척점에 서있는 나라들의 미성년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어쩌면 반란의 목소리는 필요한 곳에 있어야 한다. 마치 미국이 그것을 절실하게 다시금 필요로 하고 있다는 듯이.





사실 하드코어는 이런 소위 '뮤직 비즈니스', '음악 산업' 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다. 하드코어 라이프스타일, DIY, 프렌드십 같은 비음악적 가치가 하드코어의 핵심에 있고, 음악 스타일도 매우 비상업적, 비타협적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하드코어 밴드는 본업(데이잡)을 가지고 있고, 그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로컬 씬을 벗어나 세계로 하드코어를 전파하고 있는 Terror, Sick of It All, Hatebreed 같은 많은 밴드들은 전세계로 투어를 돌고 전업으로 음악을 하고 있다.




The Keepers of the Faith



테러가 굳이 자비를 들여 비행기를 타고 우리나라에 공연을 하러 온 적도 있을 정도로, 하드코어 밴드들은 메이저로 올라가도 돈벌이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것 같다(Respect). 하지만 이런 팀들이 전세계 곳곳에서 방구석의 하드코어 키드들을 만들어내고 그들이 용기를 내서 로컬씬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생각해볼 때, 그리고 앞으로 다른 좋은 젊은 팀들이 그들을 계승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하드코어 밴드라도 최소한 음악만으로 생활이 가능하고 지속 가능해야 한다.


혹자는 아티스트가 돈을 벌지 못하는건 레이블과의 불합리한 계약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소위 노예계약. 하지만 점점 줄어드는 음반 판매량과 그것을 보상하지 못하는 스트리밍 수익, 그리고 공연을 많이 하고 머천다이즈를 만들어 판들 채산성이 그리 높지 않을 거라는걸 생각할 때 레이블도 메탈/하드코어에서는 별로 돈을 벌고 있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분명 스스로 레이블을 차려 틈새시장을 공략해 부자가 된 아웃라이어들이 있다. 이 부분은 좀 더 공부를 한 다음에 추후 포스팅에서 다뤄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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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Five - CGy



BSL에 처음 합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1주년 포스팅을 했던 기억이 있는데, 2주년 포스팅을 작성하고 있으니 BSL에 합류한지 1년이 넘었습니다. ^^ 뿌듯하고 처음 BSL 합류 제의를 해준 KY O.N.O 형과 GEON 형께 감사하는 마음이 듭니다. (쿄노 형은 이름에 점을 어디에 찍어야 하는지 항상 헷갈린다~!) 보다 최근에 합류하게 된 Corejae님과 Fewd님 역시 좋은 포스팅들로 블로깅하는 재미를 더 느끼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CGy)는 얼마 전 박사학위의 마침표를 찍는 학위심사(디펜스)를 마쳐서 사실 요새 구직활동 말고는 딱히 하는 것이 없는 상태라, 하루 일상을 포스팅하기로 했을때 약간 걱정이 앞섰습니다. 딱히 하는 일이 별로 없어서... 그래도 요새는 면접에서 이것저것 요구하는 것들이 많아서 아주 할일이 없는 것은 아니라, 그런 게으르면서도 마음 편하지는 않은 그런 일상을 포스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10:30 AM 느지막히 연구실로 출근. 밖을 나서니 눈이 오고 있다. 겨울은 겨울이구나. 눈은 이후 점점 더 함박눈으로 바뀌었다. 아래 사진 나무 뒤에 있는 건물은 목욕탕이 아니고 우리 학과 건물. 학교에서 좀 오래된 건물들은 거의 다 파란색 타일로 되어 있는데, 80년대에는 파란색 타일이 미래 하이테크 느낌이었나 보다.




10:35 AM 연구실은 방에서 5분 거리다. 이렇게 통학이 편하기 그지 없는 삶에 너무 익숙해져서, 앞으로 취직했을 때 통근하는 거랑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가장 걱정되는 나이다. 사진은 내 책상이 있는 건물 내부 전경이다. 나는 위 사진의 건물 옆에 붙어 있는 작은 건물에 있는데, 건물 이름은 Pilot Plant 연구동 (줄여서 PP동)이다. Pilot plant란 실제 공장 크기의 생산 설비를 만들기 전 테스트 용도로 만드는 작은 설비를 말하는데, 그래도 실험실에 들어가는 것보단 크기 때문에 이런 넓은 창고 같은 공간이 필요하다. 현재는 특별한 설비가 들어와 있지는 않아서, 왼쪽 아래와 임시로 물건들을 적치해놓기도 한다. 내 연구실은 왼편에 보이는 철제 계단 윗층으로 올라가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허름하지만, 저 방에 들어가면 곧 졸업한다는 아주 좋은 기운이 있다고 믿어지는 방이다...



내 별거없는 책상. 건담이 지켜주고 있는 내 책상... 아래 사진 왼쪽에 있는 하얀 물건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발명품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과깎는 기계다. 내구성이 좀만 더 좋았더라면...


오늘의 할일은 다음주에 볼 면접 발표자료를 완성해서 제출하는 일이다. 학술적인 내용이 아니라 자기PR을 ppt 발표로 하라니,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이라 짧은 발표인데도 쉽지가 않다. 열장짜리 발표자료를 만드는데 일주일은 족히 걸렸는데, 결과가 좋았으면 좋겠다.




2:00 PM 늦은 점심을 먹으러 친구들과 학생 식당으로 간다. 그새 눈이 많이 와서 하얗게 쌓였고, 하늘은 파랗게 갰다. 학부생들이 시험기간이라 캠퍼스는 (원래도 한산하지만) 아주 한적해서 사람을 보기가 힘들다. 아래 사진의 연못은 오리와 거위가 서식하는 '오리연못'.



오랜만에 동측라면을 먹으러 왔다. 우리 학교에는 학생 식당이 북측, 동측, 서측에 하나씩 있는데, 동측 식당에서는 오후 시간에 라면을 끓여서 판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동측라면은 강력한 화력과 아주머니의 물맞춤 스킬이 어우러져 최상의 맛을 보여준다. 어떤날에는 치즈라면, 어떤날에는 만두라면이 랜덤하게 나오는데, 이정도로 잘 끓이는 데는 가보지를 못했다. 틈새라면은 맛있긴 하지만 너무 맵고...



PM 7:00 요새 한가함을 과시하기 위해 요가를 배우러 다니고 있다. 사실 할게 없어서라기 보다는, 하루종일 앉아서 생활한지 너무 오래되었고, 이런저런 운동을 하던것도 학위심사 준비로 정신이 없어 완전히 그만둔지 일년이 다 되었기 때문이다. 몸이 하도 뻣뻣해져서 무슨 운동을 해도 쉽게 다치다보니, 유연성을 좀 길러보고자 다니고 있는데, 유연성 뿐만 아니라 근력 운동도 많이 되는 좋은 스포츠인것 같다. 요가선생님이 하는 사진을 올렸다면 포스팅의 하이라이트가 되었겠지만, 안타깝게도 내 동작 하느라 정신없어서 사진 찍는걸 깜박하고 말았다.




10:00 PM 샐러드를 가장한 도시락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발표자료도 마무리하고, 딴짓도 좀 하다가 늦은 퇴근을 한다. 아래 사진에 걸어가는 사람 누군지는 몰라도... 정말 대학원 생활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참 쓸쓸한 길이지만, 그래도 끝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버티는 것 같다.



10:10 PM 집에 오니 택배가 기다리고 있다. ^^ 새로나온 13Steps 앨범을 사면서 같이 몇장 샀다. 포스팅을 작성하며 들어보니, 훨씬 언홀리하고 어두워졌다. 첫곡 제목이 "15 Years"인데, 형님들 결성한지 15년이 된건가... 아무튼 매너리즘 따위는 찾아볼 수 없고 마음 속 리스펙트가 피어나는 와중, 어서 라이브를 보고 싶다.



BSL에 합류해서 이런저런 포스팅을 하면서, 글을 쓰고 그것이 읽히는 재미를 느끼고, 글쓰는 연습도 많이 하는 좋은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Today's Track을 통해 음악을 공유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고요. 앞으로도 관심 부탁드리고, 저는 영양가도 있고 재미도 있는 포스팅을 하기 위해 노력해 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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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비즈니스 2




CGy라는 이름으로 처음 썼던 포스팅이 '논문 비즈니스 (링크)'였다. 한창 저널 논문을 내기 위해 분투하던 작년 8월에 썼던 글이라, 지금 읽어보니 가시가 돋혀있다. 그때 쓰던 논문이 오랜 수정과 수정과 수정과 제출후 거절과 거절과 리비전을 거쳐 출판이 되었고, 박사 졸업을 준비하고 있는 지금이 저 글의 후속편을 쓰기 적절한 때가 아닌가 한다.


1편에서는 주로 논문 출판 산업이 돌아가는 개략적인 구조와 논문 자체가 지식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이번 편에서는 연구자로서 논문을 쓰는 것이 어떤 행위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저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논문 출판의 프로세스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좋은 논문을 쓰는 법에 대해서는 이미 책으로 나온 것만 수십권은 될 것이고 훌륭한 교수님들이 작성하신 좋은 문서들이 존재하므로, 여기서는 그런 주제 넘는 짓 보다는 "연구자들이 왜 그런 (몇명 읽지도 않을 논문을 쓰는) 짓을 하며, 대체 그건 얼마나 힘든 걸까?" 에 대한 답을 해보려고 한다.



실적, 기여, 소통


논문을 출판하는 가장 일차적 목적은 당연히 실적이다. 어떤 연구자 또는 박사학위를 갓 딴 사람이 있을 때, 이 사람을 평가하는 아주 편리하고 정량적인 도구로서 그 사람이 논문을 몇 편 냈는지를 비교한다. 기업 연구소의 연구원이라면 논문을 많이 내는 것 보다는 회사에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하는게 직업이므로 예외가 되겠지만, 학교 또는 국립(출연)연구소 에서는 연구자의 능력을 짐작하는데 논문 편수를 사용한다. 따라서 논문 실적은 취직에도 중요하고, 취직 후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도 계속 중요하다. 1편에서 임팩트 팩터 (impact factor, IF) 라는 점수에 대해서 이야기 했었는데, IF도 실적을 비교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사실 이것은 매우 주객이 전도된 말이다. 논문이 단순히 실적을 쌓기 위한 수단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고, 역시 1편에서 언급한 데이터-정보-지식-지혜 (DIKW) 피라미드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것이다. 실적을 위해서만 논문을 쓴다면 그건 마치 인생을 돈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내가 낸 논문들이 나를 평가하는 수단이 되는 것은 맞고, 그것이 모든 연구자들을 괴롭고 X줄타게 하지만, 어쨌든 논문을 쓰는 데는 더 본질적인 목적이 있다.



DIKW 피라미드: 데이터로부터 정보가 도출되고, 정보가 모여 지식이 되고, 지식이 정제되면 지혜가 된다는 것을 함축하는 도식.


논문은 학계와 사회에 연구자가 기여할 수 있는 아주 정제된 수단이다. 연구자들은 국가 또는 어떤 공익 재단에서 연구비를 받는 경우 연구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 이런 곳들은 국가 과학기술 발전, 가끔은 더 나아가 인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연구자들에게 돈을 준다. 산업자원부, 미래창조과학부, 국토해양부, 환경부 등 국가부처들의 R&D 예산이 이런 곳에 사용되고, 한국연구재단(http://www.nrf.re.kr/)도 다양한 연구과제 공모를 통해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다. 이런 연구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결과를 일단 보고서의 형태로 연구비를 준 기관에 제출한다. 하지만 연구 결과가 공무원들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다른 연구자들이나 발명가, 엔지니어들이 그 결과를 보고 도움을 얻게 하는 것이 이런 공익 연구과제의 목적이다. (회사 연구소의 경우 회사 돈으로 연구를 하므로 연구결과를 영업비밀로 가지고 있거나 특허의 형태로 보고해서 독점권을 얻으므로 예외) 그 목적을 달성하게 해주는 것이 논문이다. 그 분야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다면 이해할 수 있도록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것이다. 그리고 논문 마지막에 연구비 제공 기관에 대한 감사의 글(Acknowledgment)을 한줄 넣는다.


하지만 이것은 일종의 의무지, 근본적인 동기는 아니다. 연구자 중에서 논문 마지막에 연구비 제공 기관에 대한 감사의 글을 적으며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예외적으로, 미국국립보건원(NIH) 같이 연구비를 따기 아주 어려운 곳에서 연구비를 땄다면 '내가 이런 곳의 연구비를 땄다니' 하는 감격이 있을 수 있겠지만 (실제로 대단한 일), 역시 그것도 하나의 성취이지 궁극적인 목적은 아닐 것이라 감히 말해본다.


논문은 연구자가 다른 연구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식적인 창구다. 엄밀성을 (사기를 치고 있지 않는가?) 매우 따지는 학계에서는 단순히 말이나 이메일 같은 캐주얼한 커뮤니케이션은 쳐주지 않는다. 본인이 참고로 삼을 수는 있지만, 그것을 근거로 무엇을 주장하기는 힘든것이다. 내가 A라는 사람의 발견을 근거해서 논리를 전개하고 싶다면, A가 그 발견을 논문 또는 최소 학술대회에서는 발표했어야 하고 그것이 문서화되어 있어야 한다. 따라서, 내가 다른 연구자들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 그것을 논문으로 내는 것이 가장 묵직한 방법이다.


