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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 O.N.O

스웨덴 리포트 - 나찌 머스트 다이

스웨덴의 노동절 그리고 스웨덴 나찌 


반나찌 포스터 - 스톡홀름 시내 한 중간에 있는 Slussen역 앞


얼마전 정확히 말하자면 4월 30일 회사 일 마치고 집에가는 길에 가장 한복판 스톡홀름 거리 곳곳마다 나찌 반대를 의미하는 스와스티카(Swastika)에 사선이 그려져 있는 포스터가 정말 많이 붙여있는 것을 봤다. 스웨덴 살면서 이런 적이 없었는데, 속으로 생각하건데 진짜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이후 그리스, 스페인,영국을 포함한 유로 크라이시스의 여파로 유럽 자체가 불황 그리고 그 불황이 이민자들에 대한 안좋은 시선으로 이어지고, 특히나 얼마전 노르웨이의 브레빅의 무슬림에 대한 무차별 공격이 나찌들을 부추겼고, 특히 스웨덴 내에서는 극우정당이 처음으로 입회 (SD,Sweden Democrats)되어 사실은 나찌들은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찌 그룹들이 2013년 9월의 스톡홀름 시내 행진도 있었고 12월에는 처음으로 심각한 사상자가 나왔다. 나찌 파시즘이 일어난 1900년대 초반에도 그랬듯 경제 위기가 이들을 부추기는 것이고, 무의미한 피부색에 대한 증오는 다시 유럽 내에 불을 당기는 듯 하다. 


이렇듯, 초좌파 국가인 스웨덴 (스웨덴은 "사회"민주주의 국가 - Social Democracy이고 공산주의자도 많은 국가이기에 한국이나 미국의 우파는 스웨덴의 좌파 수준으로 볼 정도이다. 정치적인 스탠스로는 나찌는 공산주의자의 적이다.)에서 나찌들이 거리를 나선다고 하기에 의아할 수 밖에 없었다. 한국에선 페리, 그리고 사건으로 인해 더 확실하게 들어난 정부와 언론에 불만으로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스웨덴에서의 5월 1일 수도 스톡홀름에서 떨어진 Jönköping에서 나찌 정당 중 하나인 SvP(Svenskarnas Parti, 스웨덴인들의 정당)가 거리 행진을 하였다. 유럽 전체적으로 4월 30일, 5월 1일에 이런 나찌들의 행동이 많이 일어나는데, 4월 30일은 히틀러가 사망한 날이고, 5월 1일은 노동절이기에 그렇다. 러시아, 우크라이나와 같은 치안이 안좋은 국가들은 이날엔 이민자들은 밖에 다니지 못하게 각 정부기관에서 권고할 정도로 심각한 경우도 있다.



2014년 5월 1일 스웨덴 옌췌핑에서의 나찌의 집회 행진


개인적으로 미국 아틀란타에서 생활을 할때 캐나다 교포형과 같이 일을 한 적이 있고, 그 형의 얼굴 부분이 어느 정도 부자연스러움이 있었는데, 어렸을 적 얘기를 들려주었고, 나찌들에게 집단 린치를 당해 크게 다쳐 턱 부분에 조형물을 집어넣었다고 들었을때까지만 해도 이들에 대해서는 그냥 남이야기,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이야기 정도로 생각했었다. 특히나 당시 나 역시도 샤프했던 시절인 아틀란타 시절 어울리던 하드코어, 스킨헤드 친구 중에는 미국의 가장 큰 나찌 스킨헤드 그룹 중 하나인 Hammerskins의 멤버도 있었고 장난식으로 나 앞에서 "와잇 파워"를 내 귓가에 속삭여 줄때마다 기분 나쁘거나 화가난다기 보다는 그냥 웃고 말았었기에 그냥  다른 세상 이야기로만 생각했었다. 물론 그 친구 Sam은 불법 이민자들 특히 멕시칸에 대한 증오 그리고 유태인에 대한 불만 그리고 거리를 더럽힌다고 생각하는 크러스트 / 펑크와는 실제로 싸움을 하는 경우도 직접 봤었다. 그의 집을 방문했을때는 Confederate Flag가 이 곳 저 곳에서 보였고 100여년 전의 미국 남부에서 흑인 노예들의 사진을 보여주었고 몇몇의 사진 뒤에는 "이 흑인 도둑을 조심하시오"등의 문구도 적혀있는 것을 봤을때도 하나의 미국의 역사로서 이해했을 뿐이었다. 이런 여러 환경으로, 이방인으로서 나찌와 나찌 스킨헤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고, 10여년전 쯤 가짜 이메일 주소등을 통해 Hammerskins의 커뮤니티와 Stormfront (나찌 커뮤니티)에 가입하고 깊숙히 알아보기 시작하게 되었다.


