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의 재이주 그리고 한달 후


한국 귀국 후 한달, 피부로 느낀 다섯 가지

2010년 11월 7일 오후 5시 스톡홀름 브로마 공항으로 입국하여 스웨덴 이민 생활을 시작, 2017년 4월 5일 인천공항으로 한국으로의 귀국. 길다면 긴 짧다면 짠 6년반의 스웨덴 생활은 어렸을 적 미국 생활했던 시기와 마찬가지로 정신적 및 육체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한국 재이주 후 한 달 한국에서의 좋았던 점, 불편했던 점을 그 불편함과 익숙함이 자연스러움으로 바뀌기 전 정리하여 공유합니다.


주말에만 탈려고 샀던 스포츠카가 1년 3000킬로도 못타 팔아야 되었던 스웨덴과 비교하면 한국 입국하여 구매한 차가 현재 2500킬로를 달린 것을 생각하면“움직임”자체 또한 달라졌습니다. 또한 스웨덴에서는 필요조차 느낄 수 없을 법한 주위 주차장을 알려주는 앱등은 한국에서는 필수 앱으로 느껴집니다.


1. 엘레베이터부터 막히는 아침


아 이건 많은 분들이 공감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가 복도식의 조금 된 구식의 아파트로 조그만 사이즈의 두 개의 엘레베이터는 아침 출근 시간 또는 저녁 시간대는 엘레베이터 기다리는 시간도 5분까지 걸릴 경우도 있는데요, 집에서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동부간선이 다시 그 “막힘”을 기다리고 있는데요, 처음 몇일은 당연히 고전을 하였고, 나름 데이타를 분석하기 위해 최근 7일간의 출퇴근 시간도 Excel File로 차에 올라탄 시간에서 오피스에 도착한 시간도 기록을 하여보았지만 17킬로미터 남짓거리에 빠르게는 27분에서 교통체증이 심한 날에는 1시간 30분이라는 시간에서는 아직까지는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쉽게 찾아져 보이지는 않습니다.


다만 5:30에 출근을 하나 6:30에 출근을 하나 줄일 수 있는 시간은 단 5분이라는 것에 출근 시간을 6시 30에는 집을 떠나는 게 거리위에서의 시간을 아끼고 밸런스있는 워크 라이프를 할 수 있다는 대답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오피스에서 역시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또다른 기다림은 새로 입주한 성수동 오피스에서도 일어나는데요, 점심 시간 식사를 위해 나가려고하면 엘레베이터 역시 3분 어쩔때는 7분 가까이도 기다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스웨덴에 들어가 첫 한 해 동안 휴가 시즌에 차 막히는 일이 있을때 저는 오히려 한국에서의 느꼈던 차막힘이 오히려 “안락함”으로 느꼈던 뭔가 그리운 것이었지만 막상 매일 매일 막힘과의 전쟁은 그렇게 기쁜일은 아니지만, 차로 이동시 시간을 최대한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 – 비즈니스 / 역사 팟캐스트, TED 강의등 – 과 습관화 / 공식화를 위해 다듬어 나가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이 막힘이 심적으로는 더 “빨리 빨리”로 이끄는 좋지 않은 원동력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동시에 해봅니다.


2. 빠른 인터넷 환경 그리고 이메일 보단 전화

전세계 인터넷 스피드 Top 10

스웨덴의 인터넷 속도는 한국을 제외하고는 가장 빠른 곳 중 하나이지만, 1등인 한국과는 여전히 넘사벽이네요. 똑같은 미국등과 같은 제 3국에 서버를 둔 화일을 다운 받을때 한국의 인터넷은 거침없이 몰아치는 일종의 감동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시원함을 느낄 수 있고, 상상할 수 없는 지하철 및 공공 지역에서의 무료 인터넷 (물론, Norwegian Airline의 기내 무료 인터넷 서비스, SweBus에서의 버스내에서의 무료 서비스, 독일 베를린 공공 시설 부분에서의 잘 갖춰진 무료 인터넷 서비스등이 있지만 무료인 대신 쓸 수 없을 정도로의 말만 와이파이인 경우가 많죠)은 Youtube등을 돌리기에도 충분하고, Data를 사용하지 않아도 크게 불편함이 없을 정도의 와이파이 천국인 서울은 정말 편합니다.


스웨덴 이민 초기에 한국에 비즈니스 방문하였을때는 Egg (Portable AP)가 있어야 마음 편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는데, 2017년 5월 서울은 훨씬 더 편한 환경이 구축되어져 있음을 피부로 느낌니다. 업무쪽으로는 인터넷의 스피드만큼 이메일의 속도가 빠를 것을 기대하였고, 메일로 거의 많은 업무가 처리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의외로 전화나 직접 미팅이 아직도 많이 이뤄지고 있음에 놀랐습니다.


스웨덴에서 유럽 사람들과 일을 할때나 그리고 물론 거리적 시간차가 있지만 한국의 클라이언트분들 역시 전화통화보다는 모든 업무가 이메일로 이뤄졌던 것과 비교해보면 많이 차이가 나는 부분이었습니다. 낮시간에 강남쪽이나 홍대 부근등 클라이언트가 있는 곳으로 움직이면 왕복시간 최소한 1시간 30분, 한국적인 사고 방식 및 비즈니스와 거리에서의 시간을 아낄 수 있는 방법 이 두 가지 간격 사이를 줄일 수 있는 솔루션 – Google hangouts등- 을 활용하고 적용을 할 수 있을지 저로서도 큰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3. 문자 메세지 – 편리함과 짜증의 중간


이렇게 많은 문자 메세지를 단 시간에 받았던 적이 있나 싶습니다. 한국 카드를 사용하면 들어오는 자동으로 들어오는 메시지 (유럽 기준에서 보자면 보편적 서비스는 아닙니다.) 관공서에서 서류가 준비되었다는 메세지, 너무 잘되어 있는 택배 메세지 서비스와 아파트 경비실의 “맡겨주세요” 서비스 (스웨덴에서 살면서 정말 가장 답답했던 것이 바로 택배 서비스였는데요, Door to Door 서비스는 거의 없고, 편의점이나 수퍼마켓등 Pick up point로 배달을 하며, 그것을 수취인은 가서 직접 ID를 보여주고 픽업하여야 합니다.)


이런 많은 문자 메세지는 정말 한국은 편의성이 좋다는 생각을 다시끔 하게됩니다. 역시 스웨덴에서는 필요성 조차도 의문이 들 수 있는 “모두의 주차장”과 같은 앱으로 쉽지 않은 주차난도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하루 하루 들어오는 많은 문자 메세지 중 30% 정도는 스팸이라는 점은 물론 성가시지만 모쪼록 많이 못느꼈던 많은 메세지에 아직까진 스팸의 짜증보다는 편리함이 좋게 느껴집니다.


4. 싸지만 결코 싸지 않다.


스웨덴은 EU 28개국에 들어가지만, Euro 사용국가가 아니고 스웨덴 화폐인 크로너를 쓰는데 스웨덴 회사 생활을 할때 당시만 해도 굉장히 쎈 화폐 가치를 자랑했기에, 아일랜드에 가면 모든 물건에 30% 세일 표시가 있다는 착각, 독일의 맥주값은 스웨덴 생수병 1개 값으로 두 잔을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싸게 느껴질 정도로 부유한 국가의 화폐 파워를 느꼈고 당시 한국에 왔을때도 모든 것은 상대적으로 쌌다고 생각하였지만, 현재 2017년 한국 방문객이 아닌 한국 거주인으로 바라보는 시점에서는 한국은 결코 물가가 싼, 절대적으로 비싸게 느껴집니다.


절대적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스웨덴의 일반 가정에서 한달 외출을 하는 기회는 2-3번 정도가 되는데 서비스 분야가 우선적으로 스웨덴은 비싸기에 음식값도 당연 비싸 대부분의 경우 음식을 가정에서 해먹게 되는데, 한국에서는 오히려 집에서 해먹기 위해 식료품을 사고 남기고 결국 버리게 되는 사이클 고려시 외식을 하는게 싸다고 느낄 정도로 집에서 해먹을 재료값이 대부분 너무 비싸게 느껴집니다. 심지어 과일도 이렇게 비싼줄은 몰랐습니다. 또한 통신비(핸드폰비)는 스웨덴의 3배를 내고 있는데, 많은 기사에서 나오듯 한국의 통신비는 경제 선진국 보다 많이 비쌉니다. (한국이 전세계에서 일본,미국에 이은 가장 삐싼 통신비 국가) 그리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사회 복지국가에서는 필요없었던 보험과 경조사비는 한 달 수입에 또다른 일부분을 차지하고, 자동차 유지비, 집세등을 합치면 적게 쓰면 세이브할 수 있었던 스웨덴 생활과는 큰 차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5. 시간 활용 및 메니지먼트가 힘들다


스웨덴 생활하면서 가장 낯설고 조금 째째하게 보였던게, 친구와의 약속을 할때도 칼렌더를 꺼내드는 일이었는데, 지금 제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한국은 스웨덴보다 약 1/5 사이즈로 작으며, 인구는 약 5배가 많습니다. 즉, 한국에서는 한 사람이 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밀집도 (Density)가 25배가 높다는 이야기인데요, 그만큼 스웨덴은 슬로우하고 한국은 빨리빨리가 될 수밖에 없는데 스웨덴의 큰 땅의 공간의 여유로움과 및 사회복지등의 사회 시스템 구축등으로인한 시간의 여유로움으로 실제로 약속을 잡지 않으면 사람을 만나기가 힘듭니다. 한국에서의 삶과 비교하자면, 아무리 친구들이 바쁘다고 하더라도 핸드폰을 열어 10명에 걸었을때 2-3명과의 약속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것과 비교하면 스웨덴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끈끈함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반대로 생각한다면 그만큼 시간 활용을 잘한다고도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웨덴 삶에서 배워온 가장 큰 이로운 점 중 하나로 하세스트를 운영하며 많은 미팅등들을 하고 있지만 최소한 1주에서 한달 이후까지 미리 약속을 잡고 스터디 할 수 있는 시간과 매일 하루 하루 정해진 태스크를 처리해가며 일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들로 인해 늦은 귀가를 하게 될 경우 다음날에 지장이 오고 그게 월요일이라면 도미노 현상과 같이 일주일 전체의 패턴을 망칠 수 있기에 최대한 만들어놓은 루틴을 따르려고 하고 있습니다.


한국 귀국 한 달, 오피스 런칭 2주차


거리에서의 시간의 허비, 많이 비싼 물가, 양면을 가진 SMS, 한국인의 정과 결부된 하지만 쉽지않은 시간 관리등 어두운 면도 있지만 빠른 인터넷 속도등 IT의 좋은 환경과 능률을 향상시킬 수 있는 오피스 환경 그리고 스마트한 주변 사람들과 일을 하게 되어 능률적인 면에서는 한국에 갖고 있던 안좋았던 편입견도 많이 없어졌고, 하세스트의 클라이언트분들과 잠재 클라이언트분들과 직접 얼굴을 보면서 하나 하나씩 Thorough하게 일을 진행함에 있어스웨덴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을 할 수 있어서 너무 즐거운 하루 하루가 되고 있습니다.


구글에서 네이버로, 왓츠앱에서 카카오로등의 환경 변화 만큼이나 화면상 미팅으로부터 오프라인 미팅등 비즈니스적인 면에서도 전적으로 변화가 되고 있습니다. 더 멋진 비즈니스, 라이프를 영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공유할 수 있기를 희망해봅니다.

*참고 : 본 포스팅에 사용된 이미지의 출처는 구글 또는 기재된 사이트입니다. 

오리지날 포스트 : http://www.harsest.com/blog/welcome-to-korea



KY.O.N.O

https://www.facebook.com/xbluescreenlifex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스웨덴 음악 훑어보기

안녕하세요 이번 포스팅은 현재 제가 살고 있는 스웨덴에서의 음악 시장과 역사를 간단하게 알아봅니다.


스웨덴 팝을 대표하는 그룹, ABBA


1970년대의 ABBA, 80년대의 Europe 그리고 Roxette, 90년대의 Ace of Base 그리고 The Cardigans, Robyn 2000년대의 Alcazar, September 그리고 2010년대의 Swedish House Mafia, Avicii등 스웨덴은 미국, 영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팦 아티스트들을 배출한 국가로 팦시장외에도 서브장르쪽에서는 메탈, 하드코어,펑크등이 큰 활약을 하여오고 있는 나라로 하드코어쪽에서는 90년대 중반부터 Refused등을 배출하며 Umeå 지역이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졌고, 메탈쪽으로는 Göteborg (예테보리, 고Gothenburg)에서 발굴한 Scar Symmetry, Hypocrisy, Tiamat, Arch Enemy, Soilwork, Meshuggah, Amon Amarth, Edge of Sanity, Opeth, Avatar and The Haunted등이 있으며 조금 더 과거로 올라가자면 Bathory, Entombed등이 있으며 메탈 키드였다면 기억할 잉베이 맘스틴(Yngwie Malmsteen)도 스웨덴 출신의 아티스트입니다. 펑크쪽으로는 Satanic Surfers와 같은 Skatecore, Mall punk 스타일부터 수많은 크러스트 밴드들이 존재 하는데 인구 900만의 이 작은 나라에서 어떻게 이렇게 많은 뮤지션들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최근에는 한국의 아이돌의 작곡가들 중 꾀 많은 숫자가 스웨덴 작곡가들로부터 곡을 받고 있고, 유럽의 음악 축제인 Eurovision Song Contest의 많은 국가들을 대표하는 곡들 또한 스웨덴의 작곡가들이 곡을 쓰고 있습니다.


Mashable의 인터뷰에서 Backstreet Boys의 "I Want It That Way", Celine Dion의 "That’s The Way It Is",  N'Sync의  "Bye, Bye, Bye" 를 쓴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곡가 Andreas Carlsson이 얘기하는 스웨덴 음악이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유를 아래와 같이 밝혔습니다.


1. 안좋은 날씨및 기후

날씨가 안좋고 밤이 길어 감성적으로도 음악으로 표현될 수 있는 영역이 크고, 오타쿠짓을 많이 할 수 있다는 얘기로 특히 요즘 컴퓨터로 모든 것을 끝내버릴 수 있는 EDM이 스웨덴이 강한 이유가 단번에 설명될 수 있는 포인트


2. 교육 시스템

스웨덴 교육 시스템에 있어서 최소 한가지의 악기를 다룰 수 있어야 하고 많은 사람들이 밴드와 같은 그룹을 결성하게 되어 최소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였을때 음악과 친숙한 환경이 조성되어 음악 시장이 커질 수 있는 아티스트가 발굴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진다는 포인트


마지막으로 Spotify와 Minecraft, Candy Crush등과 같은 세계적인 스타트업이 나올 수 있는 IT환경 또한 현재의 스웨덴 음악 시장을 확대할 수 있게된 배경이라고 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스웨덴에 이주한 후 처음으로 교육을 받았던 음악 기관에서 강사가 해주었던 스웨덴 음악시장이 강한 이유로 겨울이 길고 오타쿠 기질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크게 다르지 않은 비슷한 이유들로 스웨덴 음악의 세계화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왼쪽부터 Andreas Carlsson, Wyclef Jean, Peer Åström & 빌보드지의 Andrew Hampp.



스웨덴 대표적인 페스티발을 보자면, 가장 많이 알려진 페스티발 순으로 보자면 아래의 표와 같습니다.



출처 : Statista


이외에도 개인적으로도 처음으로 스웨덴 이주 후 처음갔었던 메탈 도시에 걸맞는 이름인 예테보리에서 열리는 Metal Town또한 2일 페스티발에서 3일로 확장하며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페스티발은 6월 초부터 8월 중순까지 열리고 있습니다.



그럼 스웨덴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들을 100% 주관적인 입장에서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1. Abba 

더 이상 말이 필요없는 스웨덴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로 벤뉘 안데르손 (Göran Bror Benny Andersson), 뵨 우바에우스 (Björn Kristian Ulvaeus) 안니프리드 륑스타(Anni-Frid Lyngstad), 앙네타 펠트스코그 (Agnetha Åse Fältskog)로 구성된 팦그룹으로 1972년에서 1982년까지 활동했던 팦그룹으로 ABBA의 그룹명은 각자의 이름의 첫글자를 따서 지었고 (*ABBA라는 청어 통조림으로 유명한 식품 유통회사와의 분쟁을 거쳐 1974년에 정식으로 ABBA라는 그룹명을 사용하게되었다.) 전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ESC에서 Waterloo라는 곡으로 출전하여 수상하면서이고 1977년 드디어 대박이 터져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ABBA로 기억되게 되는데 그 것은 바로 "Dancing Queen"이 수록된 4집앨범 "Arrival"이었는데, 빌보드 차트에서도 넘버원을 차지하며 전세계적인 그룹으로 발돋음하게 되었다. 몇가지 루머가 있었는데 세금이 비싸서 스웨덴을 떠났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고 현재도 국적을 바꾼 사람은 노르웨이 출신인 (친아버지가 SS 장교였다고) 아니프리드밖에 없고 그 이유도 독일인과의 결혼때문이었다. 전세계 3억장 이상 판매한 팦그룹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2016년 6월에 리유니언을 가졌다. 



2. Roxette 

아바 다음으로 스웨덴 출신으로는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렸던 아티스트로 7천만장 이상 판매하였고, 페르 게슬 (Per Gessle, 기타, 보컬)과 마리에 프레드릭슨 (Marie Fredriksson, 보컬)로 구성된 그룹으로 1986년 스웨덴 서부 Halmstad에서 결성되었다. 페르 게슬이 몸담았던 Gyllene Tider에서 백보컬을 담당하고 있던 마리에와 함께 듀오로 결성하게 된 그룹이 Roxette으로 Gyllene Tider부터 계속 미국 시장을 넘보고 있었는데 그 한을 풀어준 앨범이 그들의 두번째 앨범이었던 Look Sharp!였고 그 후 리차드 기어와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귀여운 여인에 삽입되며 미국에서 더더욱 주목을 받게 되었다. 



3. Ace of Base

전세계적으로 5천만장 이상을 판매한 그룹이자 한국에서 1990년대의 UB40와 함께 유로팦을 이끌었던 그룹 중 한 그룹으로 ABBA와 같은 2명의 남성, 2명의 여성으로 구성된 혼성 그룹으로 미국 빌보드 차트에 "All that she wants", "The sign", "Dont turn around"를 넘버원으로 랭크하며 전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된 그룹으로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야키다(Yaki-da, 2집은 한국에서 전세계 최초 공개하였고, 뮤직비디오 I Believe 는 김포공항에서 촬영 )를 프로듀싱하기도 했다. 



4. Europe 

스웨덴 메탈 중 가장 인지도가 높았던 밴드로 밴드 이름 유럽은 몰라도 "Final Countdown"은 TV등에서 자주나오면서 한국에서도 친숙한 밴드이다. 1979년 "Force" 라는 밴드이름으로 스톡홀름에서 결성되었고 밴드 초창기에는 잉베이 맘스틴의 밴드와 멤버교체등이 이뤄졌었고 Force에서 Europe이라는 밴드로 이름이 바뀌게 된 것은 한 컨테스트에 나가기 직전으로 Deep Purple의 "Made in Japan", "Made in Europe"에서 영감을 받아 Europe이라는 밴드이름으로 변경하였다고 한다. 1986년 앨범 The Final Countdown은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시장에서도 큰 성공을 거둬 총 2300만장이 팔리며 전세계적인 밴드로 거듭났다. 1992년 해체 후 다시 2003년부터 현재까지 활동을 하고 있다.



5. Cardigans 

1992년 옌최핑에서 결성된 밴드로 특히 한국에서 인기 많았던 90년 팝 밴드로 기억되는 혼성 록 밴드로, Lovefool과 Carnival은 팝을 다루는 방송등에서 많이 플레이되었던 넘버. 카디건즈의 경우는 1994년 데뷔 앨범이었던 "Emmerdale"앨범이 전세계 시장에서 인기가 별로 없었지만 일본에서는 첫 번째 앨범부터 인기가 많았던 밴드로 현재까지도 꾀 두꺼운 층을 갖고 있는 "Swedish pop"을 지폈던 아티스트로 1996년 헐리우드 영화 로미오와 쥴리엣에 삽입되면서 전세계 시장에서 주목받게 되었던 밴드이다. 