금전적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내가 무언가를 알아냈는데 아무한테도 알려주지 않고 혼자서만 알고 있길 원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어디서 뭐 대단치도 않은걸 줏어듣고서는 그걸 SNS나 인터넷 게시판에서 자랑하고 싶은게 사람이다. 하물며 연구를 직업으로 삼은 사람은 오죽할까? 내가 알아낸 것들을 최소한 다른 연구자들과 공유하고 (기여), 다른 연구자가 그것을 참고하고 (인용=실적), 때로는 피드백을 받거나 의견을 주고받고 (소통), 그러다 보면 다른 연구자들과 네트워크도 형성할 수 있고, 그들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파볼 수도 있고. 그런것이 논문을 쓰고, 이왕 쓸거 잘 쓰려고 하는 가장 내면적인 이유가 아닐까 한다.



음악도 그런 것 같다. 말이야 이렇게 하지만 진짜 그저 돈 때문에 하는 음악이면 노엘 형이 뭐한다고 아직도 솔로 활동 하고 있을까? 그냥 X같은 티셔츠나 팔면서 집에서 술이나 먹지. ㅋㅋ



작성, 거절, 수락


논문을 쓰는것은 말로 하면 참 쉬워보인다. 왜 이런 연구를 했는지 쓰고 (Introduction), 어떻게 했는지 쓰고 (Experimental), 무슨 결과가 나왔는지 쓰고 (Results),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쓰고 (Discussion), 요약 좀 하고 앞으로는 뭘 연구하면 좋겠다 쓰면 (Conclusions) 끝이다. '논문 작성 나도 할 수 있다!' 이런 책들 보면 논문은 너무나도 형식화 되어 있는, 즉 규칙이 있는 글쓰기라 기계적으로 그냥 하면 될것만 같다. 그래서 실험이 훨씬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경향이 있고, 특히나 이미 경험치가 쌓인 분들의 '하루에 한두시간씩 꾸준히 쓰면 돼~' 같은 팁(?)이 그런 경향을 더 심화시킨다. 하지만 논문을 쓰고 (여기까진 쉬울 지도 모른다) 출판하는 것(!!!)은 결코 쉽게 봐서는 안되는 일이다.


그렇다. 논문을 내기가 어려운 것은, 내가 그냥 쓴 것을 배설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편집장(editor)과 심사자(reviewer)들의 상호 심사과정을 (peer review)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냥 적당히 써서 페북에 올리면 편하고 좋겠지만, 피어리뷰를 통과해서 학술지에 실리지 못한 논문은 별로 신뢰받지 못한다. 내용에 거짓말이나 사기가 없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러므로 실적으로 인정받지도 못한다... 흔히 권위있는 학술지라고 불리는 것들은 피어리뷰도 더 까다롭다.


논문을 작성하는 데 들어가는 노력은 내가 어느정도 레벨의 학술지를 노리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어떤 분야를 연구하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내가 더 권위있는 학술지에 논문을 내길 원한다면 당연히 시간과 노력을 더 투자할 생각을 해야 한다 (논문 한 편 내는데 5년이 걸릴 수도 있다). 권위있는 학술지일 수록 논문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심사를 더 엄격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 학술지에 내길 원하는 경쟁자가 더 많으니까. 분야에 따른 차이로는, 새로운 결과가 빨리빨리 나오는 응용과학 분야라면 논문 분량도 좀 짧고, 분위기도 글의 완벽함이나 데이터의 엄밀함 보다는 결과 자체를 중시하므로 상대적으로 논문 작성에 시간과 노력이 적게 투자되는 편이다. 반면에 순수과학 쪽의 (이를테면 생명, 우주의 신비를 밝혀내는) 분야의 경우, 데이터를 얻는 것 자체도 어렵고 시간이 많이 필요할 수 있고, 결과와 논문의 완벽함을 추구하는 학자적 분위기가 강해서 더 오래걸리는 편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분야에 따른 차이보다는 학술지 권위에 따른 영향이 대체적으로 더 큰 것 같다. 특히나, 학술지의 수준이 높아질 수록 응용과학/순수과학의 경계가 흐려지는 편이라 (단순한 응용 실험으로는 받아주지 않고, 과학적인 증명을 요구한다던지), 어느 분야든 최고 수준의 학술지를 노린다면 몇 년 걸리는 것이다. 논문을 내기 어려운 분야라고 하더라도, 몇몇 학술지 자체가 아예 몇 개 없는 분야들을 제외하면, 수월하게 낼 수 있는 학술지 옵션이 존재한다. 다만 그런데 내봤자 별로 알아주지 않을 뿐......



조금 과장된 것 같지만, 내가 쓴 논문을 투고할 때는 이런 기분이 든다. 열심히 준비했을 수록 더 이렇다.


우여곡절 끝에 논문을 작성해서 투고한 후에는, 언제든 거절(reject)당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논문 심사의 1차 관문은 편집장(에디터)인데, 에디터는 학술지에 투고되는 수많은 논문들을 거른다. 투고된 논문이 학술지의 주제에 맞는지, 제출 형식은 잘 맞추었는지, 엉망진창은 아닌지 (제목에 오타가 있다거나) 개략적으로 읽고 판단한다고 한다. 눈을 잡아끄는 아주 재밌어 보이는 논문이 아닌 이상 당연히 자세히 읽어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에디터가 본업이 아니라 해당 분야의 권위있는 교수님 같은 분이 짬을 내서 수행하는 것이다) 좀 억울하게 거절당할 수도 있다. 여기에 반박을 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학술지에서 에디터의 거절 권한은 야구 심판의 스트라이크-볼 판정 권한 수준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에디터 관문을 통과한 논문은 본격적인 피어리뷰에 들어간다. 각 학술지에는 선정된 리뷰어들이 있는데, 그 리스트에 없는 사람이라도 내가 내 논문을 심사해 달라고 신청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내 논문을 누가 심사하는지에 대한 정보는 일절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신정한 사람이 심사를 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리뷰어들은 논문을 면밀히 읽어보고 논리적 결함이 없는지, 실험을 과학적으로 수행했는지, 글쓰기에 실수나 미흡함이 없는지, 타논문 인용은 적절하게 했는지, 학계에 도움이 될 새로운 결과인지 등을 평가한다. 리뷰어 역시 본업이 아니라 명예직인데 (돈도 안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논문의 출판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영예 내지 의무로 생각하는 분위기로 알고 있다.


리뷰어는 자기가 심사한 논문에 대해 다음과 같은 판정을 내릴 수 있다. 수락 (accept, 바로 출판), 수정요망 (revision, 조건부 출판), 거절 (reject.....). 에디터는 수락 또는 거절 판정만 내린다. 리뷰어는 에디터와 다르게 저자에게 특정한 부분들을 어떻게 수정해달라고 요청하거나 미심쩍은 부분에 대해 설명을 요구할 수 있다. 단박에 거절을 내릴 정도로 못쓰진 않았는데, 지금 상태로 출판하기엔 미흡한 어중간한 상태일 때 이 리비전이 뜨는 것이다. 보통 거절 아니면 리비전이 뜨지 한방에 수락은 잘 안된다. 왜냐하면 내가 아무리 논문을 잘썼다고 하더라도, 리뷰어는 나와 연구분야가 다소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내용을 100% 이해하지 못해서 질문을 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내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지적하거나).


리비전은 메이저 리비전과 마이너 리비전으로 나눌 수 있다. 판정에 대한 명칭 또는 규정은 학술지마다 다를 수 있지만, 보통 메이저 리비전은 논문에서 문제되는 부분이 중대해서, 리뷰어의 요구대로 수정한 후 검사를 맡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경우 추가실험이나 재실험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리비전에는 시간 제한이 있기 때문에 메이저 리비전이 뜨면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마이너 리비전은 대수롭지는 않지만 리뷰어가 의심나는 부분이 있다거나, 어떤 부분의 설명이 약간 더 보강되었으면 하는 등 추가실험까지는 필요없는 수정이 필요할 때이다. 성실하게 답변하고 요구사항을 반영해주면 에디터 선에서 확인하고 리뷰어가 다시 보지는 않는다고 한다. (ref)


리뷰어의 요구사항에 답변할 준비가 끝났다면, 답변을 (response letter) 써야 한다. 이것도 일종의 정형화된 글쓰기인데, 리뷰어의 코멘트들을 한개씩 번호를 달아서 답변하고, 본문의 어디를 고쳤다면 "몇 페이지 몇 번 줄을 어떻게 고쳤습니다" 하고 알려주는 것이다. 논문 자체를 쓸 때 만큼 힘들지는 않지만, 끝까지 집중해야 하는 작업이다. 답변에 에디터와 리뷰어가 만족한다면 수락이지만, 만족하지 않는 다면 또 리비전을 줄 수도 있다. 메이저 리비전일 때 이런데 걸릴 수 있다. 리비전 횟수에 제한이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마도 리비전이 무한 반복된다면 어느 순간 거절을 받을 지도 모른다. 그러면 저자는 분노하는 것이다. 특히나 리뷰어가 전혀 엉뚱한 포인트를 물고 늘어졌다면.



산 넘어 산...


리뷰어까지 통과하고 나면 이제 안심이다. 하지만 한가지 일이 더 남아있다. 교정 (proofreading) 작업이 남아있다. 보통 이 지점까지의 논문의 레이아웃은 학술지에 따라 매우 다르지만, 오래된 저널의 경우 글자크기 12px, 줄간격 2줄, 폰트 Times New Roman 같은 다소 고루한 형식으로 작성하는 경우가 많고, RSC (Royal Society of Chemistry) 나 ACS (American Chemical Society) 같은 학회에서 운영하는 학술지들은 워드 템플릿 파일을 제공한다. 수학이나 전산 쪽의 수식이 많이 들어가는 분야의 경우 LaTeX 같은 시스템을 이용해 작성하는 경우가 많다 (문서 작성을 위해 코딩을 하는... 한글 수식 입력기 비스무리한... 그런게 있다). 아무튼, 리뷰어와 나 사이에 왔다갔다 했던 논문은, 학술지 직원들에 의해 최종 출판 형식으로 변환된다. 이 변환과정에서 오타나 원치않는 변경이 생길 수 있고, 아직까지 아무도 발견 못한 오타가 있을 수도 있으므로 저자가 마지막으로 한번 더 체크하는 과정이다.



짜잔~!


그 과정이 끝나고 나면 논문이 인터넷에 공개되고, 구독자들은 내려받아서 볼 수 있다. 이제 소통이 시작되는 것이다.



여담: 미래의 논문 비즈니스


이러한 모든 절차들은 인터넷의 도움으로 많이 빨라지고 편리해지긴 했으나 (옛날엔 정말 타자기로 치거나 손으로 쓴 논문을 우편으로 주고받았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구시대의 출판 프로세스를 따르고 있다. 나만 해도 실험 데이터가 거의 다 준비되고 난 후에 논문 작성 및 출판만 일년 가까이 걸린 적이 있다. 내가 게을렀던 탓도 있지만, 설령 아무리 부지런하다고 한들, 리젝을 당해서 다른 학술지에 낸다거나, 리뷰어가 빨리 안봐준다거나 하는 어쩔 수 없는 과정들을 거치다 보면 논문 작성을 다 했는데도 출판에 일년이 걸릴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은 논문들의 퀄리티 및 신뢰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시스템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더욱 빨라져만 가는 과학기술 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컴퓨터 공학 같은 굉장히 빨리 발전하는 분야의 경우, 학술지 논문 보다는 유명한 학회에서 발표하는 것을 더 인정해 주기도 한다고 들었다.


혹자는 일반적인 학술지에 대해서도 다른 모델을 제시하기도 한다. 종래의 선 심사 후 출판 방식을 뒤집어서, 선 출판 후 심사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선정된 심사관이 대외비로 심사하는 형태가 아니라, 독자들이 직접 평가하는 (open peer review) 모델을 제안하고 있다 (ref). 이 사람의 말에 따르면, "The current system of scientific publishing provides only journal prestige as an indication of the quality of new papers and relies on a non-transparent and noisy pre-publication peer-review process, which delays publication by many months on average (현재의 학술지 출판 시스템은 새 논문의 질에 대한 평가를 전적으로 학술지의 권위에 좌우되게 만들며, 불투명하고 문제의 소지가 있는데다 평균적으로 수 개월이 걸리는 출판 전 심사 과정에 의존하고 있다)". 그렇다면 일단 출판부터 시키고, 싫어요 갯수 많은 논문은 삭제하자는 걸까? 물론 저 논문에서는 어떤 합리적인 방식을 제시하는 것 같은데, 내가 읽어보지를 못하겠다...


