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KEA(이하 이케아, 미국등 영어권 국가에선 아이키아라고 발음하기도 한다.)가 한국에서 정식 1호점을 오픈하며 사업 전개를 시작한다는 이야기가 2010년 나오더니 2011년 12월 한국 진출 사실이 확정되었고 얼마전 11월 14일 한국 이케아 페이지가 정식 오픈되었고, 12월 18일 공식 런칭이 된다.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이 전세계적인 스웨덴 그룹 이케아에 대해서 흥미 위주로 에센스만 뽑아봤다.
1. IKEA라는 이름과 창립자 잉바르 캄프라드
회사명 IKEA는 설립자 Ingvar Kamprad(1926)가 1943년 설립한 회사명으로 자신의 이름 의 두 글자 I와 K그리고 자란곳의 지명인 Elmtaryd와 고향인 Agunnaryd의 첫 글자를 묶어 IKEA가 되었고, 그가 회사를 설립했을때의 그의 나이는 17살이었다. 그의 자서전에서 말하길 그는 "Trading was in my blood"라고 표현할 정도로 잉바르는 그가 다섯살때 그의 삼촌이 스톡홀름에서 수백개의 성냥을 사는 것을 도와줘 그가 그가 자란 시골 지역에서 개개인에게 팔기 시작하여 크리스마스 카드, 링곤베리(그가 직접 채취)등을 판매하기 시작하였고 그 당시에 그는 무언가를 판매하는 것이 어떤 집착이 되었다고 회고 했다. 현재 이케아는 1982년 이후 스웨덴의 높은 세금을 피해 네덜란드가 헤드쿼터가 되었고 (즉, 스웨덴 회사지만 본사는 네덜란드에 있는, 네덜란드는 많은 홀딩 컴퍼니들이 상주하고있다.또한 룩셈부르크, 리첸스타인,스위스등에 각 다른 계열사를 두고 있어 세금을 최소화하고 있다.) 창립자 잉바르는 1976년 이후 스위스에서 살고 있다. 부호인데도 불구하고 비행기 대신 기차를 비즈니스 클래스대신 이코노미를 타는 그의 철학이 이케아의 회사의 청렴한 이미지가 되었다.
2. Numbers
(이케아 진출 국가들)
* 세계 5대 부호
가장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가 이케아는 아직도 IPO(기업공개)를 하지 않는 비상장 개인 소유기업이라는 것인데, 2012년의 기준으로 270억 유로의 재산으로 최고 부호 5위에 등극,
* Number 1, 세계 최대 규모의 자선 단체
그가 설립한 자선 단체는 INGKA 파운데이션은 Bill Gates의 Bill and Melinda Gates Foundation 재단 보다 더 큰 세계 최대규모의 자선 재단이다. (4500만 유로, 2010년 기준)
* 1958
1958년에 첫 매장을 스웨덴의 Almhult에서 열었으며, 두번째 매장은 노르웨이, 2년 후 스웨덴 두번째 샵을 스톡홀름에 런칭하였다. 그 후 1970년대에 스위스 독일 그리고 80년대에 미국 90년대 후반에 중국 매정을 오픈하며 글로벌화 시켰다.
* 독일 46개 매장
2013년 기준으로 전세계 42개 국가에서 345개의 매장, 15만여명의 종업원이 있다. 독일이 46개 체인으로 가장 많고 다음이 미국(38), 프랑스(29), 이탈리아(20), 스페인(18), 영국(18), 스웨덴(17), 러시아(14), 중국(14)개 순이다. 중남미에선 도미니카만이 진출한 상태.
* 두가지 색깔
IKEA의 로고에 쓰인 두가지 색 노란색과 파란색은 스웨덴 국기의 색깔에서 따왔다고 한다.
* 2~3 %
지난 십여년간 아이템들의 가격에 있어 2에서 3퍼센트씩 낮아졌다. (중국에서의 제품 생산이 가장 큰 이유)
*1억 9700만부
한해 발간하는 카탈로그의 숫자. 영원한 베스트 셀러라고 하는 성경책보다 3배 많은 숫자
* 매 10초
우리가 지금 숨쉬고 있는 지금, 매 10초마다 이케아의 베스트 셀러 Billy (책장)가 한 개 씩 팔리고 있다.