미국 남부, 공화당, 레드넥, 보수, 인종차별주의자와의 여러 공통 관계가 깊은 Confederate Flag


미국 나찌들이 유럽의 혈통을 이어받은 백인들을 위한 아메리카라는 구호를 외칠때마다 미국은 원래 인디안(Native American)들의 나라였고, 현재 대통령도 흑인 (엄밀히 백인,흑인의 혼혈이지만 자신의 피부 색깔을 써야하는 예를들어 자동차 운전 면허증에 채워야하는 공간이 있다면, 피가 어떻게 섞인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남들이 봤을때 생각하느냐를 넣야하기에, 그냥 흑인이다)이고, 그냥 워킹 클래스, 무직자등의 교육받지 못한 사람의 징징대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특히 Resistance Records와 함께 가장 유명했던 RAC (Rock against Communism, 공산주의에 반하는 락음악, 와잇 파워, 백인 우월주의 음악류) 레이블인 미네소타의 Panzerfaust Records의 스토리를 알게 된 후에는 정말 왜 이들이 이렇게 증오를 가지려는 지를 이해하고자 했던 것에서 그냥 답안나오는 멍청이들이라고 밖에 생각이 안들기 시작했다. 내용은 이렇다. 레이블 파운더이자 핵심 인물이었던  Anthony Pierpoint는 1998년 Ed Wolbank와 Resistance Records에서 일한바 있는 Eric Davison과 시작하게 되는데 앤쏘니의 피부색이 백인 치고는 어두워 항상 100% 백인의 피를 이어받았는 지의 의심을 계속 받아왔고 파운더 다른 두명이 사정상 Panzerfause 레이블을 떠나게 되었고, Bryant Cecchini라는 인물이 합류하게 되는데, 그러던 중 2004년 앤쏘니는 코케인과 마리화나 소지로 체포되고 그러는 중에 Bryant Cecchini는 앤쏘니의 생모 기록을 보게 되는데, 이 백인우월주의 레이블을 만든 이 앤쏘니의 생모는 멕시칸이었다는 게 알려지고, 심지어 태국에서의 섹스관광을 했다고 알리면서 레이블은 큰 서포트를 받았던 Volfsfront, Hammerskin 그룹으로 버림을 받으며 2005년 레이블은 사라지게 된다.


포틀랜드의 나찌 조직인 Volksfront (독일어로 영어로 하자면 People's Front,Volksfron Uber Alles의 모토로 즉 백인들이 어떤 누구보다도 더 위에 있다라는 의미)의 다큐멘터리


나찌?

나찌라는 단어는 독일어 Nationalsozialismus (national socialism, 국가 사회주의)의 줄임말로, 14 words (We must secure the existence of our people and a future for White Children), 88 (알파벳의 8번째 글자인 HH, 하일 히틀러), 28 (To Hate, 또한 B는 2, H는 8번째 글자로 나찌 그룹 Blood and Honor의 줄임말이기도)등의 구호를 사용하며, 스웨덴과 미국에서의 나찌 그룹의 이름도 역시 독일 나찌그룹들의 이름을 차용해 쓰고 있다. 스웨덴 나찌 - SvP , Folksfronten (The People's Front, SvP), National Socialist Bloc (in Swedish: Nationalsocialistiska Blocket),  SRM (Swedish Resistance Movement), 미국 Volksfront와 NSM (National Socialist Movement). 또한 Skrewdriver라는 RAC계 밴드의 Ian Stewart의 메세지를 기반으로 영국에 헤드쿼터를 두고 있는 RAC계 밴드및 백인 우월 커뮤티인 있는 Blood & Honor에서도 많이 발견된다. 블랙 메탈 팬들에게는 익숙할지도 모르는 NSBM은 National Socialism Black Metal의 줄임말이다. NS, RAC등이 붙으면 나찌 음악이라고 보면 틀리지 않다.