6. Rednex 

레드넥스를 개인적으로 기억하는 것은 VH1등에서 나왔던 "Top 100 Epic songs"에서 거의 Top에 차지하였던 그 우수꽝 스러운 뮤직비디오였는데 이 포스팅을 쓰는 시점에서 알게되었다. 이들이 스웨덴 출신이라는 것을. 90년대의 스웨덴 강남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는 곡 "Cotton Eye Joe"로 대표될 수 있는 그룹으로 1994년 데뷔한 그룹으로 댄스,팦,테크노를 컨츄리 음악으로 레드넥 컨셉으로 퍼포먼스를 보여왔으며 총 16명의 정식 멤버로 활동을 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7. Jessica

제시카 폴커 (Jessica Folker) 는 아마도 스웨덴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유명한 가수로 생각될 정도로 한국에서의 인지도가 엄청났던 1990년대 가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전도연,박신양 주연의 “약속”이라는영화에 수록되었던 노래 “Goodbye”가 제대로 히트하며 온거리가 이 노래로 넘쳐흘렀던 적이 있다. 우연하게 스웨덴에서 이 제시카를 만나게 되었던 적이 있고 그때서야 이 아티스트가 스웨덴이라는 사람인 줄 알게 되었다. 제시카는 세네갈 출신의 아버지와 스웨덴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어렸을때부터 음악 교육을 받았고 Ace of base의 백업 보컬도 한 적이 있다고 하고 제시카가 직접 얘기한 내용으로 한국에서의 큰 사랑과 바쁜 스케쥴들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고 할 정도로 한국과의 인연은 크게 그녀에게도 남아있다고 하였다. 1998년 데뷔 앨범이었던 Goodbye가 수록된 "Jessica"앨범은 전세계에서 한국이 가장 많이 팔린 나라고 Platinum을 기록하였다.



8. Swedish House Mafia

Maxwell, Steve, Sebastian 이렇게 3명이 결성한 그룹으로 어릴때부터 서로 알고 있던 사이로 2009년 이들 셋과 Laidback이랑 사람과 함께 공동으로 작업을 같이하면서 그룹을 결성하게 되었고, Single One과 Miami 2 Ibiza와 기존의 자신들의 곡을 모아서 “Until One”이라는 앨범을 정식 발매하면서 SHM의 이름을 알리게 되며 EDM씬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메김할 수 있게되고, 이미 유명했던 DJ들이어서 더욱 유명해진 것도 있지만 이들이 놀랍게도 만든 곡은 단 6곡에 불과하는데 이 모든 곡이 수작이어서 이들이 더욱 유명해지는데 가장 유명한 곡인 Don't You Worry Child 는  유튜브 3억뷰를 달성하였다. 2013년 3월 24일 UMF 마이애미 공연을 마지막으로 해체를 하게 되었고 특별한 이유는 없었지만 각자의 솔로작품들에 더 신경을 쓰기위해 해체하였다.



9. Avicii

스웨덴이 낳은 최고 정상급의 DJ로 Tim Bergling이 이 아비치의 본명인데 1989년생으로 아직 많이 어린데 이미 전세계적인 DJ가 되었고 프로그레시브 하우스, 일렉트로 하우스등에서 탁월한 재능으로 EDM의 메이져화에 공헌한 아티스트로 많은 DJ들처럼 자신이 곡을 만들고 다른 노래를 하는 사람과의 작업을 하여 앨범을 만들고 있고, 정규 앨범은 현재까지 두 장 True (2013), Stories(2015)가 전부로 이 두 장으로 메이져 홈런을 치고 가장 몸비싼 DJ가 되었지만 더이상 라이브를 안한다고 공헌한 바 있다.



10. Robyn (Robin Mariam Carllsson)

아마도 스웨덴팝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여자 아이돌로 기억되는 사람이 아마도 이 로빈일텐데, 로빈은 아역배우로서 보이스액팅등을 하며 10대를 거쳐 16살의 나이로 메이져 레이블이죠 RCA와 계약을 하며 “Robyn is Here” 라는 앨범으로 스웨덴뿐만아니라 영국과 미국 빌보드 차트등에서 Top10에 오르며 승승장구하였고 1990년대 후반에는 미국 투어등을 하게되었는데 건강상의 이유로 투어가 캔슬된 적이 있을정도로 바쁜 일정이 연속되어졌었다. 차후에는 오랜 파트너관계였던 레이블인 JIVE Records와의 결별을 하게 되고 KONICHIWA라는 본인 레이블을 만들어 활동을 하고 있고 1979년생인 이 로빈은 현재 37살의 나이로 계속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스웨덴 팦외에 개인적으로 추천하고자 하는 스웨덴 뮤지션들을 알아보자면 아래와 같다.


1. Last Days of April

일본의 대표 하드코어로 사회적인 활동을 적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Slang의 Ko씨가 이끄는 레이블 Straight Up Records에서 발매했던 사뽀로 이모 밴드 Bufferins와 스플릿 앨범을 냈던 스웨덴 이모 밴드 "Last Days of April" 또한 스웨덴 밴드로 1996년 Karl Larsson을 주축으로 결성된 밴드로 Misconduct, Satanic Surfers등을 발매하며 스웨덴의 대표적인 레이블로 거듭났던 Bad Taste Records에서 앨범을 발매하며 성장하였고, 미국의 대표 이모 밴드 중 하나였던 the Promise Ring과 일본의 Bufferins와의 유럽투어를 했었고 미국의 명 레이블 Deep Elm Records에서 발매되어지는등 미국에서도 많은 활동을 보이고 있다. 또한 Karl Larsson의 솔로 이름으로 앨범이 계속 발매되고 있다.



2. Leiah 

스웨덴 이모하면 떠오르는 밴드가 바로 이 레이아인데 스웨덴 Gävle지역에서 지역 하드코어 밴드였던 Serene의 멤버와 삶이 이모이자 천재적인 작곡 능력을 갖고 있는 David Lehnberg가 만나 1998년 결성한 밴드로 미국의 The Get Up Kids, Hot Water Music등의 오프닝 액트를 맡으며 인지도를 쌓아갔고 벨기에의 Genet Records의 간판 스타가 되었고 일본에서도 큰 인기를 얻게 되었고, 당시 일본의 하드코어와 이모를 적극 수입하고 소통하였던 State Craft의 히로유키 고하마씨가 주축이 되어 만들어졌던 BloodAxe 168 디스트로 매거진에서도 앨범이 유통되고 인터뷰가 실린 적이 있었다. Leiah 이후 David Lehnberg는 Ariel Kill Him이라는 솔로 프로젝트등을 진행하였고, (놀랍게도) Ariel Kill Him앨범은 한국에서도 라이센스가 되었고 이 이후 만든 밴드가 현재에 이르고 있는 The Deer Tracks 이다. 현재 David Lehnberg는 DJing도 하며 새로운 음악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3. the Radio Dept.

스웨덴의 대표적인 인디 레이블로 떠오른 Labrador 레코드의 간판스타인 Radio Dept. (*Acid House Kings, 이제는 한국 사람이라고도 볼 수 있는 Lasse Lindh도 이 레이블 출신이다.)는 1995년 Lund지역에서 결성되었고 밴드명은 Lund동네에 있던 라디오 수리 샵에 "Radio department"라는 이름의 샵을 보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꾀 인지도 있는 밴드로 두번의 투어를 하였다.



4. Kent

1990년 Eskilstuna에서 결성된 밴드로 2016년 12월 마지막 공연으로 해체될 밴드로 Joakim Berg를 주축으로 결성되어 총 12장의 앨범을 발매한 20년이 넘은 역사를 가진 밴드로 "스웨덴어"로 앨범을 주로 발매한다. (*영어로 앨범을 발매하였지만 앨범 판매율에 도움이 안되고 스웨덴 내에서만 팔려서 의미없다고 판단하여 스웨덴어로만 발매한다고.) 켄트는 명실상부 스웨덴을 대표하는 밴드로 스웨덴의 라디오헤드라는 별명도 있을 정도로 대중적이며 스웨덴의 긴 겨울과 같이 (?) 극 우울한 음악으로 2016년 12월 마지막 공연 티켓이 오픈하자마자 바로 솔드아웃되는 상황을 연출하였고 앨범의 흐름은 라디오헤드에서 디페쉬모드등의 신스팦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음악으로 전향된 느낌이다.



5. Veronica Maggio

스웨덴 팦 아티스트로 스웨덴 대표 캠퍼스 타운인 웁살라 지역에서 치과의사인 이탈리아계 아버지와 스웨덴 어머니 사이에서 1981년에 태어난 여성 아티스트로 어린시절 이탈리아의 투스카니 지역으로 이주하였고 지역 음악 그룹에서 활동하며 데뷔를 하였고 스웨덴으로 돌아와 계속 음악학교에 다니며 음악 생활을 시작하게 되는데 그녀가 데뷔할 수 있었던 계기는 베로니카 친구 컴퓨터에 담겨있었던 mp3 데모를 현재의 메니져가 음악을 듣고 반하게 되어 곧바로 프로듀서인 Stefan Gräslund와 함께 작업하게 되며 Universal Music Sweden과 계약을 하게되며 2006년 첫 싱글 "Dumpa mig"를 발표하며 인지도를 쌓으며 2008년 발표한 두번째 앨범이 "Och vinnaren är… "이 차트에 77주간 머물며 큰 사랑을 얻게되고, "Stopp"이 큰 반응을 만들어내었고, 음악적으로 가장 성공작인 3집인 "Satan i gatan"이 2011년 발매되며 그녀의 음악 커리어의 정점을 찍게 되었다.



이상으로 스웨덴의 팝 음악과 개인 취향이 많이 반영된 뮤지션들을 가볍게 소개해보았습니다. 

차후에 기회가 된다면 스웨덴 하드코어로 특집을 꾸밀 예정입니다. 다음편도 기대하여주세요.




By KY.O.N.O 

https://www.facebook.com/xbluescreenlifex/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인터넷 포르노 비즈니스


인터넷 포르노 비즈니스


여러분이 본 제목을 클릭하고 이 포스팅의 서두를 읽고 있는 10초 동안 전세계의 282,580명이 인터넷 포르노를 접하고 있고, 3720명이 야동 관련 검색을 하고 있으며, 3천만원이 포르노 관련 사이트에서 결제되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을 법한 (미국 통계에 의하면, 3/4정도는 최소 한 번은 인터넷을 통해 포르노를 접한 적이 있다고 함) 인터넷 포르노 산업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요즘은 친구 중 한 명, 동네 사는 사람 중 한 명은 하고 있을 법한 인터넷 쇼핑몰에서의 인터넷 결제가 포르노 사이트들의 피나는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된 이후부터인데, 거기서 모든 궁금증이 시작되어 포르노 자체도 물론 흥미롭지만(?) 비즈니스가 더욱 궁금해졌고 흥미위주 사실들로만 한 번 파보기 시작하였다.

또한 최근에 굉장히 심오하고 흥미로운 주제로 BSL의 새로운 멤버 June이 포스팅한 뇌과학과 정치적 올바름, 그리고 성차별주의 에서 뉴로 섹시즘과 성별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도 이 포스팅을 할 수 있게 한 또다른 소스이기도 하였다


*Blue Screen Life는 인터넷 포르노그래피의 불법적인 유통및 미성년자들의 포르노의 접근등을 반대하며, 본 포스팅은 소위 NSFW(Not safe for work, 사무실에서 보면 민망한 것들)를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본 포스팅에 사용된 이미지의 출처는 Business Insider와 CNBC사이트 그리고 구글입니다.




"포르노와 스타트랙이 없었더라면 인터넷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 - 스타트렉의 프로듀서 Rick Berman


인터넷 포르노 비즈니스 역사

90년대 중후반 한국에서 인터넷 까페 그리고 스타크래프트의 인기와 함께 인터넷의 속도는 빨라졌고, 소문난 인터넷 야동들이 아재들을 컴퓨터 앞으로 끌어모으기 시작하던 그 이전에 이미 인터넷 포르노는 사업적으로 큰 잠재력을 보여줬고, 소위 닷컴 버블이전인 1990년대 후반 여러가지 시도가 있었는데, 그 중 거의 최초 인터넷 포르노 사이트라고 볼 수 있는 마리화나, 성의 판매가 합법화된 나라인 네덜란드에서 1994년 "Red Light District"라는 사이트에서 인터넷 포르노 사이트를 상업화하기 시작하는데, 처음의 형태는 PDF폼이라던지 온라인에서 다운받은 종이에 ID, PSW, 개인 정보를 넣고 승인을 받은 후 ARS를 통해 카드번호를 눌러 카드를 인증받는 시스템이었다.

이게 바뀌는 시기가 오는데 그게 TCP / IP 프로토콜의 디벨로퍼 중 한 명이었던 Dan Lynch라는 사람이 1996년에 CyberCash라는 미국회사가 카드 결제가 가능한 브라우져 플러그인을 만들게 되고 그 클라이언트들의 대부분은 포르노사이트들이었고, 인터넷 포르노 사이트의 상업화에 불을 지피고 인터넷 결제및 E-commerce에 불을 당기는 계기가 되었고, Dot Com 버블과 함께 회사는 결국 Paypal에게 팔려졌다.


이 것은 마치 3M의 스카치 테이프, Pfizer의 Viagra(비아그라)와 마찬가지로 의도했던 것과는 달리 다른쪽에서 터져버린 케이스와 마찬가지로 인터넷 카드 결제의 플랫폼의 안정성과 대중화를 만들어낸 것이 인터넷 포르노 사이트였다.


흥미로운 팩트 15가지

1. 인터넷 사이트의 12% (24.644.172 개)는 야동과 야사로 이뤄져있다. 하루에 6800만의 포르노 관련 검색이 이뤄지고 있으며 이건 검색어의 약 25%를 차지하고 있으며, 한달 포르노의 다운로드가 이뤄지는 다운로드 수는 1조 5천개로 인터넷에서 이뤄지는 다운로드의 35%를 차지하며 42.7%의 인터넷 사용자들이 인터넷 포르노 사이트에 접속하며, 매달 성인 사이트에 접속하는 사람은 7200만명에 달한다.



2. 매 1초마다 3000 달러가 인터넷 포르노로 소비되고 있으며, 28258명이 포르노를 보기위해 의자에 앉고, 372명이 야동을 검색하고 있으며, 매39분마다 새로운 포르노가 만들어 지고 있다.



3. 소득 수준으로 비교시, 돈을 더 많이 버는 그룹이 더 많은 포르노를 보고 있으며, 가장 포르노를 많이 보는 연력대는 35-44세로 25%에 달한다.

4. 미국 포르노 산업이 마켓의 선두주자로 4900조원의 전세계 포르노 시장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2900조원정도로 1인 평균 가장 많은 포르노 검색을 하는 나라는 의외로 이슬람교 국가인 파키스탄이다. 



5. 인터넷 포르노 관련 검색어 중 가장 많은 검색어는 "Sex"이며, "Adult dating", "Porn"이 그 다음을 이었고, 미국 주 중에서 가장 많은 검색을 하는 도시는 Elmhurst (시카고 근처의 일리노이주)이다.


6. 처음으로 포르노를 접하게 되는 평균 최초 나이는 11세이다.


7. 남성의 1/5이 직장에서 포르노를 접한적이 있다고 했으며, 여성의 경우도 놀랍게도 1/7 정도가 접한다고 응답했다.


8. 포르노 사이트의 접속 평균 시간은 6분 30초이다. (충분한 시간일 수 있다?)


9. 미국의 경우 가장 포르노 접속에 있어 1년 중 트래픽이 낮은 날은 가족과 함께하는 추수감사절이며, 1주일 중 가장 많은 접속을 하는 날은 일요일이라고 한다.


10. 배우등을 포함한 포르노 제작과 관련된 일에 종사자들은 미국 한가정 수입소득에 포함되지 않는 영역군이어서 CNBC에서 업계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한 결과 여성 배우의 한 섹스씬에 있어서 지급받는 금액은 30만원에서 150만, 여성 동선간의 섹스씬을 찍는 배우는 70만원에서 120만원, 남성의 경우는 50만원에서 150만원이며, 감독의 일당은 100만원에서 300만원, 왜 필요한지는 모르겠으나 작가는 25만원에서 40만원 그리고 카메라맨은 50만원에서 70만원이라고 한다.(*1달러 = 천원 환율 기준)


11. (포스팅 날짜 기준) 인터넷 사이트들의 랭크를 메기는 사이트인 Alexa.com에 따르면 Top 100위 안에드는 사이트 중 포르노 사이트가 여럿 존재하는데 가장 Top을 보여준 인터넷 포르노사이트는 xvideos.com으로 49위로 기억되어 있으며 (인도와 일본내 국내 사이트 검색 순위 23위에 랭크), 참고로 1위는 구글, 2위는 유튜브, 3위는 페이스북이며 한국 가장 접속이 많다고 하는 네이버는 68위에 기록되었다. 참고로 국내 사이트의 랭크는 네이버, 구글, 유튜브, 다음, 페이스북 ,티스초리, 뽐뿌 순이다.


12. xvideos.com은 Wikipedia에서 말하길, 한달 평균 접속자가 3억 5천명이라고 한다.


13. 미국 기준 18-24세 사이 남자들의 70%는 한달에 한 번 이상 정기적으로 포르노 사이트에 접속하며, 그 중 1/3은 여성이다.


14. 2015년 기사에 따르면 일본의 AV산업에 있어서 남성 배우는 70명, 여성 배우는 1,000명이 존재한다고 한다. 이 불균형(?)을 맞추기위해 일본의 제작사들은 싱가포르에서 남성 배우를 뽑기 위한 오디션이 열렸다고 한다.


15. 일본이 역시(?) 가장 많은 서브 장르를 가진 국가이다.



인터넷 포르노는 어떻게 보면 대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주제의 이야기는 아닐 수 있지만 "건강한" 사람들이 올바른 경로를 통해 접하고 올바르게 유통된다면 여러가지 의미에서 특히 비즈니스측면에서 새로운 파생적인 것들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국가의 규제 문제가 선해결되어야할 문제이지만 말이다. 백 투 더 퓨쳐에서 나왔던 후버 보드가 현실화되는 시점에서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으로 여행을 갈 시기를 앞두고 있는 그리고 버츄얼 섹스가 현실화 되는 2016년에서 Enterainment는 더 프로페셔널하게 Entertained 되어질 수 있어야하지 않을까?




By KY.O.N.O 

https://www.facebook.com/xbluescreenlifex/


REF :

http://www.cnbc.com/2016/01/20/porns-dirtiest-secret-what-everyone-gets-paid.html

http://internet-filter-review.toptenreviews.com/internet-pornography-statistics.html

http://www.internethistorypodcast.com/2015/01/history-of-internet-porn/

https://en.wikipedia.org/wiki/XVideos

http://www.alexa.com/topsites/global;3

http://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12822

http://www.businessinsider.com/15-things-you-need-to-know-about-internet-porn-2011-8?op=1&IR=T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이슬람,중동,아랍 그리고 IS

이슬람,중동,아랍 그리고 IS



모스크 앞의 이슬람 신자들 (출처 : Google)



외국 생활을 꾀 한 나 역시 사실은 이슬람, 무슬림들에 대한 관심이 그렇게 많지 않았고 주변에 많은 무슬림들이 있지만 사실은 친한 친구는 한 두명뿐이고, 센서티브한 주제가 나올 경우가 있어 아예 종교 이야기는 안꺼낸 것도 사실이고, 다만 음식을 선정하는데에서는 나 보다 무슬림 친구들이 더 불편한 적도 있었다. 1년에 두 번 1월, 7월 꼬박 출장으로만 벌써 5년 넘게 다니고 있는 내게 있어 2015년 2016년 1월 파리의 테러는 내 삶에 이슬람에 대한 궁금증을 자극하는 트리거(trigger)가 되었고 2015년 11월 한 스위스 뉴스를 보게 되었다. 스위스에서 버카를 금지한다는 기사였는데,



"Switzerland overwhelmingly votes for burqa ban with £6,500 fine for Muslim women who rebel" (기사)



무슬림 여성들이 착용하는 복장들의 종류 (출처 : ABC.NET)



스위스는 4개국어가 (이태리, 프랑스, 독일어, 그리고 6만명이 사용하는 남동부 지역의 그리슨 지역의 언어인 로만쉬) 공용어인 나라에 세계에서 제일 부유한 국가이자, (다른말로 하자면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과 같이 물가가 비싼) 청정 국가에 800만명 정도 밖에 안사는 굉장히 리버럴한 나라인데, 이런 나라에서 무슬림 여성들이 착용하는 버카를 공중 장소에서 금지한다는 이 뉴스를 보았을때 굉장히 갸우뚱했다. 스위스의 인구에 5%에 해당한다는 40만명이 이슬람 신자라고 한다. 미국에서 (주로) 흑인들의 범죄로 인한 후디 스웨터로 뒤짚어 쓰는 것이나, 한국에서 시위때의 마스크 논란도 겹치는 부분도 있었지만, 종교적 자유를 보장하는 스위스 같은 하이 스탠다드 국가에서, 종교와 관련된 복장 착용과 범죄 예방을 위한 자유의 한계치가 겹치는 점이 아주 흥미로운 포인트였다, 특히 파리의 테러와 우화 되는 유럽 정서가 깔린 것도 간과할 포인트는 아니었다.