The future peer review system - fncom-06-00079-g003


미래의 학술지 모델 (maybe)


사실 이런 새로운 개념의 학술지 비슷한 것(?)이 존재하는데, arXiv (http://arxiv.org/) 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학술지라기 보다는 공식 출판 되기 전의 논문들을 공개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코넬 대학교 도서관에서 운영하고 있는 arXiv는, 물리학, 수학, 전산 등의 주로 계산이라거나 이론에 관한 논문들이 주로 올라와 있는 곳이다. 분야가 달라서 내가 이용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피상적으로 아는대로만 설명하면, 저자는 자기 논문을 자유롭게 업로드할 수 있는데, 여기에 업로드한 후 진짜 학술지에 투고할 수도 있다고 한다. 애초에 심사 과정에서 논문을 따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arXiv 링크를 보내주면 되는 모양이다. 학술지에 출판이 되던 안되던 arXiv 에는 남아있고, 영원히 무료로 볼 수 있다 (Open access).



처음에 미국 로스 알라모스 연구소에서 구축되었다는 이 데이터베이스는 현재 코넬 대학교 도서관에서 운영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arXiv 에는 별도의 심사과정이 없다는 것이다. 위키의 설명에 따르면, 업로드된 논문들을 관리하는 관리자가 있다고는 하나, 논문의 분야가 잘못 표시되어 있다고 생각될 때 카테고리를 옮겨주는 것 정도 이상의 관여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 심사 과정이 없기 때문에 내용의 진위가 의심되는 논문도 "아주 가끔" 발견된다고 하는데, 그것들을 삭제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위의 모델에서 제시한 유저들의 평가 시스템 같은 것은 없는 것 같지만, 우선 최신 연구 결과를 빨리 공유할 수 있고, 논문 비즈니스 1편에서 언급했던 Open access 를 실천하고 있다는 것에서 매우 좋은 곳이다. 논문 실적에 연연하지 않는 (그럴 필요가 없던 상황이었을지도) 쿨한 연구자가 엄청난 논문을 여기다 올려버리고 다른 학술지에 내지 않았던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은 그 논문으로 필즈상 (수학계의 노벨상 같은거) 수상자로 선정되었는데 너무 쿨한 나머지 그것도 거절했다고 한다. 위에서 설명한 엄격한 심사과정 없이도 퀄리티는 적당히 유지되고 있나 보다.


분야에 따라 정도는 다르지만 논문 비즈니스도 서서히 진보하고 있는 것 같다. 논문 비즈니스를 걱정하기 전에 내 논문이나 일단 잘 마무리 짓기를 희망하며 글을 마친다.



Reference

http://bluescreenlife.tistory.com/entry/%EB%85%BC%EB%AC%B8-%EB%B9%84%EC%A6%88%EB%8B%88%EC%8A%A4

http://www.nrf.re.kr

http://academia.stackexchange.com/questions/3531/what-does-a-major-revision-mean

http://journal.frontiersin.org/article/10.3389/fncom.2012.00079/abstract

http://arxiv.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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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적 숫자들



'천문학적 숫자'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뉴스, 잡지 등에서 엄청나게 큰 양이나 갯수를 얘기할 때 이런 표현을 쓰는데요, 솔직히 대중없이 사용되는 표현이죠. 이를테면 '얼마 이상 부터 천문학적이라고 표현한다'고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천문학적 숫자'라는 어구가 들어간 뉴스를 검색해봤는데, 칼럼이 하나 걸렸습니다. 내용은 차치하고, 문장만 따와 보겠습니다.


"지난 10여년 간 4조3,0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어간 테러와의 전쟁"


4조 3천억 달러면 어마어마합니다 (역시 천조국...). 천문학적 숫자라고 할만 합니다. 도대체 4조 3천억 달러는 얼마나 많은 돈일지 전혀 감도 안옵니다. 이런 경우에 천문학적 숫자라고 표현하면 딱 좋을 듯 합니다.


천문학적 숫자라고 한다면 천문학에 나오는 스케일이니까 천문학적 숫자라고 할 것입니다. 최근에 명왕성에 뉴호라이즌스 호가 지나갔죠? 명왕성에 우주선을 보낸 것이 처음이라고 하던데, 명왕성이 지구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요? 사실 지구하고 명왕성이 계속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둘 사이 거리는 계속 바뀌고 있을 거니까, 태양과 명왕성의 거리를 찾아보겠습니다. 지구는 태양에 훨씬 가까우니까 지구-명왕성 거리랑 비슷하겠죠 뭐.




태양과 명왕성의 거리 (평균): 5,924,160,000,000 미터 (ref)


어... 5조 9241억 6천만 미터 입니다. 지구랑 대충 6조 미터 떨어져 있는 모양입니다. 6조 미터는 60억 km 입니다. 지구인이 모두 힘을 합친다면 (지구와 명왕성 사이에 직선으로 길이 나있다는 전제 하에) 각자 1키로씩 이어달리기를 할 수 있군요. 서울-부산을 400 km 라고 치면 서울-부산을 750만번 왕복하면 되는 거리. 서울에서 뉴욕까지가 대충 11000 km 라고 합니다. 약 27만번 왕복하면 되는 거리입니다. 도대체 지구상의 스케일로서는 감이 잡히지 않는 거리입니다.



천문학적 숫자란 바로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인가 봅니다. 겁나 크긴 한데, 도대체 얼만큼인지 손에 잡히지 않는 거리. 그냥 '우와 많다'라고만 인식이 되지 정확히 얼만큼인지 이해할 수 없는 숫자.


방금전 미국 국방비 얘기로 돌아가서, 4조 3천억 달러가 얼마나 많은 돈인지 어떻게든 따져보겠습니다.


요새 햄버거가 많이 비싸져서, 맥도날드나 버거킹 가면 대충 7천원쯤 줘야 셋트 사먹습니다. 대충 7달러로 잡으면, 빅맥 셋트 6143억개 입니다. 제가 죽을 때 까지 빅맥만 먹는다고 하면, 하루 3끼 X 365일 X 60년 = 65700개. 저혼자 먹어서는 택도 없으니 지구인이 힘을 합친다면, 각자 102개씩 먹으면 됩니다. 세달간 전 지구인이 저녁마다 햄버거 파티를 벌일 수 있는 돈이군요.


이건 좀 유치하니까, 나름 그럴싸하게 우리나라 1년 국정예산과 비교해보도록 하겠습니다. 2014년 우리나라 정부 예산안 총 금액은 370조 7천억원 이었다고 합니다 (ref). 근 한달사이 달러 환율이 엄청 올랐는데, 그냥 1100원으로 잡겠습니다. 3370억 달러. 4조 3천억 달러면 우리나라 예산을 약 13년간 충당할 수 있네요. 10여년간 테러와의 전쟁으로 4조 3천억 달러를 썼다는데, 거의 매년 우리나라 총 예산 만큼 전쟁비로 썼네요.


우리나라에서 (압도적으로) 제일 큰 단일 기업 삼성전자의 시가총액과 비교해볼까요? 오늘자 삼성전자 시총이 178,968,600,000,000 원입니다 (ref). 대략 178조원. 이건 오늘자니까 오늘 달러환율 1170원을 적용해준다면, 153,000,000,000 달러. 1530억 달러입니다. 4조 3천억 달러가 있으면, 삼성전자를 28개 살 수 있습니다...


사실 삼성전자 28개라고 해도 그게 얼만큼인지 감이 안옵니다. 그러므로 역시 범지구적 스케일을 동원한다면, 60억 지구인한테 각각 720달러씩 줄 수 있는 금액입니다. 와우, 거의 80만원씩인데, 이러니까 진짜 많은 돈이네요.




이번엔 플라스틱 병 (페트병) 얘기를 한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애초에 이 글 주제가 생각난 것도 플라스틱에 대해서 찾아보다가 였었는데.. 사람들이 사용하는 플라스틱 병이 몇개나 될까요?


구글에게 물어보았더니, 1년동안 미국인들이 사용하는 페트병이 무려 500억 개라고 합니다. 이것도 역시 하도 많아서 감이 안오는데, 미국 인구가 3억명 쯤 되기 때문에 나누어보면 한명당 170개쯤 썼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즉, 이틀에 한개 꼴로 사용했다는 것이죠.


반대로 생각해보면 미국 사람들 각자는 페트병을 이틀에 한개 밖에 사용하지 않았을 뿐인데, 이것을 몽땅 합쳐가지고 일동안 합산을 해버리니까 500억 개라는 무지막지한 양이 된다는 것입니다.




먹고싶다


무엇이든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가 간간히 끓여먹는 라면의 경우도 2014년 기준 한국에서 총 36억개가 팔려서, 매출로 따지면 2조원에 달했다고 합니다 (ref). 재미있는 사실은, 인도네시아의 경우도 라면을 많이 사먹는 모양인데, 1인당 소비량은 우리나라보다 적지만, 인도네시아의 인구가 2억 5천명에 달하기 때문에 총 소비량은 149억개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양으로 밀어붙이는 산업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전통적 제조업 말이지요. 페트병을 만드는 공장에서 페트병 하나를 만들어 팔면 얼마나 남길까요? 저도 잘 모릅니다만, 인터넷에서 파는 페트병 가격이 대충 200~300원쯤 하기 때문에, 중간 유통 마진을 뺀다면 아마도 공장에서 남기는 금액은 10원? 또는 그 이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워낙 시장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페트병이 500억개 팔렸다고 하면 거기서 남는 순이익만 5000억원에 달하게 되는 것이죠. 매출로 한다면 수십조원이 되는 것이고요.




화공산업이 참 이런게 심한 분야입니다. 박리다매라고 하는, 개당 이윤은 엄청 적지만 판매량이 엄청나서 거기서 이익을 얻는 산업. 예를 들어 석유 정제 산업 (우리나라에선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등, 해외에선 엑손모빌, 셸, BT 등등등) 에서 통상적으로 거론하는 마진 자체가 리터당 몇원 단위 입니다. 즉, 10원도 남기지 못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써대는 기름의 양이 워낙 많기 때문에 이윤구조가 그렇게 되었나 봅니다. KY O.N.O 형의 패션 브랜드 포스팅에서 보았던 것과는 상당히 상반되는 산업이죠. 타겟팅을 잘 해서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사용하는 일상적 물건을 만들어서 티끌모아 태산을 만드는 (마른수건 쥐어짜는) 참 진입장벽이 높은 산업입니다.


아마도 이런 분야에서 산업을 한다고 한다면, 큰 숫자를 잘 보아야 할 것입니다. 시장 규모가 어떻고 중국의 내수시장이 어떻고 인도 시장이 어떻고 논하는 이유도 결국 이것일텐데, 100원짜리를 팔아도 20억 명한테 팔면 떼부자가 되니까 말이죠. 아까 위에서 범지구적 스케일로 환산한것을 본다면, 머릿수가 많으면 큰 숫자도 별것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큰 숫자를 잘 이해하는 방법은, 크지만 익숙한 단위로 바꿔서 생각해보거나 (가장 효과적인 것 같아요) 시간으로 나누어 본다거나 하는 방법이 있다고 봅니다. 즉, 눈에 보이는 숫자를 줄이는 것이죠.


명왕성 얘기로 돌아가 본다면, 대체 서울-뉴욕을 몇번 왕복하느니 해도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디다 적을 때도 매번 숫자를 열개씩 적으면서 몇 억 몇 조 이러기도 피곤합니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이 개발한 아주 좋은 단위가 있습니다.


1 AU (Astronomical Unit) =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 (149,597,871 km)



위 그림에는 명왕성이 표시되있지 않지만 (행성 대우 안해줌 ㅜ) 태양과 명왕성의 거리는 약 39 AU 입니다. 그것은 즉 지구-태양 거리의 약 39배. 이러면 정말 깔끔하게 거리가 어느정도 되는구나 하고 감을 잡을 수 있겠죠.


위 그림에 보시면 축이 로그 축척으로 되어 있어서 그런데, 아무튼 오른쪽에 보시면 α-Centauri (알파센타우리) 라고 있습니다. 이것은 태양계에서 제일 가까이 있는 항성계로, 지구에서 276,000 AU 쯤 떨어져 있습니다 (km로는 굳이 쓰지 않겠습니다...). 역시 AU라는 단위는 태양계 안에서나 쓸만 하지, 인터스텔라 급 스케일로 가면 역시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사용되는 또다른 단위가 바로 광년입니다.


1광년은 빛이 1년동안 날아가는 거리인데, 지구 스케일에서는 빛은 그냥 순간이동 급으로 빠른 것인데, 그것이 1년동안 날아가야 하는 거리니까 정말 겁나 먼 거리이죠. 아무튼 알파센타우리는 지구에서 4.37광년 떨어져 있습니다. 알파센타우리에 무슨 일이 생기면 지구에서는 4.37년이 지나야 관측할 수 있는 것입니다.


광년 말고 좀 더 큰 단위로 파섹(parsec)이라는 단위도 있는데 그건 설명하기 복잡해서 넘어가겠습니다. 아무튼 천문학에서는 옛날부터 워낙 큰 수를 다루다 보니까 이렇게 숫자를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아주 큰 단위를 만들어 두었습니다. 이래야 적기도 편하고, 받아들이고 이해하기도 훨씬 쉬우니까요.