* 55,200 m2
세계에서 가장 큰 이케아 매장. 스톡홀름의 Kungens Kurva 매장. (2등부터 5등까지는 전부 중국 내 매장들)
3. 가격이 싼 것이 이케아의 전부가 아니다.
이케아가 탄생했던 1950년대는 스캔디나비아 디자인이 유행하던 시기로 이케아의 전력과 맞아 떨어지는 시기로 이케아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지불하는 가격보다 가치있는 퀄리티와 디자인은 이케아의 시작과 함께하였다. 특히 터닝 포인트는 1964년 한 스웨덴 가국 잡지가 이케아와 다른 하이 엔드 업체들의 가구를 비교하는 칼럽에서 이케아가 더 높은 퀄리티로 평가되며 고객들을 사로 잡으며 이케아는 더 큰 주목을 받기 시작하며 그때가 바로 잉바르가 생각한 더 즐거운 곳을 만들자라는 아이디어가 실현되는 시기로, 스웨디쉬 미트볼이 레스토랑에 등장하며 가족 친화적인 곳으로 바뀌게 시작된 포인트이다. (레스토랑의 가격은 퀄리티 비교시 정말 싼 가격에 제공되고 있다. 이미 이케아 많은 매장에 아이를 돌봐주는 곳이 있는데, 현재 호주에서는 이케아 매장내 아이들 뿐만아니라 남성들이 쇼핑하는 여성들을 기다리는 장소가 마련되었다고 한다). 또한 매장들은 미국의 Wallmart 와 명품 아웃렛과 같이 지가가 싼 지역에 체인을 열어 렌트를 줄여 경영하고 있다. 잉바르가 말하길 이케아는 컨셉트의 회사이며 싼가격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최근에는 이케아가 제공하는 디자인 시뮬레이션을 이용하여 매장 전문 직원들의 조언을 받아 보다 더 아름답고 공간활용할수 있는 방향으로 꾸밀 수 있다.
4. 토요일은 이케아 데이, 일요일은 빌드업 데이
스웨덴에서 흔히 이케아 데이라고 표현하면 (특히) 주말에 이케아에가서 물건을 사고, 일요일에 조립을 해서 이렇게 부른다. 이케아 매장은 동선 라인이 확실히 구분 되어져있어, 라인만 따라가도 한시간은 족히 걸리고, 레스토랑과 창고에서의 물건 픽업까지 하면 대충 하루를 잡아 먹는다. 다음날 조립도 역시 시간이 소요되기는 마찬가지로 이게 생각보다 꾀나 오랜 시간이 걸리며 꾀 큰 가구들은 한사람이 어셈블리하기에는 부족하다. 여러면에서 가족의 친밀도를 높일 수 있는 것이 이케아가 가지고 있는 장점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케아 조크, 물론 이렇게 하지 않겠죠 ㅋㅋ)
5. 이케아에서의 낭패
개인적인 이케아에서의 낭패의 기억을 공유하자면, 우선 개인적으로 이케아의 제품들과 회사의 컨셉및 모든 면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써본 가구들의 퀄리티적인면에서는 우선 가구들의 뒷면들 (백보드)은 대부분이 얇다.(그리고 사이즈가 큰 제품들에 있어서는 이 백보드가 Folderbile 형태로 패킹되어져있다.) 못을 충분히 제공하여 평평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물론 여기에는 장단점이 있다. 우선 구멍을 뚫기에 용이해 케이블등 정리가 필요한 가구들에게는 이점이 될 수 있지만 큰 힘을 가하거나 날카로운 것으로 힘을 주면 보기 안좋아진다. 부품에서의 에러율. 한 번은 제작이 거의 끝나가는 데, 부품에 문제가 있어 완성을 못하고 먼 길을 다시 한 번해서 클레임을 걸어 부품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자체 에러율은 알 수 없지만 30개의 박스를 조립했다손 치면 두번의 경험이 있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딜리버리적인 측면에서는 본인의 차가 SUV및 트럭이 아니라면, 아마도 이사를 한집에 큰 사이즈의 가구 - 책장, 이불장, 옷장등 - 를 조립한다손 치면, 아마도 이케아에서 운영하는 딜리버리 서비스를 이용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스웨덴 현지에서는 물건들을 한 번 운반 (정확히 말하면 집앞에서의 물건 전달)하는 비용으로 대략 5만원 정도로 측정되어있다. (거리상 차등 적용) 딜리버리 서비스외에 제품 조립 서비스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코스트적인 면에서 이케아에게 기대했던 "싼" 느낌은 없어질 수 있다.