이 뉴스를 읽은 후 "한 번 알아 보자 이슬람, 무슬림" 느낌으로 이 것 저 것 시간날때 마다 기사를 보는 것들을 링크를 모으기 시작했고, 습자지 같이 얇지만 현재까지 알아보면서 흥미로운 내용들을 포스팅하기로 하였다.




인종차별주의자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 무식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내 자신에게 물어봤을때도, 이슬람은 왠지 거리가 있으면서도도 왠지 두렵고 왠지 꺼리어 지는데 그 이유는 알 수 없었고, 현재 거주지 스웨덴에 꾀 많은 무슬림이 살고 있는데 정작 내 자신도 그들에 대해 모르기에 이슬람 그리고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남성을 무슬림,여성을 무슬리마라고 하며 통상적으로 총체적으로 무슬림이라 부름)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였고, 그 과정에서 처음으로 놀랐던 사실은 생각보다 전세계 무슬림 인구가 훨씬 많았던 것이었다.


전세계 무슬림 국가



- 이슬람은 16억 인구, 22%가 믿고 있는 기독교 22억 인구, 31% 다음으로 두번째 최대 종교이다. 

이슬람 국가는 전세계 57개국으로, (예상과는 달리) 중동이외의 국가가 무슬림들이 훨씬 더 많다. 최대 무슬림 국가는 인도네시아 (2억)이고 이외의 아시아권에서는 파키스탄 (1억 7천만명), 방글라데시 (1억 5천만명)으로 많은 비율을 차지하며, 아프리카에서는 이집트(8천만명)가 아닌 나이지리아(1억 2천만명)가 최대 무슬림 국가이다. 유럽내 최대 무슬림 국가는 프랑스로 약 500만명이다. 참고로, 중앙 아시아의 Stan들어간 국가들(Stan은 원래 페르시아말로 장소, 타운을 의미)과 터키, 알제리, 파키스탄등 초승달과 별이 들어간 국기를 가진 나라는 거의 이슬람 국가로 보면 틀리지 않다.


-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 이슬람, 유대교, 기독교 모두 같은 뿌리, 아브라함계 종교이다. 예루살렘이 이 종교들의 성지이다. (이슬람의 3대 성지는 예루살렘, 메카,메디나) 모두 구약을 정경으로 두고 있고 코란, 토라, 신약이 다르다. 예수에 대한 시각은 이슬람에서는 5대 성사및 예언자 중 하나, 유대교에서는 하나님을 모독한 죄인, 기독교에서는 메시아. 메시아를 바라보는 시각은 이슬람에서는 무함마드가 마지막 예언자, 유대교는 기다고있고, 기독교는 예수. 


각 종교에 있어 역사의 시간에 따른 세계로의 전파



- 아랍, 중동, 이슬람 국가?

아랍은 민족적 개념으로 문화및 언어적 정체성 바탕으로 하지만 비혈연적 관계로 쉬운 구분은 아랍어를 쓰는 나라들이고, 중동 지역 중 비아랍 국가들은 이란(페르시아어, 아리안족. 즉 유러피안 게르만, 색슨, 슬라브족 조상. 이란 사람에게 아랍인이라고 하면 큰 결례일 수 있다.), 이스라엘(히부르어), 터키(한국어와 같은 우랄알타이계) 중동은 지역적 개념 (중동 Middle East, 극동 Far East 이 단어들은 전부 유럽중심적 시각)으로 보통 동지중해부터 페르시아만까지의 영역을 포함하며, 중동을 북아프리카까지 포함을 하기에,북아프리카를 제외한 중동 지역을 서아시아로 불리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이스라엘의 경우는 원래 아시안 게임에 계속 참여하다가 무슬림 국가인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올림픽 게임이 있었던 1962년 비자 발급이 거부 당한 이후 더 이상 출전하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은 지역적으로는 아시아, 정치적으로는 유럽, 문화적으로는 중동이다. 이슬람은 종교적 구분으로 이슬람을 믿는 전세계 국가를 지칭한다. 


이란의 Aryan과는 전혀 무관해 보이지만 현재 아리안은 백인 우월에서 많이 쓰여지고 있는 단어.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감옥 내 갱 그룹인 Aryan Brotherhood 



-  2014년 12월 법무부 통계로 보면 한국 이슬람교도인들은 총 20여만면으로 외국인 거주자가 14만명, 한국인 이슬람 신자 3만 5천명이다. 문화관광부에서는 이슬람을 기타 종교로 분류하였다.


- 이슬람 종교에서 크게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눠지는데, IS, 알카에다등 무장 세력들은 거의 대부분 수니파들이다.
수니파는 85%, 시아파는 15%. 시아파와 수니파는 이태원 모스크에서 사우디 아라비아(90% 이상이 수니파를 믿는 국가)와 대표적인 시아파 국가인 이란 대사관이 같이 예배를 볼 정도로 종교적 교리에서의 차이점은 없는, 정치적 이유로 인해 구분 되는 그룹이다. 대표적인 시아파 국가는 이라크(사담 후세인 이후)와 이란이 있다. 시아파와 수니파가 나눠지게 되는 계기는 7세기 이슬람 국가를 형성하는 무함마드가 후계자를 승계하는 시점에서 알리가 계승자가 되어야한다고 믿고 주장했던 파들이 바로 시아파이다. (정확히 말하면 시아 알리. 시아라는 말 자제가 종파라는 뜻이다.) 하지만 반대로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가 무함마드를 잇는 첫 계승자(칼리파)가 된다. (IS의 리더이름이 아부 바쿠르 알 바그다디이다. 원래이름은 이브라임인데 정통성을 목적으로 이름을 따왔다.) 이후 오마드, 오스만 다음으로 후계자가된 알리는 오스만 사후 시리아에서 그의 가문이 알리와 두 아들을 처참히 살해한다. 이 것이 현재도 시아파 행사에서 하는 등을 때려 피가 나게 하는 의식이 되었다고 한다. 수니파와 시아파를 차이나게 하는 점은 시아파는 성직자의 유무로, 이란에서 사파비드 왕조가 시아파를 국교로 삼기전까지 억압을 당한 것에 있어 권력을 더 강화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성직자(이맘)를 만들었다. 사담 후세인 시절에서도 시아파와 수니파가 결혼을 많이 하였을 정도로 관계에 문제가 없었고, 권투 선수 무함마드 알리 (수니파인데도 불구하고) 알리라는 이름을 붙였었다.

- 보통 무슬림들이 돼지 고기를 안먹는 것을 종교적인 이유로 생각하지만,이슬람의 하랄(Haral)과 유대인의 코셔(Kosher, 뉴욕 Lower East Side의 Katz's Delicatessen명소도 코셔 스토어로 시작했었다.)가 있지만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라 중동 지역적인 특성으로부터 온 것이다.

중동의 50도 넘는 온도로 인해 육류는 금방 상하고,  농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기에 유목민들도 배가 고팠기에 돼지, 소등에게 음식을 주며 키울 수 없었다. 주로 키웠던 동물들은 자생이 가능한 염소, 낙타, 양들이었다. 이와 비슷한 이유로 중동에서는 우물이 생명선이기에 우물이 오염되거나 약탈을 당하면 죽음을 의미하기위해 남성들은 우물을 무리지어 무장하여 지켜야 했고, 이 것이 남성 중심적 권위주의로 변화한 것이고, 벌카(Burka), 히잡등으로 여인들이 얼굴을 가리는 것도 역시 이슬람적인 것이 아니라 중동적인 것이다.(7세기 이슬람 태동에도 얼굴을 가렸었다.) 무함마드는 여성의 사회신장을 위해 개혁하려 애썼지만 사후 이슬람 법을 해석하는 사람들에 의해 (전부 남성) 남성 중심으로 변화해왔다.


- IS와 알카에다는 비슷하지만 다르다.

우선 알카에다는 사업가 오사마 빈 라덴이 창설한 조직으로 (그의 아버지는 원래 사우디 아라비아의 5대 건설 유통 업체의사장이었다.) 방어적 지하드(Jihad, 원 뜻은 열심히 하다)로 서구적 세계가 이슬람 세계를 침탈하기에 이슬람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조직된 단체이고 IS는 요르단인 알 자르카위에 의해 만들어진 단체로 한국인 김선일씨를 살해한 "유일신과 성전"을 전신으로 하고 있다. 아무도 인정은 안하지만 국가이다. (Islam State) 즉, 행정적으로 제정적으로 시스템이 갖춰져있고, 영토도 있다. 2014년 2월 알카에다와 IS가 완전 분리되기 전까지는 서로 협조 체계에 있었지만 지하드의 해석차이등으로 인해 IS는 분리 후 이슬람의 가름침을 극단적 재해석하여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극단적 테러 단체가 되었다. 알카에다는 외부의 적을 공격한데 반해, IS는 내부의 적을 공격으로 시작하면서 공포정치를 시작하였다. 2014년 12월 UN통계에 의하면 IS로 인해 살해된 이라크인만 24000여명이라고 한다. 이슬람교는 평화와 안정을 교리로 갖고 있고 자살은 금기되어있다. 이슬람은 테러리스트라고 규정하는 것은 그냥 무식한 것이 되는게, 7세기 이후 1400여년간 왜 테러가 없었는지를 설명할 길이 없다. (십자군 전쟁과 유럽의 중동 식민지외에는 역사적으로 테러와 이슬람을 묶을 고리는 없다.) 


- IS는 CIA와 이스라엘 정보기관 Mossad가 합작한 단체다라는 소문(?)이 있다.
IS의 리더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는 모싸드에서 훈련을 받은 유태인인 Elliot Shimon라고 Edward Snowden이 NSA문서를 공개하였고 이란의 정보기관에서 공문화하였다. 그럼 이 이라크에서 태어난 시오니스(Zionist,유대 민족주의자) 유대인이 이스라엘 정보기관에서 일했고 IS를 만들었다? 그럼 미국은 당연히 이 것을 알테고... 스노우든이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미국, 영국의 정보기관과 모사드가 함께 ISIS를 만들었다고 밝혔고, 스노우든은 세 국가의 정보국들이 세계에 있는 과격분자들을 끌어모아 하나로 모으는 이른바 "꿀벌집" 전략의 일환으로 테러리스트 집단을 만들었다고 말했다.미정보국의 문서는 이 꿀벌집 집단을 종교적이고 이슬람적인 슬로건을 내세우게 해서 시오니스트 독립체(이스라엘)를 지키기 위한 도구라고 지칭했다. 스노우든에 의해 공개된 문서에 따르면, "유대인 국가를 지키기 위한 유일한 해결방법은 그 근처에 적을 만들어두는 것"이라고 한다.이 비밀문서는 ISIS의 리더인 성직자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가 이스라엘 정보국인 모사드의 손에 1년여간 혹독한 군사훈련과 함께 연설기법과 신학에 대한 훈련을 받았다고 밝혀졌다. (참고 자료 : 스노우든,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


두 인물은 같은 인물이고 아부 바크루 알 바그다디와 엘리엇 시몬은 동일 인물이라고 한다.



간단하게 알아본 시리아 전쟁 



- IS의 극단적 테러는 IS는 알카에다(20세기 테러 조직, 2001년 테러와의 전쟁 이후 운둔적으로 활동했던 테러 단체, IS는 국가(로 선포하였기)이고 영토가 있지만 군사, 행정, 재정 군사 30,000명밖에 안되는데 통치를 해야하니까 공포 정치를 하기 위해 극단적 사살. 인권 유린, 집단 살해가 일어나고 있다.


- 미국과 이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것과는 달리, 미국에 대한 반감은 소수 국가(아랍 22개국 중에서 반미 대표국가들 예멘,리비아,시리아, 이라크)이다. 참고로 미국 무기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 중 한 국가는 사우디 아라비아. 


러시아와 미국의 무기 수출 인포그래픽 (자료 출처 : Business Insider) 


- 미국은 윌슨 대통령의 민족 자결주의의 영향으로 중동 국가들의 독립 지원하였고 긍정적 기여를 하였고 1979년 이슬람 혁명 이전까지 서구적이었다. 그리고 2010 12월 부터 소위 "아랍의 봄"(Arab Spring) 이라고 불리는 혁명적인 붐은 미국이 만든 소셜 미디어 facebook, twitter등이 불을 지폈고, 이런 소셜 미디어의 영향들로 인해 아랍계 여성들의 눈을 깨워 남성과의 비슷한 여권신장을 볼 수 있었다. (참고 자료 : 아랍의 봄과 아랍계의 여성 )


이슬람 혁명전인 1979년 이전의 아프가니스탄 가족의 모습


- 이슬람은 강력한 유일신 사상으로, 유대교, 기독교의 뿌리를 둔 이슬람에서 기독교와 차별하기위해 삼위일체를 부인하고(구약은 유대교와 마찬가지고 공유), 즉 이슬람의 눈에서는 예수 모세도 사도이고 인간이고, 무함마드도 인간이기에 우상으로 신격/우상화하는 것을 막기에 무함마드의 초상화는 존재 할 수 없다. (동방교회와 비슷한 점). 대신 이슬람에서는 아라베스크의 기하학적 무늬를 사용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비슷한 이유로 중동 아이들에게 선물로 인형을 주는 것을 안좋아할 수도 있다고 한다. 



사우디 아라비아 국기 (첫 줄 부분 : 라 일라하 일 알라, 알라외에 다른 신은 없다라는 뜻)


언론사의 의사의 자유 표현과 넘어서는 안 될 선의 사이, 그리고 테러



이슬람, 무슬림, IS등을 알아보며 어떻게 보면 너무 세상 밖을 보지 않고 살지 않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종교도 폭력적인 것을 전파하는 교리는 없고, 폭력을 사용하는 세력이 있다면 그 안에서의 정치적인 이유일뿐이기에 소수로 판단하는 잣대는 없어져야 되며, "나와 다름"은 불편한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어차피 이 세상은 다 같이 살 수 밖에 없는 공간아니였던가? 그럴바엔 서로를 알려고 노력을 해보는 것이 어떨까? 


미국에서 만든 쌀로 지어진  밥과 부산 오뎅과 전라도산 김치를 먹으며, 식사 후 중국에서 만든 보이차를 마시며, 일본에서 만든 자동차에 중동 두바이 원유로 정제된 기름을 넣고, 백화점에 들어갔는데 에스컬레이터는 독일산, 푸드 코트에서 이스라엘 회사 소다스트림에서 만들어진 탄산수를 마시며 콜럼비아산 커피와 곁들여 벨기에산 쵸콜렛으로 마무리하고, 집에 들어와 신발을 벗고 가지런히 놓는 이탈리아 가죽으로 만든 구두.......



I think every person has their own identity and beauty. Everyone being different is what is really beautiful. If we were all the same, it would be boring.          

- Tila Tequila (미국 연예인)




BY KY.O.N.O



Blue Screen Life

www.bluescreenlife.net

https://www.facebook.com/xbluescreenlifex/




저작자 표시
신고

Day One - KY.O.N.O




12월 14일 월요일 - DAY ONE : KY.O.N.O - Stockholm, Sweden


안녕하세요, Blue Screen Life의 2주년 특집 포스팅의 Day One을 포스팅하는 KY.O.N.O입니다. 아무쪼록 동생 Geon과 함께 재밌는 블로그를 시작해보자라는 아이디어에서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해주었던 모든 분들의 서포팅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몇 분이 되었던 계속해서 큰 사랑및 관심 부탁드립니다.




가장 안락해져버린 곳이자 하루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내 방이자 오피스


2010년 11월 7일 5시 스톡홀름의 브로마 공항에 도착하면서 해외거주자로 시작 현재는 스웨덴 국적을 갖고 있는 스웨덴 이민자로 5년 하고도 조금 넘는 시간이 지났네요. 스웨덴에서도 5번째의 겨울을 지내게 되었고 길고 어두운 삶에 조금은 더 익숙해진 느낌입니다. (겨울 대략적으로 오전 9시에 해가 떠서 3시에 해가 짐. 스톡홀름 기준) 2015년에는 제게 큰 변화가 있었는데요, 4년여간 다녔던 스웨덴 회사를 그만두고 제 비즈니스를 시작하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였는데, 저는 스웨덴 패션 회사에서 세일즈 메니져로 일을하였고 회사의 사정상 그리고 제 꿈을 더 펼치기위해 패션 비즈니스 컨설턴트라는 어느정도 비슷한 캐티고리에 있지만 다른 필드에서 제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사실 회사를 준비한 것은 작년 여름부터였고, 그때부터 Alan Weiss (미국 독립 컨설턴트)의 책이라거나, Havard Business Review구독이라거나, Pat Flynn의 Smart Passive Income의 팟캐스트, Fashion Insight, Lynda.com(LinkedIn이 만든 강의 사이트, BSL의 Corejae씨의 추천), Coursera, LG 경제 연구소가 발행하는 리포트등을 보면서 내적으로 준비함과 동시에 (영주권자와 시민권자와 별 차이는 없지만 그래도 더 안정적일 수 있을 것 같아) 외적으로는 시민권 발급받음과 함께 회사를 신청하여 한국으로 따지면 일반 과세 기업으로 1월에 등록 함으로써 정식 회사가 되어 5월 퇴사와 함께 본격적으로 제 회사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주로 하는 일은 해외쪽으로 비즈니스를 하고자 하는 한국의 패션 회사에게 인사이트 제공과 시스템 셋업 (CRM, ERP, Business System Management), 세일즈및 기술등을 컨설팅하는 것으로 운이 좋게 시작과 함께 좋게 봐주셨던 지인분들의 소개로 계약과 함께 일을 시작할 수 있었고, 현재 즐겁게 일을 하고 있고 그 전보다는 시간적으로 정신적으로 여유롭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일반 총괄적인 비즈니스 관련한 서비스와 함께 비즈니스와 IT를 통합화 시키는 것을 특화하여 적용하여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다만 모든 것을 제가 다 처리해야 하기에 시간의 할애와 내 자신과의 엄격한 규칙과 습관을 만들지 않으면, 즉 게으르면 망하는, 안되기에 저 스스로에게 엄격하려 노력하지만 항상 쉬운 일은 아니네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시간 관리 (Time Management)를 잘할까 고민끝에 몇몇의 코스와 기사들을 읽고그 것을 제게 적용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배운 Key Point는 아래와 같습니다.

1. 5분내에  처리할 수 있는 일은 바로 하기

2. 급하지 않은 하지만 오늘 처리해야 되는 것들은 Notes에 Things To Do 리스트로 집어넣기 (iPhone연동)

3. 오늘 처리할 필요는 없지만 날짜가 정해져야할 필요가 있는 것은 칼렌다로 (비행기 티케팅, 호텔과 같이 자료가 필요한 경우는 칼렌다에 넣으면서 note부분에 여행 시간등이 기록된 영수증과 같은 것을 Dropbox에 올려놓고 Link를 따서 넣어둔다.)

4. 중요하지 않은 이메일 또는 서류같은 것들 (광고지만 왠지 필요가 있을 것 같거나, 회계용 장부 처리 자료 그 외 언젠가는 체크해야 할 것 같지만 중요하지 않은)은 따로 모아 놓고 일주일 마다 (일요일과 같이 시간이 여유로울때) 체크 합니다. (이메일 인박스에서 폴더를 만들어 smart mailbox로 정리하고 오프의 경우는 큰 박스를 손이 닿는 곳에 배치합니다.)