이제 사회가 발전해가지고 굳이 천문학이 아니라도 천문학적 숫자를 흔히 접하게 됩니다 (주로 돈). 나라에서 무슨 사업을 하는데 돈이 몇십조가 들었다더라, 어디서 국제운동경기를 주최하는데 경제효과가 몇천억이라더라. 이런 숫자들은 너무 커가지고 듣는 사람은 이게 얼마인지 감도 안오고 (나라에서 하는 스케일은 원래 이런건가?) 더이상 생각하기 귀찮아서 흘려보내거나 현혹되거나 하기 딱 좋습니다. 회사의 경우도 매출액이 몇백억이고 수출을 얼마를 달성했으니 투자를 해라 뭐 이런식으로..


그래서 돈의 경우에도 뭔가 큰 단위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냥 억, 조 같은 숫자를 표시하는 단위가 아니라, 실질적인 느낌을 줄 수 있으면서 가치가 쉽게 바뀌지 않는 그런...건 없겠지만, 암튼. 예를 들면 22조원은 1 사대강 이라고 한다던지... 전에 이런 비유를 본 적이 있는데 재미있기도 했지만 실제로 유용한 발상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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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연구요원 병역특례제도

저는 사실 지난 2월이 되서야 예비역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전문연구요원이라는 제도의 혜택을 받았기 때문인데요, 대한민국 남자는 병역의 의무를 집니다만 저는 감사하게도 그 의무를 대학원 박사과정을 하면서 연구활동으로 대신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호국의 달 6월 특집으로(......???) 그 제도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전문연구요원(이하 전문연)이라는 제도는 아실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병특(병역특례)이라고 흔히 부르는 것 중 좀더 대중적인(?) 산업기능요원과 셋트로서, 찾아보니 1973년에 국가산업 발전을 명분으로 창설되었습니다 (ref). 제가 산업기능요원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전문연의 경우 고도성장 시기에 과학기술 개발 인력의 충원 및 (예비)연구원들의 군대로 인한 교육 및 경력의 단절을 막기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병역을 빼기 위해서 였다고 음모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제도가 아직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서 그렇게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전문연을 학교에서 했지만, 전문연은 석사 이상의 학위가 있으면 학교 뿐만 아니라 기업이나 국책연구소에서 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기업이나 연구소의 경우 각자 병무청에서 할당받은 정원이 있기 때문에, 일반 취직하는 것과 똑같이 입사 원서를 내서 합격을 해야 합니다. 몇년 전 까지만 해도 삼성이나 LG같은 대기업에서도 전문연을 할 수 있었지만, 최근 법이 바뀌어서 벤처기업확인서가 있는 곳에 한해서만 전문연 복무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ref). 또한, 전문연은 공익근무요원과 같은 보충역인데요, 신검이 4급이 나와서 원래 보충역인 경우에는 TO가 꽉 찼거나 없는 연구소나 회사에서도 병무청의 허가를 받으면 전문연 복무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즉, 정리를 하면, 석사학위 또는 박사학위가 있는 경우 (예외로 대학원 석사-박사 통합과정 진학시도 해당)

- 이공계 대학원

- 정부출연기관 (소위 국책 연구소라고 부르는 곳)

- 중소기업 (벤처기업)

등의 기관 중 병무청이 지정한 기관 또는 업체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하는 것으로 군대를 대신하는 것입니다.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추진 중인 것이지만, 위의 예와 같이 연구인력이 필요한데 제값 주고 고용하기 어려운... 기관의 상황과 박사까지 했는데 이제와서 군대를 가기 싫은 수요(경력단절) 이런 것들이 항상 존재하므로 필요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전문연의 복무 기간은 딱 3년입니다. 이것이 옛날에는 5년이었는데, 현역 복무기간이 줄어들면서 2003년에 4년, 2005년에 3년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줄어든게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었네요. 그리고 3년의 복무기간 내에 4주훈련을 받아야 하는데 (보충역), 만약 받지 않을 경우 받을 때 까지 복무 기간이 무한정 늘어납니다. 이게 재밌는 것이, 3년 안에 한달 갔다오는 것을 못할까 싶지만, 소속되어 있는 회사나 연구실에서 일이 바쁘다고 훈련소를 못가게 해서 실제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진짜로 복무기간이 연장된 사례가 있다고 교육에서 들었습니다.



            



전문연의 아주 큰 장점은 박사학위와 병역을 병행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나 광주과학기술원(GIST)를 비롯한 ~IST로 끝나는, 또는 ~과학기술원으로 끝나는 학교는 특별법이 적용되어 만약 미필인 사람이 박사과정에 입학하게 되면 자동으로 전문연으로 편입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즉, 기관의 TO가 사실상 무한대인 것이죠. 그런 대학들을 제외한 일반 대학교의 경우는 이공계 박사과정에 진학할 경우에 한해서, 지역 별로 총 정원이 제한되어 있고, 시험을 봐서 (한국사, 영어, 학점) 선발되어야 합니다 (ref). 이것 때문에 옛날에 카이스트에 가면 군대가 면제라더라 하는 소문이 있었는데, 사실 이런 것입니다.


이런 장점이 복무기간이 3년으로 단축되면서 극대화되었습니다. 전문연 복무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여야 하는데요, 박사과정의 수료란 '수업을 다 듣는 것'입니다. 박사학위는 수업 학점만 다 채운다고 따지는게 아니라, 연구를 해서 학술지 논문도 쓰고, 최종적으로 박사학위논문이 통과되어야지 진짜로 졸업을 할 수 있는데요, 보통 수업듣는데 1년반~2년 정도가 걸리고, 그 이후 경우에 따라 매우 다르지만 보통 3년 이상이 걸립니다. 그러므로, 본인이 특별히 뛰어나거나 해서 박사를 엄청 빨리 졸업하지 않는 이상 박사학위 도중에 전문연 복무가 끝나는 것이죠. 과거의 5년 복무기간이었다면 졸업하고 나서도 아직 복무기간이 남은 사람이 많았을 것이고, 어딘가 다른곳에 들어가서 복무를 마저 해야했을 것입니다 (사실 군대라고 할 수 없는 그냥 사회에서 일하는 것이지만).


따라서 현재 이 전문연이라는 제도는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국내 이공계 대학원에 진학하는 큰 유인책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외국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한 사람도 병역해결을 위해 국내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원래 유학을 생각한다면 현역으로 짧게 병역을 미리 해결하고 가는 것이 더 일반적이고 개인적으로도 낫다고 봅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 상황이 여의치 않을 수도 있고, 그냥 군대가 가기 싫을 수도 있죠. '안가도 된다면 가지 말라'는 말도 있으니.. 제가 함부로 할 소리는 아닙니다만.




간지나는 유학생활이 끝났는데 젠장 군대를 해결하지 못했다! 이공계라면 전문연이 있습니다...



군필인 상태로 박사과정을 하는 것과 전문연 신분으로 박사과정을 하는 것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사실상 아주 조금의 차이밖에 없습니다. 이게 방위산업체 병특하고는 달라서, 연구 분야가 굳이 국방에 연관되야 할 필요도 없고, 애초에 '과학기술, 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명분이므로 해당 연구실에서 하는 연구를 자유롭게 수행할 수 있습니다 (이공계에서 뭘 연구하든 아무튼 과학기술, 산업 발전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한가지 제약사항이 근태 체크입니다. 전문연은 월-금 하루 9시간 이상 근무해야 합니다. 자세한 규정은 (출근 시간 등) 기관 또는 회사에 따라 지방병무청과 협의 하에 정해지는 것이므로 다를 수 있습니다. 외출, 조퇴, 휴가는 당연히 미리 결재를 받는데, 무단으로 결근을 할 경우 하루 연장종사 (복무 만료가 늦춰짐) 처분이 되며, 무단결근이 8일 쌓이게 되면 짤립니다 (현역이면 군대, 4급이면 공익).


근태 체크는 예전에는 그냥 종이 출근부에 수기로 했습니다만, 최근에 출근부를 허위로 작성하고 연구실에 나오지 않다가 적발된 사례들이 나오자 전자출결 시스템을 도입한 곳이 많아졌습니다. 다만 전자출결 시스템을 기관이 자체적으로 구비해야 하기 때문에, 출입증 카드를 찍는 곳도 있고, 인터넷으로 특정 사이트에 들어가서 클릭해야 되는 곳도 있고,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발급받아 찍어야 되는 곳도 있고 다양합니다. 요새는 일반 회사원의 경우도 전자식으로 근태 체크를 많이 하니까, 딱히 전문연이라고 더 힘든 것은 없다고 볼 수 있는데, 단지 학교의 경우 연구실마다 다르지만 출퇴근이 자유로운 편인데 (밤낮이 바뀌어 살기도 하고) 약간의 제한이 있는 것이죠.


또 하나의 제약은 해외여행이 100% 자유롭지 않다는 것입니다. 전문연은 4주훈련 기간을 제외하고는 군인이 아닌 민간인 신분 적용을 받습니다. 그래서 근무지 이탈 이런건 없고 국내에서는 평일에도 휴가를 미리 냈다면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기본적으로는 노동법 적용받으므로 1년에 15일 사용가능) 아무데나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출장이든 여행이든 외국에 나가게 될 경우 미리 소속기관 장의 직인이 찍힌 소정의 서류를 병무청에 제출해서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때 출국날짜와 귀국날짜를 적게 되어 있는데, 한국시간 기준으로 출국날짜보다 1초라도 일찍 나가거나 (ex 전날 밤비행기) 귀국날짜보다 1초라도 늦게 들어오면 짤립니다 (군대감). 특히 귀국날짜보다 늦게 들어오는 것은 그 사유가 천재지변이라고 해도 (ex 폭풍우로 결항) 미리 병무청에 체류기간 연장 신청을 하지 않았다면 봐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출국/귀국 할 날짜보다 앞뒤로 며칠 여유있게 신청을 하는 것을 병무청에서도 권하고, 신고한 날짜보다 먼저 들어오는 것은 공항에서 전산으로 처리가 되므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음날 바로 출근 해야 함...). 귀국날짜를 여유있게 신청해놨으면 비행기가 결항되더라도 한국에 연락해서 조치할 시간이 있겠지요 (테러리스트한테 납치라도 된다면 그것도 못하겠지만... 잘 모르겠네요 그런 경우는).




병무청은 무서운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말한 사항으로 전문연에서 짤리는 사람은 아주 적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더 많이 적발되고 병무청에서도 더 많이 주의를 주는 사항은 '연구 외의 다른 업무를 하지 말 것' 그리고 '다른 영리활동을 하지 말 것'입니다. 어떤 관점에서는 위의 근태나 해외여행 신고제 같은 것보다 이것이 더 큰 제약사항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연구 외 활동은 대학교의 경우 대표적으로 시간강사가 있고, 회사의 경우 연구가 아닌 다른 직무를 (회계든 영업이든 무엇이든) 보는것이 되겠습니다. 이것은 사실 본인의 선택이라기 보다는 강요에 의해 하게 되는 것인데, 지도교수가 시켜서 시간강사를 하는 경우 (또는 자기 경력을 위해서) 사장님이 시켜서 어쩔수 없이 다른 일을 하는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강요에 의해서 했다는 정황이나 증거가 있다고 하더라도 본인이 연구 외 다른 활동을 하게 된 후 바로 (3개월 이내던가) 병무청에 신고하지 않으면 처벌을 면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처벌은 군대 가는 것...


다른 영리활동의 경우도 저녁시간에 과외를 한다거나 하는것도 어떻게 적발이 될 경우 봐줄지 말지의 경계선에 있을 정도로 엄격하게 금지합니다. 만약 근무시간에 다른 회사에서 돈을 받고 한시간 정도 자문을 해주고 왔다, 이런건 바로 편입취소 (짤림) 대상입니다.


자꾸 뭘 위반하면 전문연을 짤릴 수 있다고 언급했는데요, 편입취소 처분을 받게 되면 간단하게 전문연이 되기 이전의 미필 신분으로 되돌아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입영해야 하는데, 만약 신검 결과가 3급 이상이라면 현역 대상자니까, 훈련소부터 다시 가야 합니다. 4주훈련만 받았기 때문에... 4급이라면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해야 합니다.


그리고 불행중 다행(?)으로 지금까지 전문연으로 복무한 기간을 감안해서 군대 복무기간을 깎아줍니다. 하지만, 처음 1년은 안까줍니다. 즉, 전문연 복무한지 1년이 안됐는데 편입취소가 된다면, 쌩으로 군대 가야하는 것입니다. 2년째 부터는, 복무기간에서 1년을 뺀 만큼을 2년으로 나눈 만큼 군복무 한 것으로 쳐줍니다 (계산식이 조금 틀릴 수 있습니다). 만약 전문연 2년하고 짤렸다면, 3년중에 2년 (2/3) 복무했지만 군대는 1/2, 반만 까줍니다. 그러므로 전문연 입장에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편입취소입니다.