6. 패킹은 이케아 성공의 승부수
이케아의 성공을 가져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Flat-Pack(납작하게 모든 구성품들을 구성하게 한 박스, 위 사진)이었다. 플랫 팩 덕분에 카탈로그로 주문을 가능하게 하여 공간의 활용및 창고의 공간을 줄일 수 있었고, 대부분의 아이템의 사이즈들및 부품들을 통일화하여 제품의 생산성을 극대화하였다. 잉바르가 말하길 "자원의 낭비는 이케아에서 범죄"라고 말하는 부분이며, 1960년대 이후 폴란드및 동유럽 국가들에서 제품을 생산하며 원가를 줄일 수 있었던 점도 다른 중요한 마일즈스톤이 되었다. (현재도 IKEA가 직접 컨트롤하는 생산 라인도있지만 더 많은 중국내 생산으로 계속 스웨덴내 제작 비율은 줄어들고 있다. 중국 동유럽 스웨덴등을 포함한 국가들에 걸쳐1300여개의 서플라이어들이 있다고 한다.)
7. 이케아에서의 가장 큰 실패, 일본
1970년대 당시 유럽 5개국만 진출했던 이케아가 1974년 일본에 첫 매장을 열며 사업을 전개하였지만 결론적으로는 10여년 후인 1986년 접고 일본 시장에서의 짧은 역사를 맺음하였다. 그후 2001년 다시 일본 시장에 문을 두드리며 진행하고 있는 현재 총 6개의 매장이 운영되고 있다.(2009년 기준) 일본은 1968년 GDP성장률 10퍼센트를 보이며 미국 다음으로 가장 큰 나라가 되었고, 1974년에서 79년까지는 오일 위기와 함께 개인투자자들의 침체로 연동되어 경제 성장률에 있어 3,6% 줄어들었으며, 많은 업계에서는 아직도 가격 줄이기가 비즈니스의 관건이었던 시기였다. 한 덴마크의 리포트에 따르면 가장 큰 실패의 원인들 중 또 다른 한 포인트는 이케아가 한 나라에 진출할때 물건만을 파는 것이 아니라 철학과 함께 진출하는데, 최소한 이것은 유럽에서는 효과적이었지만 일본에서는 얘기가 달랐다는 것이다. 특히 Flat pack은 당시 일본인들에게 생소하였고, 빠른 일본내 진출로 인한 이케아 전체적인 컨셉에 대한 소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다고 한다. 이케아 일본 CEO인 Tommy Kullberg (토미 쿨베리)가 언급하기를 "일본 마켓과 일본 고객들은 이케아를 위해 준비가 안되었었고, 이케아 역시 당시 일본 시장에 준비가 안되었었다"라고 표현하였다. 경제성장에서의 한계와 함께 문화로서 받아들일 수 없었던 점이 일본내에서의 실패로서 지적된다.
8. 한국에서 이케아가 미칠 영향
Pimp your crib? 예전 한국 방송에서 집 바꿔주는 쇼와 같은 느낌이네요. 이케아는 대답을 갖고 있습니다.