능률적인 시간 관리를 위한 셋업


위 이미지와 같이 실제로 하고 있는 것을 공유하자면, 저는 맨 위 사진과 같이 Mac 유져로 Mac Book과 Mac Book Pro 두 대를 모니터 3개에 붙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Mac Book에서는 시간관리 개인 메일 정리를 하고, Pro로는 업무를 보고 있습니다. 위 이미지는 Mac Book의 화면을 캡쳐한 것으로 새로운 OS, El Capitan에서 새로 선보인 Split Mode를 적용하여 iFantastical과 카카오를 한 화면으로 묶고 Notes (새로운 Notes는 진짜 최고인 것 같습니다.)와 Mail을 한 화면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혼자하는 비즈니스이다보니 시간 관리도 중요하고, 메일 매일 또는 일주일에서의 처리 우선 중요도가 굉장히 중요해 Asana와 같은 Project Management System을 사용하여 Slack이랑도 연계해놓고 써본 적도 있지만, 일이 일을 만들 수 있기에 스타트-업 선배들이 말하는 "일의 단순화" 그리고 "성공을 위한 짧지만 긴 길"을 만드는 것이 좋다는 생각에 현재는 이렇게 사용하고 있고, 제 클라이언트들과는 On-going project들이 있어 Slack의 리마인더와 Asana와 같은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어플등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스웨덴에서 오면서 제 삶의 방식에 있어서 가장 큰 도움이 된 것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입니다. 이 것은 전적으로 제 전 회사 보스였던 야콥씨의 덕분인데, 이 친구와 4년간 일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4년여간 단 한 번도 제게 일을 해라라거나 또는 유사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 특히 첫 3개월간은 정말 인상깊었는데, 큰 그림만 그려주고 스스로 해보도록 프로젝트를 던져주고 방법을 직접 가르켜 주기보다는 스스로 이해하고 내 스스로의 방법을 집어넣어 터득할 수 있는 기회를 줬습니다. 제 스스로가 어떤 회사나 시스템에 속할 수 없는 성격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이 친구와 함께 일하면서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는지에 대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누구한테 물어보기 이전에 Google, Naver, Quora, 각 종 코스등에서 자료를 찾고, 어떤 일이든 완벽하게 배우기 이전에는 사용하지 않는 것도 파생적으로 얻은 좋은 습관이 되었습니다. 


내 일을 시작하면서 역시 "한국인"답게 또는 내 성격스럽게 어느정도는 일에 대한 너무 많은 집착을, 그리고 때대로 얻는 물질적인 혜택과 함께 허무함을 그리고 삶의 의미...행복의 관념등에 대해서는 아직도 헷갈리고 어디가 마지막 정거장인지는 내 능력으로는 아직도 알 수 없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어렸을 적 가지고 싶었던 영단어 암기책을 포장했던 Armani, Rolex의 광고, 몇년 전 그 것들을 소유했을때의 행복은 사기전까지만 행복이었고 산 이후에는 무의미함이 라는 것을 깨닿는데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렸네요. 유럽에 살지만 유럽인도 아니고, 전 10년간은 거의 해외에서 더 생활한 제 자신은 더 이상 적어도 정신적으로는 한국인도 아니기에 정신이 여유로울때에는 정신적인 혼돈과 (특히 이런 어둠이 긴 겨울에는) 우울증과 불면증이 찾아오기에 무언가를 계속 찾으려고 제 자신을 바쁘게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운영중인 패션 비즈니스 컨설팅 회사, Harsest.com (하세스트, HA는 이름에서, SE는 Seoul, ST는 Stockholm에서 따왔습니다.)



12월 8일 화요일 오전 11시

Umeå에 베이스로 하고 있는 한 꾀 큰 스웨덴 브랜드와의 미팅. 지인의 소개로 지난 주 몇몇의 이메일 교환과 전화 통화를 통해 아시아 마켓팅을 위한 비즈니스 어프로치를 하여왔고, 놀랍게도 몇일 안되어 비행기 티켓을 끊어 스톡홀름으로 내려오고 미팅을 알려온 것은 지난 주 금요일. 어제의 하루의 많은 시간은 오늘 미팅을 위한 준비가 크게 차지 하였다. 일종의 내 컨설팅의 Salespitch (세일즈피치)가 될 것이기에, 크게 두 파트로 나눠 준비하였고, 한 파트는 내 현재까지의 커리어와 내가 이 회사가 필요로하는 것을 어떻게 실행시켜 어떤 목표치를 달성해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게 목적이었다. 사실 스웨덴및 유럽의 경기 상황도 있고, 더 큰 돈을 버는 것은 한국쪽 클라이언트가 훨씬 더 유리한데, 이 회사의 경우는 일반적인 패션 회사에서는 갖고 있지 않는 Creative한 아이디어와 로열티 높은 팬층도 갖고 있어, 미팅을 결정하여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11시 메세지로 비행기가 공항에 도착하였음을 알려왔고, 점심시간이 가까워지고 있기에 점심을 먼저 근처 식당에서 함께 먹으며 간단한 소개, 깊지는 않지만 어느정도 직접 보여줘야되는 얘기를 살짝 비추면서 점심을 하였고, 미리 허락을 구해 우리 집 거실에서 미팅을 가졌다. (공항이 우리집과 7분 거리인점, 시내에서 미팅시 Coffice (커피와 오피스룸을 대여해 주는 곳) 또는 호텔 로비 또는 미팅 룸을 빌리는 것에서의 불편함, 그리고 전화 통화시 이미 어느정도 포멀한 느낌이 아니라고 판단하였고, 그의 옷 차림세도 역시 포멀과는 거리가 있었다.) 미팅은 4시간 정도 진행되어졌으며 역시 첫번째 파트, 내 커리어와 소개 부분에서는 긴장감이 없었고 집중력도 떨어졌다. (사실 여러 잠재적 클라이언트들과 수차례 Web meeting에서도 보여진, 하지만 일하면서 느낀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는 누군가에게 무엇을 팔때는 항상 약-약-강-중 으로 가는 것이 효과적이다.) 두번째 부분에서는 그에게도 새로운 그리고 실제적으로 가능한, 하지만 내 회사의 역할 없이는 불가능한, 것들을 보여주면서 진행 방법을 설명하면서 "들어온다" 느낌이 들었고 이제는 기다리면 된다라는 느낌을 갖고 있을때 "조만간 가계약서"를 보낸다고 하면서 마무리. 미팅은 즐거웠고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물론 계약서 싸인하기전까지는 절대 "일"이 "일"이 되지는 않지만 한 번의 미팅에서 계약서 이야기가 나오기는 힘들다. 특히 유럽 사람들은, 더군다나 더 조심스러운 스웨덴 인이면 특히. 


12월 8일 화요일 오후 6시

미팅했던 P씨가 미팅 Recap을 요청하여, 바로 오늘 중간 중간했던 노트와 만들었던 자료를 이메일로 보냈다. 일단 보여줄 것은 다 보여줬기에 기다림만 남았다. 가계약서를 보낸다고 해도 지금으로서의 계약까지의 가능성은 40%이상으로는 보지 않는다. 내 컨설팅 비에 대한 내용은 전혀 얘기된 바 없었기에, 계약서상 네고가 남았기에 특히나 메일로 가계약서가 최소한 3번정도는 왔다갔다 할 것이고, 크리스마스 이전부터 다 여행을 떠나 1월초에 업무 복귀를 하기에 2주 정도는 일단 생각을 전혀 안한체 기다리기에 들어간다. 금액적으로는 절대 네고할 생각이 없기에 (네고시 그 서비스에 대한 리스펙트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내가 하는 업무에 있어서의 책임감도 결여될 수 있어 특별한 경우가 아니어서는 10%이상 네고를 해주는 경우가 없다. 특수한 케이스로는 클라이언트및 지인의 소개 또는 6개월어치 또는 1년어치를 한 번에 페이시 해준다.) 어쩌면 다음 시즌으로 넘어갈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눈앞의 돈을 위해서 급하게 생각하거나 먼저 액션을 취하는 것은 그냥 비프로페셔널한 것이기도 하고 가능성만 낮추는 것이기에 기다리는 동안 해야할 다른 일들을 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12월 8일 오후 7시 - 9시

현재 같이 일하고 있는 클라이언트들의 업무를 다시 시작한다. 주로 일들이 미국 동부 시간 - 유럽 시간 - 한국 시간이 엉켜있어, 가장 일찍 일을 보고 (한국 시간 기준) 늦은 오후에 다시 한 번 일을 본다. 오전의 일은 급한 일 또는 한국에서 오늘 정리가 되어야하는 일들을 정리하고, 오후의 일은 메일링부터해서 리포트 만들기, 시스템 셋업, 해외 에이젼트 전화 또는 계약서 만들기등 시간 또는 큰 집중력이 필요로하는 일들을한다. P씨와 미팅전 오전에 일을 본 후 다시 한 번 들어온 이메일등 체크하면서 태스크 죽이기를 하고 있다. 


12월 8일 9시 - 10시 반

가을에 시작한 런닝이 겨울이 되어 더 이상 할 수 없어, 아파트내에 있는 집에서 10초 거리의 짐을 다니기 시작했다. 이때는 정신적으로의 해방과 함께 "밖"에 나간다는 의미가 있다. 1주일내에 비즈니스 미팅이 없거나 약속이 없는 경우에는 5일간 집에 나가지 않는 히키코모리화 될 수도 있기에 땀도 흘리고 운동하며 팟캐스트를 듣는다. 주로 듣는 팟캐스트는 부동산, IT, Passive Income, Fashion, 역사 쪽으로 하루 운동시 2개 정도는 무조건 듣는 편이다. 주로 사람이 없는 때를 노려간다. 한국에서 살았을때 사귀었던 한 여자가 했던 말 "자기 관리도 못하는 뚱뚱한 사람은 성공할 수 없다." 그 여자한테 배운 가장 큰 교훈이다. 자연스럽게 담배도 끊을 수 있었다. 몸도 지식과 같이 매일 하다 보면 매일 매일 확인은 안되지만 어느정도 기간이 지난 후 어느 순간 거울 앞에 섰을때 변화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은 꾀 큰 재미이자, 하면 된다라는 교훈이 몸에 와닿는 순간이기에 기분 좋다.



집에 들어온 후 샤워 후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오늘 스케쥴에 있었던 PDF자료읽기(또는 facebook, iphone 6에서 제공하는 뉴스)와 책 읽기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30분간은 비즈니스 책, 30분간은 부동산 책 - 현재 Jim Rogers의 Smart Street과 WSJ에서 나온 Complete Real Estate Investing Guidebook. 이 짜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지난 1년간 꾀 많은 책들을 봤다. 기억 남는 책들로는 Zero to One, Strategist, Jewish New York, Rich Dad Poor Dad, 스타트업펀딩, 장하준의 경제학강의등)를 실천한다. 못하면 잘때 찜찜해서 잠 안 올 것같은 이유도 굉장히 크다. 이후 Lynda.com에서 내년 3월정도에 Launching할 Webinar 프로그램을 위한 Slide를 만들기 위해 Keynote에 대한 이센셜 코스를 듣는다. (컨설팅 비즈니스외에 웨비나 멤버쉽을 런칭할 예정이다. 현재 자료 축적중이고, 패션에 대한 기사들은 여기 BSL에서 기고했던 글들의 많은 부분들이 섞여 만들어질 예정이다. 내년의 가장 큰 프로젝트로 생각하고 있고 6개월 전부터 차근 차근 하나씩 준비하고 있다.) 코스 길이에 따라 시간이 되면 Ted.com 이나 Coursera에서 아카데믹적인 것을 같이 듣는다.


Complete Real Estate Investing Guidebook


Smart Street



12월 9일 오전 9시

오전 10시 15분, 지난 주 불면증으로 병원을 찾았고, 이번 주는 담당 의사와의 첫 면담이 있는 날이다. 겨울이 되어 더 어두워지고, 거의 집에서 일을 하다보니 일-개인적인 일들이 경계가 없어지다보니 패턴이 망가지고, 침대 위에서도 잠이 안오게 되고 이게 반복되어 고착화 된 느낌이 들면서 심적으로도 스트레스가 많아 병원을 찾았었다. 심할때는 3일간 7시간 밖에 못잤던 적도 있다. 처방받았던 항스타민제 중인 하나인 Atarax (알레르기 치료및 정신 안정에 쓰임)를 시도했었고 그렇게 큰 도움이 안되어 이번에는 인지 행동 치료사 (Cognitive behavioural therapist)를 처음 만나는 것이다. 45분간 비밀을 털어놓는 그런 느낌으로 잠이 안오는 이유를 찾기위해 내 하루의 패턴, 하는 일들을 디테일하게 물어봤다. 오늘 이후로 몇번을 더 보는 세션이지만, 이 세션이 실제적으로 내 불면증에 도움이 될까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왠지 심적으로는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도움이 안될시 한국에서도 한 연예인때문에 유명하게 된 졸피뎀 또는 그와 유사한 이모반과 같은 의존성이 있는 약을 사용해야될 지도 모른다하였다. 불면증으로 인해 약을 사용을 할 날이 올줄은 몰랐다.


집에 들어오는 길에 장을 보고 점심 후 다시 Working mode. 한국의 클라이언트들의 내년 시즌 준비가 요즘 가장 큰 이슈이고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부분이다. 시즌 세일즈를 위해 내년 1월은 프랑스 파리와 독일 베를린을 포함한 이미 4개국의 비행기 티켓팅을 미리 마친 상태이다.(핀란드에서는 BSL의 Corejae씨를 만난다 !!)  오후 중간에 6개월간 띄엄 띄엄 이메일을 주고 받았던 지난 시즌 파리에서 만났던 Gothenburgh의 한 브랜드로부터의 이메일이 한 통 들어오고, 다음 시즌에 앞서 Web meeting을 해보자고 제안이 들어왔다. 여태까지의 이 R씨가 보여준 액션으로는 실제적인 비즈니스 교집합이 어떻게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이번엔 IthoughtsX와 Keynote 를 섞어서 웹 프레젠테이션으로 사용해볼 생각이다. 어떻게 보면 3월 런칭할 웨비나에 앞선 try-out느낌으로 체크해보면서 장단점도 분석해보려고 한다.


2015년 그리고 앞으로, 

2015년은 내게 있어서 큰 터닝포인트가 되었던 해이자, 여태까지 노력해왔던 것들이 내 회사의 서비스에서 빛을 발했던 한 해인 것 같았다. 비즈니스와 내 자신에 있어서의 자신감은 상승했고, 욕심이 없어진 만큼 바라는 것도 없어져 Materialism (물질주의)에서 어느정도 벗어날 수 있게 해줘 뇌의 공간에 여유가 생겨 다른 측면을 볼 수 있었던 해였던가 반면, 최근의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불면증은 극복해야할 것으로 남았다. Blue Screen Life를 시작하면서 가장 크게 바뀐 것 중의 하나는 나의 Idol이었던 Madball, Hatebreed, The Get Up Kids보다 스타트업 비즈니스에서 성공한 Elon Musk(Tesla CEO), Sean Rad (Tinder CEO), Stewart Butterfield (Slack CEO), Evan Spiegel (Snapchat CEO), Mark Zuckerberg(Facebook CEO) 이와 같은 사람들이 보다 더 아이돌이 되었는데, 11월에 다녀왔던 Web Summit에서 평소 관심있게 지켜봤던 회사들, Tinder의 사장 Sean의 강연과 Oculus의 사장 Palmer의 강연은 New York에서 2003년 처음 Mad Ball의 공연을 봤을때와 느낌이 비슷했다. 이미 가사와 음악은 다 알고 있지만 실제 라이브가 감동적인 것과 같이, 이 회사들이 어떻게 성장하였는지 특별히 내가 모르는 전혀 새로운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을 직접 보고 직접 느낄 수 있었다는 것 자체로도 큰 감동이었고 동기부여가 될 수 있었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2015년 11월 열렸던 Web Summit에서 직찍사


아마도 당분간은 계속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계속 유지하고 팽창하여 하겠지만, 지루해지거나 지치지 않게 Long term으로 꾸준히 진행함으로서 계속 성장해나가고 싶고, 내 삶에 있어서 이제는 어느정도 크게 자리 잡게된 Blue Screen Life를 통해 많은 분들과 소통하면서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고 싶다. 이미 BSL의 멤버들은 삶에 있어서 Mastermind Group (조력 집단)이 되었음에는 틀림 없다. 계속 유유자적하게 살고 싶다, 다만 20대때와는 달리 좀 더 프로페셔널하게 좀 더 하이 스탠다드하게, 남들및 사회도 둘러보면서.


벼락성공, 단지 5년에서 13년이 걸릴뿐입니다.




BY KY.O.N.O 

https://www.facebook.com/xbluescreenlifex


Harsest - It's Better than Harvest

info@harsest.com

www.harsest.com

저작자 표시
신고

수입 패션 브랜드가 한국에 들어오면 지속성없이 망하는 이유


수입 패션 브랜드가 한국에 들어오면 지속성없이 망하는 이유



(본 이미지는 포스팅의 내용과 무관합니다. 모든 이미지 출처 : 구글)



* 패션 관련 지난 포스팅 

서브 컬쳐와 패션 트렌드

디자이너 키즈 패션 - 1/2

디자이너 키즈 패션 - 2/2

패션 브랜드 시작 하기 - 1/2

패션 브랜드 시작 하기 - 2/2



이번 포스팅에서는 패션업계에 종사하면서 아쉽게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하는 해외 브랜드의 지속성의 결여 문제에 대해서 소개하려고 한다. 


가장 첫번째 질문으로 "왜 똑같은 제품이 가격이 다르고 어떻게 내 돈을 소비해야 하는가?" 라는 점인데, 이 점에 대해서는 브랜드의 가격 구조를 먼저 알아보고 가야만한다.

SPA 브랜드 또는 국내 마켓만을 타겟으로하는 B2C브랜드와 B2B 브랜드 (다른 말로 하자면 수출을 염두해둔 브랜드 또는 위탁이 아닌 도매를 하는 브랜드)의 가격 구조의 대략적인 마크업(Mark-up, 배수)은 아래와 같다. (마크업은 브랜드의 전략및 브랜드의 프로덕션 사이즈및 지역적으로 차이가 있기에 일반적인 케이스의 중규모의 디자이너 브랜드를 케이스로 한다.)




B2C

제조가 10,000 원

소매가 35,000 원에서 45,000 원

즉, 제조가가 10,000원짜리 아이템을 온라인 또는 오프라인 직엽샵에서는 3,5배에서 4,5배에 팔고 (물론 2배에서 2,5배에 세팅을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충성도가 낮은 브랜드이거나 신생 브랜드 또는 밴드 머쳔다이즈등 특수한 경우) 위탁판매시 30%에서 40%를 위탁하여 판매해주는 곳에서 수수료로 떼어간다. 


B2B

제조가 10,000원

도매가 25,000원에서 35,000원

소매가 62,500원에서 70,000원

즉, 제조가가 10,000원인 아이템을 온오프라인 샵 점주들에게 도매가로 직접 팔았을 경우 25,000원에서 35,000원 사이에 세팅된 가격으로 판매한다. 그렇게 점주가 산 아이템들을 소매가로 판매하는 가격이 62,500원에서 70,000원 사이가 되어 소매점에서는 2배에서 2.5배의 마진을 남긴다.


오늘의 주제가 되는 해외 브랜드의 국내에서의 마켓 지속성만을 고려하여 수입 브랜드의 가격 구조를 보자면 아래와 같다. (편의를 위해, 도매가는 제작가에서 2.5배 마크업, 소매가 역시 2.5배로 예를들어 소개한다.)

제조가 10 유로

도매가 25 유로

소매가 62.5 유로


해외 브랜드가 한국에 유통 되기 위한, 그리고 가격에 영향을 끼치는 조건으로는 Trading term 에서 어떻게 딜리버리를 하느냐와 FTA로 관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느냐가 가장 큰 두 요소이고, 디테일하게 보자면 아래와 같다.


1. Trading Term : FOB, EX-Work, CIF, DDP, FCA

가장 많이 쓰는 Terms들은 위와 같고, 더 자세하게 알 수 있는 소스가 많기에 간단하게 설명하고 넘어가자면 FOB는 브랜드가 Pick up하는 (여기서는 한국의) 리테일러, 디스트리뷰터가 지정하는 항구까지는 브랜드가 딜리버리를 책임지고 항구부터는 픽업하는 사람이 부담하는 것이고, Ex-Work는 픽업하는 사람이 브랜드의 창고 또는 오피스에서 픽업하여 한국의 창고 또는 샵까지의 모든 금액을 부담하는 경우이고, CIF는 아이템에 대한 보험을 입히는 것이고, FCA는 FOB와 유사하지만 항구대신에 공항으로 즉 Ship이 아닌 Air로 픽업할 경우 쓰는 용어이고, DDP는 위의 무역 용어와는 다르지만 가격표에 있어서 Delivery Duty Paid라고 하는 즉, 물건을 픽업시 관세와 배송료를 포함하는 Hidden Fee없는 가격을 얘기한다. 이 Trading Term이 중요한 이유는 FOB와 EX-WORK에 있어서 픽업하는 사람이 돈을 더 많이 내는 EX-WORK로 계약이 이뤄졌을 경우, 한국에서 통관시 FOB때보다 더 많은 관세를 내야 하기에 픽업하는 측은 FOB를, 브랜드측에서는 FOB를 선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과세가격 계산 공식 : [실제 총 구매금액(상품가 + 배송비 + tax) x 고시환율(한국 도착하여 수입신고 하는 날짜의 과세 고시환율] + 무게별 과세운임 

관세 : 과세금액 * 물품의 관세율% / 부가세 : (과세금액 + 관세금액)*10%



(참고 자료: 한국과 FTA 협력국)


2. FTA (Free Trade Agreement): FTA는 원래 신생개발국들 또는 무역의 증흥을 하기위해 국가들이 타국과의 비관세 무역을 위해 하는 조약으로 예를 들어 한국및 인도와 같은 국가는 체결 국가가 많지만, 일본은 체결 국가가 거의 없다. 한국은 여러가지 면에서 수출하기 좋은 나라이다. 현재 미국, 유럽의 28개국과 터키(터키와 유럽과의 FTA로 한국도 역시 부분 점진 FTA철폐의 이점을 갖고있다.), 칠레, 아세안 FTA, 그리고 인도와의 CEPA가 이뤄져있다. 즉 원산지 국가 (Country of Origin)이 한국이라면 위의 국가들에 수출을 할 경우 세금을 적게 내거나 아예 내지 않는다. 예를 들어, Andre Lee라는 한국 브랜드가 중국에서 제작한 Made in China의 면 티셔츠가 미국에 수출된다면 FTA의 혜택을 전혀 못받는다. 반대로 Giorgio Armani의 면으로 만든 티셔츠가 인도에서 만들어졌을 경우 한국에 물건이 들어올 경우 관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인도의 경우는 일반적인 무역의 경우 면에 있어서 부과되어지는 13%의 관세 대신 6%정도를 실제로 내게 되어있다.)


