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부아지에(Antoine-Laurent de Lavoisier, 이하 라부아지에)는 화학 교과서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이름 중 하나입니다.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는 화학의 기초 중의 기초를 다졌기 때문입니다. 먼저 그의 화학사의 업적을 먼저 알아보고, 그의 하드코어하고 쿨했던 인생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화학적인 내용은 별로 재미 없을 수 있으니, 라부아지에가 화학의 아버지라 불릴 정도로 대단한 과학자라는 것만 알고 넘어가셔도 됩니다. 

현재 뉴욕 메트로폴리탄에 걸려있는 이 그림은 Jacques Louis David의 작품으로 네오 클래시시즘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작품입니다. 화학자로 명성을 떨친 만큼 그의 실험 도구들도 보이고, 손에 펜을 놓지 않고 연구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옆에 여인은 연구를 같이 해온 13살 어린 그의 아내 매리 앤 라부아지에입니다.


1. 화학의 아버지, 라부아지에. 
짧게나마 라부아지에의 업적을 나열해보겠습니다. 

- 질량 보존의 법칙
당시엔 물을 끓이면 고체가 생성되니까 물이 바로 만물의 근원인가보다.. 그런가봐.. 그래 맞아! 하는 비과학적인 생각이 팽배할 때였는데 그것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법칙입니다. 물을 끓이면 생성되던 고체는 사실 실험도구의 부스러기였습니다.

- 정확한 실험 방법과 실험 도구
화학 실험에서 반응 전,후 질량을 측정함으로서 정확한 실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과학 연구는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통해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실험은 정말정말 중요합니다. 특히 오차가 발생하기 쉬운 화학 분야에서는 말할 것도 없죠.

- 산소의 발견
산소에 대해서 정확하게 밝혀낸 건 아니었지만, 산소가 호흡, 연소, 발효 등에 필요한 바로 그 물질이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산소가 다양한 반응을 일으키다보니 그 정체를 알아내는게 쉽지 않았었습니다.

- 화학 물질 명명법.
고등학교 때 배우던 그 이상한 화학 물질 이름들은 그리스어 혹은 라틴어로 명명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라부아지에의 아이디어였습니다.

결론은 무질서하고, 잘못된 개념을 바로잡은 화학의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18세기 프랑스나 요즘이나 남성 패션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물결펌에, 옷의 색 조화도 그렇고, 스키니 핏에 구두를 신은 모습이 멋지네요. 저 당시엔 말벅지가 인기가 많아서 스키니 핏을 입을 때 다리뽕을 넣었다고 합니다. 


2. 뛰어난 연구 실적의 스타 과학자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선 스타 과학자의 탄생이 중요하겠지만 현실적으로 굉장히 어렵습니다. 기본적으로 스타 과학자가 탄생하려면 연구가 굉장히 좋아서 인정받아야 하고, 일반인들도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주제면 더 좋습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하지만 잘 되기 힘든 것이 과학자 본인이 언론에 노출되고, 사회적 관계를 쌓는 것을 꺼리지 않아야 하는데, 순수 과학, 공학 하시는 분들중에 그런 분들이 많지 않습니다. 과거의 위대한 과학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라부아지에는 초상화, 조각 등의 시각적 기록물도 많고, 사생활에 대해 특별히 이상하게 기록된 점이 없는 것 보면 인간관계도 원만했으리라 생각됩니다. 많은 유명한 과학자들이 성격이 괴팍하거나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3. 위험에 처한 여인을 위하여 결혼
26세 라부아지에는 13살짜리 여자아이, 매리 앤 폴즈(Marrie Anne Paulze)와 결혼했습니다. 라부아지에를 도둑놈이라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이 결혼은 사실 위기에 빠진 여인을 구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매리 앤은 거의 나이가 3배 많은 아저씨한테 프로포즈를 받은 상태였습니다. 여자쪽 집안에서 결혼을 피하려하자 그 아저씨 집안에서 갑질로 협박을 하고, 매리 앤의 아버지는 라부아지에에게 딸과 결혼을 부탁하게 됩니다. 그로써 화학사의 환상의 커플이 탄생하게 됩니다. 

이 그림에서 맨 오른쪽에 기록을 하고 있는 사람이 아내 매리 앤 라부아지에입니다.


4. 내조의 여왕 아내, 그런 아내를 존중한 라부아지에
라부아지에는 결혼 전부터 유명한 과학자였지만, 결혼 후에는 아내와 함께 연구를 하여 더 위대한 과학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아내가 논문 공동 저자인 셈입니다. 13살에 시집 온 매리 앤 라부아지에(Maire Anne Lavoisier)는 라부아지에를 위해 영어로 된 문서를 번역해주었고, 이는 다른 과학자들과 교류하는 데에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연구도 같이 고민하였고, 실험을 도식화하고, 연구 결과를 정리해주었습니다. 라부아지에의 죽음 후에는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모두 정리하여 출판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남자와 재혼하였지만 성을 바꾸지 않고 라부아지에로 고집했다는 말도 전해집니다..

유치하게 문,이과 으르렁대지 말고 쿨한 융합형 인재가 됩시다.


5. 전반적인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
라부아지에는 과학 아카데미에서 연구비를 받긴 했지만 세금 징수원, 재무 담당관, 국책 은행 이사 등 화학 연구와는 관계 없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과학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정되게 된 연구도 대도시의 가로등 설치에 관한 논문이었던 만큼 사회에 기여하기 위한 모습이 인생 전반에 걸쳐 드러납니다.


조각상도 있는 과학자, 라부아지에

6. 비참한 처형에도 과학자의 모습을 잃지 않았던 라부아지에. 
세금 징수원으로 살아가던 라부아지에는 프랑스 혁명 주도자들의 표적이 되어서 결국 참수형을 당하였습니다. 나중에 억울한 죽음임이 밝혀졌지만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참수형을 당하기 전 라부아지에는 실험을 예고했는데, 자신의 목이 잘린 후에도 계속 눈을 깜빡일테니 얼마나 오래 눈을 깜빡이는지 보라고 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30초간이나 눈을 깜빡였다고 합니다. 

라부아지에처럼 하드코어하게 사회에 기여하며, 잘못된 고정관념에 대항하여 올바른 길을 추구하고, 한 여자만을 책임지고 사랑하는 것이 바로 쿨가이의 모습이 아닐까요? 




by Corej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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