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Angry Video Game Nerd 라고 들어보셨나요? AVGN 이라고 흔히 줄여부르는 이 인터넷 시리즈이자 캐릭터 이름은 한국어로 굳이 직역하자면 '화난 게임덕후' 정도가 되겠습니다. AVGN은 2004년 (10년도 더 전이군요) 유튜브에 조용히 올라온 "캐슬베니아 2"라는 게임에 대한 리뷰로 시작됩니다. "캐슬베니아" 시리즈는 우리나라와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권에서는 "악마성 드라큘라" 시리즈로 발매된 패미콤(닌텐도) 고전게임인데요, NPC에게서 아이템을 사야 진행할 수 있는 식의 RPG 요소가 시도된 의미있는 게임이지만 지나치게 높은 난이도와 게임진행에 불편함만 초래하는 실수적 요소들이 많아서 욕도 많이 먹었던 게임입니다 (ref). 게임을 리뷰한다는 것은 별로 색다를 것도 없는것인데, 이 리뷰는 지금까지 59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습니다.
"This game sucks."
"This game sucks." 하하하. 이 리뷰는 9분 26초 동안 이 게임을 까대기만 합니다. 보는 사람이 같이 암걸릴 정도로, 이 게임은 정말 말도 안되는 요소들로 가득합니다. 낮밤이 바뀔때 마다 게임이 10초동안 정지되고, NPC는 게임진행에 혼란을 주는 말만하고, 공략 없으면 절대 못지나가는 지점이 있는가 하면, 한번만 죽으면 돈이 0으로 리셋되고, 그에 비해 말도 안되게 쉬운 끝판왕 등. 2000년대에 이런 옛날 오락기 게임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매니아들 사이에서 이 영상이 유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유튜브 계정에 두번째 영상이 올라옵니다.
"What were they thinking?"
"지킬 박사와 하이드" 라는 게임이 있는데, 역시 역대 최악의 괴작으로 손꼽히는 게임입니다. 창의력을 발휘해 새로운 개념의 게임플레이를 만들어보고자 했지만 제대로 실패... 이 리뷰(?)에 등장하는 흰색 셔츠를 입고 롤링락 맥주를 마시는 겜덕이 Angry Video Game Nerd 입니다. 훗날 팬들과의 질문에 답하며 이 영상의 제작자이자 AVGN을 연기(?)하는 James Rolfe 는 처음에 그냥 심심해서 만들어본 영상이 (물론 이 괴작들에 대한 증오심에 비롯하여) 이렇게 시리즈가 되고 캐릭터가 될 줄은 몰랐다고 합니다.
세 번째 "가라데 키드" 게임 리뷰에서 처음으로 "Angry Video Game Nerd" 라는 문구가 들어가게 되며, 전문적으로 거지같은 고전게임들을 리뷰(=욕)하게 됩니다. 실제로도 고전게임의 대단한 매니아이자 수집가라 자기 집 지하실에 수천개의 타이틀을 전시해놓고 있습니다. 3편부터 AVGN의 포맷이 정립되게 됩니다. 그 이후로 AVGN 은 현재까지 133편에 달하는 시리즈가 나왔고, 수많은 거지같은 게임들을 리뷰하고 있습니다.
7편 부터는 James Rolfe의 친구 Kyle Justin이 만들어준 중독성있는 로고송 까지 등장합니다.
그런데 시리즈가 거듭될 수록 소재 고갈은 커녕 점점 퀄리티는 높아지고 일반적인 리뷰를 벗어나 스토리까지 들어간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James 의 또다른 친구 Mike Matei가 그려주는 타이틀 카드도 들어가고 말이죠.
"13일의 금요일"과 "나이트메어" 편에서는 영화 원작의 악당 제이슨과 프레디가 등장합니다. 제이슨이 강제로 게임을 하게 시키자 AVGN의 반응이 더 웃깁니다. "차라리 죽여주세요." 연출이나 특수효과는 유치뽕짝하기 짝이 없지만, 극 저예산 영화에나 나올것 같은 장면들이 거지같은 게임과 어우러져 오히려 재밌습니다.
ScrewAttack 이라는 게임전문 인터넷 매체에 연재하기 시작한 이후로 퀄리티는 더 높아져 "아담스 패밀리" 에피소드에서는 꽤 그럴싸한 오프닝까지 등장합니다.