그런데 이런것 쯤이야 사회에서 떨어져 2년간 군생활 하는 것에 비하면 정말 꿀이죠. 회사에서 전문연을 할 경우 일반 신입직원과 전문연의 연봉 차이를 크게 두지 않는 것으로 듣기도 해서 (복불복이겠죠), 돈도 군대에 비하면 많이 벌 수 있고요. 그리고 회사가 마음에 안들경우 6개월 내에 다른 병무청 지정기관에 재취업만 할 수 있다면 병무청에 사유를 말하고 때려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최소한 대학원에서는 이런 꿀의 부작용이 좀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이러한 많은 혜택들이 학생들을 대학원에 진학하게 하는 큰 유인책이 되지만, 이런 병역혜택만을 위해서 별 목적의식 없이 (군대에 안가겠다는 목적의식 빼고) 대학원 박사과정에 진학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박사과정은 학점만 채우면 졸업시켜주는 것이 아니고, 소정의 연구성과를 내고 학위논문심사를 통과해야 하는 것인데, 기간 상으로도 실질적 난이도로도 연구가 완전히 주가 됩니다. 그 과정에서 졸업 후 박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어디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훈련받는 것이고, 동시에 성과도 내는 것입니다. 이런건 학점으로 계량이 되는 것도 아니고, 시간을 채웠다고 통과시켜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냥 넋놓고 있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지도교수가 널널하면 더욱더). 또는 졸업 후 취직에 어려움을 겪거나요. 박사 까지 했으니 어디든 들어갈 수 있다기 보다 오히려 그 학위가 오버스펙이 되고, 또한 나이도 5살 이상 먹었기 때문에 얼마 없는 연구직을 놓고 경쟁을 해야 되는 실정이니까요.


쉽게 말해 별생각 없이 군대빼러 왔으니 열심히 안하게 된다는 것인데, 이런 사람이 많으면 전반적인 분위기도 느슨해지고, 연구가 쉬운 일이 아닌 만큼 성과나 본인의 훈련이 잘 안될 수밖에 없겠죠. 이것은 학교 입장에서도 별로 좋은 일이 아니고, 학생 본인에게도 당장 꿀빨아서 좋긴 하지만 인생을 길게 봤을 때 손해일 지도 모르고요. 또한 그런 사람 때문에 조금 성적이 낮지만 열심히 할 의지가 더 있었던 사람이 원하는 대학원에 못들어간 것도 있습니다. 대학원에서 필요한 성실함은 학부때 성적 잘 받기 위해 공부 열심히 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르더라구요. 학교때 공부 잘했던 친구가 사회에서 무조건 성공하지 않듯이.




사진은 해병대 입니다 ㅋㅋㅋㅋ 4주훈련은 전혀 이렇게 멋있지 않습니다. 그래 전문연 4주훈련 사진 따위가 인터넷에 있을리 없지....



마지막으로 전문연 생활 중 가장 큰 행사인 4주 훈련에 대해 말해볼까 합니다. 말이 병역 이행중이지 민간인과 다름없는 3년의 생활 중 그나마 한달이라도 군생활을 약간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죠. 어떤 사람은 연구실 생활이 너무 힘들어 4주훈련 기간동안 아주 편하게 쉬었다고 말하지만, 저는 정말 싫어서 마치 4달 같은 4주였습니다. 전문연 4주훈련은 그때그때 사람 수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전문연끼리 따로 중대를 만들어 (나이를 고려한...) 훈련을 받게 됩니다. 회사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경우엔 30대인 경우도 많고, 건강 문제가 있는 사람의 비율도 높기 때문에 상당히 널널합니다. 마냥 쉬운건 당연히 아니지만 평소에 운동을 전혀 안했던 사람이라도 집중만 하고 있으면 대부분 할 수 있는 수준 (연습용 수류탄 핀을 잃어버린다거나... 이런것만 안하면). 사격예비훈련이 힘들더라고요... 딱딱한데 무릎꿇고 있어서 아픔.


4주훈련의 대상은 공익근무요원, 전문연, 산업기능요원, 공중보건의, 공익법무관 등이 있습니다. 종교행사를 갔었는데, 교회에서 목사아저씨가 "저기 앉아계신 분들은 어디 중대 공중보건의 분들입니다." 그래서 "와 의사들이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애초에 이렇게 끼리끼리 모아서 훈련을 하는 것에서 어차피 부대로 배치되지도 않을건데 빡세게 시키기 보다는 사고 없이 적당히 시키겠다는 의도겠죠. 물론 해당 기수에 매우 전문연이 적은 경우 공익들과 같이 훈련을 받았다는 (문신한 사람들이 많아서 무서웠대요) 경우도 있습니다.


4주훈련은 아무래도 정말 군인으로 일할 사람을 대상으로 하지 않다보니 보급에서는 후순위입니다. 우선 예비군에 입고 가야 하는것 이외의 깔깔이, 활동복 같은건 개인 지급되지 않고 전 기수들이 입었던걸 물려입습니다. 그리고 나갈때 잘 개서 걸어놓고 나옵니다. 저는 팬티도 사이즈가 없다고 3XL이던가 4XL을 줘서 아주 시원하게 보냈습니다. 아무렴 어떤가요. 신발도 거의 나갈 때 다 되서 지급되기 전까지 거기 있는 신발을 빨리 쟁취해서 신어야 합니다. 그래도 근 몇년사이 사정이 더 좋아져서 운동화도 지급되는 모양입니다 (밖에서 신고 다닐 일은 없겠지만...) 그리고 도대체 저는 왜 거기서 신던 양말을 좋다고 가져왔을까요? 진짜 어디 하드코어한 등산 갈때나 신으려나...



이정도로 이야기를 마치려 합니다. 전문연이라는 제도는 참 좋은데, 은근히 알려지지가 않았습니다. 이런게 있는 줄 몰라서 원래 대학원 진학 계획이 있었음에도 군대를 현역으로 갔다온 사람이 있을 정도입니다. BSL의 독자분들 중 병역 문제를 고민하고 계실 분이 얼마나 있을까 싶지만, 누군가에겐 유용한 정보가 되길 바랍니다. ^^




By C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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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재밌어 번역해야만 했던 도시괴담 3개




이전 인터넷 도시괴담 포스팅에서 영어권 인터넷에서 요새 크리피파스타 (Creepypasta) 라고 일컬어지는 괴담들에 대해서 다룬 바 있습니다. 이전 포스팅에서 소개했던 '슬렌더맨' 같은 경우는 어떠한 하나의 괴담이라기 보다는 'Alternate Reality Game (ARG)' 라고 하는 인터넷 게임의 소재에 더 가깝습니다. ARG는 누군가 현실세계에서 어떤 가상의 상황을 가정한 후, 다른 유저들이 그것에 상상을 덧붙여나가는 놀이인데요, 그 형식도 예를 들어 리플을 다는 등의 정해진 방식을 넘어서 이미지, 동영상 시리즈물 까지 다양하게 이루어지는 것이죠. 소위 덕질... 덕질도 전문적으로 하면 직업이 된다나.. 슬렌더맨 관련 유튜브 시리즈 "Marble Hornets" 는 DVD 및 티셔츠 등 각종 merch 까지 출시되었고, 최근 behind the scenes 영상도 나왔습니다. 슬렌더맨을 소재로 한 게임 "Slender: The Eight Pages"의 개발자 Mark J. Hadley 는 게임 개발자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성공들은 저번 AVGN 포스팅에서 소개드린 James Rolfe 와 nerd culture 와도 연관되어있죠.


벌써 이야기가 다른데로 샜는데, 이번 포스팅에서는 저번에 약속드렸던 'Ted the Caver' 및 너무 재밌게 읽어 번역해야만 했던 '1999' 그리고 'My Grandfather Suffered from Dementia'를 소개드리고, 그 외 번역하진 않았지만 인상적인 괴담들을 소개드리려 합니다.


*주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니 번역문 또는 원문을 읽어보신 다음 읽으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1. Ted the Caver



번역 전체 링크


(워낙 길어서 다른 곳에 올렸던 걸 링크로 올립니다. 오유 말고도 다른 곳에도 올렸는데, 오유에 올린 것이 가장 가독성이 좋네요. 한글은 기울임체로 쓰면 너무 읽기가 안좋음...)


Ted the Caver 는 블레어 윗치 (Blair Witch Project) 또는 클로버필드 (Cloverfield) 로 대표되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식의 괴담입니다. 시놉시스를 드리자면, 미국에 사는 'Ted' 라는 동굴등반가가 동료 'B' 와 함께 집 근처 동굴 속에서 벽에 난 구멍을 발견합니다. 구멍에서 불어나오는 바람은 구멍의 뒷쪽 새로운 동굴 통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둘은 구멍을 깎아내 직접 들어가 탐사해보기로 합니다. 하지만 구멍을 넓히는 작업은 고되기 짝이 없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상한 현상들이 발생하기 시작하는데...


이 소위 '페이크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는, 이제는 식상하기까지 한 현대 공포물의 전형 중 하나가 되었고, 특히나 영화가 아닌 이야기 괴담은 대략 절반 이상이 해당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냥 단순한 예를 들어도, "몇 년 전 철수라는 아이가..." 로 시작하는 것 보다는 "10년 전 제가 대전에 처음 왔을 때..." 로 시작하는 것이 훨씬 리얼리티 있고 흥미를 끌죠. 사실 고전 중의 고전 에드가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만 해도 1인칭 시점으로 쓰여졌죠. 1인칭 시점의 공포영화가 등장한지 그리 오래돼지 않았을 뿐이지, 독자의 상상력을 이용할 수 있는 소설에 있어서는 1인칭은 이미 고전적인 것이라는 걸 지금 깨닫게 되네요.


Ted the Caver 는 인터넷에 등장한지 10년이 넘어가는 이야기입니다 (ref). Creepypasta 의 아버지 격인 작품인 것이죠... 실제 이름이 Ted 인 사람이 1999년-2000년 친구 Brad 와 함께 탐험했던 동굴에서의 경험과 찍었던 사진을 바탕으로 2001년에 쓴 소설이죠. 물론 저 이야기에 나오는 이상한 현상들은 지어낸 이야기고요. ^^ 인터넷에 그냥 동굴 탐사 일지를 공유하려 하다가, 무서운 이야기로 각색해보면 어떨까? 해서 탄생한 것입니다. 재밌는 것은 당시에 만들었고 아직도 존재하는 원본 웹사이트의 조악한 디자인이 오히려 더 섬뜩한 느낌을 준다는 것입니다. 2001년이면 블로깅 이라는 개념도 별로 없었을 때고, Wordpress 같이 깔끔한 페이지를 쉽게 만드는 툴 같은것도 없었을 시절이니... 마치 똑같은 영상이라도 심하게 열화된 VHS 영상으로 보면 뭔가 무섭고, 인터넷에 심령사진이라고 돌아다니는 것도 죄다 저화질인 이유도 그런 것이겠죠.


인터넷에서 상당히 화제가 되었던 이 이야기는, 의외의 논란에 휘말리게 됩니다. 인터넷에 Thomas Lera 라는 사람이 쓴 것으로 보이는 한 소설이 pdf 파일로 올라오게 되는데요 (문제의 소), 이 소설은 모든 설정에 있어 Ted the Caver 와 거의 똑같습니다. 친구 둘이서 동굴에 내려갔는 벽에 무슨 구멍이 있어서 팠더니 어쩌구저쩌구... 으아악 살려줘 도망가자 으어어어어 이런 내용입니다. pdf 파일에 보면 Thomas Lera 1987-2004 라고 되어 있는데, 이 글이 1987년에 쓰였다는 인상을 주죠. 그래서 Ted the Caver 가 그 글을 베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그 의혹에 결국 Ted the Caver 의 저자가 한 블로그를 통하여 자신이 베낀 것이 아니라는 변호를 하게 되었습니다. Thomas Lera 라는 사람은 검색해도 별로 나오지 않는 것을 보아 프로 작가도 아닌 것 같고요.


위 논쟁에 대한 링크들:

https://grahamjw.wordpress.com/2009/09/17/ted-the-caver-mystery/

http://www.unexplained-mysteries.com/forum/index.php?showtopic=211967

http://boards.straightdope.com/sdmb/showthread.php?t=490085


Ted the Caver 는 영화로도 제작되었습니다. 'Living Dark' 라는 제목으로.



휴... 슬프게도 트레일러만 봐도 아주 구린 영화로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원작자한테 저작권료 주긴 했을까요?



포스터는 그럴싸 한데... ㅠㅠ


아마도 Ted the Caver 는 여태까지 나온 Creepypasta 중 가장 파급력이 컸던 것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거의 슬렌더맨 만큼이나 말이죠. 이게 미국 동굴투어 산업에 어떤 영향을 줬을까나...




2. 1999



번역 전체 링크


(역시 너무 길어서 다른 곳에 올린 것을 링크합니다.)


'1999'는 'Ted the Caver'와 마찬가지로 인터넷 블로그의 형식을 빌린 이야기입니다. '1999'는 흥미롭게도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0대 초반의 대학생인 '엘리엇'이라는 사람이 어렸을 적 TV에서 보았던 이상한 프로그램들이 나오는 채널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집에 있던 고물 TV로만 잡히는 데다가, 방송 시간도 아침 9시에서 오후 4시 정도까지로 제한적이고, 프로그램들의 퀄리티도 하나같이 아주 조악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 채널에 등장하는 '곰 아저씨'가 방송에 출연할 어린이들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엘리엇은 아버지와 함께 광고에 나온 그 주소로 가게 되는데, 도저히 방송국이라고 볼 수 없는 쓰러져가는 집에는 곰 아저씨가 아닌 경찰들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 기억에서 잊혀졌던 채널이 문득 다시 생각난 엘리엇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궁금하여 스스로 탐사를 시작하고, 그 경과를 블로그에 올리게 됩니다.