그럼 다시 해외 브랜드의 가격 구조와 Trading Term 그리고 FTA를 엮어서 생각 해보자면,

한국의 샵 오우너가 브랜드의 한 아이템을 직접 구매시 도매가인 25유로에 사지만, 실제적으로는 쉬핑(FOB, EX-Work, CIF, FCA의 Trading Term과 Forwarder를 쓰느냐 또는 UPS, TNT와 같은 Courier service 업체를 쓰느냐에 따라 좌우)과 FTA 적용 국가에서 생산하였는지 안하였는지에 따르는 관세가 좌우하여, 실제적으로는 아래의 경우와 같이 배수가 변경된다.


도매가 25유로 짜리 아이템이 한국에 정식 통관시, 

FTA적용 국가에 항공으로 올 경우 (FOB)에 핸들링비까지 포함하는 Landed Cost(국내 도착 가격)는 25유로에서 10% 정도가 업되는 27.5 유로

FTA 비적용 국가에 항공으로 올 경우의 Landed cost는 25유로에서 30%정도가 업되는 32.5 유로가 된다.


그럼 실제적으로 브랜드측에서 정해주는 도매가에서 소매가 (Recommended Retail Price)의 2.5배 배수가 

27.5 유로 - 62.5 유로 : 2.27 배수

32.5 유로 - 62.5 유로 : 2배가 체 안되는 1.9 배수가 된다.


이 경우는 샵 점장이 브랜드에 직접 컨택하였을 경우이고, 한국을 Territory(지역권)로 하는 유통권을 가진 Distributor(디스트리뷰터, 공식 수입사)는 브랜드측에게 오더의 볼륨및 계약 기간, 역할등에 좌우되지만 대략 25%의 도매가에서 디스카운트를 받기때문에 디스트리뷰터의 가격은 아래와 같아진다.


도매가 25 유로

디스트리뷰터 수입가 18.75 유로

소매가 62.5 유로


이 프라이스를 바탕으로 수입을 할 경우는 아래와 같아진다.

FTA 비적용 국가의 Landed Cost : 18.75유로에서 30% 업된 가격인 24.3 유로

FTA 적용 국가의 Landed Cost : 18.75유로에서 10%업된 가격인 20.6 유로


배수는 

24.3 유로 - 62.5 유로 : 2.57 배수

20.6 유로 - 62.5 유로 : 3.03 배수


참고적으로, 디스트리뷰터가 25%의 디스카운트를 받는 것은, 한 국가의 총괄하여 마켓의 관리와 쉬핑시 하나의 벌크 오더로 한국에 우송이 되어지고 관세및 검사(필요시)를 하는 조건으로 받는 것이고 디스트리뷰터는 한국내 프라이스를 컽르롤할 수 있는 파워가 생긴다. 또한 유통 채널을 가진 소매업체들에게 위탁이던 사입이던 물건을 까는 즉 Resale 을 할 수 있다. 사입의 경우는 2 배의 배수를 위탁의 경우는 30%-40%선에서 수수료를 준다. 디스트리뷰터가 직접 유통시 가장 큰 마진을 남길 수 있는 구조이다. 일반적으로 브랜드에서 정해준 RRP에서 10%에서 많게는 30%까지 가격을 업하는 경우가 많다.


FTA 적용 국가의 상품을 예로 들어, 브랜드가 지정한 도매가 - 실제 구입가격 - 한국내 도착가 - 한국내 도매가 - 한국내 판매가를 보자면 아래와 같다.


25유로 - 18.75유로 - 20.6유로 - 34.4유로 - 68.75유로

즉 Distributor는 18.75유로에 산 상품이 한국에 도착하면 20.6유로가 되고, 65유로였던 아이템이 국내 소매가가 10% 인상된 가격인 68.75유로가 되며, 이 가격의 반가격인 34.4유로에 한국의 Distributor가 국내 소매 판매상에게 판매되는 구조이다. Distributor가 판매 채널이 있는 경우는 3배이상의 배수를 가져가 큰 마진을, 중간 유통상에게 판매시 1.6배의 배수를 갖고가게 된다.



오늘의 핵심의 이야기는 위의 배수에서 다시 시작된다.

쉽게 얘기하자면, (당연 배수및 프라이스 포인트등 많은 차이가 있지만) NIKE를 수입하는 A라는 디스트리뷰터가 한국에서 NIKE Air Max 90이라는 아이템을 정식으로 유통시 미국에서의 100 달러짜리 아이템이, 한국에서는 110 달러가 되며, 나이키를 유통하는 A사가 갖고 있는 채널에서 판매시 3배의 배수를 A사가 아닌 그외의 모든 다른 유통채널에서 판매시 A사는 1.6배의 마진을 얻는 것이라는 것인데.


이 것이 "왜 한국에 들어오는 패션 브랜드들의 가격이 해외와 다른가?"에 대한 답변이 된다.

결국 해외 브랜드는 관세와 쉬핑 그리고 국내 유통업체의 Marketing 비용과 CS, AS비용이 포함되어져 해외에서 사는 것이 당연하게 싸다.



자 잠시, 그러면 브랜드를 살 수 있는 채널들에 대해서 알아보고 다시 메인 주제로 돌아와보자.


너무나 쉬운 얘기일 수도 있지만, 브랜드를 살 수 있는 정상적인 채널로는 

정식으로 수입 절차를 밟은 샵 (Authorized dealer / shop / retailer), 즉 온 오프라인 샵이 있고

온오프라인 형태의 아웃렛 (Outlet)

그리고 단기간적으로 판매하는 Pop up shop과 단기간에 집약적으로 (보통, 대개의 경우) 디스카운트를 하여 파는 Flsah sale 샵으로 크게 볼 수 있는데


(한국의 한 아웃렛, 아웃렛에서 보통 시즌 지난 아이템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아웃렛만을 위한 아이템이 나온다는 점을 잊지말자!)



온오프라인 아웃렛과 Flash sale 샵을 설명하고 넘어가자면,

여주, 파주에 있는 아웃렛에 가보면 명품들을 50% 70% 식으로 크게 써져있는 프라이스 택을 볼 수 있는데, 아웃렛에 유독 비싼 아이템들이 많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전 포스팅에서 설명한 바 있듯이, 브랜드가 측정한 제작가와 소매가 가격이 아주 큰 배수로 측정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00만원짜리 버버리 가방이 있다고 치자면, 제작가는 10만원이라고 하고 소매가 100만원이 되는 것이고, 이 아이템이 70% 세일을 가더라도 여전히 브랜드 측에서는 3배수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소중규모의 브랜드의 배수는 B2B를 하는 브랜드는 5배에서 6배, B2C를 하는 브랜드는 3.5배 4.5배 배수 밖에 안되기에 이렇게 세일을 할 수 없다.


Flash sale 사이트는 정해진 기간, 예를 들어 1주일정도의 기간을 두고 브랜드를 집중 노출 시키며 보통 30% 정도 디스카운트를 하는 (주로) 온라인 형태의 샵이고 GILT, Modnique, Rebonz 등이 대표적이며 유럽과 미국에서 발전된 형태로 세일즈는 미국이 훨씬 크지만 미국의 엄격한 Regulation과 절차로 인해 유럽에서 꽃을 피운 형태의 샵이다.



이 채널등을 설명함으로서 오늘 이야기를 해야할 내용은 다 커버가 되었다.


그럼 오늘의 결론인 왜 한국에서 브랜드가 소개되어지면 지속성이 없는가의 결론으로 가보자면, 한국의 인터넷 발달과 한국인 특유의 전세계 싼 가격 찾기 그리고 업자들의 Gary market의 형성이다. (배대지라는 단어가 생겨난 이유이기도 하고, 한국인들 특유의 물건너온 물건에 있어서의 특권 의식도 한 몫했다.)

다시 말하자면, 한국에 브랜드가 수입되면, 아니 모든 브랜드가 자국이 아닌 타국에 들어가면 (직접 제작하고, 직접 유통하고 마케팅하고 판매하는 SPA 브랜드들 제외) 가격이 당연히 올라가길 마련인데, 한국에서는 한국에서 정식 유통되는 아이템보다 더 싼 가격에 Gmarket과 같은 오픈 마켓 그리고 수많은 온오프라인 샵에서 판매하고 있다. 


그럼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그레이 마켓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병행 수입을 꼽고 싶다.

병행 수입은 한국 정부가 승인 해준 (물건이 들어오는 통로가 많아지면 관세를 걷을 수 있는 루트도 많아지기에) 정식 수입이 아닌 불법의 경로만 아니면 유통을 할 수 있게 해준 것으로, 실제적으로 브랜드 입장에서는 한국에서 Distributor에게 물건을 파나 샵에 파나 누구한테던 많이 팔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누구한테 파는지"는 그렇게 신경을 안쓴다. 당연히 한국으로 들어가는 물건은 딱 한 업체, Distributor에게만 주는 것이 당연하고 그 것이 당연히 계약서에 들어가 있다. 하지만 예를 들어 미국에 온라인을 운영하는 A라는 사람이 브랜드에게 물건을 사서 이 A라는 사람이 한국에 물건을 보내는 경우는 컨트롤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렇게 들어온 물건은 한국내 Distributor가 세팅한 권장소매가에서 당연히 더 싸게 가격을 책정하여 더 많이 팔 수 있게 된다. (한국에서 1000원...아니 500원 100원이 더 싸면 싼 곳에서 사는 구매 패턴을 보자면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유사한 방법으로, B라는 한국내 온라인 샵을 가진 사업자가 수입하려는 아이템이 이미 한국에 Distributor가 있는 경우, 한국에서 Distributor에게 물건을 구매/위탁하지 않고 더 큰 마진을 본다고 생각하거나, 가격을 더낮춰 팔기 위해 유럽 또는 미국에 있는 에이젼트 또는 샵에게 직접 컨택하여 물건을 오더하여 물건을 받는 경우 역시 많이 있는 경우로 실제적으로 그들이 가져갈 수 있는 마진은 정식 유통하고 있는 Distributor, retailer 보다는 적지만 빠른 세일즈를 노릴 수 있기에 많이 행해지고 있는 경우이다.


그외, 해외 아웃렛등에서 직접 전시즌 상품들을 구매하여 한국내 샵에서 디스카운트하여 파는 경우도 있다. (명품및 중상가격군들의 경우)



해외 브랜드를 발굴하고자 하는 발로 뛰고 연구하는 국내의 리테일러, 디스트리뷰터는 해외의 유행을 파악하여 한국내에서 유통할 브랜드를 발굴하지만, 소개와 함께 인기가 어느정도 얻는다 싶으면 조금 더 싼 가격으로 밀어내기 하면서 디스트리뷰터의 비즈니스를 망치게 되며, 많이 풀리는 양만큼 브랜드의 생명도및 유행은 빨라지고 브랜드의 지속성은 어떤 나라보다 더 빠른 속도로 사라지게 된다. 가짜 아이템및 유사 아이템등은 또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말이다.


아쉽게도 이런 유통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구매 아이템에 있어서 교환, 환불, AS등은 아무래도 정식 유통사를 통해 사는 것이 유리할 수 밖에 없지만 역시 이 이슈는 가격대및 브랜드의 충성도와 결부되는 것이기에 역시 경우에 따라 다를 수밖에 볼 수 없다.


업계인으로 한마디 덧붙이자면, 리테일러에서 디스트리뷰터로 성장하면서 더 좋은 더 쿨한 브랜드들의 소개를 하는 열심히 하는 디스트리뷰터들이 계속 비즈니스를 연장할 수 있는 것이 큰 그림으로 봤을땐 더 좋은 그림이기에 (너무 큰 가격 인상으로 배불리 하지 않는 양심있는) 사업자라고 하면 쿨하게 서포팅 해주자 !




BY KY.O.N.O 

https://www.facebook.com/xbluescreenlifex

http://www.harsest.com/

저작자 표시
신고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 Emo Band Best 10선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 Emo Band Best 10선



이모의 아버지(는 외할아버지가 아니라), Fugazi 

(*본 포스팅의 모든 이미지는 Google에서 사용하였습니다.)



시애틀에서 1990년대 초반의 얼터너티브 인기가 전국구로 퍼지기 전에 이미 어느정도 포메이션을 완성해가고 있던 하드코어, 펑크의 서브장르인 이모(Emo, 이하 이모)의 시작은 누가 뭐래도 Minor Threat의 Ian MacKaye(이언 맥케이)가 Dag Nasty의 드러머와 기타리스트 멤버들과 함께 1986년경 결성한 Fugazi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 같다. 여기 소개하는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왕성히 활동했던 밴드들이 직비간적으로 영향을 받았던 밴드이자 대부분의 밴드가 메이져 브랜드로 가지 못했고 (타의던 자의던 , Taylor Swift도 같이 씽얼롱 한다는 Dashboard Confessional은 예외) 여러 이유로 해산하게 되었고, 이들의 음악적 영향으로 Pure Noise Records (퓨어 노이즈 레코드는 2008년 만들어진 이모/팦 펑크 레이블로 오우너는 AMP 메거진에서 에디터였던 Jake Round이가. Story So far, Senses Fail, State Champ, Reggie and and Full Effect등 소속)등으로 파생되어져왔다. 본 포스팅에서 거론되는 장르 “이모”는 Screamo, Emotional Hardcore계 밴드는 제외한 순수(?) 이모 밴드만 (즉 스키니 진 이전)의 모음이고, 순서가 의미하는 것은 없고 선정도 역시 내 취향에 따라 선정했다.


GMC Records시절, 수입을 하였던 레이블들 -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유럽의 Good Life Recordings, 미국의 Lumberjack, Very Distro, Level Plane - 을 통해서 한국내에서 유통되었던 몇몇 밴드들이 끼어있고, 실제적으로 하드코어 음반외에 이 꾀 많은 음반들이 유통되었고 꾀 많은 인지도를 얻었던 밴드들도 있다. 한국내에서는 Emo의 장르가 소개되면서 현재 SNL KOREA에서 일하고 있는 한창헌씨의 스크리모 Distro 라인이었던 Squelch Records (Stay Tune)에서 일본, 유럽등에서의 보석같은 밴드들이 발굴되어지기도 했던 2000년대 초반 한국 씬이 있었다. 한국에서 이모라는 장르를 붙일 수 있는 밴드로는 아마도 “이모”라는 단어를 전면적으로 내세웠던 The Apop이 시초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미국 유학생 Jimmy Chang을 주축으로 결성되었던 2000년대 중반의 밴드로 EP가 유일무이한 그들의 Discogrphay이지만 길지 않은 밴드 활동을 당시 중국 팬들까지 있을정도로 인기가 있었던 밴드였고, I love JH라는 여성 보컬이 있었던 밴드도 앨범을 냈었다. 조금은 느낌은 다르지만 2010년대에 결성된 We Hate JH (I love JH와 무관한 밴드라고 한다)가 대표적인 이모 밴드로 활동하고 있는 밴드로, 제주도 출신의 99Angers의 이현씨의 솔로 밴드인 Gus Benevolent와 또다른 99Angers의 멤버였던 이현종씨의 솔로 프로젝트인 Zen-Alone도 이모 장르에 아우르는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내 맘대로 선정한 Top Best 10 이모 밴드 리스트

1. Dashboard Confessional

2. Elliot

3. Thursday

4. Blue Beard

5. The Get up Kids

6. Daphne Loves Derby

7. Leiah

8. Mae

9. Gloria Records

10. Mates of State



Dashboard Confessional 


관심있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2000년대 초반에 이들만큼 가장 큰 인기를 누렸던 이모밴드는 아마 존재 하지 않을 것 같다. Chris Carrabba가 솔로 프로젝트성 밴드로 결성한 밴드로 Further Seems Forever라는 밴드에서 이미 큰 인기를 얻었던 그리고 New Found Glory에서 Shai Hulud에서 멤버로 동시에 활약했던 Chad Gilbert대신 땜방을 해주기도 했던, 크리스가 결성한 밴드로 첫 앨범 Drowing (EP)은 사실 이후 작들, 즉 Vagrant Records에서 발매했던 음반들과는 어느정도 다른 느낌의 곡들로 구성되어져 있지만, 풋풋하지만 신선한 음악을 선사해주었다. 명 레이블 Vagrant로 이적 후 첫 풀렝쓰인 2001년 앨범 The Places You Have Come to Fear the Most에서 Screaming Infidelities가 터지면서 대학가및 공연장들 섭외 Top 밴드로 거듭 성장하게 되는 Milestone이 된다. 그리고 어떻게보면 크라잉 넛의 말달리자와 같은 이모 Number One Hit Track “Hands Down”이 (2003년 앨범 A Mark, a Mission, a Brand, a Scar수록) 그냥 판을 다 쓸어버리고 빌보드 인디 앨범 차트 넘버 1을 차지하며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대쉬보드 컨페셔널은 2009년 활동의 휴식기를 갖고 있으며 2010년 전 밴드였던 Further Seems Forever에 복귀하여 2012년에 캘리포니아 레이블 Rise Records에서 앨범 Penny Black을 발매하였다.

추천 앨범 : A Mark, A Mission, A Brand, A Scar




Elliot 


엘리엇하면 아직도 신기한 것 중 하나가 Elliot이 데뷔했던 레이블인 Initial Records의 헤드쿼터가 있는 곳이자 이들의 출신 지역인 켄터키주의 루이즈빌에서 씬이 만들어져 심지어 2000년대 초반 큰 페스티발이었던 Krazy Fest등을 주최되어졌다는 것이다. (아쉽게도 페스티발의 역사가 오래가진 않았다.) Elliot은 Falling Forward를 전신으로 하는 멤버들을 주축으로 만들어졌다가 핵심 멤버인 Kevin Ratterman이 가입되면서 제대로 된 라인업으로 1995년경 셜성하게 되며 2000년 명 하드코어 레이블 Revelation Records에서 False Catherdrals를 발표하며 큰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2003년까지 몇년 안되는 밴드 히스토리의 마침표를 찍게 되는데, 이 후 Kevin Ratterman은 The Funeral Home이라는 스튜디오를 차려 엔지니어로 활동하면서 BYour Black Star라는 밴드 멤버로도 활동하였다. 일본의 이모 밴드 Drumkan의 후기 앨범과 Drumkan이후 보컬리스트가 새로 시작한 PARMS는 이 스튜디오에서 녹음하였고, 또한 사토씨의 레이블이기도 한 Waver Waver (한국에서도 유명한 NIM이 데뷔한 레이블)에서는 Your Black Star을 라이센스하여 일본 내 투어를 같이 하기도 하였다.

추천 앨범 : False Cathedrals




Thursday



뉴져지에서 1997년 결성된 Thursday는 1999년 데뷔 앨범이자 어느정도 진보한 사운드를 보여줬던 성공한 앨범인 Waiting (Eyeball Records 발매)과 메이져 히트 앨범이 되는 첫 (아직까지도 전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하드코어 레이블로 여겨지는) Victory Recotds에서 Full Collapse를 2001년 발매하면서 세계적인 밴드로 성장하게 된다. 보컬의 특이한 보이스에서 나오는 멜로디가 압권인 Thursday는 2000년대 중반 음악적으로 Screamo로의 변경 노선을 타며 일본의 Screamo god 엔비 (evny)와의 스플릿앨범을 2008년에 발매하며 뉴욕의 Post Rock 레이블 Temporary Residence에서 발매한다 (Temporary Residence는 현재 일본의 엔비, 모노, 미국 대표적인 포스트록 밴드 Explosion in the sky등의 라인업을 갖고 있다.) 이후 펑크 레이블 오랜 역사를 가진 웨스트 코스트 명펑크 레이블 Epitaph과 계약하며 Common Existence 앨범을 발매하며 Taste of Chaos 등에 출연하며 Thursday식 스크리모로 2011년까지 활동하며 미국 Post hardcore밴드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게된다. 이들 출신의 지역 뉴져지에서 매년 1월 1일이 되기전 라이브를 하는 것이 전통이 되었지만 이 역시 2011년 해산과 함께 사라졌다.

