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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 O.N.O

20년의 기다림, 큰 감동 그리고 삶


폴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음악 거장, 쯔비그뉴 프라이즈너



쯔비그뉴 프라이즈너를 만나다


이번 포스팅의 주체가 되는 Zbigniew Preisner (쯔비그뉴 프라이즈 이하 프라이즈너)를 발견하는데는 인생의 사다리 타기와 같은 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으로부터 20년이 넘은, 이 이야기는 여기서 부터 시작한다.

최근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2년 전인 내가 중학생이되던 해인 1992년, SBS의 창립 기념 특집으로 일요일 오후에 우연히 봤던 그 영화 베로니카의 이중 생활 (The Double Life of Veronica)이 시작점이었다. 중학교 1학년 순수하기 보다는 아직 무엇인가 탐구정신 강했던 그 자아에, 지금 봐도 100% 이해하기 힘든 이 영화를 보고 일종의 충격을 안겨 주었다. 거의 동시기에 듣기 시작했던 정은임의 영화 음악은 내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극단적으로 상승 시켜주는 윤활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아직도 기억하는 게, 사고로 돌아가신 이 정은임 아나운서가 내가 PC통신으로 사연을 올리고 신청곡 리퀘스트를 받아주면서 불렀던 내 이름 석자, 그때 그게 정말 심장이 멎을 정도의 큰 감동을 주었었던 기억도 여전히 또렷하다. 그래서 정은임 아나운서 사고 소식을 들었을때 왠지 옆집 사는 친했던 누님이 사고를 당한 느낌이었다.


폴란드를 대표하는 영화 감독 크쥐쉬토프 키엪슬로프스키


그러던 어느날, 그 FM 영화 음악 방송에서 Krzysztof Kieslowski (크쥐쉬토프 키엪슬로프스키, 이하 키엪슬로프스키) 특집을 한 적이 있었고 그때 드디어 처음으로 프라이즈너를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두 사람 다 폴란드 사람인 것도 그때 알게 되며 키엪슬로프스키의 모든 영화는 당시 비디오 가게를 통해 계속 찾아 봤고, 이때부터 프랑스 영화등 소위 예술 영화를 계속 찾아 보게 되었다.이 것은 차후 고등학생이 되서는 학교 근처에 있던 (대학로, 혜화동) 동숭 씨네마텍이 나만의 아지트가 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주게 된다. 물론 영화들 자체를 이해한다기 보다는 분위기로 많이 봤고, 그 큰 영화적 분위기들이 그 청소년기의 내 고등학생 시절에 큰 감수성을 자극하게 된다. 당시 봤던 영화로는 앙겔로플로스의 안개속의 풍경, 레오 까락스의 소년 소녀를 만나다, 프랑소와 트뤼포의 쥴앤짐등이다. 고등학교 시절 교복을 입고가도 버드와이저와 새우깡을 거리낌없이 내줬던 MTV, Music Factory와 더불어 이 곳은 스트레스 많았던 고등학교 시절의 탈출구가 된다.


    

왼쪽으로부터 3색 시리즈의 Blue, Red, White 그리고 베로니카의 이중 생활


역시나 모든 영화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나, 베로니카의 이중 생활에서 “Van den Budenmayer”라는 곡인데 반 덴 부덴마이어는 감독과 프라이즈너가 만든 네덜란드 가상의 작곡가로 둘 다 네덜란드를 좋아하기에 만든 이름이다.이 이름은 차후에 3색 시리즈 Red에서도 다시 출현하게 된다. (역시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에서의 이렌느 야곱이 주연) 이 곡을 들을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되고, 나중에 OST CD를 구입한 후 정말 한 달동안은 이곡만 들었던 기억이 있다. 프라이즈너가 그레고리안 성가 (프로그레시브 밴드들에게 많은 모티브가 되었던 Dies Irae를 그는 Requiem for My Friend앨범에 수록)에 심취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병마와 싸우셨던 아버지가 임종을 맞이하실때까지 또한 계속 들었던 음악이기도 하여 내게 더 와닿는 음악이 되었다. 이렇게 프라이즈너는 어렸을때 우연한 교차점들을 지나고 지나 내 인생에 들어오게 되었고 마구 휘저으며, 막무가내로 언젠가는 꼭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그 어렸을때부터 하게 되었다.

 


쯔비그뉴 프라이즈너의 대표적인 곡이 된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의 Van Den Budenmayer


1996년 키엪슬로프스키는 심장 마비로 떠나게 되고, 감독들의 후반기 모든 작품들에서 음악을 담당했던 친구이자 한 참 어린 B4L 동생이었던 프라이즈너는 먼저 간 고인을 위한 앨범 본인의 첫 OST가 아닌 첫 본인의 이름의 스튜디오 앨범 “Requiem for My Friend”을 고인이 하늘로 간 2년 후인 1998년 발표를 하게된다. 키엪슬로스키가 고인이 된 후 프라이즈너는 여전히 많은 거장들과 OST 작업을 해오고 있고, “Requiem for My Friend” 앨범 이후 다시 키엪슬로스키와 생전에 약속했었던 작업을 하게 되고, 그 작품이 바로 “Diaries of Hope”가 되었다.