엘리엇이 올린 블로그 포스팅으로 이루어진 글은 앞으로 또 업데이트 될지도 모른다는 여지를 남기고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Marble Hornets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어떤 완결이 난 것이 아니라 이런 식의 '현재진행형'인 이야기는 독자와의 상호작용이 가능한 인터넷이라는 매체에서만 가능한 새로운 포맷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읽고 나서 '그래서 어떻게 된거지? 빨리 다음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죠. 마치 드라마를 본방 사수하며 다음주를 기다리게 되는 것처럼 ^^


게다가 이런 형식은 마치 'X 닦다가 만듯 한' 찝찝한 엔딩으로 (=오픈 엔딩) 끝나더라도 아직 완결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용서가 어느정도 된다고 할까요? 갑자기 뚝 끊기는 이야기가 오히려 리얼리티를 배가시키는 면도 있습니다. Marble Hornets 의 경우 사실 시리즈를 완결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끝으로 갈 수록 뭔가 전개가 억지스러워지는 면을 보이기도 했는데, 역시 모든 창작은 끝마무리가 제일 어렵고 중요하다는 점에서 이런 '블로깅' 형식은 전문 작가가 아닌 인터넷 작가들에게 좋은 형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승-전 에서 확 끝내버리는 것이죠.



'1999' 역시 다른 컨텐츠를 파생시켰습니다. Slenderman 이나 Ted the Caver 만큼은 아니지만, 자기도 어렸을 때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서만 볼 수 있었다는 'Caledon Local 21' 이라는 그 괴상한 채널을 보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고 ^^ 위 영상같이 당시 방영되었던 에피소드를 녹화했다면서 유튜브에 올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영상들을 훑어봤습니다만, 솔직히 재밌진 않네요. '1999'에서 묘사하는 것과도 많이 다르고.



유명한 북미의 인터넷 괴담들을 보다보면, 이것과 같이 '어렸을 적 보았던 프로그램'을 소재로 삼는 괴담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이 포스팅 맨 위에 있는 흑화한 징징이 그림은 'Squidward's Suicide' 라는 괴담에 나오는 것입니다. 이 괴담의 작성자는 2005년 스폰지밥의 제작사에 인턴으로 근무하던 중, 다음 시즌을 위한 미완성 에피소드를 모니터하게 되었는데, 내용은 대충 이렇습니다.



징징이가 클라리넷 콘서트를 했는데, 관객들이 심하게 야유를 합니다. 다음 장면은 징징이가 자기 집 침대에 앉아있는데, 숲 속에서 불어오는 듯한 바람 소리 같은 소음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소리도 들어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징징이가 흐느끼는 장면이 천천히 나오는데, 순간적으로 다른 그림이 한 프레임 지나갔습니다. 그 프레임을 돌려서 보니 난자당한 소년의 시체였습니다. 잠시 후 또 이상한 프레임이 지나가서 멈춰보니 이번에는 비슷하게 난자당한 소녀의 시체였습니다. 섬뜩한 것은 그 사진에 사진을 찍은 것으로 보이는 사람의 그림자도 나와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영상의 소리에 "Do it" 이라는 말 소리가 반복적으로 섞여 나오기 시작했고, 이제 징징이는 피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입으로 샷건을 가져갑니다. 방금 나왔던 난자당한 어린이 시체와 비슷한 모습이 된 징징이를 보여주며 영상은 끝납니다.


작성자는 이 일에 대한 회사 및 경찰 차원의 수사가 있었으나 (누가 이런 영상을 만들었는지, 살해당한 것으로 보이는 아이들은 누구인지)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상태라고 합니다.



또 다른 예로 'Candle Cove' 라는 괴담이 있습니다. 이건 아예 이야기라기 보다는 Nostalgia Forum 이라는 게시판에서 몇 명의 유저가 리플로 대화를 나누는 건데요 (상당히 짧음), 어렸을 때 보았던 Candle Cove 라는 (Sesame Street 스타일의) 인형극 프로그램을 기억하느냐는 내용입니다.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의 묻혀있던 기억도 되살아나게 되는데, 어린이 인형극이라고 보기에는 이상한 점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어렴풋이 기억나는 에피소드로 에피소드 내내 주인공 여자아이는 울고 있는데 나머지 캐릭터들이 전부 발작을 일으키며 비명을 질러댔다고 합니다.


Candle Cove 도 상당히 유명한 creepypasta 고, 유튜브에 그 비명 지르는 에피소드라고 주장하는 영상도 올라와 있습니다.




이런 괴담들은 잔혹동화들을 연상시키는데요, 어렸을 때 동화라고 읽었던 것들이 사실은 아주 무섭고 잔인한 내용이라는 것 말이죠. 자신의 어렸을 적 추억이 사실은 설명할 수 없는 끔찍한 미스터리의 일부라는 생각은 막 깜짝 놀라게 무섭진 않더라도 그야말로 'disturbing', 뭔가 섬뜩하게 만듭니다.




3. My Grandfather Suffered from Dementia


'할아버지께서는 치매를 앓으셨다' 라는 제목으로 번역한 단편 소설입니다. WriterJosh 라는 분이 지은 것인데, 나온지 얼마 되지 않은 딱히 유명하지 않은 것입니다만, 많은 사람들이 겪었을 법한 집안 어른의 치매를 소재로 삼아 자전적으로 잘 쓴, 슬프면서도 마지막에 소름이 확 돋는 작품입니다.



- 번역문


할아버지께서는 향년 97세에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께서는 세 자식들과 멀리 떨어져 사셨다. 할머니께서는 내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고, 몇 년 후 할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재혼했는데, 그 여자는 자기 아들들이 살고 있는 서부로 이사 가기를 요구했다. 그 분은 참 대단한 분이었고, 우리는 그 분을 헤스터 할머니라고 불렀다. 할아버지께서 그 분을 어떻게 견디고 사셨는지 대단할 뿐이었다. 훗날 생각해보니 어쩌면 견디지 못하셨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할아버지께서 언제 치매에 걸리셨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아마도 우리가 알아챘을 때보다 수 년 전이었겠지. 할아버지는 누구랑 대화를 했고, 어디를 갔고, 여행을 갔다는 등의 이야기를 해주시곤 했다. 수 년 후 할아버지께서 치매에 걸리셨다는 것을 알고 나서 그 대화나 여행은 사실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었음을 깨달았다. 동부의 본가로 돌아오시기 대략 15년 전부터 하셨던 이야기들은 전부 거짓 기억이었을 지도 모른다. 우리는 알 길이 없을 수 밖에 없다. 헤스터 할머니는 거의 우리와 연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제정신이 아님을 처음 짐작한 것은 아마도 동부의 부모님 댁으로 돌아오시고 몇 주가 지나서였을 것이다. 대부분의 가족이 근처에 모여 살고 있었다. 아내와 나, 그리고 사촌 몇 명은 도시의 남쪽 지역에 살고 있었고, 아버지와 고모 두 분은 우리 집에서 차로 왔다 갔다 할 만한 거리의 북쪽 지역에 계셨다. 고종 사촌 몇 명과 내 남동생은 다른 곳에 살고 있었지만, 이미 할아버지께서 심심하시지 않을 정도로 근처에 충분히 많은 자식들이 있었다. 이따금씩 부모님 댁에 모두 모이면 할아버지께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시거나 주무시러 들어가시곤 했다.

 

어느 날 오후, 내 딸 브리앤이 (당시 10대 후반이었다) 조카들과 논 후 집으로 돌아와서 테이블에 앉았다. 할아버지께선 거기서 졸고 계시다, 잠에서 깨서 증손녀에게 미소 지으셨다.

 

, 안녕 클라우디아!” 라고 밝게 인사하시는 것이었다. 클라우디아는 막내 고모 이름이다.

 

할아버지, 전 브리앤이에요.”

 

아냐.” 할아버지께선 거의 모욕을 당했다는 듯이 말하셨다. “클라우디아, 넌 내 딸이야.”

 

그 달 말 즈음, 할아버지께서는 고모와 삼촌들을 모아놓고 헤스터 할머니와의 삶이 어떻게 견디기 힘들어져 여기로 이사 오게 되었는지에 대해 말씀하셨다. “하나님께 기도 드렸단다. 그랬더니 마틴이 내 곁에 있었지.” 마틴은 내 아버지다. 콜로라도의 산 속 그 작고 추운 집으로 할아버지를 모시러 가시던 아버지가 생각났다. 그러나 아버지는 무슨 계시를 받고 간 것이 아니었다. 할아버지께서 전날 밤 아버지에게 전화하셔서 제발 데려가 달라고 애원하셨기 때문에 간 것이었다.

 

우리 모두는 할아버지를 사랑했지만, 할아버지를 돌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일례로, 할아버지께서는 스스로를 앞날이 창창한 젊은 미혼 남자로 착각하고 계셨고, 앞날을 함께할 반려자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셨다. 젊은 여성과 잠시라도 얘기하게 되면, 본인에게 반했다고 믿으셔서는 자기의 신부가 될지도 모른다고 여기셨다. 심지어는 그 당시 헤스터 할머니도 살아있었다. 할아버지는 헤스터 할머니도 완전히 잊어버리신 것이다.

 

할아버지가 접근한 대상 중에는 우리 어머니도 있었고, 내 사촌 두 명과 내 아내도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할아버지께서 할 수 있는 거라곤 말 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런 주제로 넘어가기 전에 공손하게 말을 돌리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당신께서 산책을 나가시거나 아버지의 차를 운전할 수 있다고 결정 하시면서 상황은 나빠지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할아버지께서 혼자 산책 나가지 못하시도록 했지만, 가끔 아버지가 출타 중이고 어머니가 지하실에 있으면 몰래 나가시곤 했다. 할아버지는 항상 보행 보조기가 있어야 했고, 계단은 절대 오르내릴 수 없었다. 하지만 절대 누구한테도 이걸 인정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 결과 여러 번 넘어지시고 말았다. 또한 본인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또는 집이 어디인지 자주 헷갈리셨다. 할아버지의 산책 목적은 때때로 할아버지께서 아버지와 고모들을 키우셨던 옛 집을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집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없어졌다. 아버지는 경찰서에서 할아버지를 모셔왔는데, 순경들이 딱 봐도 길을 잃어 헤매고 있는 할아버지를 모셔온 것이다.

 

아버지의 차를 운전하시려 했던 것은 그 이후의 일이다. 할아버지께서는 전에 길을 잃어버린 이유가 걸어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셨다. 용케도 사이드 브레이크를 푸셨고, 차는 집 앞의 가파른 내리막길을 굴러가 울타리를 박았다. 다치시진 않았고 차나 울타리의 손상도 별로 없었지만, 그 사건 이후 부모님은 할아버지를 양로원에 모셔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로 할아버지의 병세는 더욱 심각해졌다.

 

아버지는 일주일에 세 번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고모들이 몇 번이나 할아버지를 찾아갔는지는 모르겠다. 찾아가보긴 했을까. 나는 가족 모임이 있을 때만 가는 편이었는데, 할아버지께서는 나를 점점 더 못 알아보시는 것 같았다. 미소 지으시며 반겨주셨지만 나를 처음 만난 사람 취급하셨다. 할아버지께서는 자기 자녀에 대해 말해주시며, 그들을 어린 아이들로 묘사하셨다. 심지어 할아버지께서 이 늙은 사람들과 양로원에 머무는 동안 할아버지 자식들을 돌봐주고 있는 친구까지 머릿속에서 지어내셨다. 그 때 할아버지는 93세였다. 양로원의 다른 어르신들과 비교해도 할아버지는 무척 연로하신 편이었다. 그럼에도 그 분들이 늙은 사람들이었고, 할아버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되었다는 표현은, 할아버지께서 변하셨다는 뜻이다. 잘못된 기억들이나, 자신이 늙었다고 인정하지 않는 것, 여자들을 꼬시려 한다거나, 자기 자식들이 장성했고 손자에 증손자까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은 할아버지께서 이미 80대 후반부터 수 년간 하셨던 것들이다.

 

그래도 난폭하셨던 적은 없었다. 어느 날 밤 그것이 바뀌었다. 요양원에서 아버지에게 어서 와달라는 전화가 왔다. 할아버지께서 엉뚱한 방으로 들어갔다 나오시면서, 소리를 지르며 보행 보조기를 높이 들었다 땅에 내리치셨고, 할아버지를 진정시키려는 사람들에게 그걸 휘두르셨다고 한다. 할아버지께서는 직원들이 자기 물건을 훔쳤다고 하셨다. 내지를 수 있는 최대의 목소리로 내놔! 내놔!” 라고 고함치셨다.