추천 앨범 : Full Collapse





Blue Beard


일본의 가장 대표적인 이모 밴드로 1997년 도쿄에서 결성한 밴드로 데모 테이프와 또다른 일본의 참된 이모 밴드 9 Days Wonder 와의 스플릿 앨범을 발표하였고, 굉장히 의외적으로 25 Ta Life의 Rick Ta Life가 운영하는 하드코어 레이블 Back Ta Basics의 컴필레이션 시리즈인 A Call For Unity Part 3에 참여하게 되어 일본 외 국가에 소개되어지며 2001년 그들의 유일한 앨범인 Self Titled앨범이 발매되었다. 동시기 활동했던 하드코어 밴드들 특히 168계 하드코어 밴드들에게 큰 영향을 끼쳐 현재 Loyal to the grave의 히로유키 고하마등이 소속되었던 Demo만 만들고 사라졌던 We Always Love You등이 영향을 받아 이모 붐이 어느정도 일었지만 앨범 발매와 함께 거의 동시기에 해체. 2015년 리유니언되어 Craftrock Festival등에 참여하였고, 9월에는 Kyoto에서 현재 일본 이모씬의 간판급으로 떠오른 한국에서도 인지도 있는 Nim과 Two Man Show를 한다. 

추천 앨범 : Selt Titled




The Get Up Kids


미져리주 캔자스 시티 출신의 촌뜨기에서 미국 이모 씬에 큰 획을 그었던 The Get Up Kids. 1995년 결선되어 소위 Second Wave의 선봉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1999년 이들의 정규 두번째 앨범이자 명 이모 레이블 Vagrant 데뷔작인 Something To Write Home About이다. 이 앨범 이후는 안들어도 무관할 정도로 이 앨범은 여러면에서 충분한 앨범이었다. GMC Records 시절 Vagrant측에서 보내줬던 데모 앨범의 패키지를 열었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당시 Vagrant에서 해외 프로모를 담당했던 사람은 한국계 미국인 James Choi로 한국으로부터의 메일이 반가웠었는지 모르겠지만 많은 앨범을 보내줘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졌던 기억이 있다. James Choi는 나중에 Sidecho Records를 설립하며 (Militia 그룹 산하) The Beautiful Mistakes, Tokyo Rose등을 발굴한다. The get Up Kids는 2008년 재 경성하며 EP및 2011년 풀렝쓰 앨범 There are Rules를 발표하였다.

추천 앨범 : Something To Write Home About




Daphne Loves Derby


미국 워싱턴 주에서 2001년 결성된 밴드로 보컬리스트 한국계 Kenny Choi가 이끌었던 밴드로 Trivia로 PureVolume에서 첫번째로 100만 스트리밍된 밴드로 기억되어지고 있는 밴드이다. 한국에서도 라이센스된 2007년 앨범 Good Night, Witness Light은 빌보드 Top Heatseekers에 30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해내기도 했다. 2007년 앨범 이후 DLD 해체를 맞고 이후 Kenny Choi는 Wolftron이라는 본인의 말에 의하면 Sigur Ros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DLD랑 다소 유사한 음악을 보여줬던 밴드를 시작하였고 당시 명레이블이었던 (2012년에 문 닫은) Eyeball Records와 계약하여 앨범을 발매하였지만, 활동은 예전만큼 활발하지 못했고, 가끔 그의 유투브 채널을 통해 데모 비슷한 것들과 커버들을 올렸었지만 작년 결혼한 이후에는 더더욱 뜸해진 느낌이다. 

추천 앨범 : Good Night, Witness Light




Leiah


아마도 유럽내에서 가장 대표적인 이모 밴드였던 스웨덴 예블레 (Gävle)출신의 1998년 결성되었던 전격 이모 밴드. Serene이라는 하드코어를 전신으로 하고 있는 밴드로 주측 멤버인 David Lehnberg는 Airel Kill Him을 이어 현재에 The Deer Tracks에 이르고 있다. 데뷔 당시 Good Life Recordings와 쌍벽을 이뤘던 벨기에 Genet Records와 계약하며 첫 풀렝쓰 앨범 Tigra Songs 부터 이모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당시 유명했던 At The Drive In, As Friends Rust, Grade등과 유럽 투어를 돌기도 하였고 2002년 이들의 마지막 앨범이 된 Sound and Diversity는 Genet Records대신 스웨덴의 Background Beat와 계약하며 The Hives의 프로듀서인 Pelle Gunnerfeldt와 작업을 하는등 더 큰 성공을 위해 노력하였지만 이 앨범을 마지막으로 해산을 맞고 보컬리스트 David은 자신의 프로젝트 Ariel Kill Him을 하기 시작하기에 이른다. Vassline (바세린)의 보컬리스트 신우석씨가 많이 좋아했던 밴드이기도 하다.

추천 앨범 : The Tigra Songs




Mae


Multi-sensory Aesthetic Experience (다중감각의 미학적 경험) 이라는 축약어로 Mae라는 이름으로 2001년 결성된 밴드로 버지니아주에서 멤버들이 대학생 시절 결성한 밴드로, 크리스챤 락 레이블로 유명한 Tooth and Nail Records에 데모를 보내 바로 데뷔 앨범을 명 레이블에서 발매하게 되는 행운을 얻게되는데 발매하자마자 CMJ계를 듣는 틴에이져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게 되고 2집 The Everglow에서는 미국 전역 투어및 Vans Warped Tour에도 참여하게 되며 유명세를 떨치게 된다. 미국 생활당시 이들의 Nashville 지역 라이브를 본 적이 있는데 큰 곳은 아니었지만 티켓이 솔드 아웃될 정도로 이미 유명해져 있었고, 탄탄한 라이브로 큰 인상을 남겨줬다. 2015년 The Everglow의 앨범 발매 10주년 기념으로 투어를 올해 5월 6월 미국 전역을 돌았다.

추천 앨범 : Destination: Beautiful




Gloria Record


글로리아 레코드는 현재 SXSW가 열리는 곳으로 유명한 텍사스 오스틴 출신으로 이미 유명했던 밴드 Mineral을 전신으로 하는 밴드로 1997년 결성하였다. 주측 멤버인 Chris Simpson과 Jeremy Gomez는 고등학교때부터 친구이고 다른 두멤버도 같은 동네 친구로 구성된 친구밴드였다. 2002년 Full Length 앨범 Start Here(Bright Eyes멤버로 유명한 것 만큼이나 프로듀서로도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Mike Mogis가 프로듀싱) 도 명반이지만 Self Titled EP도 충격적으로 들었던 앨범 중 하나이다. 여기서 소개 하는 밴드 중 가장 글루미한 느낌의 밴드가 아닐까 생각되는데 유사계 음악을 하였던 Braid나 Pedro the Lion과도 비교될 수 있는 사운드. 또한 라디오 헤드와 같은 보컬리스트 느낌 좋아한다면 아직 이 밴드를 몰랐던 분들에게 추천한다.

추천 앨범 : Start Here




Mates of State


캔저스 시골에서 밴드 멤버에서 커플로 각 선생님, 의학도생이 되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이주, 마침내 결혼 그리고 두 명의 아이 출산 그리고 커넥티컷으로의 이주. 음악의 변화와 그들의 변화를 재정립했던 5집 앨범 Re-arrange us이후 더욱 더 안정된 포메이션으로 그들의 음악이 Re-arrange되었지만, 올드 팬으로서는 그 전 앨범들 즉 드럼과 무그 신디사이져로만으로 보여주었던 아날로그 감성이 더 오래가는 향수같은 느낌이다. 이들의 초기 모습이 담긴 DVD에서 보면 이들이 보여주는 서로에 대한 애정과 음악에 대한 열정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일본 라이브에서는 공연 마지막 즘에는 키스를 하기도.현재는 투어를 다닐때 전 가족이 다함께 움직이는 가족행사가 되었다고. Jason은 대학 겸임 교수로 풀타임 재직 중이며 가라데와 마라톤에 재능을 갖고 있다고 한다.

추천 앨범 : Team Boo





아쉽게 리스트 되지 못한 이모 밴드들 : Braid, Juliana Theory, The Shins, Saves the Days, Reggie and the Full Effect, Rainer Maria, Sunny Day Real Estate, Texas is the Reason, American Football, The Promise Ring, Beautiful Mistake, Cap n' Jazz, Coheed and Cambria, Drumkan, Ferocious Attack, You and I, Serotinin, Piebald


KY.O.N.O

http://www.facebook.com/xbluescreenlifex


저작자 표시
신고

박찬욱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정은임 아나운서가 진행했던 정은임의 영화 음악 



박찬욱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이야기는 내가 중학교 시절이었던 93년, 94년 어떻게 보면 - Nirvana를 만나기전, NOFX를 듣기도 전인, 크라잉넛과 홍대 문화에 대해 알 수 없었던 - 내게 있어 열정이라는 것을 그리고 무엇인가에 심오하게 빠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 고마운 채널이자 많은 추억을 남겨 주었던 정은임 아나운서가 DJ를 하였던 20년은 더 넘은 정은임의 영화 음악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Podcast를 들으며 시작된다. 놀랍게도 모든 에피소드가 업데이트가 되었고, 20여년 전 라디오에 귀기울이며 숨죽이며 들었던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참으로 놀라운 경험이다. 과연 20년 후에 문명의 발달로 이렇게 들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을 텐데.


추억에 젖어 듣던 중, 놀랍게도 현재는 전세계적인 감독이 된 박찬욱이 게스트로 여러 번 출연하였고 (가수 이승철이 주연했던 데뷔작 "달은... 해가 꾸는 꿈" 을 만든 후이다.), 아시는 사람은 아시다시피 영화 감독을 떠나 영화 평론 책도 쓰고 잡지에 기고도 많이 했던 사람이라 영화를 여러 각도로 볼 수 있는 가이드 라인을 잘 만들어주었는데,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했던 영화 Speed라는 영화를 설명하는데, 갑자기 정말 갑자기 내 귀를 의심하는 단어가 튀어나왔고, 진짜 박찬욱이 이 단어를 썼을까 하는 생각해 15초 전진을 하여 들어보았다. 그 단어는 흑인을 비하하는 단어인 "검둥이"였다.


완전 충격이었다. 박찬욱은 알려진대로 좌파성향의 진보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떠나. 그냥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더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것이 방송이 되었고, 아마도 아마도 그 단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사람은 1990년대 초반에는 그렇게 많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이 아닐까싶다. 지금 2015년에 누군가 이 단어를 사용한다면, 그냥 무식한 사람, 교육받지 못한 사람, 수준 낮은 사람, 똘끼있는 사람정도로 분류되지 않을까?


지코의 터프 쿠키의 비디오 리액션 비디오 

4:35초, 단어 Faggot이라는 단어가 나오고, "Real처럼 할려고 하는 건 알겠는데, 정말로 이 단어를 썼어야 했냐고 묻는다"

본인은 실망했다고 표현하며, 많은 팬을 잃을 수 있다고 얘기한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인식이 바뀌는 것은 당연하다. 1800년대 후반까지만 하여도 여성의 투표권이 없는것을 당연하게 생각했고, 영국의 산업 혁명으로 이후 아동 노동 또한 당연한 것이라고 여겨지던 때도 있었고, 흑인은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팔려다녔고 죽임을 당했고 미국내에서 차별을 법으로 보호하는 정책이 실효된지 100년도 안되었다. 물론 화 쟝고에서 사뮤엘 엘 잭슨처럼 같은 편인 것이지만 같은 편아닌 세력도 있었지만 어째뜬 모든 게 "휴머니즘"이라는 단어를 쓰던 그냥 "올바른 것"으로 방향이 수정되었다라고 말하건, 말이 되는 사회로 변화해오고 있었음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큰 이슈가 되었던 한국에서의 LGBT 퍼레이드. (출처 : 퀴어문화축제 Twitter)


얼마전 한국에서 기독교 연합등의 단체와 보수파 단체들이 한국에서 평화적으로 진행하려던 축제가 여러 잡음을 만들어 냈다. 근데 히틀러 나찌 정부에서 유태인만 홀로코스트를 보낸 것만이 아니라 게이도 죽임을 당한 것을 알고 있나요?


1939년과 1945년사이 홀로코스트로 희생된 유태인 숫자. 총 거의 600만. 유럽의 2/3의 유태인이 사망한다.


* 탄압을 피해 해외로 떠난 유태인들은 미국, 북유럽, 남미등으로 피해갔는데, 이미 난징 조약 이후 중국 개방 이후 영국인들과 함께 중국으로 유입되었던 상업에 종사했던 유태인들 이래 러시아의 유태인 탄압 (Anti-Jewish pogroms)과 독일, 오스트리아의 나찌 정부를 피해, 일본 쿄토에 거주했던 유태인들이 중국으로 유입되어 1940년대가 되면 중국에 총 20,000여명이 중국에 거주하게 된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1800년대 후반에는 이라크 바그다드 출신의 Shepardic 유태인이 인도에서 중국으로 유입이 되었고, Ashkenazi 유태인들은 러시아를 탈출했던 유태인들로 하얼빈 지역으로 1900년대 초반 이주되었고 차후에 샹하이 지역에 정착하게 된다. 그리고 독일등 유럽에서 중국으로 왔던 유태인 또한 Ashkenazi 유태일들이었는데 그들이 Shepardic 유태인과 가장 크게 달랐던 점은 이들은 다분한 시오니스트(Zionist) 였기에 11세기 송나라의 첫 유태인들이 하였던 것처럼 그들의 커뮤니티를 조직하고 시나고그등을 만드는등 문화적으로 뿌리내리려고 노력하였다.


이 히틀러가 저질렀던 학살의 가장 큰 희생양은 단연 유태인이었는데 (히틀러도 유태인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정확히 말하자면 1/4 유태인), 유태인 외에도 희생당했던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연구 마다 다른 숫자로 나오지만서도) Romani (집시들, 북인도가 이들의 원래 고향이다)가 22만여명, 그리고 인종에 상관없이 죽었던 사람들이 장애인들과 바로 게이였다. (게이는 나찌 정부 1933년 이후 10만여명을 체포하였고, 그 중 1만여명을 희생하였다.)




스웨덴으로 입양된 한국인 이사벨라


이 동양인의 외모를 한 스웨덴 여성이, 왜 항상 사람들이 Where are you from? 이냐고 자기한테 묻는 데, 그 것은 일종의 인종차별이라고 얘기한다. 이 비디오를 보고 과히 충격적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 아래의 비디오.


위의 첫번째 비디오에 댓글 단 사람들의 글을 읽는 이사벨라


정말로 충격이었다. 차마 여기에 글로 옮길 수도 없을 정도의 인종 차별적인 코멘트를 읽는데, 이 여자가 말하는대로, 실제로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러니컬한 점은 이 여자가 스웨덴에 오게 된 연유는 금발 머리를 가진 전형적인 스웨덴 부모가 입양해서 일텐데,(스웨덴에서 입양이 많았던 이유 중 두가지를 뽑자면 우선은 리버럴한 사회가 기본적으로 입양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으며 사회보장 제도가 잘 되어있기에 아이를 양육하면 국가에서 돈이 나오기에 입양한 가족도 적지 않았다. 특히 1990년대 초 스웨덴 경기가 안좋았을때 입양은 더 많았고, 현재 스웨덴에 태어난 곳 기준으로 한국인은 입양된 한국인이 그렇지 않는 한국인보다 훨씬 많다) 인종에 대한 노골적 표현이 심각하게 많이 들어가 있다. 몇몇 코멘트를 단 사람들의 아이디는 14, 88 (14는 백인 우월들이 사용하는 소위 14 words로부터 따온 말 : We must secure the existence of our people and a future for White Children. 88는 Heil Hitler, 즉 알파벳 8번째 H 두개)  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느정도는 이 여자가 다소 확대한 측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사실 입양아라는 스탠드포인트에 있어서는 어떻게 보면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어렵지 않게 이해될 수 있다. 청소년기에 그녀가 가졌을 정체성의 혼란은 안봐도 비디오다.


20여년전 라디오에서 흑인을 검둥이라고 말했던 박찬욱 감독, 한 한국 아이돌의 비적절하지 못한 Faggot이라는 단어의 표현, 한국에서 있었던 LGBT 축제를 혐오하고 반했던 사람들, 이 똑똑한 할 말 할 줄 아는 멋진 스웨덴 여성에게 악플을 단 히틀러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 (히틀러는 최소한 일본과 중국에 대해서는 적대하지 않았다. 물론 그렇게 말한대는 정치적인 외교적인 군사적인 영향도 없지 않았겠지만 : Ref - The Political Testament of Adolf Hitler), 이 모든 과오들은 그들의 무지로 인해 만들어진 일들이고, 이 무지는 사람들이 속한 사회의 인식에서 비롯되는 것이기에, 스탠다드 높은 사회이면 사회일 수록 이런 사람의 겉모습, 타인이 본인과 다름이 당연하다는 것을 스스로던 공교육을 통해서던 이뤄져야 다문화 사회로 가고 있는 한국에서도 유럽에서 미국에서 겪였던 문제들을 미리 파악해 더 좋은 나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다문화 가정의 출산율이 높기에 미래의 더 많은 득표를 위해서(라고하는 사람이 있다... 어찌되었든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보수정당인 새누리당이 오히려 다문화에 더 신경 쓰고 있는 모습이 정치적인 면을 배제하고서라도 썩 그리 좋아 보이지만은 않다.



 

Hand in hand we stand 

All across the land 

We can make this world a better place in which to live




REF :

정은임의 영화 음악 

https://itunes.apple.com/kr/podcast/jeong-eun-im-ui-yeonghwa-eum/id409716345?mt=2

http://www.podbbang.com/ch/1813




KY.O.N.O

http://www.facebook.com/xbluescreenlifex

저작자 표시
신고

패션 브랜드 시작 하기 - 2/2


패션 브랜드 시작 하기 - 2/2



(본 포스팅에 쓰여진 이미지의 모든 출처 : Google)

* 첫번째 포스팅 보기 : 패션 브랜드 시작 하기 - 1/2


패션 브랜드의 Start up과 관련한 주제로 두번째 포스팅인데요, 첫번째 포스팅에서는 브랜드의 시작에 앞서 사업 계획서, 자본금 마련하기, 프라이싱, B2B와 B2C의 차이를 알아보았는데요. 이번 두번째 포스팅에서는 제작, 세일즈, 마케팅, 온라인 판매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1편에서도 언급한 바 있듯 이 내용들은 하나의 가이드 라인이라고만 봐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초점은 초보 스타트업 회사및 일반인을 상대로 작성하였음을 또한 알립니다.


상업적인 브랜드, 컨셉트가 강한 브랜드이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제작에 앞서 이미 현재 판매를 하고 있는 브랜드의 경우는 매 시즌의 세일즈 리포트를 디테일하게 체크하여 어떤 세그먼트의 아이템이 잘 팔렸는지 데이터를 내보고 그 아이템들이 다음 시즌에도 잘 팔릴 수 있는 지를 가늠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한 시즌 뒤의 아이템을 디자인하는 것이라 마켓의 흐름과 나름의 포캐스트, 인사이트가 필요한 부분이고 또한 세일즈를 직접하고 있는 점원이 있는 브랜드의 경우 직접적으로 조언을 얻거나, 다른 경쟁 브랜드군의 아이템들의 세일즈와 노출 빈도를 확인함으로서 본인의 브랜드의 디자인및 제작으로 들어간다. 또한 패션업계에 있는 브랜드 주변인에게 샘플등을 보여줌으로서 마지막 체크를 함과 동시에 제작에 들어가는 생산 단가를 고려하여 재질과 혼용율을 고려하여 최종 결정을 내린다. 1편에서 말한 것과 같이 실제작에서 일반인들이 사는 가격은 6배 정도가 되기에 아주 신중히 정해야되는 부분이 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전체적인 컬렉션 플랜이 되는데, 소규모 브랜드는 이 것을 무시하거나 전체적인 라인이 작기에 엄두를 못내는 경우가 있지만, 중규모 이상되는 브랜드에서는 이 컬렉션 플랜이 중요하다.