고전 게임 이외에도 망한 게임콘솔(재규어 같은거)에 대한 리뷰도 있고, 게임큐브나 PS1 게임에 대한 리뷰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제임스의 다른 프로젝트들 때문에 AVGN의 업데이트는 매우 가끔만 이루어지는 상태입니다.
아무튼, AVGN이 유명세를 타면서, Jame Rolfe도 같이 유명세를 탔는데, 원래 단순한 게임덕후가 아니라 정말로 영상제작과 영화를 전공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Cinemassacre 라는 사이트가 알려지기 시작했죠. Cinemassacre 는 James Rolfe와 Mike Matei가 만든 영화 프로덕션으로, 그 어떤 값비싼 테크닉이나 장비를 배제하고 초저예산 영화제작만을 추구하는 곳입니다 (ref). 고전 공포영화 및 B급 이하 영화들, 그리고 고전게임, 보드게임들에 미쳐있는 친구들이죠. HARDCORE & DIY!
AVGN이 만들어지기 전에도 James 는 초등학생때부터 생일선물로 받은 캠코더로 영화를 찍어왔고, 그 퀄리티야 어쨌든 뭔가 만들어보고자 하는 열정 하나만은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만들었던 습작 내지 필모그래피(?)만 수십개에 달합니다 (ref). AVGN 시리즈에서 볼 수 있는 재밌는 연출이나 가성비 뛰어난 특수효과들은 전부 이런 습작들에서 얻어진 노하우인 것이죠.
Cinemassacre 에서 제공하는 AVGN 이외의 다른 시리즈들은 Board James (보드게임 리뷰), James and Mike Mondays (매주 월요일 올라오는 게임플레이 및 코멘터리), Monster Madness (할로윈 시즌에 매일 하나씩 올라오는 고전 공포영화 리뷰) 등이 있습니다. James 가 바쁠때 Mike 가 혼자 만드는 게임 리뷰들도 있죠 (여기선 Wii 같은 나름 최신 콘솔 게임들도 다룹니다).
워... 쩔긴 쩌는데 뭐이렇게 복잡해... 그냥 부루마불이나 할래...
http://cinemassacre.com/2014/10/25/it-1990/
Monster Madness 는 유튜브에는 없고 cinemassacre.com 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http://cinemassacre.com/2015/03/13/jason-x-2001/
올해는 13일의 금요일이 3번이나 있다고 13일의 금요일이 있는 주 매일 하나씩 "13일의 금요일" 시리즈 리뷰를 해줍니다. 시리즈의 가장 최근작 개막장 "Jason X" 리뷰...
여러가지 프로젝트가 있지만, 역시 Cinemassacre 에서 가장 유명한 건 AVGN 인데요, 팬들에게 '제발 이거 리뷰해달라'고 항상 요청을 받던 괴작 게임이 있었습니다. "E.T." 라고... 사실 저는 소위 오락기 게임이 흥하던 인터넷 나오기 전 80, 90년대에 10대를 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패미콤 게임기를 해보긴 했지만 특정 타이틀을 열심히 한다거나 해본 적이 없고, 이 "E.T." 라는 게임은 닌텐도 패미콤이 나오기도 전 아타리 2600 콘솔 타이틀이었기 때문에 저뿐만 아니라 아무도 모르실것 같아 그 역사를 간략하게 훑어드리면,
아타리 2600은 1977년 발매되어 비디오게임 역사에 한 획을 긋게 됩니다. 지금보면 그래픽, 사운드 모두 원시적이기 짝이 없는 뿅뿅 거리는 오락기입니다만 (갤러그 수준), 당시에는 혁명적이었고, 아타리라는 회사를 거대 기업으로 만들게 됩니다. 현재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 없는 브랜드이지만, 기억하시는 분들도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ㅍㅍㅅㅅ에 실린 이 칼럼에 따르면, "아타리는 비디오 게임기를 시작했고, 완성했으며, 마침내 하얗게 불태워 버렸"다고 합니다. "Pong" 이라는 최초의 비디오 게임들중 하나를 개발한 아타리는 스티브 잡스도 한때 일했었다고 하네요.
