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5일에 미국 뉴저지에서 Meshuggah와 High on Fire의 공연을 보고 왔습니다. 약 10년간 들어오며 좋아한 Meshuggah를 보러 차를 렌트하여 왕복 약 9시간 운전해서 보고 온 공연이라 개인적으로 굉장히 뜻 깊은 하루였습니다. 공연을 보러 간 날 기준으로 작성했습니다.
저는 학부와 현재 대학원 생활을 포함하여 미국에 약 4~5년 있었습니다. 처음에 미국에 올 때는 제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전시나 공연을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미국에 와보니 저희 학교와 가장 가까운 대도시는 서울~부산 정도의 거리에 떨어져 있다보니 좋아하는 뮤지션의 공연을 보는 것은 거의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대학원에 와서는 여유가 더 없어져서 학교에 온 유명한 뮤지션들도 별로 안보러 갔는데, 대학원 생활에 찌들어있던 저를 움직이게 한 계기가 하나 있었습니다. 학교와 3시간 정도 떨어진 대도시에서 제가 너무나 동경하는 Between the Buried and Me와 Devin Townsend의 합동 공연이 있었습니다. 그 공연을 보러가고싶어서 찾아봤더니 한 달이나 이미 지난 상태였습니다. 제가 이렇게 좋아하는 두 밴드의 합동 공연이 차로 3시간 거리에서 주말에 하는데, 일상에 치여서 보러가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허망했습니다. 시간이 너무 지나버렸고 심지어 투어마저 끝나버린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다음에 이런 기회가 있다면 꼭 놓치지 말아야겠다 다짐했습니다.
이걸 놓쳤다니.. ㅠㅠ
이틀 전(11/3 목), 지도 교수님과 미팅도 잘 하고, 시험도 한 과목 치르고, 일 하다가 집에 와서 이런 저런 음악을 들으며 쉬고 있었습니다. 최근에 발매된 Meshuggah 새 앨범을 감상하며 쉬고 있는데 투어를 검색해보니 마침 미국 동부 투어를 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다음 날(11/4 금)에도 저희 동네 가까이에 오고, 이튿날(11/5 토)에는 차로 약 4시간 떨어진 곳에서 공연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시험도 끝났고, 아주 바쁜 시기는 아니지만 왕복 8시간 이상 운전해야 하고, 그러면 제대로 놀기도 힘들고, 게다가 혼자 보러갈 것이 뻔하니 자동차도 렌트해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갈까 말까 고민하면서 Meshuggah의 영상을 찾아보던 중 저의 마음을 정하게 된 것은 바로 아래 영상을 보고 나서 입니다.
드러머 Tomas Haake의 미친듯한 드러밍.. '이 드러밍을 가까이서 봐야겠다.!' 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Meshuggah라면 고등학교 쯤 Nothing 앨범으로 접하고, 재수 학원에서 저의 조각난 멘탈과 함께 Catch 33를 들으며 공부했었고, 미국에서도 수많은 메탈 덕후들과 저를 이어주는 밴드였습니다. 게다가 티켓이 예매 $29.5, 현매 $35라는 믿을 수 없는 가격..! 딱 4주동안 미국 전역에서 21회 공연을 하는 살인적인 스케쥴이었는데 미국 투어 끝무렵에 운 좋게 발견했습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지만 아무튼 저는 이 밴드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이제 차를 빌려서 뉴저지로 출발!
랜덤으로 골라주는 딜로 렌트카를 빌렸는데 Dodge의 Charger를 줬네요. 이런 차는 처음 몰아봤는데 힘이 좋은게 고속도로에서 재밌게 운전하면서 갔습니다.
약 4시간을 달려서 공연장에 일단 도착했습니다. 럿거스 대학교(Rutgers University) 근처에 있는 Starland Ballroom이라는 공연장이었습니다. 공연이 시작하기 2~3시간 전에 이미 도착했지만 미리 공연장부터 가봤습니다. 미국은 대부분 차를 타고 이동해서 그런지 엄청 넓은 주차장에 공연장이 있네요.
투어 버스가 보입니다. 저런 투어 버스 안에서 New Millennium Cyanide Christ의 뮤직비디오(링크)를 찍었을 Meshuggah를 상상하니 점점 들뜨기 시작합니다.
저녁먹고 잠깐 돌아다니다가 다시 공연장으로 왔습니다. 술 마실 사람만 일일히 신분증 검사하고, 금속 탐지기로 검사하다보니 들어가는데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서포트 밴드인 High on Fire가 이미 공연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타입은 아니라서 일부러 약간 늦게 들어갔는데 다른 관객들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 Meshuggah의 팬들인지 신나는 메탈을 하는 High on Fire 임에도 불구하고 다들 가만히 고개만 끄떡끄떡하네요. 게다가 사운드도 약간 뭉게져서 여러모로 아쉬웠습니다. High on Fire가 끝나고 Meshuggah의 세트를 준비하는 동안 개그 프로그램인 Check It Out! with Dr. Steve Brule을 보여줬습니다. 저는 별로 재미 없었는데 미국 애들 너무 재밌어하면서 봅니다.
드디어 메슈가 등장! 불이 꺼지자마자 관객들이 메!슈!가! 를 외치면서 점점 미쳐갑니다. 음산한 음악이 깔리다가 화려한 조명과 함께 신보 수록곡인 Clockworks로 시작했습니다. 위 영상 마지막 부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 뒤에서 슬램존이 형성되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Clockworks에 이어서 또 다른 신보의 수록곡인 Born in Dissonance까지 연이어서 몰아쳤습니다. 뭐라 설명하기가 너무 어려운데, 폭풍 속에서 정신 없이 흔들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래 영상이 현장 분위기를 잘 담아냈네요.