컬렉션및 브랜드에서의 상품군 구성


상위 품목들 : 이 아이템들은 한 컬렉션의 분위기, 테마등을 결정하는 범주의 아이템들로, 일반적으로 세일즈에 크게 기여는 되는 부분은 아니지만, 이 아이템들로 브랜드를 기억하게 되는 브랜드만의 아이덴티티가 나와야 되는 아이템들로서, 즉 특이한 아이템들, 시장에 나오지 않았던 아이템들 위주로 꾸며지며 이 아이템들이 패션 잡지, 블로그등에 노출되는 아이템으로 가격대도 높게 측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Jeremy Scott의 Moschino 같은 경우.


가운데 품목들 : 소위 All year round item으로 불려지는 매시즌 나오는 아이템들이지만, 색깔을 달리하거나, 재질을 변형에서 나오는 품목군으로 세일즈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품목군으로 유행에 민감한 아이템들 또한 이 품목군에 들어간다.


하위 품목들 : 가장 기본적인 아이템들로 Converse all stars 신발을 연상하면 된다 - 시즌이 지나도 똑같은 색깔 똑같은 디자인 아이템의 로우 캔버스 슈즈. 이 부분이 세일즈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며 이미 브랜드의 아이덴티컬 아이템이 있는 경우 다 이 품목들에 들어가며,  상위 품목군에서 세일즈가 잘되는 경우 변형된 형태로 가운데 품목군으로 그리고 그 아이템이 브랜드의 대표 세일즈 아이템이 되는 경우 하위 품목군에 들어가게 되는 흐름이다. 브랜드마다 킬러 아이템들이 존재하는데 이 하위 품목군의 킬러 아이템이 없다면 세일즈에서 고전을 면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아르마니가 갖고 있는 라인들의 퀄리티/가격별로 구분한 표


비즈니스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세일즈와 관련해서는, 브랜드가 세일즈를 만들 수 있는 루트는 아래와 같다.


1. B2C 

즉, 브랜드 홈페이지및 브랜드 샵에서 직접 고객에게 판매하는 방법. 배수는 제작비에서 RRP(권장 소비자가)로 대략 6배. 온/오프라인 샵


B2C의 변형 형태로는 트렁크 쇼가 있을 수 있다.

1-1. Trunk show

미국에서 하이 엔드 브랜드에서 하는 형태의 이벤트로 브랜드의 VIP고객들을 위한 파티등에서 전체 컬렉션을 파티 참석자에게 보여주면서 오더를 받는 형태.



2. B2B

브랜드에서 각 샵에게 도매로 공급하는 방법. 일반적으로 MOQ (Minimum order quantity, 최소 오더 수량)이 존재한다.배수는 제작비에서 도매가로 대략 2,5배에서 3배.


B2B형태에 있어서는


2-1. Consignment

위탁판매. 샵들에게 우선 물건을 공급한 후 결제일을 정해 받거나, 판매때마다 정산받는 방법. 일반적으로 수수료로 판매가의 30%에서 40%정도를 판매처가 가지고 가고 나머지는 브랜드의 이익이 되는 방식.


2-2. Agent / Distributor

해외 세일즈에 있어서 Agent는 언어및 지역적인 장벽으로 브랜드가 어떤 특정 지역의 브랜드를 대표하는 세일즈 담당으로 일반적으로 Agent가 담당하고 있는 국가내의 샵들에게 오더를 받아 브랜드에게 패스하며, 그에 따른 커미션을 받는다. 조건마다 다르지만 10%에서 15%가 일반적이며 에이젼트가 렌트하는 쇼룸이 있는 경우 최소 매달 100달러를 브랜드로 부터 받는 경우가 있다. Distributor는 한 국가를 브랜드를 위해 담당하는 역할이다. 즉 Authorizaed dealership / distributorship을 가진 업체이며, 일반적으로 브랜드로부터 15%에서 25% 정도를 도매가에서 디스카운트 받는 대신, 모든 관세와 유통 그리고 프로모션까지 책임진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미니멈 오더가 리테일러의 MOQ보다 훨씬 크다.


2-3. Stock Clearance

소위 땡처리. 시즌및 유행이 지난 옛 아이템들을 브랜드측에서 땡처리 업체에다 파는 형태. 일반적으로 도매가에서 50% 디스카운트를 해서 판다. 물건을 생산한 생산단가 건지기. 아웃렛이 이런 형태이다.



B2C의 세일즈는 SNS, 연예인, 미디어등 트렌드를 통해 브랜드가 알려진 경우를 포함하여 브랜드의 선호도및 충성도가 높아진 경우 브랜드 홈페이지및 정식 샵에서 직접적인 구매가 이뤄지는 경우이고, B2B의 세일즈는 B2C에서 하는 PR과 함께 트레이드 쇼등을 통해 국내외 바이어(리테일러 - 백화점, 샵등 물건을 판매하는 사람들)들과 만나 컬렉션을 보여주고 주문을 받는 경우. 요즘은 온라인 쇼룸도 점차 많이 쓰고 있어 브랜드 입장에서는 해외 트레이드쇼에 참가비와 출장비를 아낄 수 있다. (해외 트레이드 쇼 + 비행기 + 체류비 합치면 두 명 기준으로 쇼가 3일인 경우 앞뒤로 붙여 5일이면 기본적으로 무조건 1000만원 이상은 쓴다. 1000만원의 BEP - 손익분기점 - 는 최소한 2000만원 오더를 넘어야 손해를 안 볼 수 있지만 신진 브랜드의 경우에 있어서는 첫 두번째 페어까지는 오더를 못받는 경우가 많다.) 트레이드 쇼에 대해 조금 더 얘기하고 넘어가자면 얼마전까지 최대 규모였던 독일의 Bread & Butter와  핫 쇼로 떠오르고 있는 Seek,  프랑스의 Tranoi와 MAN 그리고 뉴욕의 Capsule 캘리포니아의 Agenda 쇼등이 유명한데, 쇼들은 유럽과 뉴욕 그리고 일본정도에 같은 이름으로 쇼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에는 Fahion KODE가 대표적이다. 왠만한 유명한 브랜드들은 최소한 한 두개의 쇼를 진행하고 있고, 쇼에서는 다음 시즌의 아이템들을 선보이면서 선주문을 받아 브랜드의 캐쉬 플로우에 도움을 준다. 일반적으로 브랜드가 선주문을 받은 각 아이템에서 1.2배에서 많게는 2배까지 생산을 하며 선주문 받은 아이템들을 우송한 후 나머지는 B2C형태로 직접 팔거나, 위탁판매를 하고 시즌 오프가 되면 땡처리로 가는게 일반적인 흐름이다.


사실 세일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일즈를 어떻게 기록하고 발전할 수 있는 데이타를 만드느냐는 것인데, 세일즈 리포트를 어떤 형태로든 만들어 B2B의 경우 어떤 리테일러들에게 어떤 아이템을 팔았고 어느 정도 팔았는지를, B2C의 경우에 있어서는 어떤 고객이 시즌당 어느정도의 객단가를 올렸는지가 중요하다. 이런 것들을 한데 모아서 정리하는 비즈니스 툴로는 CRM (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이 있는데 미국의 메이져 회사 Salesforce부터 전문화된 CRM업체들이 있어, 프로그램을 다운 받거나 웹 어플리케이션 형태로 가입하고 세팅할 수 있다. B2B, B2C에서의 고객들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Return 고객의 구매율을 올릴 수 있고 이런 재방문 고객들의 사이트 재방문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뉴스레터등을 주기적으로 보내는 방법이 있다. 또한 Cafe24와 타쇼핑몰 호스팅업체에서 제공하는 통계를 통해 고객들의 행동분석및 구매 패턴을 읽을 수 있어 데이터 분석이 중요하다. 해외 세일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Google Analytics는 기본적으로 세팅이 되어 있어야 Inter-active한 세일즈가 가능해진다. 앉아서 기다린다고 세일즈가 일어나는 경우는 있을 수 없기에.


중규모 이상의 회사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세일즈,서비스, 마케팅 솔루션인 세일즈포스



세일즈가 비즈니스의 핵심이면서도 가장 쉬워 보이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가장 어려운 복잡하고 긴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고 인내력 또한 필요한 부분이다.


마케팅 부분으로 넘어가자면, 마케팅 역시 일반적으로 패션에서 가장 재밌을 것 같지만 역시 노력만큼 가시적인 효과가 나오지 않는 부분이기도 한데. 브랜드에 있어서 마케팅의 기본이 되는 부분은 브랜드의 스토리 텔링이다. 즉, 브랜드가 어떻게 해서 누구로 인해 태어났으며 다른 브랜드와의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이 홈페이지에 분명히 나와 있어야된다. 예를들어, 신발및 선글래스 회사 Toms를 얘기하자면 Toms는 텍사스 출신의 Blake Mycoskie라는 사람이 만든 그의 다섯번째 회사로 대학교 시적 캠퍼스 세탁 서비스라는 아이디어로 사업가 기질을 보이며 성장하다가 오랜 여행 후에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자고 시작한 브랜드가 Toms이다. “ONE FOR ONE”이라는 캐취프레이즈로 신발을 고객이 사면 빈국가의 아이들에게 신발을 선물한다. 그럼 이 10만원이 안되는 가벼운 완전 트렌드와는 거리가 먼 신발이 이렇게 빨리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일단은 브랜드가 갖고 있는 취지와 이 오우너의 스토리가 브랜드에 입혀지면서 돈의 가치를 의미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최소한 이 브랜드가 메이져 상업 브랜드가 되기전에는 20대 중후반의 교육받은 전문직에서 판매가 급상승하면서 바이럴이 일어나 현재에 이른다. 꼭 브랜드 스토리 텔링이 사회 공헌적인 의미가 아니더라도 브랜드가 왜 존재하는 지 누구든지 한 번들으면 기억할 수 있는 스토리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Kickstarter.com에서 한 특이하게 시계를 본 적이 있는데, 이름이 Bradley라는 시계였고, 알고 봤더니 Eone이라는 회사에서 만든 제품으로 미국에 사는 김형수라는 한국인 대표가 런칭한 브랜드로 이 시계가 갖고 있는 스토리는 이렇다. 쿨한 디자인을 가진 이 시각 장애인을 위한 시계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군복무를 하다가 시력을 잃은 브래들리 스나이더라는 사람을 만나면서 시작되는데, 이 사람은 패럴림픽에서 참가하여 금메달리스트가 된 수영선수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시각장애인도 쉽게 시간을 알 수 있게 촉감으로 시간을 알 수 있게한 이 시계의 이름은 이 브래들리 스나이더로부터 따온 것이다. 유니크한 디자인, 편리성 그리고 그보다 더 큰 멋진 스토리가 있었기에 이 회사도 큰 주목을 받아 성장할 수 있었다.



탁월한 브랜드 이미지를 갖고 있는 Toms와 파운더 Blake Mycoskie


MIT출신의 한국인 김형수 대표의 Eone사의 Bradley 시계



브랜드 홈페이지에서 아이템을 볼 수 있는 페이지도 중요하지만, 사실은 모든 시작은 브랜드 스토리이다. 거짓으로 꾸며서 확대, 과장할 필요없지만 브랜드의 컨셉과 맞는 이야기를 넣으면 브랜드 이야기 자체로도 바이럴을 만들 수 있다.


그 다음으로는 중요한 것은 일반적으로 많이 쓰는 4P (마케팅 믹스라고도 불려짐) 기법으로, (*4P는 1960년에 미시간 대학교 마케팅 교수Jerome McCarthy가 소개한 마케팅 분석 요소이다.) 브랜드의 마케팅을 논할때 기본적으로 체크해야되는 부분으로 4P는 Product, Place, Price, Promotion의 4가지를 일컸는 용어로 아이템을 어디서 어떤 가격으로 팔지와 프로모션 방법을 체크해야된다.




프로모션 부분을 보자면,

우선 브랜드가 노출될 수 있는 채널을 보자면 광고, 책자, PR, 소셜 미디어등이 있을텐데 광고를 보자면 잡지에서 직접 페이지를 사서하는 광고와 피쳐링 부분으로 크게 나눠질테고, 책자에는 카탈로그 브로셔등의 선전물을 포함하고 PR에서는 PR house가 있는 큰 회사의 경우는 PR을 직접하고 (스웨덴의 Acne, 삼성과 제일기획의 경우) 아닌 경우는 PR agent를 통해 스타일리스트, 광고기획사, 잡지 기자등 모든 미디어를 커버한다. 소셜 미디어에 있어서는 브랜드에 영향을 가장 끼치는 것으로 떠오른 Instagram을 안하면 안된다.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성공한 케이스의 브랜드군 중 하나는 시계나 액세서리류의 브랜드들인데 우선 얼굴이 안나오고 적당히 허세도 부릴 수 있고 사이즈가 비교적 작은 아이템이기에 좋은 이미지를 많이 만들어 낼 수 있기에 최근 중저가 시계 브랜드의 큰 바람을 일으킨 요인 중 하나로 분석되고 있다. 물론 한국의 경우는 특수한 경우이지만 브랜드 오우너 친구가 GD면 다 필요없고 한 번 GD가 입어주면 쉽게 솔드아웃되고, 마케팅에 있어 이런 케이스도 충분히 존재하기에 꾸준히 프로모션을 해주어야 한다.



브랜드 시작하기에 있어 마지막 단계인 온라인 판매 부분인데, 이 부분은 IT쪽에 관심있고 사이트나 WordPress등을 다뤄본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부분이 될텐데,

우선 브랜드의 도메인을 정하는 부분부터 시작되어야 하는데, 해외 세일즈를 생각하고 있는 브랜드라면 .com을 구매하길 추천하며, 브랜드 이름이 이미 누군가 사용하고 있는 도메인이라면 뒤에 seoul이라거나 다른 연관 단어를 조합한 브랜드 이름이 들어간 형태면 나쁘지 않게 사용할 수 있다. 아예 브랜드 이름도 도메인 이름을 살 수 없는 브랜드 이름이라면 고려해 볼 필요가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 브랜드 도메인을 살 수 있다면 호스팅 업체를 정해 홈페이지를 꾸미고 Shop을 위한 E-Commerce플랫폼을 결정해야 하는데, 해외의 경우 Shopify, Tictail, SquareSpace, Magento등이 있고 한국에는 Cafe24에서 제공하는 쇼핑몰등을 이용하면 B2C를 위한 홈페이지는 꾸미기 어렵지 않다. B2C E-Commerce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을 어떻게 모으고, 더 자주 들어올 수 있게 만들어, 많은 물건을 살 수 있게 하고, 어떤 서비스로 응대하느냐가 큰 관건이다. 또한 부수적으로 홈페이지내에서 정확한 스펙과 확대 사진, 착용샷등 얼마만큼 디테일한 정보를 제공하느냐와 물건을 받은 사람이 얼마만큼 만족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데 영국의 가장 대표적인 럭셔리 온라인 몰인 Net a Porte의 경우는 여러 박스의 크기가 다른 것은 물론 선물을 위한 프리미엄 패키지 서비스도 하고 있고 편지를 넣어주기도 한다. 물건을 받을때 감동의 서비스가 우러 나오면 그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는 높아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상품 리뷰 페이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할 수 있게 하되, 브랜드 입장에서는 모든 것을 오픈하고 솔찍하고 거짓없는 응대로 충성도를 더 높일 수 있다. 고객을 모으는 방법에는 일반적으로 네이버등에서 연관검색어 서비스를 사용하거나 SEO(검색 엔진 최적화)를 통해 이뤄지거나 블로그및 다른 SNS에서 Directing Link로 들어오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더 자주 올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은 우선 홈페이지가 2주 이상 똑같으면 변화가 없는 페이지라 생각해 흥미를 잃을 수 있기에 테마에 맞게 상품 구성군을 변경한다거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전체 메일등을 통해 재방문 고객의 비율을 올려야 한다. 연예인이나 다른 미디어에 노출시 전체 메일로 보내 상품 구매를 자극 시키는 방법도 좋은 방법이다. 객단가를 높이기 위해서는 많이 사용하는 방법으로 5만원 이상 구매시 무료 우송에서 Buy 3 Get 1 (3개 사면 1개 무료)과 같은식으로도 경우에 따라 사용할 수 있고, 한국에서 특히나 많이 쓰는 마일리지제도 좋은 방법이다. 고객에 대한 데이터 관리를 하고 있다면 생일이라거나 중요 기념일인 경우 고객들에게 생일 축하 기념 쿠폰등을 날려 재방문률을 높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고객과의 응대 메일에서는 소중규모의 경우는 직접 메일로서 응대를 하고, 고객이 많거나 전담 직원이 없을 경우 Freshdesk 와 Zendesk와 같은 웹어플리케이션으로 빠르고 편리한 응대를 하는 방법도 있다.


많은 비즈니스 부분이 여러 다양한 용도의 편리한 웹 비즈니스 어플리케이션등으로 적은 숫자의 인원의 회사에 비해 더 큰 퍼퍼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두번의 포스팅으로 브랜드 시작하기라는 주제로 브랜드의 시작과 준비해야될 점등을 대략적으로 알아봤는데, 브랜드를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훨씬 더 많은 자료와 준비 과정이 필요하지만 이 두 번의 포스팅에서 소개한 내용이 도움이 1%라도 되길 희망하며 패션 비즈니스에 대해서 몰랐던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현명한 소비생활을 할 수 있는 가이드가 되었기를 희망합니다. 또한 패션 브랜드로 포스팅을 하였지만 패션이 아닌 다른 일반 비즈니스, 유통업과 공통된 부분이 많아 어느정도 아이디어를 얻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덧붙여, 포스팅에서는 인보이스및 무역 부분은 다루지 않았지만, 해외 세일즈의 경우는 인보이스및 로지스틱, FTA, 관세등을 포함한 기본적인 무역 내용들이 필요로 합니다. 보셨겠지만 패션 브랜드는 제조업, 유통업, 엔터테인먼트, 서비스업, 무역을 총괄하는 종합 비즈니스입니다. 물론 브랜드 초기부터 걱정할 문제는 아니지만 회사가 커지면서 보충 추가하시면서 성장하면 좋은 그림 나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세일즈및 성장에 있어서 안정이 된 후 (첫 3년의 성장은 쭉쭉 뻗어나갈 수 있고, 자본도 우여곡절이 있을 수 있지만 해결할 수 있는 케이스로 본다면)의 시즌당 30% 이상의 성장이 좋은 것만이 아님을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문제는 캐쉬 플로우로 성장을 하면 할수록 그만큼 제조와 인력 그리고 다른 부분에서 돈을 더 많이 쓸 수 밖에 없게 되는데 성장폭이 크면 클수록 계단을 올라가는 데 훨씬 큰 힘이 듭니다.  잘나가던 여러 브랜드가 부지불식간에 없어지는 경우의 대부분은 이 케이스입니다. 브랜드가 성장을 한 시점에서 세일즈가 15%대로 안정화 되면 다른 비즈니스와 연계하여 브랜드 파워를 가지고 (1편에서 언급한 바 있던) 부동산이라거나 다른 영역과의 콜라버레이션 또는 지식 비즈니스로 옮겨가시는 것도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패션은 물론 브랜드도 다 트렌드가 있기에 지는 시기가 올 것을 대비하거나 가격대가 다른 브랜드 라인업을 더 구축하거나 수입을 병행하면서 리테일링을 겸하는 것도 현명한 방법임을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모든 비즈니스에서 통용되는 성공, 그 Success의 Key는 지속성 있는 노력입니다.




BY KY.O.N.O 

https://www.facebook.com/xbluescreenlifex

http://www.harsest.com/

저작자 표시
신고

패션 브랜드 시작 하기 - 1/2

패션 브랜드 시작 하기 - 1/2



(본 포스팅에 쓰여진 이미지의 모든 출처 : Google)


패션 관련 주제로 연재하는 시리즈 이번 2회에 연속으로 걸쳐 패션 브랜드를 시작하는 또는 시작한 얼마안된 분들 또는 평소에 패션에 관심있는 분들을 위해 패션 브랜드 시작하가라는 주제로 포스팅합니다. 본 포스팅에서는 크레이티브적인 제작 부분이 아닌 비즈니스측면으로만 접근한 포스팅을 알립니다. 아무쪼록 이미 프로인 분들은 포스팅이 크게 도움이 되지 않거나 다소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들이 없지 않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초보자및 일반적인 분들에 맞춰 글을 쓰기에 최대한 쉽게 쓰려고 노력하였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한국,미국,유럽 생활을 통해 문화에 관여한 일들을 어느정도 하다보니 개인적으로 친한 분들이 브랜드를 런칭하거나 자연스럽게 많은 일들을 보고 직간접적으로 보고 배운 점이 많았고, 직접적으로 패션 비즈니스에 종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패션 브랜드들 런칭을 준비하는 분들및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분들에게 흥미로운 주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쉽지 않게  패션 브랜드 시작하기*라는 어쩌면 쉽지 않은 주제에 관련해 포스팅을 합니다.  글이 어느정도 브랜드를 시작하는 또는 경영하고 있는 분들에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글을 시작합니다.