 

나는 그때 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상상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말년의 할아버지께서는 웃으실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큰 소리를 내는 일이 없으셨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직원들이 할아버지를 방에 모셔다 드린 후였고, 할아버지는 노여움이 좀 풀리신 상태였다고 한다. 조금만. 아버지가 방에 들어갔을 때, 할아버지는 영양제 캔이 든 양말로 아버지의 머리를 가격할 뻔 했다. 할아버지께서는 사과하시며 (아버지는 할아버지께서 알아보시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 도둑놈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셨다. “어떤 놈이 내 물건을 훔치고 날 죽이려 했어.” 라고 설명하셨다. 영양제 캔이 든 양말은 도둑을 쫓아내기 위한 무기였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물건을 돌려주러 온 사람들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그 친구들이 물건들을 전부 원위치에 잘 갖다 놨어.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그날 밤 할아버지께서는 그 도둑 때문에 플로렌스가 얼마나 겁에 질렸었는지 아버지에게 설명하셨다. 그녀가 그 일을 겪어야만 했던 것을 매우 싫어하셨다. 플로렌스는 내가 여섯 살 때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다.

 

플로렌스가 어딘가로 가버려 그녀를 찾으러 갔을 때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할아버지께서는 말을 마치셨다. “그들이 그녀가 죽었다고 했지. 언젠가 나를 찾으러도 올 거야. 그 때 나는 죽어 있겠지.” 이것은 아버지에게 정신적인 충격을 주었다. 이전에 할아버지께서는 절대 단 한 번도 당신의 죽음, 고령, 또는 앞으로 길어야 몇 년 이상 밖에 살지 못하실 거라는 사실을 인정하신 적이 없으셨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에게 있어 늙는 것, 그리고 죽음은 다른 사람에게나 일어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때 할아버지는 죽음이 앞으로 다가왔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이후로도 할아버지께서는 그 도둑을 언급하셨다. 이름도 붙이셨다. 찰리 로즌(Charlie Rosen)이라고.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내셔서는 이름까지 붙이시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옛날 자기 자식들을 돌봐주던 친구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시는 분인데. 사실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찰리 로즌은 할아버지의 자식들을 납치하고, 할머니를 죽였고, 콜로라도의 집에 주기적으로 찾아와 할아버지를 조롱하고 폭행했고, 심지어는 헤스터 할머니와 자기가 같이 자는 사이라고 선언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이제 그 할머니가 생각났는지, 헤스터와 찰리가 작당하여 자기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었다고 확신하고 계셨다.

 

돌아가시기 6개월 전부터 할아버지는 점점 더 동요했다. 아버지는 요양원에 갈 때 마다 찰리라는 이름을 들어야 했고, 할아버지의 난동도 다시 시작되었다.

 

한 번은, 아버지를 보고 찰리라고 하며 아버지를 공격하셨다. 그 후로 아버지는 일주일에 한 번만 갔고 가서도 오래 있지 않았다. 난 딱 한번 아버지와 함께 갔었다. 그때 보았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생전의 마지막 모습이었고, 난 그것을 절대로 잊을 수가 없다.

 

오늘도 찰리가 여기 왔었다.” 우리가 오자마자 할아버지께서 말하셨다. “나는 더 이상 이 방을 나갈 수가 없대. 그 놈이 날 여기에 가뒀어.”

 

아버지, 여기가 아버지가 사는 곳이에요.” 아버지는 설명하려 했다. “보세요. 여기 어머니 사진. 찰리가 왜 아버지가 이걸 갖고 있게 뒀겠어요?”

 

그 놈은 네 어미를 죽였어. 자고 있는 네 엄마를 살해했다.”

 

어머니는 뇌동맥류가 있었잖아요. 아버지하고 저하고 그 기계 플러그를 뽑기로 같이 결정했었잖아요. 어머니는 주무시다 돌아가셨지만, 살해당하신 게 아니에요.”

 

아니야. 아니야. 그건 찰리였다.” 할아버지께서는 동요하시지도 않은 채 말씀하셨다. 지금 하시는 말씀이 완전히 사실이라는 듯 완고한 목소리로. “그 놈이 네 엄마를 독살했다. 네 엄마의 머리에 문제가 생기도록. 그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깨달았다. 그 놈이 나에게 헤스터를 소개시켜준 이후에. 내가 헤스터와 결혼하도록 사기를 쳤지. 찰리 그 놈은 날 노리는 악마야.”

 

아버지는 결국 질리고 말았다. “찰리 같은 건 없어요!” 거의 소리치듯 말했다. 치매에 걸린 사람에게 틀린 점을 지적하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 그 사람을 더욱 혼란에 빠지게 하고 언짢게 만들 뿐이다. 그러나 그 순간 아버지는 이것을 잊어버렸다. “찰리는 아버지가 만들어낸 사람이에요! 어머니는 자연사했고, 아버지가 어머니 돌아가시고 몇 년 있다가 커피숍에서 헤스터를 만났잖아요! 그리고 헤스터가 착한 여자는 아니었지만 바람은 피우지 않았다고요! 제발 찰리 얘기 좀 그만해요!”

 

오 하나님 아버지.” 할아버지께서 말하셨다. “그 놈이 너도 조종하고 있구나. 그런 말을 하게 만들었어. 너도 한 패야!”

 

아 할아버지,” 내가 말했다. “체커 한 판 하실까요?” 대개 할아버지께서는 체커를 좋아하셨다.

 

그 놈의 ㅈ같은 체커 따위 안 해!” 할아버지가 고함쳤다. 할아버지가 날 때렸더라도 더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할아버지께서는 평생 비속어를 쓰지 않으셨다. 그런 건 나쁜 단어라고 하시며, 나쁜 사람들이나 쓰는 말이라고 하셨다. “너랑은 안 해! 그 놈하고는 안 해! 찰리 로즌의 악마 졸개들! 그 놈은 매일 내게 오지. 플로렌스에 대해 말해. 날 조롱해. 내 생각을 읽어서 그 것들을 뺏어가 버리지. 그러고는 새로운 생각을 집어넣어. 더 나쁜 것으로.그 놈은 자기가 내 새끼들을 어떻게 강간하는지 말해. 그 놈과 헤스터가 걔들을 어떻게 굶기고 지하실에 가둬놓는지 말이야. 그 놈을 막을 수가 없어!그 놈은 내 머릿속으로 들어올 수 있어! 날 조종해!”

 

우리는 작별인사도 하지 못한 채 나와야 했다.

 

집으로 오는 길, 난 거의 울고 싶었다. 그렇게 친절하고 상냥했던 분이 미쳐 날뛰고 난동을 부리는 미치광이로서 생을 마감하셔야 한다니. 이건 옳지 않아. 불공평해. 도대체 이 찰리라는 것은 어떤 괴물인 걸까?

 

그 생각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순간 찰리가 실재한다고 받아들였던 것이다. 머리를 흔들고 다른 주제에 대해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찰리의 허상이 머릿속에서 생겨나고 있었다. 이미 수 개월 전 할아버지께서 처음으로 그에 대해 말하셨을 때부터. 지금에서야 깨달았는데, 할아버지께서 그 악마 같은 사람을 언급하실 때 마다 나는 마음 속으로 그 사람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실제로 만났던 사람의 기억만큼이나 그를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10대 시절 콜로라도의 산 속 그 작은 집에 마지막으로 할아버지를 뵈러 갔을 때를 생각했다. 그 작은 원형 식탁에 앉아 헤스터 할머니가 만들어준 먹을 수도 없는 질척거리는 이상한 음식을 먹는데, 어떤 남자가 부엌 구석에 서서 우리가 그것을 먹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키가 크고 길쭉한 체형의 남자의 날카로워 보이는 뼈를 가죽 같은 피부가 팽팽히 감싸고 있었고, 근육은 힘줄이 불거져 있었다. 덥수룩한 회색 머리칼이 늘어져 그의 얼굴의 윗부분을 가렸고, 입의 미소는 턱을 가로질러 마치 칼로 그어놓은 것 같았다.

 

결혼식을 떠올렸다. 난 열두 살이었다. 헤스터 할머니를 처음 만났다. 그리고 똑같은 남자가 헤스터의 뒤에 서있었다. 할아버지께서 계신 양로원에서의 가족 모임을 떠올렸다. 복도에서 그 남자를 지나치지 않았었나?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이것들은 그저 할아버지께서 실존하지 않는 그 수상한 인물을 언급하실 때 마다 내가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뇌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다. 때론 엉뚱한 사람을 기억 속에 집어넣을 수 있는데, 당신이 단지 무의식적으로 엉뚱한 사람들을 기억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미친 것은 아니다. 그냥 뇌가 당신에게 부리는 농간 중 하나인 것이다. 할아버지께서는 어떤 사람을 만들어내서 그 사람에 대해 대단한 확신을 가지고 말씀하셨다. 마치 찰리가 실제라는 듯이. 그래서 내 정신은 찰리 로즌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찰리 로즌은 존재하지 않는다.

 

할아버지께서는 두 달 후 돌아가셨다. 장례식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난다. 아직도 그 기억에 식은땀을 흘리며 밤에 잠에서 깬다.

 

처음엔 모든 것이 평범했다. 부모님, 고모와 삼촌들, 아내와 나, 그리고 우리 아이들, 동생과 제수씨, 그리고 조카, 사촌들, 사촌들의 배우자들과 자식들. 아주 오랜만에 모두 한 지붕 아래 모였다. 아무도 빠지지 않았다. 다른 지역에 있어 오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사촌 두 명은 어렸을 때 본 이후로 처음 만나는 것이었다. 그들을 만나서 반가웠다.

 

예배도 역시 훌륭했다. 장례 집도는 할아버지께서 계셨던 양로원에서 일하시는 목사님께서 맡아주셨다. 할아버지께선 차분하고, 평온하며, 온전해 보이셨다. 생의 마지막 몇 달 간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내 스스로도 차분해짐을 느꼈다. 할아버지는 이제 당신께서 계셔야 할 곳으로 가셨다. 스스로의 악마가 불에 타고, 퇴화하는 뇌도 더 이상 영향을 주지 못하는 그곳으로.

 

그리고 우리는 묘지로 향했다. 관이 내려졌다. 우리는 모두 관 위에 흙을 한 줌씩 뿌리고 차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토장이(무덤 파는 사람)가 그늘 속에서 나와 나머지 흙을 삽으로 푸기 시작했다. 그의 작업복에 붙어 있는 명찰에 새겨진 이름을 간신히 읽을 수 있었다. “C. Rose” 또는 “C. Risen”처럼 보였다. 또는... 아니. 그럴 리가 없다.

 

그는 키가 크고, 길쭉한 체형, 가죽 같은 피부, 날카로워 보이는 골격, 힘줄이 불거진 근육, 긴 회색 머리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 미소. 그 미소는 지금도 내게 악몽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이 유령이 할아버지의 관 위로 흙을 한 삽 한 삽 뿌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는 웃고 있었다. 부드럽게, 작은 소리로. 그러나 그렇게 잔인한 웃음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오늘 이 모든 일을 적어야 할 것 같았다.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 내가 모든 것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오늘 아버지가 내게 전화해서 불평하시길, 찰리가 아버지 집을 차로 지나치며 창문으로 집 안을 들여다 보았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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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와 슬픔은 수많은 작품에서 엮이는 감정이죠. 특히나 동양권 괴담의 경우, 억울하고 안타까운 사연으로 죽게 된 사람이 귀신이 되어 사람들을 공격하는데, 주인공이 그 원한을 어떻게든 풀어주니까 귀신이 없어졌다 이런 스토리가 아주 클리셰 중 클리셰죠 (전설의 고향ㅋ). 그리고 마지막에 그 귀신이 생전에 겪었던 일들이 쭉 보여지면서 '정말 불쌍한 일을 당했구나 ㅠㅠ' 하게 되는.. 꼭 이렇게 대놓고 하지 않더라도, 공포 장르에서는 인간이 가장 무서워하는 '죽음'이 등장하기 마련인데, '죽음'은 당사자에게는 공포지만 당사자 주변의 사람들에게는 슬픈 일이니까요.


서양 공포물에서는 원래 이런 정서보다는 그냥 우악스러운 살인마 또는 악령에 대한 무서움 자체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보는데, 그래서 슬래셔, 좀비물 같은 것들이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것은 있지만 사실 막 무섭고 그렇진 않죠.. (코미디 패러디물이 많아서 그런것도 있지만) 오컬트물 같은 경우도 기독교적인 그냥 이유를 알 수 없는 절대 악을 소재로 하기 때문에, 역시 큰 감흥을 주기 어렵습니다. 깜짝 놀라게 하는것도 어디까지나 시각적 청각적 효과로나 가능한 것이지, 글에서는 불가능하죠.


이 작품은 슬픔과 공포가 잘 배합되어 있습니다. 특히나 할아버지나 할머니께서 치매에 걸리셔서 기억을 잃어버리시고, 급기야는 자신마저 알아보지 못하는 경험을 하신 적이 있다면 더욱 와닿겠죠. 그것에 느닷없이 할아버지 말년의 망상증이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것이라는 반전... 마스터피스라고 봅니다.