아타리 2600은 게임 팩이라고 부르는 카트리지를 대중화시킨 최초의 콘솔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콘솔과 게임 타이틀을 분리해서 생각하는게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초창기 게임기들은 기계 자체에 게임이 내장되어 있었는 모양입니다. 제가 어렸을때 '알라딘' 게임기만 해도 내장된 게임이 있었죠 (사실 그게 제일 재밌었음). 하지만 서드파티에서 마음대로 게임 타이틀을 개발할 수 있게 되자, 저예산으로 대충만든 후진 타이틀들이 시장에 범람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있어 게임이 재미있는지 충분히 확인하고 살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 껍데기만 보고 고르는 형편이었던 것입니다. 이후 닌텐도의 경우 이런걸 방지하고자 나름의 인증서를 발행했던 것 같지만 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않아 여전히 쓰레기 같은 게임들이 비싸게 판매되었고, AVGN이 분노의 유년기를 보내게 된 것이죠.....
E. T. 게임 타이틀 화면. 오마이갓.........
아무튼, 승승장구하는 것 같았던 아타리는 재미없는 게임들 때문에 멸망하게 됩니다. 그 중 "E.T."가 결정타였는데, 1982년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해서 "E.T." 영화를 게임화 하기로 합니다. 문제는 개발기간이 너무 촉박했다는 것인데, 5주만에 게임을 개발하라고 한 것입니다... 이 게임의 발매는 결국 대재앙으로 끝났고 (500만장 중 100만장도 팔지 못함), 재고를 감당하지 못해 뉴멕시코 주의 사막에 파묻어버리게 됩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이었는데, 2013년 마이크로소프트 직원들이 땅을 파보았더니 정말로 발굴되서 사실로 밝혀졋습니다 (ref1 ref2). 이 최악의 사태는 주가 폭락으로 이어졌고, 1983년 북미 비디오게임 산업 전체에 위기를 초래하게 됩니다. 이것을 "아타리 쇼크" 라고 합니다. 이후 80년대 중반 닌텐도가 북미 게임시장을 장악함으로써 일본의 시대가 오게 됩니다.
아무튼 이 명실상부 전설적인 최악의 게임을 왜 리뷰하지 않느냐는 팬들의 요청에도 제임스는 E.T.를 리뷰하지 않고 있었는데, 2011년 Indiegogo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에 이런게 올라옵니다.
AVGN을 영화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처음 75000 달러를 목표했던 모금은 팬들의 성원에 325000 달러를 넘게 모으게 되고 (대략 3억 5천쯤 되죠?), DIY식 저예산 제작이 아닌, 프로 스탭들과 장편영화 제작에 착수하게 됩니다. 이 영화의 내용은 음... 겁나 유치하긴 한데 (저는 사서 봤음), 아무튼 "E.T." 게임에 대한 내용이고, 엔딩 크레딧 롤에 리뷰도 나옵니다. 장르는... 어드벤처? 액션? AVGN?
작년에 완성된 이 영화는 진짜로 극장에서 개봉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James Rolfe 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죠. 리뷰는 심지어 팬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굉장히 엇갈렸는데, 아무리 James Rolfe라도 장편영화는 처녀작인 것이나 마찬가지고, 개인이 만든 인터넷 시리즈물과 (소위 UCC) '영화'는 평가 잣대 역시 다르게 적용되기 때문었겠지요. 어쨌거나 이렇게 James Rolfe와 Cinemassacre는 그 어떤 상업적 메이저 미디어 없이 인터넷 만으로 만들어낸 새로운 형태의 (게임계의) 수퍼스타가 되었습니다. 현재는 다양한 게임 컨퍼런스에서 팬미팅을 가지며, Cinemassacre 에는 영화 리뷰와 게임 플레이 영상 위주의 업로드로 약간의 창의적 휴지기(?)를 가지고 있는 듯 합니다.
미국의 다양한 덕후문화 (덕중의 덕은 양덕이라고 했던가요) 덕택인지, 이런 하드코어 DIY식 제작물이 수백만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컬트적 팬덤까지 이루게 된 현상이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합니다. 특히나 게임은 그 유저들이 인터넷 역시 열심히 하는 특성 때문인지, 유튜브에 게임 플레이 (+코멘터리) 영상만으로도 스타가 되고 광고수익만으로 고수익을 올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PewDIePIe, Robbaz 등이 생각납니다. 우리나라에는 대정령이 있죠. 광고수익을 합리적으로 업로더에게 분배해주는 유튜브의 시스템, 그리고 게임 홍보 효과를 노리고 플레이영상 업로드에 그다지 저작권으로 문제삼지 않는 게임회사들 덕분에 이런 사람들이 나오는 것 같기도 합니다.
By C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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