스웨덴 대표적인 나찌 그룹들인 SvP와 SRM


최근 유로 크라이시스의 영향과 이민정책에 대한 반하는 정서를 보여주듯 4월 26일 베를린에서도 나찌들의 거리 행진이 있었는데, 훨씬 많은 수의 반나찌 그룹들이 완벽히 차단해 나찌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4월 26일 베를린 나찌 거리 행진

북유럽 국가 스웨덴는 유로 크라이시스에 가장 안정적인, 대비를 잘하고 있는 국가 (*삼성 경제 연구소 : 북유럽 경제에서 배우는 교훈)로 평가 받았고 사회 복지 국가로서 다른 국가와 비교 절대적으로 좌파적인 국가여서 나찌및 극우들이 자리를 당당히 설 곳이 없었지만 몇년전 무슬림계에 의한 스톡홀름 테러 사건과 노르웨이의 브레빅 그리고 실업률이 오르는 가운데 극우정당인 SD (Jimmie Åkesson정당 대표, Sweden Democrats)가 20개의 의원석 (349석중)을 차지하며 국회에 진출하게 되었고 이 SD는 나찌 그룹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며 불을 당기게 되며 2013년 두 번의 큰 도시 행진을 하게 되며 12월에는 무고한 반나찌 그룹에 대한 폭행으로 형사 입건되며 징역형이 떨어졌다.


2013년 12월 스톡홀름 근교에서 있었던 나찌그룹의 무고한 시민의 폭행 (SRM)

이 이후 스웨덴 전체적으로 반나찌에 대한 사회 전체적인 경각심과 함께 여러 그룹들이 인터넷등으로 의견을 모으게 되며 행동주의자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특히 스톡홀름과 제3대 도시 말뫼 (가장 인종적으로 복잡하게 얽혀있고, 그만큼 범죄율도 높은)에서는 여러 움직임이 일어나게 되는 가운데, 히틀러가 죽은날의 다음날이자 나찌들에게는 정치적으로 반하는 노동절에 스톡홀름에서 두시간여 떨어진 교회의 도시 Jönköping(옌최핑, 스웨덴 내에서 가장 많은 교회가 있는 도시, 스톡홀름에서 하고자 했는데 허가해주지 않았다.)에서 나찌 그룹 SvP가 행진을 하게 되었다. (민주주의 하에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도시 행진을 허가하였지만, 전경찰청청 Eric Rönnegård은 가장 영향력있는 일간지 SvD에서 나찌에게는 길거리 시위에 대해서 허가를 안해야된다는 의견을 피력하였고 많은 의견들이 이쪽으로 쏠리고 있어 앞으로 어떻게 변화가 일어날지 많은이의 관심을 받고 있다. (원문)

시위 허가를 내준 도시, 옌최핑에서도 도시 내부에 이렇게 반나찌에 대한 싸인을 게시하였다.


5월 1일 200여명의 나찌 그룹 멤버들의 시위에 400여명의 경찰 그리고 1000여명 이상의 반나찌 그룹이 집결하였고, 나찌 그룹의 행진 거리를 반나찌 그룹들이 점령하여 당초 예정 시간보다 이들의 행진은 딜레이되었다.


5월 1일 있었던 나찌 그룹의 행진 - 옌최핑, 스웨덴


이날 총 20여명이 경찰에 폭행등으로 연행되었고, 많은 신문,방송등의 미디어에서 나찌에 대한 경고가 이어졌으며, 사회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한국내에서도 타인종뿐만아니라 지역 차별등이 빈번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인종차별주의자들은 아마도 완전히 없어질 수 있는 류의 인간들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리고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사람들이기에 계속적인 주의와 경계가 필요하다. 희망적인 것은 아직도 훨씬 많은 올바르고 정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고 그리고 계속 점점 더 세력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찌에 대한 경고를 알린 타종, Fredrik Hollertz 신부님


마지막으로 본 스웨덴의 5월 1일 나찌 시위가 개인적으로 더 뜨겁게 느껴진 것은 교회의 도시 옌최핑에서 Sofia 교회의 신부님이
"나찌에 대한 경각심을 알리기 위해"  타종을 하고 교회 집회를 열었는데 그 핵심에는 이 분, Fredrik Hollertz 신부님이 있었고,이 분은 나와 Mrs. Lee의 결혼식 주례를 봐주셨던 신부님이다. 한 번 더 크게 감사합니다 !


어떤 이유에서든 나찌의 어떤 행동도 용납되어서는 안되고 더 크게는 모두 잘 살고 보다 나은 세계의 미래를 위해서는, 무조건 나찌 머스트 다이 !



BY KY O.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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