프라이즈너가 2013년 10월 발표한 Diaries of Hope. 희망의 메세지를 담은 독일 나찌 정부에게 희생되어진 폴란드 어린이들을 위한 헌정 앨범


2013년 10월 발표하게 된 이 앨범은 생전에 한 영화제 참석을 위해 이 두 사람이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박물관을 찾게 되고 그 곳에서 독일 나찌 홀로코스트로 희생당한 어린이들을 위한 전시를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고 감독은 프라이즈너에게 “넌 이 것을 표현해야만해, 음악적으로“ 라고 말했고 프라이즈너는 그때 그와 약속을 했고, 이 약속은 2013년 앨범으로 탄생하게 된다. 나찌의 가장 큰 피해자였던 폴란드 사람으로 그 느낌은 훨씬 더 쓰라렸을 것이라.



본 앨범 Diaries of Hope에서 Lisa가 부른 Lament


본 앨범의 월드 프리미어는 폴란드에서 열렸고 같은 주에 두번째 쇼케이스로 영국 런던에서 열렸다. 이 앨범과 프리미어 소식을 들었을때, 사실은 폴란드 그의 나라에 가서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화요일 공연이었기에 토요일날 하는 런던의 공연을 다녀오게 되었고, 스웨덴 출국 전부터 이미 너무나 큰 기대를 하고 있었고, 그 기대는 "공연"을 본다는 것도 있었지만 물론 이 프라이즈너가 지회하는 "모습"을 본다는 것 자체에 가슴이 더 설레었다.


공연은 영국 바비칸 홀에서 열렸고 이 곳은 다채로운 문화 행사가 열리는 곳으로 깨끗하고 정결된 모습도 보기좋았다. 영국에 이민자 비율 중 높은 랭크에 차지하는 폴란드, 그 나라의 대표적인 자랑스러운 작곡가의 공연에 폴란드 이민자들도 많이 모였고 그들의 감흥은 남달랐다고 증명이나 하 듯, 공연 중에는 실제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쥐어 삼켰다. 공연의 자리는 꽉 찼고, 족히 수십명은 넘어보이는 합창단들이 들어서면서 장내는 크게 숨쉬기 미안할 정도로 조용해졌고 드디어 프라이즈너가 무대위에 오르자 큰 박수와 함께 공연은 시작되었다.단독샷이 비춰주지 않는데도 프라이즈너에게서는 광채랄까 아우라 같은 것이 뿜어져 나왔고, 1시간여의 공연은 감동의 쓰나미와 무의식적으로 눈물이 또르륵 또르륵 흘러버렸다.



Lisa Gerrad가 참여했던 Gladiator 삽입곡 Now We Are Free


본 앨범 Diaries of Hope에 참여했던 두 보컬리스트 ,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OST 수록곡이자 청아하고 신비스러운 목소리의 주인공 Lisa Gerrad와 소년 소프라노 Archie Buchanan도 역시 공연에 참여하여 완성도를 높여 주었다. 두 세 번의 앙코르에도 멋지게 응답해주었고, 그렇게 짧고 타잇했던 공연은 지나갔다. 공연이 끝나도 끊기지 않는 기립 박수는 그들이 받은 감동의 여운만큼이나 오래 지속되었다.



프라이즈너에게 받은 싸인 CD


공연이 끝나고, 당일날 공식 발매가 된 앨범을 사기위해 그리고 그 앨범에 싸인을 받기위해 긴 줄을 기다렸고, 짧게나마 이 프라이즈너님과 조우할 수 있었고, 무대위에서 그 훨씬 이상으로 “저 팬이에요”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포스 보여주셨고 - 정말로 덜덜 떨렸을 만큼 내 자신이 작아졌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 일일이 많은 사람들과 얘기하며 나오는 미소속에서는 인자한 모습 또한 보여주셨다.


공연장을 나오며, 무엇인가 시원 섭섭했고 감동 크나크게 한 번 떼려먹은 내 심장은 오랫 동안 그 맥박 수는 느려지지 않았다.



인생을 살면서 어떤 무엇인가에 꽂혀 계속 깊어지게 되고, 그 것을 삶에 투영하여 자기화시켜 에너지로 승화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누군가에겐 그 것이 조그맣게는 영화, 만화, 아이돌, 하드코어부터 크게 보면 종교까지도 있을텐데, 남들에게 피해가 가지않는 선에서, 어떤 것이 되었던 삶에 양분이 되는 요소가 있고, 본인이 좋아하는 것이고 열정을 바칠 수 있다면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또다른 이유가 되는 것 같다.


짧은 순간으로 기억되겠지만 비로소 20년간 학수고대하여왔던 이 순간을 기억하면서 또 앞으로의 삶을 살아갈 것이며, 더 커진 삶의 무게를 감당할 더 큰 무엇인가를 이겨내는 힘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By KY O.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