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y로 잘 알려진 Bugsy Siegel - Las Vegas Casino Godfather
사실 이 벅시가 유명세를 떨치게 되는 것은 1930년대 천적관계의 조직에서 그를 죽이려고 하자, 캘리포니아로 이주하게 되며 헐리우드와 라스 베가스의 연계성인데, 캘리포니아 이주 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Clark Gable등 Gary Cooper, Cary Grant에서 영화 배급사 Warner Bros.의 대표 Jack Warner(폴란드계 유태계, 아쉬케나지)등까지 널리 두루 많은 영화계 관계자들과 어울렸다.(유태인으로서 영화계, 헐리우드쪽 관계자들과의 친목은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등과 친분을 쌓게 되며 플레이보이의 이미지와 함께 사기, 해결사등으로 커리어를 쌓아갔으며 194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유태인"적인 발상인지는 몰라도 라스 베가스에 있었던 Falmingo Hotel를 방문하고 Hoover Dam등 건설쪽의 흐름이 갱스터들에 의해 정리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는 찬스를 잡고 그의 화려했던 헐리우드 생활을 접고 라스 베가스로 이주하게 된다. 당시 Flamingo 호텔의 Walkerson(LA출신의 비즈니스맨)과 파트너쉽을 만들고 당시 완전 사막이었던 라스 베가스를 화려한 도시로 바꾸는 데 가장 기여를 한 인물이 된다. Las Vegas Casino Godfather라는 별명은 이래서 붙여지게 된다. 그는 라스 베가스로 들어서면서 호텔등 건설업계에 다리를 얹으면서 이미 캘리포니아에서 도박장등을 관리했던 것을 라스 베가스의 호텔등에 배치하기 시작한다. 또한 헐리우드 시절 인맥을 쌓았던 연예인들 그리고 술과 마약등을 제공하며 센세이션을 만들어나간다.
화려했던 그의 시절은 1947년 많은 다른 갱스터와 마찬가지로 총을 맞고 사망한다. 그의 나이 41세로 베버리힐즈 집에서 신문을 읽다가 누군가에게 총을 맞고 사망했다. 현재까지 해결안 된 사건으로 남아있고, 사건 후 다음 날 동료였던 "David the Jew"의 닉네임을 가진 David Berman이 그의 LA 패밀리들과 플라밍고 호텔을 접수하게 된다.
뉴욕 맨하탄, LES지역의 Bialystoker 시나고그에 있는 명패. Max Siegel은 그의 아버지.
라스 베가스 플라밍고 호텔에도 현재 그의 이름이 세긴 이와같은 기념패가 있다고 한다.
Danny Diablo (Lord Ezec)으로 더 유명한 Dan Singer
자 1990년대로 훌쩍 점프하여, Jewish Gangster를 체크하자면, 이 인물이 가장 흥미로운 사람일 것 같다. 그의 이름은 Dan Singer. Danny Diabo 또는 Lord Ezec*으로 더 유명한 그는 맨하탄에서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어머니와 폴란드계 유태인 경찰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하드코어 크류 DMS Crew** 의 대표적인 인물이자 Crown of Thornz, Skarhead의 보컬리스트로서 이름을 떨쳤던 New York Hardcore의 핵심적인 인물이다. 그가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은 1990년대 초반 Sick Of It All등의 투어 로디로서 활동하면서 쌓은 많은 폭력적인 이미지와 터프 마초스러운 스테이지 매너등은 현재의 그를 만들게 되었다. 1993년 그는 드라이버로 수차례 찔려 거의 죽을 뻔 했고 2달간은 병원에 있어야 했다. 그 후 총에 맞은 적도 있으며 1998년에는 살인 미수로 체포되었던 적도 있을 정도로 터프한 삶을 그려왔다. 2000년대가 들면서 음악을 통해 변화된 삶을 보여주고자 했고, 하드코어를 루트로 한 힙합을 보여주면서 여태까지 꾀 많은 앨범을 발매해 오고 있다. 그가 Jewish Gangster라는 네임 택을 달게된 것은 2000년대 뉴욕 힙합 씬에 다리를 얹으며 같은 유태계인 Ill Bill과 Necro (형제, Non pixion)와의 친분 관계가 두꺼워지면서 부터이다. 초유명 힙합 그룹이 된 La Coka Nostra의 멤버이자 Uncle Howie Records의 사장인 Ill Bill의 서포트를 많이 받으며, Danny Diablo가 DMS Crew와 Hatebreed등을 뉴욕 언더그라운 힙합의 중계 역할을 하며 폭발시키는 핵심인물이 된다. Necro와 Hatebreed의 제이미 자스타가 함께한 싱글 "Off to the limit" 이 그 좋은 예.
* 맨하탄의 이 곳 저 곳에서 많은 Lord Ezec 태깅들이 발견된다.
* DMS Crew는 Mad Ball, Agnostic Front, Skarhead, Bulldoze, Son of Skam, Skamdust등의 멤버들이 주축이 되는 하드코어 크류로서 부르클린의 Sworn Enemy등의 IDS Crew 그리고 필라델피아의 BFL Crew부터 Bulldoze의 보컬리르스 Kev가 가입된 Hell's Angels 까지 많은 접점의 영역에서 Crew와 Gangster의 경계에 있는 하드코어 Crew이다. (Kev는 2003년 공연 중에 있었던 싸움에서 드럽 심벌로 목 부분을 치는 사건을 일으켜 감옥행으로 당시 Bulldoze의 활동이 잠정 중단되었었다.) 대부분이 이민자들로서 백인계의 비율이 낮고 라티노계가 많으며 중국계 DMS Crew로서는 Warren이 있고 그는 Pitchfork NY의 공동 오우너이다. (그는 프로 스테이지 테크니션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그의 형제 Royce도 DMS Crew). 한국계로는 전 Leeway와 현 Agnostic Front의 드러머인 Pokey와 108과 Crown of Thornz,Shelter, Cro-mags의 Franklin Rhi가 있고, 다른 아시아계로는 Merauder와 Cold as life 그리고 현재 Skarhead에서 베이스를 치고 있는 Mike the Gook으로 베트남과 독일계 혼혈이다.(그는 Cro-Mags의 전 베이시스트 Harley Flanagan에게 2012년 칼에 찔려 중상을 입었다.)