Meshuggah를 들은 사람들은 "난해하다." "공연장에서 이런 박자에 어떻게 헤드뱅잉을 하나?"라는 반응을 많이 보였던걸로 기억합니다. 저도 굉장히 궁금한 부분이었습니다. Meshuggah의 음악은 드러머 Tomas Haake도 연주하기 어렵다고 할 정도로 박자가 난해하고, 어찌보면 단조로운 면도 있습니다. 써클 핏이나 모슁을 할 박자도 아닌데 메슈가 공연장 모쉬핏의 모습은 어떨지 너무 궁금했었습니다.
이 궁금증은 첫 곡부터 바로 풀렸습니다. 묵직하게 다운 튜닝 된 기타가 울리고, 난해한 박자에 따라서 사람들이 제멋대로 헤드뱅잉하고, 슬램하고, 모슁하고, 크라우드 서핑했습니다. 마치 잭슨 폴록 그림은 모든 부분이 다 초점이라고 하는 것처럼 다들 자기만의 포인트에서 미친듯이 공연을 즐깁니다.
High on Fire 때 귀도 아프고 사운드가 뭉게져서 걱정했는데 Meshuggah에게 모두 맞춰져있었는지, 사운드는 상당히 깔끔했습니다.
메슈가의 공연을 완성시킨 것은 조명의 활용이었습니다. 멤버들 뒤에서 후광을 만들어내는 간단한 조명 세트이지만 빛이 엄청 강했습니다. 무대 가까이에서 보면 그 조명에 완전히 압도되어서 Rational Gaze나 Clockworks같은 SF적인 세계에 들어간 느낌이었습니다. 후광이다보니 멤버들이 어렴풋이 보이는데 카리스마가 대단했습니다. Meshuggah의 공연은 '감상'이라기 보다는 '체험'이라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 Nine Inch Nails나 Sunn O)))의 공연이 그렇다던데 꼭 보고싶네요.
제가 찍은 위 영상에서 보시면 아주 강한 백색광이 계속 나오는데 공연장에서는 눈이 멀 것 같았습니다. 마치 Clockworks 뮤직비디오에처럼 조명이 계속 박자에 맞춰서 정확하게 나오는게 마치 관객한테 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Clockworks처럼 쉴새없이 몰아치면 관객들도 미친듯이 놀다가, 또 중간에 잠깐 멈췄다가 확 터지는 부분에서는 또 그렇게 미쳐갑니다. 슬램존이 사그라들다가도 확 터지는 부분에서 또 달려들고 그랬습니다.
Clockworks가 가장 최근 곡이라 그런지 계속 Clockwork의 예를 들게 되네요.
공연중에 멤버들은 동작도 크지 않고, 관객들을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각자 고개를 숙인 채 악기 연주에 집중하고, 보컬 Jens Kidman은 주로 눈을 감고 노래하거나, 눈이 뒤집힌 채로 헤드뱅잉 했습니다. Jens Kidman의 눈 뒤집힌 표정때문에 웃기는 짤이 많은데, 실제로 보면 뭔가 카리스마 있습니다. 심지어 곡과 곡 사이 불이 꺼진 상태에서 누가 카메라 플래쉬를 터뜨렸는데 어둠 속에서도 그런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멘트도 간단한 인삿말로 한 두문장뿐이었고, 관객과의 소통은 전혀 없는 일방적인 공연이었습니다. 멘트는 첫 두곡 끝나고, 또 몇 곡 마치고, 앵콜하기 전. 이렇게 3번밖에 없었습니다.
나름 디카프리오 닮은꼴..
메슈가의 공연을 보며 가장 놀라웠던 것은 굉장히 놀기 좋은 음악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음악만 들었을 때는 High on Fire가 훨씬 놀기 좋은 음악이라고 생각되고, 놀기 좋은 음악의 공식에 더 부합하겠지만 메슈가는 사람을 더 미치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나무위키에는 "뇌가 오그라드는 듯한 느낌과 함께 극대의 아드레날린을 발산케 하여, 청자를 안드로메다로 보내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속칭, 안드로메탈.(...) 처음 들어보면 이게 대체 뭔 장르인지는 모르겠고(템포 자체는 그리 빠르지 않다) 듣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하여간 계속 듣다 보면 환장하는 음악이다."라고 표현되어있는데 나름 정확한 표현같습니다.
Meshuggah의 곡에는 비일상적인 단어가 많지만 미국이라 그런지 많은 관객들이 노래를 많이들 따라 불렀습니다. 메슈가의 음악 중 그나마 따라부르기 편한 건 Do not look down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Do not look down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곡을 많이들 따라 불렀습니다.
이 날의 세트리스트입니다.
Clockworks
Born in Dissonance
Sane
Perpetual Black Second
Stengah
Lethargica
Do Not Look Down
Nostrum
Violent Sleep of Reason
Dancers to a Discordant System
Bleed
-- 앵콜 --
Demiurge
Future Breed Machine
공연이 끝나고, 멤버들이 기타 피크와 드럼 스틱을 다 던져주고 들어갔지만 꽤 많은 관객들이 계속 남아서 빈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엔딩 크레딧을 보듯이 저도 남아서 좀 더 여운을 느끼고 싶었지만 이미 밤 11시가 되었고, 4시간 운전해야 하는 상황이라 바로 나왔습니다.
대학원에 오면서 특히 많은 것들과 타협하면서 살아 왔는데, 주어지는 것만 먹는 것이 아니라 정말 보고 싶었던 밴드를 이렇게 보고 오니 삶이 환기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열심히 살다가 종종 이런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