사실 현재 한국에서 이케아가 여러 미디어에 (대부분 안좋은 쪽으로)주목을 받고 있는 느낌이 강하다. 이케아 스웨덴 창립 후 많은 고객을 유치하는 시점에서도 있었던 비슷한 이야기를 소개하자면, 스웨덴 가구 협회, 스웨덴 상공 회의소에서는 보이콧을 하며 트레이드 페어에 나가는 곳도 금지시켰지만, 당시 오랜 시간이 걸렸던 가구 제작사(4개월)들에 비해 10일내 딜리버리를 하면서 더 많은 고객들을 점유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었었다. 아마도 한국에서도 이케아가 정식 첫 오픈하면서 많은 이미지들이 희석되면서 긍정적인 아이디어들이 파생될 것이라고 믿는다. 또한 판단은 분명 사용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기에 지켜볼 일이다. 한국에서의 변화로는 가격 경쟁력으로 없어질 한국의 경쟁력 없는 업체들의 이야기는 당연한 것이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할때 가장 큰 변화는 이케아로 인한 어느정도의 생활및 문화의 변화일 것 같다. 몇가지 예를 뽑자면, 대학생들의 자취,동거 문화등에 있어서 전체적인 흐름이 변화가 올 것이고, 가격이 싼 수많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아이템들에서 선택권이 주어지는 상황에서 보다 더 이쁘게 꾸미고 싶고 공간활용(이케아가 낳은 또다른 멋진 승부수인) 욕심을 자극할 것이다. 또한 이케아로 세팅하는 신혼 부부들 역시 한국 내 더 많은 사교 방식인 밖에서의 외식에서 "이케아로 이렇게 꾸몄어요" 하는 느낌과 함께 저녁을 대접하는 방식으로 바뀔 수도 있고, 어느정도의 홈리빙 트렌드 세팅 그룹들(부가적인 확장측면으로는 가구, 홈리빙쪽 잡지, 웹진, 블로그, 전문 수입업체, 자체 제작 업체, 캠핑 산업 그리고 요즘 많이 하는 컨테스트 식으로도 발전 확장 될 수 있다고 본다.) 이 생길 것이며, 주말의 데이트 코스가 부족하다고 말하는 한국 연인, 부부들에게 있어 이케아는 새로운 데이트 코스가 될 것이며, (특히 아이들이 있는 가족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놀이공원이 될 것이다. 스웨덴은 전세계 가장 아이들에게 우호적인 국가이다.) 이케아에서 판매하는 아이템들이 서구 방식의 가구이기에 양반 다리로 앉았던 생활에서 이케아 아이템들이 많아 지면 많아질 수록 더 많은 좌식 형태의 삶이 될 것이다. 또한 값싼 가격들의 가구들로 인해 새로 시작하는 스타트업 업체들 또한 이케아가 판매하고 있는 오피스 섹션과 사무 가구들로 보다 더 저렴하게 사무실을 꾸밀 수 있으며, 또한 이케아에서 판매중인 컨버터블 책상 (높낮이 조절가능한 책상)을 사용시 보다 건강에 좋아지며 능률도 높일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대개 가정일을 함에 있어 힘이 들거나 하는 일을 맡아하는 남성들과 남성들보다는 대개 꾸미기를 좋아하는 여성, 이 한국의 보통 커플들은 이케아에가서 의견을 나누며, 물건을 구입하며 조립을 같이하며 보다 더 유대감있는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스웨덴과 이케아의 깊숙히부터 존재하고 말하는 가정내 남녀 균등한 가정으로의 헌신도 보태어질 수 있는 포인트이다. 마지막으로 요즘 유행한다는 스캔디나비아 패션의 시작과 끝은 이케아이다. 이케아에서 제작하는 컬러들은 흰색, 검정색이 거의 대부분이다. 특히 흰색은 북유럽에서 겨울 일조량이 부족한 곳에서의 가장 적절한 색으로 한국에서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는 다소 기피하는 색깔인 하얀색이 이케아와 함께 인기를 끄는 색깔이 되면서 북유럽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의 폭이 넓어지며 서유럽, 남유럽 지역만큼이나 더 친근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한국에 이케아가 들어오는 것은 싼 가구 리테일링 업체가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이케아라는 이름으로 한 문화가 들어오는 것이다.
Reference :
The Strategist (Cynthia Montgomery, 영문판)
50개의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 이야기 (김민주)
Ikea's failure and success on the Japanese market (Alexandra Stolba)
BY KY.O.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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