** Danny Diablo를 미국 거주중인 일본 하드코어 친구, Tomoki (전 Dying Grace, EGH, Homocidal,Everyday Dollar등, 오사카 출신으로 할아버지가 한국인)의 소개로 2006년 뉴욕에서 직접 그를 만났던 적이 있다. 키도 크고 덩치도 크고 험상 궂은 겉모습과는 달리 굉장히 친절했던 인상이다. 한국계 친구들이 많다고 한국에 가고 싶다고 말했던 기억도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의 이미지는 남미와 유태계로부터의 유전자에서 나오는 정열적이며 카리스마가 잘 어우러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Necro - Tugh Jew / Rabbi Holding Guns
Danny Diablo - Sex and Violence
인종별, 종교적으로 본 뉴욕의 거주 인구 분포도, LES 지역이 있는 맨하탄과 윌리암즈버그가 있는 부르클린이 높은 유태계 거주를 보여주고 있다. 한인과 중국및 홍콩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Flushing이 있는 퀸즈가 높은 아시아계 거주율을 보여주고 있어 흥미롭다. 또한 요즘 많이 위험하다는 브롱스의 높은 흑인 비율도 역시 눈에 들어오는 중요 포인트.
Danny Diablo - Livin' By The Gun
이번 포스팅의 두번째 단락이 되는 Kaifeng Jewish,
프롤로그편에서 살짝 소개한 바 있는 이 하남성 지역의 카이펭에서는 북송 시절 (960-1127)에 유태인 커뮤니티가 존재했고, 그들은 오리엔탈 유태계인 인디아 또는 페르시아에서 비단길을 통해 또는 배를 통해 이주했다고 보는 견해가 많으며 1163년에 시나고그를 만들었다. 명나라때에는 이 유태계들에게 7개의 성을 부여하게 되는데 그 중 장씨는 거의 대부분 이슬람으로 개종하였다하고 다른 성으로는, 유태인 이름에 많이 쓰는 Gold(Goldberg)와 Stone(Stein)의 한자인 진(금,김)과 시(석)씨 성으로 유지하면서 유태교를 믿어 내려왔다고 한다. 이탈리아 신부이자 중국 수도장이되었던 마테오 리치가 중국을 방문한1605년까지 이들 카이펭 유태인들의 존재는 유럽에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스라엘 수도 Tel Aviv에 있는 Diaspora Museum에 있는 카이펭 유태인의 시나고그 모형
오늘날의 카이펭 유태인들은 약 100여가족의 500여명이 된다고 하며, 1000여명 정도가 유태계 조상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스라엘의 Shavei Israel이라는 유태인 뿌리찾기 단체의 도움으로 2009년 중국의 카이펭 유태인들이 정식으로 이스라엘에 입성하게 되며, 이스라엘 국적을 받게된다. 즉 1000여년전의 할아버지, 할머니의 땅에 발을 디디게 된 것이고, 시온주의자들의 꿈이 실현되는 한 장면으로 기억된다.
이 장면은 근접적 비교는 어렵지만 마치 1800년대 중후반 시베리아 지역으로 이주하였던 고려인들이 떠오르는 장면으로, 양반들의 착취를 피해 북쪽으로 옮겨갔던 농민들이 청나라가 국경을 막고 있어 러시아 극동 지역을 선택하였고, 스탈린 시절인 1930년대 후반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당시 상대국이었던 일본의 첩자가 될 수 있다는 이유및 강제 노역을 위해 강제 이주하게 된다. 현재 이렇게 뿌리내려져 살아오고 있는 고려인들은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타지키스탄등에 약 50만여명이 분포되어 있고, 약 1만명이 현재까지 한국으로 귀화를 하였다. 대부분의 고려인들은 한국어는 할 줄 모르며 러시아어,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며 러시아의 영향이 짙은 한국어 방언인 중앙아시아 한국어 (고려어, 언어학적으로 한국어와는 거리가 있다고 한다)를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러시아 민중 락커 빅토르 초이와 독립 운동가 홍범도가 대표적인 고려인이다.
2012년 아시아의 유태인 인구 (참고 페이지)
중국과 유태인 왠지 안어울릴 것 같지만, 일련의 인류의 역사 흐름속에서 여러 필터링을 거쳐 1000여년이 지나 조상의 고향으로 입성했던 이 카이펭 유태인을 보면서 뭔가 뭉클하면서도 느끼는 바가 많았다. 믿음보다 강한 것은 없다는 진리를 보여준 것이기도 하며, 유태인 정신을 볼 수 있는 좋은 본보기로서 많은 다른 시온주의자들에게는 희망이 될 것이다. 참고로 한국 국적이 아닌 미군인들및 이스라엘인, 저널리스트들이 대부분이지만서도 한국내 유태인은 위 도표에서 보듯 100명 정도의 유태인이 있다고 한다.
테필린을 하고 있는 카이펭 유태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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