Lady Gaga X Supreme



브랜드 시작하기에 앞서 무엇이 필요한가?

우선적으로 어떤 누구도 있는 얘기겠지만 스스로에게 자문을 함으로서 확신을 가져야한다.

내가 진짜로 패션 비즈니스를 있을까?” 

특히 질문은 여러가지 의미를 내포할 있는데, 패션 비전공자에서 오는 테크닉적인 문제도 있을 있고, 금전적인 문제, 그리고 아이템 출시 세일즈등등의 여러 문제에 있어 어느 정도의 자신감과 노하우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지 갖고 있는 열정이 브랜드의 성공으로 돌아올 있다고 생각하는데, 예를 들어 브랜드도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일반적인 컴퓨터 그래픽을 통한 단순 프린트로 패턴을 만들지 않고 일반적으로 나와 있는 블랭크 티셔츠에 프린트하여 제품을 완성하는 초기의 브랜드 형태의 경우로만 보자면 시작하기는 어렵지 않으나 서브 컬쳐에 속한 지지세력이 강한 경우(예를 들어, 스케이트 보드 , 힙합, 락음악을 베이스로하는 브랜드및 스포티한 브랜드) 아니라면 브랜딩과 지속성에 있어 차후에 문제가 있다. 당연히 어떤 비즈니스더라도 끈기와 열정이 없으면 힘들겠지만 패션 비즈니스도 마찬가지이다. 시즌에 번에 홈런을 치는 경우는 없고 꾸준한 로열티 강한 팬층이 브랜드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힘이 됩니다. 자기가 갖고 있는 브랜드의 컨셉과 타겟층이 확실하고 세일즈에서 어느정도 자신이 있다면 도전해도 괜찮다고 말할 있다. 내가 진짜로 비즈니스를 할 수 있을까? 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내가 왜 패션 브랜드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야하고 오래 달리기 할 수 있는 체력과 열정은 기본으로 탑재되어 있어야한다.


두번째로 드는 질문이

과연 내가 패션 브랜드를 만드는 것에 필요한 스킬을 갖고 있을까?”라는 질문일텐데, 것에 있어서는 어떤 누구도 완벽한 스킬을 갖고 브랜드를 시작하는 사람은 없기에, 시점에서 본인이 갖고 있지 않은 스킬을 가진 파트너 또는 다른 사람을 찾을 필요가 있다. 경우에 있어서 예를 들어 Miuccia Prada 남편 Patrizio Bertelli 라던지 Marc Jacobs 오랜 파트너 Robert Duffy등이 좋은 예로서 비즈니스를 성공할 있는 팀업이 있었고, 디자인이 자기 자신이 한다고 하면, 비즈니스 파트는 다른 사람이 하고 PR Agency 홍보를 맡고 지출입과 세금부분들을 맡는 재정 담담이 있으면 어느정도 준비가 세팅이라 말할 있지만 초기에는 자기 스스로가 어느정도 두루 알고 있어야만 나중에 회사 덩치가 커지더라도 관리할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어느 정도 거리가 먼 예일 수도 있지만, 소규모 레스토랑 비즈니스와 비교를 하자면 주방장이 아니더라도 주방장이 없을때 어느정도 몇몇 음식을 만들고 스스로 서빙할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과 유사한 케이스로 있다. 시작 하면서 배우되 많은 자료와 선배들의 자문및 컨설팅 업체등의 전문 기관에 의견을 구하는 것이 시간 절약의 지름길이다.


Marc Jacobs 오랜 파트너 Robert Duffy의 젊었을 적 사진



마지막으로 자문해야 되는 것이 금전적인 문제가 있는데, 아마도 부분이 가장 고민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보통 Seed Money (종자돈) 본인 스스로 마련하거나 가족으로부터 (크레딧이 좋은 경우) 은행 대출등을 생각해 있지만 시기에서는 사실 Angel Fund또는 투자자 (Investor, VC) 붙을 있는 가능성이 농후하기에 정부 보조금이라거나 스폰서쉽을 이용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경우에 따라서는 쉽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일반적인 스타트업의 투자 유치와 함께 알아보는 회사 사이즈의 변화. 

오래 지속되고 성공을 하자면 투자 받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이 것은 패션뿐만 아니라 모든 Start-up에 적용되는 스테이지 그래프이고, 3F는 Friends, Family, Fools의 줄임말.)


그럼, 본인이 생각했을때 오랜 심사 숙고 끝에, 패션 시장에서 뭔가 유니크한 무엇인가를 파생시킬 있는 자신감과 확실한 컨셉및 타켓층 그룹이 확실하고 추진력/행동력이 있다면 다음으로 넘어가게 되는데, 그 다음 부분은 계획서로서, 브랜드를 시작하기로 하였으면, 당연히 모든 비즈니스와 마찬가지로 비지니스 플랜을 완벽히 짜야된다. 자신이 완벽히 짯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수정 보완되는 일은 비일비재하기에  최대한 완벽하고 디테일하게 하면 할수록 시간및 재정적인 면에서 아낄 있다. 비즈니스 플랜, 계획서는 소위 Client Business 에서 어떤 수주를 따거나 펀딩을 받기위해서 뿐만 아니라 본인 스스로에게도 가이드라인을 제공할 있기에 계획서 부분은 정말로 모든 것이 클리어하고 심사숙고되어져야 한다.


일반적으로 계획서에 들어가야하는 것들로는 

1. 전체 요약 - 부분에서는 계획서의 개요 부분으로 뒷장들의 비즈니스와 관련된 부분을 이미지화하거나 세부 사항에 대한 하이라이트를 명시

2. 비젼및 목적 - 브랜드의 간략한 소개와 컨셉 방향및 타겟층을 상세화

3. 현마켓 리서치 - 현재 마켓에 있어서 경쟁 상대및 본인 브랜드의 퍼지셔닝. (SWOT - Strength, Weakness, Opportunity, Threat 표기하고 그래프로 본인 브랜드와 브랜드와 비교하여 표기합니다.)

4. 실행 방법 - 어떻게 만들고, 팔지 실제적인 진행 방법들을 표기.

5. 재정 충당 방법 - 재정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고 충당할지 표기

6. 회사 정보  - 마지막 페이지에 회사 주소및 이메일 주소 연락처등을 표기



계획서에 들어갈 하이라이트 요소들


계획서 이후 위에서도 얘기했던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고 생각되는재정적인 부분 해결을 해야하는데,  갖고있는 재정으로는 해결이 되면 가장 좋겠지만 그런 경우는 많지않다고 치면, 해외의 경우는 한국의 경우보다는 Angel fund, Crowd funding, VC등이 더욱 쉽게 되어 있지만 한국의 경우 요즘 크라우드 펀딩이 다소 활성화 되어 있기에 크라우드 펀딩, Kickstarter 같은 유사 매체를 이용하여 일반 대중으로 부터 펀딩을 받는 경우가 있을 있겠고, 요즘에 크게 관심도가 높아지는 핀테크 (Fin tech, Financial Technology) P2P대출 서비스 (예를 들어 한국의 http://8percent.kr/ 경우 맥주 체인 더부스가 5000만원을 8시간만에 대중으로부터 투자 받았다. 미국의 Lending Club 가장 대표적인 P2P 대부 업체이다.) 이용해봐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얘기한대로 국가에서 보조금을 있는 기회가 있다면 노려보는 것도 좋을 같다. (팟캐스트이자 책으로도 나온벤쳐야설 의하면 사실 한국의 경우는 문화계쪽 보다는 IT쪽으로 훨씬 더 많이 투자해주는 경우가 많고 해외및 국내 유명대학교를 나오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언급했다. 유묭대 출신이 아니라면 국내 해외의 출품등을 통한 포트폴리오로 제출하면 유리해보인다.)  또한 위탁판매가 주를 이루고 있는 한국에서는 아주 특수한 경우일 수도 있겠지만 미리 유통 채널을 끼고 있는 경우는 유통 리테일러 또는 체인등과의 아이템의 입고를 약속하고 선주문을 받아 자금을(일반적으로 총 오더 금액의 30%선) 융통할 수 있다.


한국의 떠오르는 핀테크, P2P 대출 업체 8 percent


비즈니스에 있어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자금과 관련해서 해결을 보았다면, 더 중요한 것은 자금을 어떻게 지혜롭게 쓰느냐일텐데, 핵심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다. 브랜드가 prêt-à-porter (쁘레따 뽀르테, ready to wear - 즉 공장에서 제작 하는 상업용 옷들. 우리가 일반적으로 입고 있는 옷들)가 되었던 Haute couture (오뜨 꾸뛰르, Custom-made / Bespoke, 즉 직접 제작한 맞춤 옷. 보통 하이엔드 브랜드)가 되었던 브랜드 재정적인 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작비를 아낄 수 있는 한 가장 아껴라이다.



브랜드에서 리테일러 (도소매점)로, 리테일러에서 엔드커스터머(최종 구매 고객)으로의 가격 세팅 예시


실제적인 예로, 마크 제이콥스의 290 파운드(한국돈 50만원) 짜리 옷을 예로 실질 제작 비용을 알아보자면 아래와 같다. 도매가와 소매가는 2.7배수를 갖고 있어 290파운드에 마크 제이콥스 매장에서 파는 가격이 290파운드라면 도매가는 107,4 파운드가 된다. 도매가 107,4 파운드에서 중간 마진 40%를 빼면 실제적인 제작 단가는 67,1 파운드가 된다. 여기서 공임을 뺀 패브릭 가격만 보자면 30,91 파운드가 되고, 이 옷을 만드는 데 1,25 야드가 필요했다면 1미터당 패브릭 가격은 24,7 파운드가 된다.


단순화 시키면 아래와 같다.


마크 제이콥스 드레스


67,1 (제작비) - 107,4 (도매가) - 290 (소매가)


67,1 제작비에서 

페브릭 비용 : 30,91 파운드

공임 : 30 파운드

기타비용 : 6,19 파운드 


결국 50만원짜리 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52000원의 페브릭과 50000원의 노동비가 필요하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싼 페브릭을 사용하면 당연히 소매가가 그만큼 크게 절가가되기에 좋고 싼 페브릭을 쓰는 게 브랜드에게 가장 유리하다.


제작가, 도매가, 소매가에 대해 잠시 살피고 가자면, 이 세 가격에 있어서의 배수는 브랜드마다 다른데, 스트릿 브랜드및 하이엔드 브랜드가 아니고 대량 생산이 아닌 소규모 브랜드라면 대략적으로 1-2.5-6.25 (제작가에서 도매가가 2,5배수 도매가에서 소매가가 2,5배수)가 되지만 이 것은 (세금 및 로지스틱으로 인해) 대륙별로도 다르고 브랜드마다 다르기에 이 것은 단순한 일반적인 예로 보면 좋을 것 같다. 참고로 미국의 경우는 도매가와 소매가가 2에서 2,2배 내외이다. 하이엔드의 경우는 직접 프랜차이징, 리테일링하는 경우가 많고 아웃렛을 직접 운영하기에 마크 제이콥스를 예로 보자면 1-1.6-4,32 (제작가에서 도매가 1,6배, 도매가에서 소매가 2,7배) 배수가 되지만 하이엔드 브랜드및 타겟층이 분명한 브랜드일 수록 도매가에서 소매가의 배수가 높고 시즌 중 안팔리더라도 시즌 세일에 팔았을때도 큰 마진이 남는 경우이고 심지어 시즌이 지나 아웃렛에 들어가서 팔려도 마진이 남는 경우이다. 이 점에서는 직접적인 브랜드 파워라고 보면 틀리지 않다.  쉬운 예로 들자면 A라는 10만원내외의 중저가의 수입 브랜드에서 10만원 주고 세일이 아닌 기간에 샀다면 그 옷은 대략 5만원의 이득이 가게에 남게 되고 실제적인 생산원가는 2만원 초반이라고 보면 틀리지 않다. 한국의 스트릿 브랜드에서 가장 많이 하는 실수 중 하나가 바로 이 프라이싱 부분인데, 많은 브랜드가 B2C (Busiess to Customer, 즉 브랜드에서 직접 고객에게 판매하는 경우 - 본사 홈페이지 직접 판매) 만 생각하고 프라이싱을 하게 되어 차후에 국내외 도매 사업을 할때 마진의 폭이 거의 남지 않게 되는 구조이다. 


예를 들어 A라는 브랜드가 제작비가 10000원이 드는 티셔츠를 25000원에 홈페이지에서 팔고 있고, 이 브랜드는 유통 채널을 늘리지 않고 2,5배수로 150%의 실소득.


B라는 브랜드는 더 많은 노출및 해외 수출등을 고려하여10000원짜리 제작 원가의 티셔츠를  25000원에 가게 점주들(예를 들어, 멀티 브랜드 스토어등, Retailer)에게 팔고 가게들은 2배수로 팔고 있다. 즉 10000원짜리 제작 원가의 티셔츠를 브랜드는 도소매상에게 25000원에 팔고 25000원에 사온 티셔츠를 이 가게에서 50000원에 소비자에게 판다. 이렇게 하면 브랜드가 커지면 커질수록 로열티가 높은 고객은 그 가게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 홈페이지에 들어와 물건을 구매하게 되고, 홈페이지에 있는 가격은 역시 50000원이 된다. 즉 이렇게 되면 25000원에 파는 B2C만 초점을 맞춘 A 브랜드가 얻을 수 있는 2,5배의 배수에서 2배인 5배가 된다. 


간단히 보면 아래와 같다



브랜드 A : B2C용으로 프라이싱한 경우

제작가 - 소매가

10,000원 - 25,000원


*이렇게 프라이싱을 한 경우, 수수료가 높은 백화점 (대략 36% - 41%) 입점및 큰 대형 체인 입점은 힘든 아주 협소한 채널로밖으로 한정 될 수 밖에 업고, 타겟층은 한정적일 수 밖에 없다. SPA브랜드및 아예 처음부터 중저가로 유통 채널을 갖고있는 대형 업체들이 진행하는 방법.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소규모 패션 브랜드가 100개를 찍을때와 SPA브랜드들이 10,000개를 찍을때의 제작비가 하늘과 땅 차이가 나고 퀄리티는 일반적으로 비슷하게  또는 SPA 브랜드가 더 잘 나온다. - 그만큼 반복 작업을 함으로써 에러율이 낮아진다 - 이 주된 이유로 SPA브랜드가 싸게 그리고 이렇게 프라이싱 할 수 있는 이유이다. 그리고 덧붙여 SPA 브랜드들의 또다른 수입원은 부동산이다. 예를 들어 별다방과 까페X네등을 생각해보자. 별다방이 우선 완전 핫한 지역 또는 살짝 떨어진 곳에서 오픈을 마구 마구 한 후, (이 것을 제일 잘하는 SPA브랜드는 Zara로 Zara는 보통 Zara의 모회사 Inditex Group의 회사들 즉 Pull & Bear, Massimo Dutti, Bershka, Stradivarius, Oysho등과 함께 Zara를 같이 같은 상권에 배치한다. 자라 회장 Amancio Ortega Gaona이 전세계 최대 부자 Top3안에 들 수 밖에 없는 또다른 이유이기도 하다.이 모든 별다방들을 묶어서 소위 “간판 바꾸기”를 하면서 까페 X네에게 다 팔아재낀다. 그럼 스타벅스가 살려논 상권에 대한 프리미엄 (권리금)을 싹 뽑아 먹게 되어있다. 조금 더 디테일하게 들어가자면, 일본계 미국인이자 유명한 작가이자 인베스터인 Robert Kiyosaki의 책 "Rich Dad Poor Dad"에서 나오는 대목으로 현재의 글로벌한 맥도날드를 만든 1등 공신인 Ray Kroc에 대한 부분에서 그가 텍사스 오스틴 대학에서의 강연을 마친 후 학생들과 맥주 한 잔을 하며 말했던 부분이다. “Ladies and gentlemen, I’m not in the hamburger business. My business is real estate.” 좋은 로케이션을 발견하여 맥도날드의 이름으로 대지의 밸류를 높여 파는 것. (책의 내용 중 이 부분과 관련된 부분을 읽고 싶다면 여기를 클릭) 이 B2C 방식을 따른 또 다른 케이스로는 (제작 생산량에 한계가 있는) 핸드메이드 제작 브랜드와 공장을 직접 소유하여 제작을 하는 브랜드들이다. 공장을 직접 갖고 있는 브랜드들은 보통 외주로 타 브랜드들의 아이템을 생산하면서 그와 비슷한 브랜드들을 만드는 경우로 유통 채널까지 손에 얻게 되면 PB (Private Brand)로 발전하게 된다. 예를 들면, Emart에 갔는데 삼양 라면보다 훨씬 싼 Emart라면이 있다, 그 것이 바로 PB이고 B2C로만 포커스를 맞춘 좋은 예이다. 싸게 팔아도 Emart에서 삼양 라면을 파는 것보다 당연히 마진이 크다.


돈을 위해서 일한다면, 결코 성콩할 수 없지만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면 성공은 당신의 것이 될 것이다.


브랜드 B : B2B용으로 프라이싱한 경우

제작가 - 도매가 - 소매가  

10,000원 - 25,000원 - 50,000원


*수출및 도매를 줄때 도매 상인들의 마진을 보장해주고, 로열티 상승시 마진이 훨씬 높아지고 또한 세일로 70%로 가도 제작가를 건지고도 5,000원이 남는 경우. 일반적으로 대량 생산이 불가능하고 6개월(한 시즌 앞당겨) 미리 도매상들로부터 Pre-order를 받는 재정적으로 크게 윤택하지 못하지만 트렌디한 브랜드들이 이 방식을 따른다. Pre-order를 받아 합산하여 제작 공장에 맡기면서 일반적으로 선주문을 받은 것에서 1,2배에서는 많게는 2배까지 제작하여 6개월 시즌에 대한 물량을 확보한다. (*브랜드가 온라인및 오프라인 샵을 직접 운영하는 케이스에서 창고비,감가상각및 렌트등을 제외한 순수 가격으로만 보자면, 50,000원짜리 권장 소매자가격의 물건이 시즌 세일이 시작되면 보통 30% 세일부터 시작한다고 치면 35,000원에 팔아도 브랜드 입장에서는 25,000원의 실마진이 남고 아웃렛으로 가면 50%에서 70% 세일로 갔다고 치면 25,000원, 15,000원이 되는데 이렇게 팔아도 원가 이상으로 판매하게 되어 이득을 올리게 된다.)


B2B 세일즈에 있어서 Leads (잠재 고객)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Sales Funnel (세일 깔대기)


여러 요소에 따른 B2B와 B2C 비즈니스 모델 비교 


다음으로는 브랜드 초기에서는 브랜드의 홍보와 관련되서는 돈을 절대적으로 쓰지 않는 것이 좋고, 대신에 블로그라던지 SNS 그리고 한국의 네이버및 다음등의 특정 타겟층이 있는 곳에서 무료로 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고, 홈페이지의 트래픽을 늘릴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보면 좋다. 광고는 어느정도 안정적인 세일즈가 나오는 시기에 10%에서 15%를 순이익에서 할당하여 쓰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다.


또한 “벤쳐야설”과 “내 작은 회사” 두 책에서 시작하기에 공통적으로 나온 내용으로 회사를 시작한 이후 대표인 본인을 포함하여 팀원들은 100만원 내외로 1,2년간 월급으로 묶고, 타잇하게 재정을 운영하고 세금 관련 운영을 잘 돌봐주는 믿음직스러운 회계사를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고 나온다. 회사 시작 후 몇년간은 타잇하게 버짓을 짜고 짠돌이가 되고, 아낄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아끼는 것이 지혜로운 회사 경영으로 보인다.


3년을 버티면 5년이 가고 , 5년을 버티면 10년이 간다. 한국의 많은 비즈니스 업계 선배들이 하는 말이라고 한다. 회사 경영을 시작하면서 3년, 5년을 버티려면 그만큼 오래 달리기 할 수 있는 지치지 않는 재정적인 뒷받침이 필요하고,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오는 찬스를 잡는 것은 다른 비즈니스와 크게 다를 것없이 패션 비즈니스에서도 통하는 말이다.


1부는 여기에서 마치고 2부에서는 제작과 세일즈 , 마케팅, 온라인 판매등을 알아본다.


*패션 브랜드 시작 하기 - 2/2



BY KY.O.N.O 

https://www.facebook.com/xbluescreenlifex

http://www.harsest.com/

저작자 표시
신고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