앞으로도 재밌는 작품을 만나게 되면 부족한 실력이지만 번역을 계속 해볼 생각입니다. 다음에 또 재밌는 이야기가 있으면 소개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긴 포스팅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By C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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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ssacre (Angry Video Game Nerd)






혹시 Angry Video Game Nerd 라고 들어보셨나요? AVGN 이라고 흔히 줄여부르는 이 인터넷 시리즈이자 캐릭터 이름은 한국어로 굳이 직역하자면 '화난 게임덕후' 정도가 되겠습니다. AVGN은 2004년 (10년도 더 전이군요) 유튜브에 조용히 올라온 "캐슬베니아 2"라는 게임에 대한 리뷰로 시작됩니다. "캐슬베니아" 시리즈는 우리나라와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권에서는 "악마성 드라큘라" 시리즈로 발매된 패미콤(닌텐도) 고전게임인데요, NPC에게서 아이템을 사야 진행할 수 있는 식의 RPG 요소가 시도된 의미있는 게임이지만 지나치게 높은 난이도와 게임진행에 불편함만 초래하는 실수적 요소들이 많아서 욕도 많이 먹었던 게임입니다 (ref). 게임을 리뷰한다는 것은 별로 색다를 것도 없는것인데, 이 리뷰는 지금까지 59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습니다.




"This game sucks."


"This game sucks." 하하하. 이 리뷰는 9분 26초 동안 이 게임을 까대기만 합니다. 보는 사람이 같이 암걸릴 정도로, 이 게임은 정말 말도 안되는 요소들로 가득합니다. 낮밤이 바뀔때 마다 게임이 10초동안 정지되고, NPC는 게임진행에 혼란을 주는 말만하고, 공략 없으면 절대 못지나가는 지점이 있는가 하면, 한번만 죽으면 돈이 0으로 리셋되고, 그에 비해 말도 안되게 쉬운 끝판왕 등. 2000년대에 이런 옛날 오락기 게임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매니아들 사이에서 이 영상이 유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유튜브 계정에 두번째 영상이 올라옵니다.



"What were they thinking?"


"지킬 박사와 하이드" 라는 게임이 있는데, 역시 역대 최악의 괴작으로 손꼽히는 게임입니다. 창의력을 발휘해 새로운 개념의 게임플레이를 만들어보고자 했지만 제대로 실패... 이 리뷰(?)에 등장하는 흰색 셔츠를 입고 롤링락 맥주를 마시는 겜덕이 Angry Video Game Nerd 입니다. 훗날 팬들과의 질문에 답하며 이 영상의 제작자이자 AVGN을 연기(?)하는 James Rolfe 는 처음에 그냥 심심해서 만들어본 영상이 (물론 이 괴작들에 대한 증오심에 비롯하여) 이렇게 시리즈가 되고 캐릭터가 될 줄은 몰랐다고 합니다.


세 번째 "가라데 키드" 게임 리뷰에서 처음으로 "Angry Video Game Nerd" 라는 문구가 들어가게 되며, 전문적으로 거지같은 고전게임들을 리뷰(=욕)하게 됩니다. 실제로도 고전게임의 대단한 매니아이자 수집가라 자기 집 지하실에 수천개의 타이틀을 전시해놓고 있습니다. 3편부터 AVGN의 포맷이 정립되게 됩니다. 그 이후로 AVGN 은 현재까지 133편에 달하는 시리즈가 나왔고, 수많은 거지같은 게임들을 리뷰하고 있습니다.




7편 부터는 James Rolfe의 친구 Kyle Justin이 만들어준 중독성있는 로고송 까지 등장합니다.


그런데 시리즈가 거듭될 수록 소재 고갈은 커녕 점점 퀄리티는 높아지고 일반적인 리뷰를 벗어나 스토리까지 들어간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James 의 또다른 친구 Mike Matei가 그려주는 타이틀 카드도 들어가고 말이죠.





"13일의 금요일"과 "나이트메어" 편에서는 영화 원작의 악당 제이슨과 프레디가 등장합니다. 제이슨이 강제로 게임을 하게 시키자 AVGN의 반응이 더 웃깁니다. "차라리 죽여주세요." 연출이나 특수효과는 유치뽕짝하기 짝이 없지만, 극 저예산 영화에나 나올것 같은 장면들이 거지같은 게임과 어우러져 오히려 재밌습니다.




ScrewAttack 이라는 게임전문 인터넷 매체에 연재하기 시작한 이후로 퀄리티는 더 높아져 "아담스 패밀리" 에피소드에서는 꽤 그럴싸한 오프닝까지 등장합니다.



고전 게임 이외에도 망한 게임콘솔(재규어 같은거)에 대한 리뷰도 있고, 게임큐브나 PS1 게임에 대한 리뷰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제임스의 다른 프로젝트들 때문에 AVGN의 업데이트는 매우 가끔만 이루어지는 상태입니다.


아무튼, AVGN이 유명세를 타면서, Jame Rolfe도 같이 유명세를 탔는데, 원래 단순한 게임덕후가 아니라 정말로 영상제작과 영화를 전공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Cinemassacre 라는 사이트가 알려지기 시작했죠. Cinemassacre 는 James Rolfe와 Mike Matei가 만든 영화 프로덕션으로, 그 어떤 값비싼 테크닉이나 장비를 배제하고 초저예산 영화제작만을 추구하는 곳입니다 (ref). 고전 공포영화 및 B급 이하 영화들, 그리고 고전게임, 보드게임들에 미쳐있는 친구들이죠. HARDCORE & DIY!


AVGN이 만들어지기 전에도 James 는 초등학생때부터 생일선물로 받은 캠코더로 영화를 찍어왔고, 그 퀄리티야 어쨌든 뭔가 만들어보고자 하는 열정 하나만은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만들었던 습작 내지 필모그래피(?)만 수십개에 달합니다 (ref). AVGN 시리즈에서 볼 수 있는 재밌는 연출이나 가성비 뛰어난 특수효과들은 전부 이런 습작들에서 얻어진 노하우인 것이죠.


Cinemassacre 에서 제공하는 AVGN 이외의 다른 시리즈들은 Board James (보드게임 리뷰), James and Mike Mondays (매주 월요일 올라오는 게임플레이 및 코멘터리), Monster Madness (할로윈 시즌에 매일 하나씩 올라오는 고전 공포영화 리뷰) 등이 있습니다. James 가 바쁠때 Mike 가 혼자 만드는 게임 리뷰들도 있죠 (여기선 Wii 같은 나름 최신 콘솔 게임들도 다룹니다).




워... 쩔긴 쩌는데 뭐이렇게 복잡해... 그냥 부루마불이나 할래...


http://cinemassacre.com/2014/10/25/it-1990/


Monster Madness 는 유튜브에는 없고 cinemassacre.com 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http://cinemassacre.com/2015/03/13/jason-x-2001/


올해는 13일의 금요일이 3번이나 있다고 13일의 금요일이 있는 주 매일 하나씩 "13일의 금요일" 시리즈 리뷰를 해줍니다. 시리즈의 가장 최근작 개막장 "Jason X" 리뷰...



여러가지 프로젝트가 있지만, 역시 Cinemassacre 에서 가장 유명한 건 AVGN 인데요, 팬들에게 '제발 이거 리뷰해달라'고 항상 요청을 받던 괴작 게임이 있었습니다. "E.T." 라고... 사실 저는 소위 오락기 게임이 흥하던 인터넷 나오기 전 80, 90년대에 10대를 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패미콤 게임기를 해보긴 했지만 특정 타이틀을 열심히 한다거나 해본 적이 없고, 이 "E.T." 라는 게임은 닌텐도 패미콤이 나오기도 전 아타리 2600 콘솔 타이틀이었기 때문에 저뿐만 아니라 아무도 모르실것 같아 그 역사를 간략하게 훑어드리면,



 



아타리 2600은 1977년 발매되어 비디오게임 역사에 한 획을 긋게 됩니다. 지금보면 그래픽, 사운드 모두 원시적이기 짝이 없는 뿅뿅 거리는 오락기입니다만 (갤러그 수준), 당시에는 혁명적이었고, 아타리라는 회사를 거대 기업으로 만들게 됩니다. 현재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 없는 브랜드이지만, 기억하시는 분들도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ㅍㅍㅅㅅ에 실린 이 칼럼에 따르면, "아타리는 비디오 게임기를 시작했고, 완성했으며, 마침내 하얗게 불태워 버렸"다고 합니다. "Pong" 이라는 최초의 비디오 게임들중 하나를 개발한 아타리는 스티브 잡스도 한때 일했었다고 하네요.


아타리 2600은 게임 팩이라고 부르는 카트리지를 대중화시킨 최초의 콘솔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콘솔과 게임 타이틀을 분리해서 생각하는게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초창기 게임기들은 기계 자체에 게임이 내장되어 있었는 모양입니다. 제가 어렸을때 '알라딘' 게임기만 해도 내장된 게임이 있었죠 (사실 그게 제일 재밌었음). 하지만 서드파티에서 마음대로 게임 타이틀을 개발할 수 있게 되자, 저예산으로 대충만든 후진 타이틀들이 시장에 범람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있어 게임이 재미있는지 충분히 확인하고 살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 껍데기만 보고 고르는 형편이었던 것입니다. 이후 닌텐도의 경우 이런걸 방지하고자 나름의 인증서를 발행했던 것 같지만 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않아 여전히 쓰레기 같은 게임들이 비싸게 판매되었고, AVGN이 분노의 유년기를 보내게 된 것이죠.....




E. T. 게임 타이틀 화면. 오마이갓.........



아무튼, 승승장구하는 것 같았던 아타리는 재미없는 게임들 때문에 멸망하게 됩니다. 그 중 "E.T."가 결정타였는데, 1982년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해서 "E.T." 영화를 게임화 하기로 합니다. 문제는 개발기간이 너무 촉박했다는 것인데, 5주만에 게임을 개발하라고 한 것입니다... 이 게임의 발매는 결국 대재앙으로 끝났고 (500만장 중 100만장도 팔지 못함), 재고를 감당하지 못해 뉴멕시코 주의 사막에 파묻어버리게 됩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이었는데, 2013년 마이크로소프트 직원들이 땅을 파보았더니 정말로 발굴되서 사실로 밝혀졋습니다 (ref1 ref2). 이 최악의 사태는 주가 폭락으로 이어졌고, 1983년 북미 비디오게임 산업 전체에 위기를 초래하게 됩니다. 이것을 "아타리 쇼크" 라고 합니다. 이후 80년대 중반 닌텐도가 북미 게임시장을 장악함으로써 일본의 시대가 오게 됩니다.


아무튼 이 명실상부 전설적인 최악의 게임을 왜 리뷰하지 않느냐는 팬들의 요청에도 제임스는 E.T.를 리뷰하지 않고 있었는데, 2011년 Indiegogo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에 이런게 올라옵니다.





AVGN을 영화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처음 75000 달러를 목표했던 모금은 팬들의 성원에 325000 달러를 넘게 모으게 되고 (대략 3억 5천쯤 되죠?), DIY식 저예산 제작이 아닌, 프로 스탭들과 장편영화 제작에 착수하게 됩니다. 이 영화의 내용은 음... 겁나 유치하긴 한데 (저는 사서 봤음), 아무튼 "E.T." 게임에 대한 내용이고, 엔딩 크레딧 롤에 리뷰도 나옵니다. 장르는... 어드벤처? 액션? AVGN?




작년에 완성된 이 영화는 진짜로 극장에서 개봉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James Rolfe 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죠. 리뷰는 심지어 팬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굉장히 엇갈렸는데, 아무리 James Rolfe라도 장편영화는 처녀작인 것이나 마찬가지고, 개인이 만든 인터넷 시리즈물과 (소위 UCC) '영화'는 평가 잣대 역시 다르게 적용되기 때문었겠지요. 어쨌거나 이렇게 James Rolfe와 Cinemassacre는 그 어떤 상업적 메이저 미디어 없이 인터넷 만으로 만들어낸 새로운 형태의 (게임계의) 수퍼스타가 되었습니다. 현재는 다양한 게임 컨퍼런스에서 팬미팅을 가지며, Cinemassacre 에는 영화 리뷰와 게임 플레이 영상 위주의 업로드로 약간의 창의적 휴지기(?)를 가지고 있는 듯 합니다.



미국의 다양한 덕후문화 (덕중의 덕은 양덕이라고 했던가요) 덕택인지, 이런 하드코어 DIY식 제작물이 수백만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컬트적 팬덤까지 이루게 된 현상이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합니다. 특히나 게임은 그 유저들이 인터넷 역시 열심히 하는 특성 때문인지, 유튜브에 게임 플레이 (+코멘터리) 영상만으로도 스타가 되고 광고수익만으로 고수익을 올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PewDIePIe, Robbaz 등이 생각납니다. 우리나라에는 대정령이 있죠. 광고수익을 합리적으로 업로더에게 분배해주는 유튜브의 시스템, 그리고 게임 홍보 효과를 노리고 플레이영상 업로드에 그다지 저작권으로 문제삼지 않는 게임회사들 덕분에 이런 사람들이 나오는 것 같기도 합니다.




By C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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